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ilding a human empire by creating a clan RAW novel - Chapter (145)
권속 생성으로 인류 제국 건설 147화(147/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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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케나 제국의 황궁은 깔끔했다.
궁 안에서 전투가 벌어지지 않기도 했고.
연합군이 점령 후에 나름 정돈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눈으로 보았을 때 이야기.
키이이이이이——
황궁에 날뛰는 영혼을 보면 그리 말 못 하지.
“마력이 상당히 불안정한 곳이네요.”
“언제나 그렇지만, 이곳은 너무 소름 돋는다니까.”
라헬과 키리얀이 말했다.
둘은 영혼을 보지 못하니까.
라헬은 언뜻 느꼈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
칼리오페는 눈매를 좁히고 주변을 살폈다.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은 영혼이 머무는 곳.
영혼은 그녀의 시선을 받자 겁을 먹고 물러났다.
죽어서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존재를 아는 것이라.
“에다르.”
메르세포네가 소매를 당겼다.
내 옆을 따라 걷고 있던 그녀는 눈동자를 떨었다.
“나, 여기 싫어.”
겁먹은 듯 바르르 떠는 모습이 영혼을 보는 것이겠지.
아이의 주변에 장난기 가득한 영혼이 머물고 있으니까.
메르세포네는 영혼과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나를 보았다.
“물러나라.”
나는 살짝 억누르고 있던 영혼의 마력을 풀었다.
그러자 메르세포네를 놀리던 영혼들이 놀라 도망쳤다.
“옆에 있어라. 그러면 오지 않을 거다.”
“응.”
끔찍한 장소다.
비명이 그치지 않는다.
블라드는 대체 몇의 영혼을 잡았을까.
풀, 어— 줘———
아파—— 너무
그릇, 이 왔다—
인간······ 이다———
영혼의 그릇을 넓히기 위해 포획한 영혼들.
영혼은 황궁 중심에 있는 옥좌를 태풍의 눈처럼 두었다.
옥좌를 중심으로 뱅글뱅글 돌면서 비명을 토했다.
“에다르 님.”
칼리오페가 평소보다 딱딱한 어투로 나를 눌렀다.
그녀의 시선은 블라드 황제의 옥좌를 향했다.
“더는 가지 마십시오. 위험합니다.”
“예. 마력이 지나쳐요. 자칫 휘말릴 수 있어요.”
그녀의 경고에 라헬이 뒷말을 붙였다.
영혼을 직접 볼 수는 없어도 마력의 움직임이 있으니.
그리고 내 사념을 통해서 저것이 무엇인지도 알아챘을 터.
꽈악···
메르세포네는 내 손을 힘껏 잡았다.
“왜? 무슨 일이야?”
오로지 평범한 혈족, 키리얀만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옥좌를 향해 턱짓했다.
“저것이 대의제와 티아마르가 원하는 보물이다.”
“뭐? 티아마르?”
키리얀은 티아마르, 라는 말에 눈을 깜빡였다.
난데없이 사룡의 이름이 나왔으니 당황한 모양.
“그저 좋은 아티펙트가 여럿 보관된 장소일 뿐이라면 블라드가 이곳을 굳이 지킬 필요가 없다. 블라드, 본인이라면 모를까. 녀석을 지배하고 있는 성물이 왜 아티펙트를 탐내겠나.”
대의제와 그 종족들에게 넘겨주지 않기 위해서 노린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하지만 아티펙트를 지키기 위한 대가가 양측의 전력을 부딪쳐야 하는 결전이라면?
혹여 패배하면 아티펙트와 미케나 제국 모두를 빼앗길 수 있는 도박수를 택하기 쉬울까?
“도박이 될지라도 취해야 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지.”
“그게 저거라고? 저 의자가?”
나는 펜던트를 꺼냈다.
펜던트가 빛을 발하며 심하게 떨었다.
그와 함께 블라드의 영혼이 깃든 반지도.
“······.”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측벽에 달린 창문을 보았다.
새하얀 비둘기 한 마리가 창틀에 앉아 있었다.
– 인간 에다르.
로드의 목소리가 뇌리에 울렸다.
오직 나만이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나를 부른 이후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내게 무언가를 바라지도 않았고 그저 구경할 뿐.
마치 내가 어떤 행동을 할까, 궁금하다는 것처럼.
‘무얼 바라는 것이냐.’
