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ilding a human empire by creating a clan RAW novel - Chapter (154)
권속 생성으로 인류 제국 건설 156화(156/185)
그 약속을 지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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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이 내려가고 있군.”
나는 앞으로 살짝 뻗은 손을 보았다.
눈송이가 손바닥에 내렸다가 바로 녹았다.
“네, 또 날이 추워지고 있습니다.”
“······.”
하늘을 보면 눈이 올 듯 우중충한 날씨.
겨울이 끝날 시기건마는 눈이라니.
나는 후, 숨을 쉬어 입김을 만들었다.
– 자연적인 게 아니야.
“그래, 자연적인 게 아니다.”
이것은 전조다.
“네? 무슨 말씀을?”
군무대신 게하르드의 물음에 나는 답하지 않았다.
그도 더 묻지 않고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내렸다.
“사절이 오고 있습니다. 폐하.”
“항복 사절인가?”
게하르드가 고개를 저었다.
“과연.”
살랑살랑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풀밭.
제국군이 도열한 가운데 오데사 왕국의 사절이 찾아왔다.
“안녕하십니까, 폐하.”
나는 사절을 풀밭 위에 서서 마주했다.
“용건만 말하라.”
서남 반도, 인간의 터전.
본디 이곳에 자리한 국가는 여덟 개였다.
제르마니아, 왈로키아, 교국, 공화국과 네 개의 소국.
오데사는 네 개의 소국 중 하나였다.
“저희 권리를 보장해주십시오. 그러면 항복하겠습니다.”
사절의 대표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보장? 권리를?”
게하르드가 어처구니없다는 투로 되물었다.
무슨 권리를 말하는 것이겠나, 귀족의 특권을 말하는 것이라.
나는 사절 앞에 서서 그들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저 앞에 오데사의 수도가 있었다.
“너희는 아직도 주제를 모르는구나.”
수도가 내 눈에 보인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제국군이 적의 심장에 칼을 들이대었다는 뜻 아닌가.
왕국이 제국을 막지 못했음을 입증하는 증거.
“제국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 너희가 무엇을 했지?”
나의 물음에 사절단은 대답하지 못했다.
오데사 왕국의 저항은 저항이라 부르지도 못할 정도였으니.
제국군의 진격 앞에 적의 저항은 바람 앞의 촛불이었다.
내가 비록 힘을 온전하게 발할 수 없더라도 말이다.
권속이 있고, 수만의 군세가 있지 않나.
한낱 소국이 어찌 막을쏘냐.
“이종족이 너희에게 선물을 베풀었다고, 달콤한 말을 속삭였다고, 너희가 뭐라도 된 줄 아느냐?”
“······.”
“너희는 등에다. 대의제가 제국에게 손을 뻗지 못하는 동안 제국이 감히 저들의 뒤를 노리지 못하도록, 시선을 끄는 등에에 지나지 않는단 말이다.”
그것이 제국 남부에서 국지전이 벌어진 이유다.
소국들은 순전하게 제힘으로 제국과 맞선 것이 아니다.
대의제가, 이종족 개인이 그들을 도와 내게 맞서게 만든 것.
화약 무기와 아티펙트도 베풂 받은 것에 불과했고.
“돌아가라. 등에를 잡지 못 할 정도로 내 두 손이 바쁘지 않으니. 너희의 오만함과 동족을 배반한 죄를 물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제국 측에서도 저희와 싸우는 것은 손해가—“
“썩 꺼져라! 폐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나!”
게하르드의 호통에 사절은 겁을 먹고 도시로 돌아갔다.
사절의 뒷모습을 보면서 게하르드가 중얼거렸다.
“우리를 낮게 보는 건지, 자신을 높게 보는 건지.”
“눈이 먼 것일세.”
산상노인 누아딜이 말했다.
“정세를 제대로 읽었다면 이럴 리 없지. 늦어도 주인이 리자드맨 원정을 마쳤을 때 복속했을 터. 이종족의 본토로 원정까지 간 마당에 저들을 왜 정복 못 할까, 그런 생각을 했어야지.”
당시에 내게 복속한 것은 공화국의 포로뿐.
나가를 믿고 그들의 아종이 되기를 바란 인간들.
이처럼 독실한 이들조차 마음을 돌렸는데, 소국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소식을 접하지 못한 것도 있겠지만, 제국이 커질수록 대의제가 제국을 견제하고자 저들의 기를 더욱 세워주었을 테니까. 자신의 가치를 지나치게 높게 여겼겠지.”
“멍청하군.”
“멍청하지.”
누아딜은 고개를 젓고 내게 물었다.
“어쩌겠나, 주인.”
“제르마니아, 왈로키아를 정복했을 때는 달랐다.”
당시에 나는 두 왕국을 정복하고 특권을 여럿 인정했다.
