Building a human empire by creating a clan RAW novel - Chapter (126)
권속 생성으로 인류 제국 건설 128화(128/185)
인간 목장(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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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맥을 넘겠다고?”
테오칼의 왕이자 화신, 수몬테마가 되물었다.
제국군이 왕국을 통행하면서 사고를 저지르지 않을까, 경계하며 뒤따랐던 그는 내가 스프라 산맥을 넘어서 우아칸 왕국의 수도로 가겠다고 하자 헛웃음을 지었다.
“저 산이 얼마나 험준한지 알고서 하는 소리냐?”
알지. 모를 리 있나.
알프스산맥의 최고봉보다 높고 산 위에 빙하가 있으며 변온동물 리자드맨은 단 마리도 넘지 못한 천혜의 요새. 그러니 내가 저 산을 넘겠다는 소리가 어처구니없겠지.
하지만 나는 가능했다.
이미 몇 번이나 넘어봤으니까.
길잡이조차 필요 없을 정도로 똑똑히 기억했다.
“너희 인간이 우리보다 기온 변화에 둔감하다고 하나, 무모한 짓이다. 지금이라도 다른 곳으로 가라. 내 관대함이 건네는 충고다.”
수몬테마가 구태여 나를 말렸다.
제국군이 허무하게 죽어버리면 득이 없으니. 되도록 전력을 온전히 유지하면서 다른 왕국과 부딪혀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나는 단호하게 충고를 걸렀다.
“···욕심이 일을 그르친 뒤에야 내 충고가 떠오를 것이다. 인간.”
수몬테마는 불편한 기색을 띠며 그르렁거렸다.
“다들 그렇게 말하더군.”
녀석의 말대로 산맥을 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니발이나 수보로프, 나폴레옹 같은 명장이 수많은 업적을 이루었음에도 알프스를 넘었다, 라는 타이틀이 강조되는 이유가 무엇이겠나.
산맥을 넘는 군사 기동 자체가 아주 고난이기에, 고난을 이겨낸 능력과 의지를 칭송하는 것이라.
“비전투 손실이 꽤 있을 겁니다.”
군무대신 게하르드와 육군총장 젝트도 경고했다.
“그렇겠지. 허나, 반드시 넘어야 한다.”
알프스를 건넜던 한니발은 군의 절반가량을, 수보로프와 나폴레옹은 그보다 적었을 뿐 상당한 피해를 보았다. 그러나 이들이 모르고 산맥을 넘었을까?
피해를 예상하면서 그 이상의 이득도 알았기에 산맥을 넘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테오칼에서 우아칸으로, 요새가 맞닿아 있는 국경을 통해 지나가면 똑같은 일이 반복될 뿐. 테오칼에서 그러했듯 국경 요새를 점거하고 적의 우두머리가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이런 짓은 수몬테마에게나 먹히는 수다.”
나는 수몬테마와 다른 두 화신의 성격을 잘 알았다.
내가 아는 수몬테마는 국경 요새가 하나 점령당했다고 전면전을 치를 성격이 아니었다. 도리어 요새를 점령한 내 행동에 위협을 느끼고 신중하게 접근하려 들겠지.
그러나 다른 두 화신은 달랐다.
수몬테마와 다르게 제국군의 출현을 깨닫자마자 미케나 제국에 있을 원정군을 회군시켜서 나와 전면전을 치르고도 남을 성격이었다.
“전면전은 피해야 한다. 그러나 테오칼에서 했듯이 국경에서 무력시위를 한다면 전면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적의 심장, 우아칸 왕국의 수도를 노리면 어떨까.
원정군을 회군시킬 여유도 없이 몰아치면?
“멀리 떨어진 국경이 아니라 왕궁을 압박하면 적은 대응할 시간이 없다. 우리는 우위를 점한 상태에서 협상 테이블로 상대를 끌고 올 수 있을 터.”
손무가 병법에서 말하지 않았나.
최상의 승리란 미리 이기고 싸우는 것이라고.
이기기 불가능한 싸움을 뒤집고 이기는 것은 대단하다. 그러나 이기기 불가능한 싸움을 만들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니면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는 판을 만들던가.
싸움에서 이겨도 피해가 크면 무슨 가치가 있나.