나는 다시 황제의 옥좌를 보았다.
옥좌는 돌을 반듯하게 깎아 만든 투박한 모양이었다.
“다가오지 마라.”
권속들을 물렸다.
영혼은 마력을 품고 있다고 했지.
영혼이 만든 소용돌이는 정말 거센 마력의 폭풍이다.
지금은 그저 비명을 지르며 안정적으로 돌고 있을 뿐이지만.
조금이라도 안정이 깨지면 무시무시한 결과를 낳는다.
저벅, 저벅···
나는 홀로 옥좌로 다가가 그 앞에 섰다.
옥좌 주변은 소름 돋을 정도로 적막이 흘렀다.
영혼의 비명이 무언가에 막힌 듯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곧 그 이유를 알았다.
영혼의 소용돌이가 멈추어 가고 있었으니.
소용돌이 속의 영혼들이 모두 나를 보고 있기에.
‘이전과 다르다.’
이처럼 영혼이 조용했던 적이 있었나?
아니, 없었다. 언제나 울부짖기에 바빴지.
허나 지금 이 순간은 참으로 조용했다.
‘이상하군.’
시선을 무시하고 옥좌의 팔 받침대에 손을 뻗었다.
이전에 만졌을 때는 감전이라도 당한 것처럼 찌릿하거나, 마력이 빨려 나가는 등 반응이 왔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 않았다.
“······.”
본능은 내게 경고를 울렸다.
불길하다고, 옥좌에서 떨어져야 한다고.
허나 옥좌를 이대로 두면 그 뒤는 어떡하지?
티아마르가 옥좌를 왜 노리는가.
옥좌의 마력을 탐내서다.
‘옥좌의 영혼을 해방하고, 옥좌를 부수어야 한다.’
블라드가 신이 되기 위해 속박한 영혼들을 해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티아마르의 먹이가 될 뿐이기에.
‘방법은 간단해. 언제나처럼 하면 되는 거야.’
잠시 앉아서 옥좌에 있는 족쇄를 풀면 된다.
옥좌 자체는 영혼을 묶는 장치에 불과하니까.
기껏해야 마력을 증폭시켜주는 기능이 있을 뿐.
마력을 제공하는 영혼을 해방하면 의자에 불과하다.
그 뒤에 물리적으로 파괴하면 끝이다.
사아아아아아아——
하지만 내가 옥좌에 앉는 순간, 변화가 일었다.
족쇄에서 풀려난 영혼이 내게 멀어지지 않았다.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
영혼이 내 안으로 파고들었다.
환희를 지르며 맹렬하게 내 안으로 들어왔다.
———!
—! ———!
————!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뇌리에 울렸다.
‘마력··· 마력이 넘친다.’
항상 빈 곳이 넘쳤던 내 영혼에 마력이 가득 찼다.
영혼이 내게 들어오면서 제가 품은 마력도 들어오는 것이라.
내 영혼이 그들을 받으며 부풀어 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내 안에서 끓어 오르는 열기와 현기증도.
나는 손을 들어서 얼굴을 쥐고 눈을 감았다.
“······.”
두통은 금방 사그라졌다.
고개를 수그린 채 천천히 눈을 뜨자 풀밭이 보였다.
분명, 옥좌에 앉았고 황궁은 대리석 바닥이었을 터.
달그락
유리잔이 부딪치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내가 있는 장소는 황궁이 아니라 정원이었다.
풀 내음과 새 지저귐이 가득한 정원.
나는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고, 그 끝에 세 명의 여성이 앉아 있었다.
“······.”
“······.”
“······.”
세 명은 모두 같은 외모.
좌측에 앉은 여성은 깍지를 낀 채 눈을 감았고,
우측에 앉은 여성은 턱을 괴어 탁자를 툭툭 쳤고,
둘 사이, 내 정면에 앉은 여성은 찻잔을 기울였다.
“안녕.”
찻잔을 내려놓고 가운데 여성이 말했다.
“내가 누군지 알겠지.”
나는 고민 없이 대답했다.
“티아마르.”
그녀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다른 두 명의 티아마르가 나를 보았다.
블라드에 깃든 영혼과 펜던트에 깃든 영혼.
그리고 그 둘이 떨어져 나간 본체까지.
나는 세 명의 티아마르로부터 시선을 받았다.
‘지옥이군.’