내란이 한창인 와중에 또 다른 혼란을 일으키면 안 되니까.
안정을 위해서 기존 체제를 상당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그래야 할 이유가 있다고 보는가?”
저들에게 그럴 가치가 있나?
저들이 제르마니아나 왈로키아처럼 거대한 국가인가?
아니면 인류 제국이 저들의 눈치를 보아야 할 만큼 약한가?
“무엇보다, 나는 이미 기회를 주었다.”
누아딜 휘하의 세작을 보내어 소국들과 접촉했었다.
제국에 복속한다면 그만한 대우를 해주겠다고.
어떤 대답을 들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군을 물려라.”
“네,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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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심해.
펜던트의 티아마르가 내게 속삭였다.
– 너를 주시하는 눈이 많아.
그녀가 주의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이 장소에 없는 여럿이 나를 보고 있었지.
온갖 감정이 뒤섞인 기분 나쁜 시선.
“그들인가.”
– 아마도.
“서둘러야겠군.”
제국군이 뒤로 물러나 내게서 한참 거리를 두었다.
나는 거리가 충분하다고 판단한 뒤에 마력을 풀었다.
그리고 곁에 서 있는 여러 권속 중의 한 명을 찾았다.
“메르세포네.”
“응.”
“이리 오거라.”
공교회의 사제와 함께 있던 메르세포네가 총총 다가왔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았고, 마력을 보내어 그녀를 키웠다.
활짝 날개를 펴며 어른이 된 그녀가 하늘로 날았다.
번쩍—
하늘에 태양이 떴다.
이미 하나가 떠 있었으니 이제 두 개가 된 셈.
내 마력을 한껏 머금은 그녀가 광휘를 발하였기에.
도시에서 보기에 태양이 지상에서 떠오른 것 같겠지.
그녀가 한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하늘에서 빛의 포화가 쏟아졌다.
멀리서 보면 먹구름 사이에 햇볕이 내리쬐는 형상.
허나 빛은 마력을 품었기에 닿은 육신을 녹였다.
“으아아아악!”
“피, 피해!”
도시 수비군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저 하늘에 있는 메르세포네를 어찌하겠나.
그녀가 내려보내는 빛을 고스란히 맞는 수밖에 없지.
“가자! 형제들아!”
그것이 신호가 되어 권속들이 몰아쳤다.
일 천에 이르는 권속이 내 가호를 받아 도시로 달렸다.
“막아라! 막앗!”
수비군은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질렀다.
그러나 외침은 외침일 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권속은 닫힌 성문을 부수고, 높은 성벽을 뛰어넘었다.
“헉···!”
그래도 도시는 저항했다.
국경 요새와 다르게 이종족이 많은 탓에.
요새와 다르게 전투라고 할 수 있는 싸움이 일었다.
“사르마타시여! 제게 당신의 분노를 새겨주소서!”
뒤엉킨 마력의 흐름을 신의 가호로 안정시키기도 하고.
아티펙트를 사용하여 권속을 압도하는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원숭이가 신을 흉내 낸다고?”
“같잖은 짓이다!”
하지만 싸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권속과 이종족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으니까.
“머, 멈춰!”
이종족 개개인은 분명 강했다.
권속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강자가 수두룩했다.
또한, 무구도 권속보다 우월하게 갖추었으니.
본래라면 권속이 쉬이 상대할 수 없을 터.
“아버지가 계시는 한 우린 죽지 않는다.”
가슴에 칼날이 박힌 권속이 말했다.
피가 역류하는데도 그는 웃으며 두 손을 뻗었다.
손은 칼을 쥐고 있는 엘프의 목을 그러 쥐었다.
“커, 허··· 억!”
“죽어라. 귀쟁아. 아버지의 대업을 위해!”
“······!”
권속은 일격에 죽이지 않으면 죽지 않으니.
죽음이 곁에 있을 적에도 권속은 두려움이 없었거늘,
진정 죽음이 제 곁에서 멀리 떨어지게 되면 어찌 될까.
“황제 폐하 만세!”
“아버지를 위하여!”
죽음을 잊은 맹렬한 공세에 적은 두려움 속에 괴멸했다.
“이, 이놈들! 놔라!”
오데사의 임금은 옥좌에서 끌어 내려졌다.
대리석 바닥을 구르고 억, 소리와 욕지거리를 토했다.
그러나 곧 고개를 들었다가 나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내가 발하는 광휘에 눈이 부셨을 테니.
오만은 어디 두고 겁에 질렸다.
“당신이, 황제···?”
황제라.
시작은 내키지 않았으나 결국 자처하게 된 명칭.
나는 싱겁게 미소를 지었으나 그는 보지 못 하리라.
그는 고개를 숙였고, 고개를 들어도 빛덩어리만 보일 테니까.
내 빛 너머에 있는 영혼을 보이게는 너무도 나약하므로.
