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ilding a human empire by creating a clan RAW novel - Chapter (167)
권속 생성으로 인류 제국 건설 169화(169/185)
전초전
###
북을 세게 치는 소리가 났다. 너무 세게 쳐서 북이 찢어졌구나, 싶을 정도로 센소리였다. 1,000기의 기병이 19,000마리의 리자드맨에 부딪히자 터진 소리였다.
“달려라! 달려!”
기병대는 수백 미터 밖에서 속보로 접근하다가, 적이 유효 사거리 밖에서 머스킷을 쏘자 속도를 올리고, 거리가 50m까지 좁혀졌을 때 전속력으로 달려서 부딪혔다.
푸욱——
장창이 리자드맨의 비늘을 꿰뚫고 뒤에 선 리자드맨 서넛까지 꼬치로 만들었다. 단 한 번의 돌격, 2,000마리에 넘는 리자드맨이 그 한 방에 명을 마쳤으리라.
“이, 인간!”
“도, 도망쳐!”
놀라움과 두려움 그리고 분노가 무리에 퍼졌다.
일순간 전열이 소멸한 탓에 겁에 질려 도망가는 무리가 있었고, 제 심장을 노려 오는 창을 보고도 굳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무리도 있었고, 한낱 인간이 제게 덤볐다는 사실에 투지를 끓이는 무리도 있었다.
“이대로 돌파한다! 멈추지 말고 계속 달려라!”
제6연대의 연대장, 모티에가 외치며 말을 몰았다. 그를 따라 연대가 적진을 관통했다. 남은 적의 수가 17배에 달해도 대형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에 돌파는 쉬웠다.
“크아아아악!”
닫힌 문을 억지로 열듯이, 막아서는 적을 지나쳤다.
“인간이 도망친다!”
“놓치지 마! 쫓아!”
리자드맨 무리가 진형을 무너뜨리고 연대를 쫓았다.
“도망? 멍청한 도마뱀 같으니.”
모티에는 뒤쫓는 리자드맨의 외침에 코웃음을 쳤다.
“변종은 머리가 나쁘다던데 사실인 것 같군.”
이곳에 집결한 리자드맨은 옛 신의 마력을 먹고 자란 변종이었다. 오크와 고블린이 세례를 받은 것처럼 리자드맨도 도움을 받은 것이었다.
리자드맨은 알에서 태어나고, 알은 산란장이라 부르는 마력이 풍부한 장소에서 기른다. 한데, 옛 신의 마력이 산란장에 깃들면 어찌 되겠나.
자연의 마력을 흡수하며 성장해야 할 리자드맨의 알이 옛 신의 마력을 먹으며 성장한다. 그 영향으로 성장 시간이 반으로 줄고 외형도 변해서 일꾼이 전사보다 신장이 크고, 전사는 오우거에 맞먹을 정도로 거대해졌다.
“우어어어어어어!”
리자드맨 전사의 걸음이 쿵, 쿵, 땅을 흔들었다. 워낙 몸집이 크고 걸음에 힘이 들어가서 그 주변에 있는 무리가 균형을 잃고 넘어지기도 했다.
“인간! 죽인다! 먹는다!”
전사가 충혈된 눈을 희번덕거리며 입으로 침을 줄줄 흘렸다. 영락없이 약에 취한 몰골이었다. 정말로 약에 취한 것은 아닐 테지만, 그가 처한 상황은 약쟁이와 같을 터.
그것이 옛 신이 만든 변종의 특징이었으니까.
“웃기는군!”
모티에가 전사를 보며 비웃었다.
“덩치를 아무리 키워도 머리가 비면 의미가 없지. 안 그래?”
“······.”
곁을 달리고 있는 부연대장은 침묵했다. 그는 눈길조차 연대장에게 주지 않았다.
자주 농을 던지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모티에와 달리 부연대장을 비롯한 연대원은 말이 많지 않은 성격이었다.
“재미없긴.”
오른손에 고삐를 꽉 쥐고 하늘을 보았다.
맑은 하늘에 새 떼가 요란하게 지저귀고 있었다. 날개를 활짝 펴고 다투고 있는 것이 전투가 끝나면 굴러다닐 시신을 노리는 것이라.
그런데 독수리 한 마리가 무리에서 떨어져 있었다. 연대가 휩쓸고 간 장소 위에 빙글빙글 도는 것이 아니라 연대를 쫓아서 날갯짓하고 있었다.
모티에는 문득, 심드렁한 표정을 지우고 소리쳤다.