사악한 동맹
이곳은 정원이다.
겉으로 보면 목가적인 정원.
그러나 정원의 주인을 알면 지옥이지.
세상을 멸망시키려 했던 사룡이 셋이나 있으니.
“······.”
입을 다물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는 세 티아마르.
나는 그녀들을 한 명 한 명 천천히 훑어보았다.
‘우측은, 펜던트에 깃든 티아마르의 영혼 조각.’
그녀는 목에 펜던트를 걸고 있었다.
본디 내 목에 걸려 있었으나 지금은 내게 없는 펜던트.
펜던트의 티아마르는 나를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좌측은 성물에 깃든 티아마르의 영혼.’
펜던트의 티아마르 정면에 앉은 그녀는 하품했다.
왼손 주먹에 볼을 괴고 뚱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녀의 뒤에 목줄에 메인 여우가 앉아 있었다.
‘···과 아카코스크겠군.’
아카코스크는 여우의 형상을 한 악신.
성물에 깃든 티아마르와 혼재된 영혼이기도 하고.
‘그리고 가운데, 내 정면은 티아마르의 본체.’
티아마르는 나와 눈이 마주하자 눈을 찡긋했다.
다른 두 영혼과 다르게 내게 호감을 드러내는 모습.
그녀의 이질적인 태도에 나는 눈매를 좁혔다.
‘인간의 형상을 취한 것인가, 아니면 육신을 빌린 것인가.’
세 티아마르의 모습은 똑같았다.
그녀들의 동공은 머리색과 같은 검은색.
특이하게도 세로가 아닌 원형 동공.
귀 또한 인간처럼 동그랗다.
‘타인의 육신을 빌렸다면 셋의 모습이 같을 리 없다.’
굳이 세쌍둥이를 빌릴 이유가 없을 테니.
그녀들 스스로 인간의 형상을 취했다고 봐야겠지.
‘티아마르가 다른 형상을 취하다니.’
나는 무심코 코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티아마르가 인간의 모습을 취한 것은 처음 보았다.
이전까지 내가 보았던 그녀의 모습은 드래곤이었으니.
애당초 대화도 거의 나누지 않고 서로 싸울 뿐이었다.
한데, 지금 그녀가 내 앞에서 평화롭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목가적인 배경과 인간의 탈을 쓰고, 혼자가 아닌 셋이서.
당혹스럽게 그지없었다.
“너도 놀랄 줄 아네.”
가운데 티아마르가 나를 훑어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무슨 소리지?”
“말 그대로. 네가 놀란 모습은 처음 보거든.”
처음 본다고?
그녀는 나를 처음 보아야 할 텐데, 이전에 봤다는 듯이 말했다.
“······.”
문득, 나는 우측에 앉은 티아마르를 보았다.
‘블라드에 깃든 성물이 내게 말했었지. 펜던트의 그녀를 통해서 나를 알았다고.’
본체가 분신을 통해 나를 본 것이라.
내가 해답을 깨닫자 티아마르가 눈웃음을 지었다.
“봉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보는 것뿐이거든. 내게서 떨어져 나간 영혼들이 보고 듣는 것을 마치 꿈처럼 접하는 거야. 나는 아버지가 네게 나를 건넬 때부터 보고 있었어.”
“보고만 있던 건가?”
“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니까.”
티아마르는 어깨를 으쓱했다.
“본래 영혼끼리 간섭도 안 돼. 나 외에는 멀리 떨어져 있으면 사념조차 전할 수 없어. 만약 그게 가능했으면 내가 이러고 있게?”
그렇겠지.
다른 영혼들을 부릴 수 있다면 지금과 같을까.
펜던트의 티아마르도 진즉 본체와 합일을 이루었을 터.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은 뭐지? 보는 것밖에 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네가 나와 다른 두 영혼을 부른 것 아닌가?”
“그래서 ‘본래’, 라고 말했잖아.”
티아마르는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네 덕분이야.”
내 덕분이라?
“모르지? 네가 옥좌의 영혼을 받아들이면서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너는 아직 꿈속에 있을 뿐이니까. 네가 일으킨 혼란 덕분에 나를 옭아매었던 사슬이 사라졌어.”
사슬.
티아마르의 봉인을 말하는 것이라.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봉인을 부수었다니.
터무니없는 소리라서 헛웃음을 지었다.