“저 산맥 너머에 자신이 안전하다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 적이 있다. 우리가 테오칼과 다투었다는 것을 모르고, 저들 앞에 당도하리라는 것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수도 앞에 군대가 나타났다고 생각해보라.
심지어 그 수가 60,000명에 달한다면?
대체 무슨 생각이 들까?
“아무리 드센 성정이라도 감히 싸울 엄두를 못 내겠지.”
하여, 나는 60,000명의 제국군을 이끌고 산맥을 넘었다.
“추, 추워···.”
만년설이 쌓인 산맥의 추위.
“조심해! 미끄러진다!”
사람의 손이 닿은 적 없는 자연 그대로의 길목.
그곳을 보급 부대를 제외한 6만 명의 군대가 지나야 했다.
사람뿐이라면 그나마 나았겠건만, 톤 단위의 무게가 나가는 공성포를 포함한 군수물자까지 끌며 산맥을 넘었다.
“바람아 가라앉을지어다.”
나는 영혼의 마력을 부리면서 길을 열었다.
늦봄에 몰아치는 눈보라를 걷어내고, 내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는 길을 짚어가면서 산맥을 넘었다.
그 결과 비전투 손실은 10% 미만, 산맥을 넘기까지 열흘도 걸리지 않았다.
“초입에 있는 도시를 점령하라. 여기서 반나절 거리에 우아칸의 수도가 있다. 두 거점 사이에 왕래가 잦으니 가만두면 우리의 존재를 바로 알아차릴 거다.”
산맥을 넘자마자 산어귀에 있는 소도시를 점령했다.
산에서 내려오면 바로 날이 따뜻해지기에 산맥을 천혜의 요새로 삼아서 터를 일군 도시였다. 그러나 그 탓에 방비가 허술하여 권속을 앞세워 진입하자 일체의 저항도 없었다.
“도시 점령이 끝났으면 총병대가 우선 하산하고 적의 수도로 직행한다. 후속 부대는 젝트가 지휘 하여 따라오도록.”
“총병대만으로 공세 하실 겁니까?”
“포병과 창병까지 하산하려면 며칠은 걸릴 거다. 그 시간이면 적이 우리의 존재를 알아채기에 충분해. 그러면 기습 효과가 없다.”
나는 권속과 총병대를 포함한 9,000여 명의 선발대를 이끌고 우아칸의 수도로 향했다. 적의 허를 완벽하게 찔렀다.
제국의 원정군이 테오칼에 나타났다는 소식도 받지 못한 상황. 그런데 수도 코앞에 인간의 군대가 당도했으니, 그 충격은 배가 되리라.
댕— 댕—
패밀리어를 보내어 목격한 도시는 혼란 그 자체였다.
제국군의 접근을 알지 못하고 일상을 구가하고 있던 시민은 첨탑에서 치는 종소리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곧 감시병이 ‘적이다! 인간이다!’ 하고 소리치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인간이다! 인간의 군대가 나타났다!”
나는 종소리에 섞인 비명을 패밀리어의 귀를 통해 들었다.
도시 안의 시민은 비명을 지르며 제집으로 숨었으며, 도시 밖의 시민은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제국군을 보고 몸을 굳혔다.
도시가 얼마나 혼란에 빠졌는지 제국군이 성문에 다가오려면 한참 멀었거늘. 도시 밖의 시민이 무수한데도 성문을 걸어 잠갔다.
“열어줘!”
“못 들어갔단 말이야!”
성문 밖에 미처 들어가지 못한 시민이 아우성쳤다.
“포위하시겠습니까?”
“아니. 서문으로 집결하고 기다려라.”
수도에 도착한 전력은 권속과 총병대 뿐.
그 수가 일 만도 되지 않는데, 백 배에 가까운 시민이 거주하는 도시를 어떻게 포위하겠나. 심지어 공성 장비도 없었다.
“게하르드는 이곳에 남아서 군을 지휘한다. 만약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적이 공격해오거나 혹은 그럴 기미가 보인다면 과감하게 대응하라.”
“알겠습니다.”
나는 칼리오페와 근위병들을 이끌고 성문 가까이 갔다.