“하, 항복! 항복하겠소!”
늦었다. 늦어도 한참 늦었지.
항복할 기회를 몇 번이나 주었나.
나는 말을 삼키고 근위병 라이몬도를 보았다.
임금과 신하를 포위하고 있던 권속들이 무기를 쥐었다.
“잠깐! 내 다 말 할 테니···!”
권속은 멈칫하지 않았다.
사념으로 내게서 망설임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당신도 모르는 비밀을! 저들이 내게 무엇을 약——!”
뎅겅—
뒤이어 툭, 하는 소리가 여럿 나왔다.
오데사를 다스리던 자들의 목이 모두 잘렸다.
핏물이 궁전 바닥을 따스하게 덥히고 비릿한 냄새를 풍겼다.
“폐하께서 모르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나.”
게하르드가 코웃음을 쳤다.
나는 마력을 다시 억누르고 궁전을 나가려다가 멈칫했다.
“······.”
“왜 그러십니까?”
시신에서 흐르는 피.
바닥으로 퍼지던 피가 멈추었다.
빠져나가는 온기 대신 다른 무언가가 깃들었다.
그것은 마력이었다.
“좀비?”
권속들이 갸웃하며 시신을 부수려는 것을 내가 막았다.
– 그들이야.
옛 신들.
로드가 봉인했던 존재들.
나를 훔쳐보고 있던 시선의 주인.
그들의 마력이 시신에 스며들었다.
펜던트가 떨었다.
움찔, 움찔···
목이 잘린 시신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제 목을 집었다.
잘린 목을 깔끔한 단면에 붙이고 혀를 굴렸다.
– “네 흐름이 느껴지는구나.”
목소리와 사념이 섞여서 들렸다.
– “티아마르.”
다른 시신도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 “오만한 자의 딸아.”
– “우리가 돌아왔다.”
– “심연에서···.”
시신에 깃든 마력과 내게 전해지는 사념은 여럿.
각기 다른 옛 신이 시신을 부리고 사념을 전하는 것이라.
– “한데, 너는 너무도 작아졌구나.”
비웃음 소리가 궁전에 울렸다.
펜던트의 진동이 격해졌다.
“내버려 두어라.”
나는 펜던트를 쥐어 마력을 잠재웠다.
“나약한 족속에 네게 어찌 못하고 입만 놀리는 것이다.”
– “나약하다고?”
웃음이 끊겼다.
– “너. 이상한 영혼.”
뚜둑···
우드득—
뼈가 부딪히고 부러지고 살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시신의 안에서 무언가가 나가려고 격하게 움직였다.
서걱!
권속들은 안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이상한 낌새를 느끼자마자 쥐고 있던 무기를 휘둘렀다.
끼에에에에엑——!
시신을 찢고 튀어나오던 괴물이 비명과 함께 절명했다.
“보라. 기껏 한다는 것이 시체놀음 아니냐.”
뇌리에 울리는 사념이 잠시 끊어졌다.
대신 내 주위에 마력이 요동쳤으니.
– “너.”
이번엔 그들이 분노한 것이라.
– “티아마르의 영혼을 품고 있는.”
– “너는 누구냐.”
아지랑이가 내게 피어올랐다.
그들의 마력이 나를 훑는 것이었다.
마력에 불과한데도 끈적거리는 느낌.
나 또한 마력을 흘려보내자 떨어졌다.
– “로드.”
– “그의 영혼이다.”
– “아니. 닮았지만 다르다.”
– “알레온이 말한다. 그의 후계자라고.”
서로 숙덕대던 사념이 또 잠시 멈추었다.
생각을 정리하듯 멈추었다가 다시 사념을 전했다.
– “인간 에다르. 로드의 후계자.”
– “우리는 너를 벌할 것이다. 로드를 대신해서.”
– “우리가 겪은 고통을. 너도 겪으리라.”
나는 코웃음을 치고 오른손을 들어서 한 차례 털었다.
그러자 머릿속에 울리던 사념이 뚝 끊어졌다.
“큰 차이는 없군.”
– 차이가 없다니?
“이번엔 다를 것 같았다만, 별반 다를 것 없단 소리다.”
– 똑같았다고? 그들이?
“그래, 언제나.”
티아마르는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멈추었다.
“걱정하지 마라. 너 못지않게, 내겐 저들이 익숙하니.”
시선을 내려서 반으로 갈라진 시신을 보았다.
껍데기는 오데사의 임금이지만, 속은 괴물.
신하들도 똑같았다.
다만, 속에 담은 괴물은 각기 달랐지.
공통점이 전혀 없다고 할 정도로 달랐다.
“폐하, 이것들은 뭡니까?”
“제르마니아 대신전에 출몰한 놈들과 비슷한데.”
“호르비드? 걘 티아마르한테 지배 당했잖아.”