“그토록 많은 영혼이 움직였는데, 아무 일도 없으리라 생각해?”
나는 시선을 내려서 내 몸을 보았다.
전신에서 희미하게 빛이 발하고 있었으니
그 빛이 영혼에서 흐르는 마력이란 것을 나는 알았다.
‘마력이 새어 나오고 있군.’
새어 나오는 마력을 억누르고자 했으나 소용없었다.
내가 품고 있는 마력이 지나치게 많은 탓이다.
억눌러도 감추지 못할 정도로.
“내가 탐낼 정도로 많은 영혼. 그걸 너 혼자 먹은 거야.”
“정확히 말해 봐라. 내가 어떻게 된 것인지.”
“네 영혼이 커졌어. 옥좌의 영혼을 담기 위해서.”
티아마르는 찻주전자와 찻잔을 집었다.
“자, 봐봐. 차가 마력이고, 찻잔은 마력을 담을 수 있는 한계치라고 가정해봐. 차를 잔에 채울 수 있는 양보다 많이 부으면 어떻게 될까?”
“흘러넘치겠지.”
“맞아. 보통은 그렇게 생각할 거야. 그릇보다 큰 마력을 받으면 물이 흘러넘치듯이 마력이 흘러넘칠 거라고. 하지만 현실은 달라.”
티아마르는 주전자를 기울여서 잔을 채웠다.
잔이 가득 차서 차가 넘치려는 순간,
콰직!
잔을 쥐어 깨뜨렸다.
“현실은 이래. 한계를 넘은 마력을 받으면 쏟아내지 못하고 찻잔처럼 깨져 버려. 블라드, 그 머저리가 신이 되고자 옥좌를 만들고도 쓰지 못한 이유가 이거지.”
내가 옥좌를 사용하지 않고 파괴하려 한 이유도 그랬다.
자칫하면 나 자신이 욕심 탓에 붕괴하여 죽어버릴 터.
내가 신적 존재가 되었다 하더라도 너무 큰 힘이니.
괜한 도박을 할 바에야 안전하게 부수고자 했다.
“반면에 너는? 그토록 많은 영혼이 네게 쇄도했는데, 너는 여기 찻잔처럼 깨지기는커녕 도리어 한계가 늘어났어. 영혼을 모두 받아들였다고.”
지금 내 안에서 맹렬하게 날뛰는 마력이 그것이라.
옥좌가 얽매였던 영혼들이 품고 있던 마력.
이제 온전히 내 것이 된 마력 말이다.
“여긴 네 꿈속이야. 너무 먹었으니 소화를 위해서 잠시 쉬는 셈이지. 우리는 네 꿈속을 방문한 것뿐이고.”
“방문한 이유는?”
“알고 있잖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답은 알고 있어도 답을 할 필요가 없었으니.
티아마르는 내 반응에 미소를 진하게 지으며 손을 뻗었다.
“나와 함께하자. 먼 곳에서 온 자야.”
먼 곳에서, 라는 말에 나는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펜던트를 통해서 나를 보고 있었다고 했지.
“모른 척 하지 마. 나는 다 안다고. 네가 아버지로부터 나를 받았을 때부터 나는 너를 봐왔다고 말했잖아. 네가 이 세상에서 보인 모습을 다 봤어. 권속이라는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닌 존재를 만드는 모습, 이 세상 그 누구도 몰라야 할 비밀을 밝히는 것, 이 세상에 네게는 본디 현실이 아니라는 것도.”
그녀는 탕, 소리가 나게 탁자를 치고 몸을 앞으로 뺐다.
나를 향해서 눈을 크게 뜨고 흥분에 찬 목소리를 발했다.
“네가 미치광이라서 헛소리를 한 것은 아니리라 믿어. 아닌가? 혹시 이 모든 것이 네 상상과 우연이 맞물린 것이라고 할 거야?”
“아니. 네가 본 그대로다.”
“그치? 내가 맞지?”
티아마르는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쾌감에 젖는 모습에 나는 슬쩍 몸을 물렸다.
그녀가 본디 이런 성격이었나?
나는 기억을 헤집으면서 과거를 떠올렸다.
수차례 그녀를 상대했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미친 건 내가 아니라 이 녀석이군.’
나는 목 아래까지 솟은 말을 삼켰다.