테오칼의 국경 요새에서 그러했듯이 내게 온갖 공격이 가해졌으나 칼리오페에 의해 막혔다. 한참이 지나 적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잠잠해졌을 때, 나는 고했다.
“나는 인류 제국의 황제, 에다르 룬드링겐이다. 너희의 왕 코아믹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자 왔으니 문을 열라.”
적은 잠시 침묵하다가 내게 소리치려고 했다.
“웃기지—“
– 들여 보내라!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
영혼의 마력으로 발한 목소리였다.
성벽 위의 수비병들이 움찔하고 입을 닫았다.
내게 욕지거리를 뱉고 싶겠지만, 제 주인의 말을 거역할 수 없는 노릇. 그들은 머뭇대면서 성문을 천천히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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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아칸의 군사에게 포위된 채 왕궁으로 이동했다.
내 기억으로 리자드맨의 도시는 일종의 개미굴과 같아서 일꾼에 속하는 계급이 분주하게 돌아다녀야 했다. 한데, 소름 돋을 정도로 조용했다.
도로에 인적조차 거의 없었다.
누가 이 도시가 왕국의 수도라고 생각할까.
‘이 도시에 리자드맨이 아닌 종족이 군사를 이끌고 온 적이 없었을 테니까. 나를 경계하는 거다.’
하물며 나는 가축으로 취급받는 인간 아닌가.
일꾼 계급의 시민은 건물 안으로 숨어서 나를 훔쳐보았다. 도로에 나와 있는 이들은 주인을 따라 숨지 못하고 방치된 인간 노예뿐.
노예들은 제 앞을 지나는 나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
왕궁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내가 알현실에 들어간 순간, 알현실 양옆으로 늘어선 왕의 친위대가 그들 사이를 걷는 내게 살의를 흘렸다.
【Lv. 83】
【Lv. 78】
【Lv. 81】
그러나 나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더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고, 철인 특성이 있었으니. 강렬한 기세가 나와 칼리오페, 근위병들을 압박하고 있음을 느낌으로 알았을 따름이었다.
“원숭이가···.”
친위대의 몇몇이 내 무심한 반응에 욱하여 발을 떼었다. 허리춤에 손을 얹고 살의를 품은 모습이 여차하면 나를 벨 태세였다.
지금의 나는 호위가 몇 없었으니까.
나를 죽이거나 압박하기에 좋게 보였으리라.
“허튼짓하지 마라.”
허나 친위대는 발을 디디지 못했다.
막 걸음을 떼었을 때, 칼리오페가 그들을 보았다.
그녀의 서늘한 눈동자가 한 차례 훑자 몸을 떨었다.
그녀가 흘리는 기세가 친위대가 쏘는 살의를 압도함을 뒤늦게 깨달은 모양이었다. 도마뱀의 표정을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나는 그들의 표정에서 당혹감을 읽었다.
“물러나라.”
【Lv. 90】
옥좌에 앉은 우아칸의 화신 코아믹이 고했다.
친위대가 고개를 숙이고 걸음을 물렸다.
나는 호위를 세우고 코아믹의 앞에 섰다.
“무슨 수작을 부렸지, 인간?”
무슨 수작이라.
나는 정확한 물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어떻게 이 도시에 왔느냐는 말이다.”
“’내게 들키지 않고’, 라는 말이 생략된 물음이군.”
코아믹은 말없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국경에서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을 테니까.
대체 무슨 수를 써서 수도까지 군대가 왔나, 궁금할 테지.
“수몬테마가 길을 열어주었다.”
“수몬테마가?”
코아믹은 눈을 깜빡였다.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는 투였다.
“허나, 놈이 길을 열어주어도 이곳에 오기 위해서는 국경을—“
“국경이란 나라와 나라의 영역을 나누는 경계를 말하지. 그 경계가 반드시 요새라는 법이 있나? 강도 있고, 산도 있지 않나.”
“산? 산맥을 넘었다고?”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코아믹은 말도 안 된다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외에 다른 방도가 없음을 깨달았을 터.
잠시 말을 잊었다.
“···목적이 무엇이냐. 왜 나를 찾아왔지.”
“이미 알고 있을 텐데.”
“인간이군.”