저마다의 추론을 하는 권속들.
나는 시신이 품고 있던 괴물을 보며 답했다.
“옛 신의 창조물이다.”
“옛 신과 창조물이요?”
“사념을 보낸 것이 옛 신이고, 이 괴물들은 그저 마력을 꼬아서 창조한 괴물이다. 단, 그들이 의도하고 만든 어떤 종족은 아니야. 오로지 혼란을 일으키기 위한 저급한 취미일 뿐.”
파스스···
괴물의 시신이 결정으로 변하여 바스러졌다.
“칼리오페, 사제들을 불러라.”
옛 신의 목소리가 들린 이래.
내 안의 마력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억누르지 않아서 새어나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내 마력을 빌려가고 있는 것이지.
‘라헬, 그리고 공교회 사제들.’
내 마력을 끌어다 쓸 수 있는 이들.
그들이 내 영혼을 부르며 마력을 빌리는 것이라.
“시작됐군.”
도심에 눈이 시름시름 내렸다.
그 가운데 권속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라헬과 다른 사제들이 마력을 빌리는 이유.
옛 신이 푼 마력이 죽은 자를 일으키고 있었다.
궁전에 있던 시신에 국한되지 않고, 제국 전역에서.
아니, 이 세상 모든 곳에서 죽은 자가 일어나고 있을 터.
– 마력의 흐름이 조금씩 어그러지고 있어.
“세상을 제 입맛에 맞게 고치고 있군.”
– 또 겨울이 올 거야. 어쩌면 봄이 오지 않을지도.
겨울만 오면 다행이다.
옛 신의 취향은 참으로 독특해서.
인간은 도저히 버티기 힘든 것을 부르거든.
“부르셨습니까. 아버지.”
사제들이 도착했다.
공교회의 사제는 모두 권속이라고 봐도 좋았다.
정식 서임을 시작하고 몇 년 지나지 않았으니까.
권속처럼 검증된 인물이 몇 없는 탓이었다.
– 거꾸로 말하면 이들은 믿을 수 있다는 거지.
나는 사제들을 한 차례 훑고, 품에서 단검을 꺼냈다.
“너희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
꽈악···
그리고 맨손으로 칼날을 쥐어서 피를 흘렸다.
“아버지?”
놀란 권속들의 사념이 출렁였다.
“가만히 있어라.”
다가오는 칼리오페는 물리고, 사제들에게 다가갔다.
각각 차고 있는 목걸이를 상처 깊은 손으로 쥐었다.
그 목걸이는 공교회의 성물이자 나를 상징했으니.
내 피와 살이 성물에 닿자 빛을 발하였다.
“이것을 잘 간직하라. 이 안에 내 영혼은 담기지 않았으나, 내 피와 살이 담겼으니 곧 내 몸이라.”
나는 영혼의 마력을 성물에 부여했다.
성물은 쏟아지는 마력을 다 담지 못하여 금이 갔으나, 겉에 묻은 피가 터진 흔적으로 스며드니 상처가 아물듯이 금이 사라지고 핏자국도 사라졌다.
“아버지, 무엇을—”
“이것은 계약의 피. 내가 육신을 벗어나지 못하기에 이것을 보내어 많은 인간을 구하고자 한다.”
성물에 담긴 마력은 막대했다.
내 영혼의 한편이 텅 빈 느낌을 받을 정도로.
막대한 마력을 쏟아 넣은 탓에 잠시 머리를 짚었다.
꽤 오랜만에 느끼는 현기증이었으나 금방 사라졌다.
“이것을 가지고 라헬에게 가라. 그녀가 탑을 짓고 있다.”
“탑···.”
옛 신의 마력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고 왜곡한다.
죽은 자를 살리고, 영원한 겨울을 부르고, 병마를 부르는 등.
본디 이것은 본편에서 대재앙이라 부르는 엔딩 시나리오.
즉각 싸우지 않으면 멸망하는 초읽기의 시작이었다.
“탑. 그것은 제국 곳곳에 결계를 만들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림자를 밀어내는 빛과 같은 존재다.
내 존재가 옛 신의 존재를 밀어낼 수 있지.
그러니 초읽기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옛 신의 영향이 이 땅에 도래하지 못하도록.”
사제들은 동그랗게 뜬 눈으로 목걸이를 내려다보았다.
성물이 나와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을 터.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마력이 흐르고 있었으니.
라헬이 만드는 탑의 불꽃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 사제는 탑의 수호자가 되리라.
“내가 이 세상, 이 육신에 깃들었을 때, 약속한 바가 있다.”
올리머스에 당도한 첫날의 일이었다.
나는 그때, 촌장 키슬러에서 이리 말했었지.
그 어떤 인간 영주보다 너희의 삶을 지켜주겠노라고.
“지금이 바로 그 약속을 지킬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