“함께하자는 말이 정확하게 무슨 말이냐. 동맹을 원하는 것이냐, 아니면 내가 네게 복속하기를 원하는 것이냐.”
“용은 지배하면 했지, 누구도 동등하게 두지 않아.”
“복속이군.”
“복속, 이라고 할 정도로 너를 얽맬 생각은 없어. 그저 네 영혼을 내게 묶기만 해. 네가 도망치지 않게, 나를 배신하지 않도록 작은 조치만 취하면 되는 거야.”
영혼을 저당 잡히는 것이 작은 조치라고?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내가 네게 영혼을 바쳐야 할 정도로 내가 얻을 것이 크다고 생각하나?”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좌측에 앉은 티아마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성물에 깃든 티아마르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보았다.
“얘가 너한테 미케나를 주겠다고 했지? 솔직히 그게 무슨 의미야. 너랑 대의제가 공멸하기를 바라면서 어쭙잖게 내놓은 수작이지.”
본체가 분신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성물의 티아마르는 본체의 손을 뿌리치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마치 세 개의 머리가 각기 다른 자아를 품고 투덕대는 느낌.
“나는 달라. 네 영역을 인정해줄게. 네 영토와 맞닿은 다른 곳도 네가 가져. 오로코 대평원, 네루프 평야, 리자드맨이나 나가도 좋고. 세상은 넓은데 그 정도도 못 주겠어?”
그녀는 내 뒤로 다가와 나를 껴안고 속삭였다.
“블라드가 누리고 있던 힘도, 앞으로 내 아래로 들어올 존재도 모두 네 아래에 두도록 할게. 오로지 네 위에 나만이 존재하게끔.”
손길이 내 볼을 쓰다듬다가 천천히 내려갔다.
“왜 내게 이런 제안을 하지?”
“나는 너를 봐왔으니까. 더 알고 싶거든.”
나는 그녀의 손을 쳐냈다.
그녀는 상처 입은 척 표정 연기를 하며 물러났다.
“기껏 네가 마음에 들어 할 모습을 했는데, 너무한걸.”
“마음에도 없는 짓거리 하지 마라.”
“나는 진심이야.”
“내 영혼은 오롯이 내 것이다.”
“······.”
“네가 내게 약속한 것은 내게 필요 없는 것뿐이다. 내 영토, 인류의 생존권을 보장한들 누가 그 보장을 인정하겠나.”
블라드가 누리는 힘?
흑마법, 그깟 것은 없어도 그만이다.
분명 언데드를 부릴 수 있다면 편하겠지.
하지만 편리함의 대가가 내 영혼이라고?
노예를 얻는 조건으로 노예가 되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차라리 저기 있는 티아마르의 제안이 낫다.”
성물의 티아마르는 내 뒤를 칠 속셈을 품고 있지만, 적어도 내게 필요한 것을 제안하지 않았나.
인력, 물자, 토지에 이르기까지 모두 지원을 해주었고, 중앙 정부에 행정 권속까지 배치하여 실질적으로 내 통치를 받기까지 했으니. 본체의 말뿐인 보장, 받아봐야 손해가 더 큰 보장보다 낫다.
“진심이야? 쟤가 너한테 무엇을 약속해도 내 말 한마디면 아무것도 아니야. 분신은 분신일 뿐이라고.”
“해보라.”
“뭐?”
“네 분신들에게 명해봐라. 나와 적대하라고. 그러면 대의제가 아주 좋아하겠군. 같잖은 원숭이와 도마뱀이 공멸을 택했으니.”
대의제는 티아마르가 깨어나고 있음을 모르니 거기까지 생각은 못 하려나? 나는 피식, 한쪽 입꼬리만 올리고 웃음을 지었다.
티아마르는 인상을 찌푸렸다.
무어라 말하고 싶은 투였으나 입만 우물거렸다.
“네가 바라는 것이 내 영혼이냐, 대의제의 몰락이냐. 둘 다 가질 수는 없다. 지금의 네 수준은 오직 하나만 택해야지. 어떡하겠나?”
답은 정해져 있었다.
“···좋아. 지금은 어쩔 수 없네.”
티아마르는 후,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동맹, 손을 잡는 건 받아들이겠지?”
나는 고개를 주억였다.
세상을 멸망시킬 뻔했던 괴물과의 동맹.
동맹의 목표 또한 기존 질서의 파괴였으니.
참으로 사악한 동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