“그래. 나는 네게서 인간을 사고자 한다. 너희가 목장을 두고, 그곳에 인간을 기름을 알고 있다. 또한, 너희가 인간을 값비싸게 팔고 있음도 알고 있지.”
“······.”
“수몬테마는 내게 인간을 넘기겠다고 약속했다. 너는 어떻게 하겠나, 코아믹?”
코아믹은 이맛살을 깊게 찌푸렸다.
본래라면 절대 안 된다고, 내게 으름장 놓았겠지.
수몬테마처럼 윽박지르면서 나를 죽이려 했을 거다.
그러나 지금 녀석은 아무런 대비가 안 되었다.
“···좋다. 팔지. 하지만 전부는 안 된다.”
절반만 팔겠다고 답했다.
나는 코웃음 쳤다.
“나는 네가 부리는 인간 전부를 원한다.”
“안 된다. 애당초 나는 인간을 절반만 처분할 생각이었다. 나는 다른 놈들과 달리 밑천까지 처분할 생각이 없었다. 거래 상대가 네가 아니어도 마찬가지야.”
“내가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말인가?”
“그 어떤 조건으로도.”
코아믹은 단언했다.
나는 녀석과 시선을 마주 보면서 물었다.
“그 어떤 조건에 쿠이라우의 목을 걸어도?”
“뭣?”
쿠이라우는 또 다른 화신의 이름이었다.
수몬테마, 코아믹, 쿠이라우.
리자드맨의 세 화신.
“쿠이라우를 죽이겠다고?”
“네가 내게 인간을 모두 무사히 넘긴다면 쿠이라우를 죽여주겠다. 이래도 거절하겠나?”
“오만하구나, 인간.”
“오만이라.”
나는 피식 웃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너희 세 화신은 서로 비등한 전력을 품고 있지 않나? 그렇다면 내가 녀석을 죽이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죽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우드득···
옥좌의 손 받침대가 우그러졌다.
코아믹은 내 말의 속뜻을 이해했다.
세 화신의 수준은 비등하므로, 하나를 죽일 수 있다면 다른 둘도 죽일 수 있었다. 따라서 내가 한 말은 ‘내가 너, 코아믹을 죽일 수 있는데, 쿠이라우를 죽이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라고 물은 격이었다.
“나를 도발하는 것이냐? 내가 그깟 도발에 넘어가리라 생각하는 거냐! 너는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 반드시 쿠이라우에게 가야 함을 내가 모를 줄 알고? 네 오만한 제안을 받지 않더라도 너는 어차피 놈과 싸울 것인데, 내가 네 말에 따를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나?”
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답했다.
“아니라면, 너를 죽이면 되니까.”
벌떡
코아믹은 옥좌에서 일어서서 나를 노려보았다.
“왜 화를 내지? 되레 화를 내야 하는 사람은 나건만.”
나는 미소를 유지하며 혀를 찼다.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게냐!”
“살심을 먼저 품은 쪽은 너다. 내가 모를 거라 생각하느냐? 네가 나를 알현실로 입장을 허가한 이유가 대화를 위해서가 아님을 나는 알고 있다. 기회를 노려서 나를 죽일 속셈이었지. 안 그런가?”
“······.”
“내가 알현실까지 군대를 이끌고 올 수는 없으니까. 고작 열 명뿐인 호위를 데리고 네 앞에 서야 했으니까. 나를 쉬이 죽일 기회가 있으리라 보았겠지.”
알현실에 들어오자마자 녀석의 친위가 내게 취한 행동이 독단일 리 없었다. 눈앞에 신으로 숭배하는 존재가 가만히 있는데, 제깟 것이 무엇이라고 나서겠나?
분명 코아믹이 기회가 되면 나를 죽이라고 지시했을 터.
나는 그것을 지적했다.
“너는 나를 죽일 기회를 잡기 위해서 거리를 내주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아라. 이 거리에서 내가 너를 죽이지 못하리라 보는가?”
코아믹은 인간 목장 외의 인간을 본 적이 없었다.
대의제에도 참석하지 않아서 나와 권속을 보지 못했다.
그러니 이토록 쉽게 거리를 내주었다. 그저 소문으로 듣기에 인간 치고 강자라, 자신과 친위대라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거다. 수몬테마처럼.
“수몬테마는 똑똑했지.”
나는 코아믹이 들으라고 중얼거렸다.
“······.”
코아믹은 움찔했다.
내가 산맥을 탈 수 있던 이유가 무엇이었나.
수몬테마가 내게 통행 허가를 내주었기 때문이다.
코아믹이 생각하기에 수몬테마가 내게 얌전히 인간을 넘겨주고 통행까지 허가했으리라 생각이 들까? 수몬테마도 코아믹과 똑같은 상황에 부닥쳤다가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마치 터지기 직전의 폭탄을 남에게 돌리듯이 말이다.
“수몬테마에게 무엇을 제안했지?”
“글쎄.”
나는 답을 말하지 않았다.
코아믹은 이를 드러내며 그르렁거렸다.
굳이 답하지 않아도 코아믹은 알아서 확신할 거다.
제 목을 가져다주기로 약속했으리라 생각하겠지.
“목은 하나면 된다. 화신은 셋이고, 너는 두 번째. 고로 아직 한 마리가 남아 있지. 어떻게 하겠나? 수몬테마처럼 내게 인간을 넘겨주겠나,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하겠나.”
세 화신은 동족이지만, 결국 서로를 죽여야 하는 운명.
영역을 무한하게 넓힐 수 있다면 모를까. 휘하에 무리가 번성을 거듭하다 보면 영역은 모자라게 된다. 그러면 외부로 진출하거나 동족의 영역을 빼앗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리자드맨이 오크, 고블린과 비슷하다고 여긴 이유가 이것이었다. 다른 종족과 달리 리자드맨은 화신 간에 우애는 없었고 서로를 잡아먹어 성장하려는 본성밖에 없었으므로.
“받아들일 텐가?”
나는 코아믹의 망설임을 읽고 되물었다.
망설이는 이유는 단순했다.
“네게 정말로 그럴 능력이 있다고?”
내 힘을 의심하는 것이라.
내게 과연 그럴 능력이 있느냐고.
“그렇다면 보여 봐라! 네깟 놈이 정말 그럴 수 있는지!”
코아믹은 손뼉을 세게 쳤다.
그러자 알현실의 바닥이 나를 중심으로 움푹 파이며 발이 한 치 밑으로 훅 꺼졌다. 바닥이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돌바닥이 모래알처럼 잘게 부스러져서 개미지옥과 같은 형상이 된 것이었다.
몸이 갯벌에 빠지듯이 모래 속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그르르···
모래 아래에서 진동과 함께 들리는 울음소리.
나는 저것의 정체를 알았다.
코아믹이 사형수로 기르는 샌드웜이었다.
【Lv. 74】
【Lv. 67】
【Lv. 79】
【Lv. 75】
【Lv. 68】
【Lv. 73】
【Lv. 80】
샌드웜의 수는 7마리.
발아래, 모래 속에 굶주린 울음을 흘리며 나와 근위병 주변을 맴돌았다.
사사사삭—
벌레가 움직이자 모래가 들썩이면서 몸이 모래에 잠기는 속도가 빨라졌다. 무얼 하지도 않았건마는 금새 무릎까지 파묻혔다.
“에다르 님.”
나는 벌레의 움직임을 주시하다가 칼리오페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시선이 어느새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코아믹의 친위대를 향하고 있었다.
친위대는 모래에 잡힌 우리를 내려다 보면서 살의를 드러내고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인간 목장(9)
끼에에에엑—!
샌드웜의 괴성이 들리는 순간, 칼리오페는 뒤에 선 근위병의 창을 빼앗아 바닥을 찔렀다. 창은 모래 안으로 깊게 박히고 벌레의 괴성이 재차 터지다가 뚝 끊겼다.
칼리오페를 노리던 벌레가 절명한 것이라.
“마저 처분하겠습니다. 에다르 님.”
“음.”
칼리오페는 창을 놓고, 모래에 묻힌 오른발을 들었다가 모래 속으로 내리찍었다. 발이 푹 파고들면서 발끝에 모인 마력이 사방으로 퍼졌다.
퉁—
묵직한 소리와 함께 발아래에 진동이 일었다.
끼에에에에에엑—!
모래가 솟구치며 샌드웜이 튀어 올랐다.
샌드웜은 진동에 민감한 괴물이기에 칼리오페가 일으킨 충격이 피를 토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모양.
여섯 마리의 벌레는 막 나와 근위병들이 빠진 모래 안으로 들어오던 코아믹의 친위대와 부딪혔다.
“끄아아아악!”
그리고 그냥 부딪힌 것이 아니라, 고통에 발버둥 치면서 딱딱거리던 입으로 제 주변에 있는 친위대를 씹었다.
“떼어내!”
친위대가 당혹에 빠진 틈을 노려서 칼리오페는 근위병을 이끌고 모래에서 나왔다.
제국 근위처의 총원은 열 명. 그 열 명 중 상대적으로 레벨이 낮은 넷이 나를 지켰고, 칼리오페를 포함한 나머지 여섯은 친위대를 공격했다.
서걱!
“컥···!”
“어, 어?”
칼리오페의 칼질 한 번에 친위대 둘의 목과 팔이 잘렸다. 팔이 잘린 녀석은 그녀의 뒤를 쫓은 근위병이 워해머를 휘둘러서 머리통을 깨드렸다.
퍽!
코아믹의 친위대는 레벨이 80 초반부터 60 초반까지 다양했다. 칼리오페가 있어도 제국 근위처가 쉬이 이길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고레벨에 속하는 이들이 뒤로 물러나 있는 탓에 무력하게 쓰러졌다.
‘내가 혹여 코아믹을 노릴까, 눈치 보고 있군.’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멍청한 것.’
하려면 확실히 해야 했다.
나를 죽일 의도가 있다면 무조건 죽여야지.
내 수준을 평가하겠다는 핑계로 샌드웜을 풀어 놓고, 친위대를 보내어 죽일 기회를 엿보는데, 막상 친위대의 주전력은 물린다? 대체 무슨 생각인가?
“자, 잠깐···!”
그러니 이런 멍청한 반응이 나오지.
권속이 칼을 휘두르는 와중에도 친위대는 반격은커녕 당혹감에 휩싸여 주춤주춤 물러나기에 바빴다.
“뭣들 하는 게냐!”
그 꼴을 보다 못한 코아믹이 소리쳤다.
녀석은 영혼의 마력을 토하며 친위대에게 가호를 내렸다. 가호는 교국의 사제들이 그러했듯이 친위대의 레벨을 급격하게 올렸다.
친위대를 휩쓴 혼란이 일순간 사그라졌다.
솟구치는 힘이 고양감을 느끼게 했을 터.
표정을 굳히고 권속의 공세를 막아냈다.
“칼리오페. 물러나라.”
나 또한 영혼의 마력을 일으켰다.
이대로 두면 싸움이 격해질 뿐이었다.
코아믹과 지금 사생결단을 내는 것은 좋지 않았으니.
억누르고 있던 영혼의 존재감을 깨웠다. 코아믹과 다르게 나는 권속에게 가호를 내리지 못했지만, 영혼으로 하여 빛을 발하여 내 존재감을 퍼트리는 것은 간단했다.
그러자 코아믹의 가호를 받아서 기세가 올랐던 친위대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내가 코아믹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을 터.
또 다른 신의 존재에 놀란 것이라.
“역시, 네놈도 그랬군.”
코아믹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내가 알현실에 당도했을 때부터 짐작했겠지.
영혼을 다룰 줄 알면서 영혼을 보지 못할 리 있나.
나는 드래곤 로드의 조언에 따라 되도록 영혼의 격을 감추고 있지만, 수몬테마나 코아믹 같은 존재라면 내 영혼이 범상치 않음을 깨달았을 거다.
다만, 그 정도를 몰랐기에 나를 시험한 것이고.
“호기심은 충족했나? 아니면 계속할 텐가?”
나는 코아믹과 시선을 마주하며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다.
“···그만. 그만하면 됐다.”
코아믹은 왼손을 들어서 친위대를 물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샌드웜이 모래 안으로 도망쳤다.
충돌이 이어진 시간은 짧았으나 피해는 적지 않았다.
샌드웜 3마리와 리자드맨 13마리.
반면에 권속은 경상조차 입지 않았다.
전과를 보며 나는 미소를 진하게 지었고, 코아믹은 인상을 더욱 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