“형제들아!”
연대장의 외침에 대원들은 언제나처럼 대꾸하지 않았다.
“우리가 너무 빨리 달려서 도망친다고 착각하셨나 보다!”
연대원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바로 옆에서 달리고 있던 부연대장도 그제야 고개를 돌려서 모티에를 보았다. 차분하고 평온하던 표정에 당혹이 어렸다.
“무슨 소리요, 단장?”
부연대장은 기사단장이라 자칭하는 그를 고려해서 물었다.
“아버지께서 내게 물으시더라! 지금 도망치는 거냐고!”
“무, 무··· 뭐?”
“말도 안 되는 소리! 누가 도망친다고?”
부연대장이 말을 잃고 대원들이 격한 반응을 토했다.
“아니라고? 저 도마뱀 새끼들을 때릴 때보다 빠른데?”
“웃기지 마쇼! 댁만 에다르 님하고 통하는 줄 아나!”
“단장이라도 개소리하면 만들면 가만 안 둘 거요!”
모티에가 비웃음을 거두고 씨익 웃었다.
“글쎄!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2, 8연대가 우릴 도우러 온다는구나! 우리가 워낙 못 미더워서 그러신 거 아니냐!”
“썅! 빨리 말머리 돌려! 모티에 개자식아!”
온갖 욕지거리가 그의 등으로 쏟아졌다. 그는 되레 기뻐하며 더 크게 웃으면서 독수리를 보았다.
“보고 계십니까! 아버지.”
그의 말에 독수리가 끼익, 하고 울었다. 독수리는 황제였다. 제국의 수도, 올리머스의 황궁에서 황제가 제 의지를 맹금에게 발하여 두 눈으로 권속을 지켜보고 있었다.
“보고 계십시오. 당신께 이 영광을 바칠 것이니.”
모티에가 힘껏 고삐를 당겼다.
“가자!”
“다 죽여버려!”
“다른 연대는 꺼지라고 해!”
연대가 말머리를 돌림과 동시에 은은한 빛이 그들에게 감돌았다. 수백 미터를 질주한 탓에 피로가 쌓인 말이 원기를 되찾았고, 몸에 난 상처가 아물었다.
“이, 인간이 다시 온다!”
“커헉···!”
뒤쫓던 리자드맨 무리가 비명과 같은 외침을 토했다.
황제의 마력이 권속에게 깃들자 리자드맨이 품고 있던 옛 신의 마력이 반응했다. 마치 증기처럼 거무튀튀한 마력이 육신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내, 내 힘이···!”
“아, 안 돼! 나가지 마!”
빠져나가는 힘을 부여잡으려고 발버둥 치는 순간, 연대가 들이닥쳤다.
“뭐 하는 거냐! 일어서라! 일어서 덤벼 보란 말이다!”
리자드맨은 연대가 도망친다고 착각했다. 그래서 진형도 무너뜨리고 분별없이 뒤쫓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마력이 빠져나가 혼란에 빠진 상황이었다.
이 순간, 연대가 말머리를 돌려서 두 번째 돌격을 감행하자 저항다운 저항을 할 수가 없었다.
“너희의 신은 어딨느냐! 너희의 신을 불러 봐라! 믿어 의심치 않는 족속을 불러서 너희의 힘을 지켜 달라고 울부짖어 봐라!”
권속들은 다시 적진을 관통했다.
퉁, 소리가 날 때마다 랜스에 리자드맨이 한 마리씩 꽂혔다. 모티에의 창에 일곱마리의 리자드맨이 꽂혔다가 우지끈, 부러졌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창이 부러지기 이전에 팔이 견디지 못했을 터. 그러나 그는 권속이었다. 견디지 못한 쪽은 말과 창이었다. 말은 굼떠졌고, 창은 부러졌으니.
“쯧.”
모티에는 부러진 창을 버리고 양손검을 들었다. 길이가 2m에 이르는 대검이었고, 칼질 한 번에 3마리의 리자드맨이 찢겼다.
“다시!”
연대는 그 뒤로도 두 번이나 더 돌격을 반복했다.
돌격이 네 번에서 멈춘 이유는 말의 소모가 심했기 때문이었다. 권속과 달리 갑옷을 걸치지 않은 말은 돌격할 때마다 소모되었으니까.
만약 말이 멀쩡했다면 몇 번이고 돌격을 반복했을 것이다. 적은 그만큼 멍청했다. 같은 전술을 반복해도 대응이 변하지 않았다. 그저 굴러가는 공을 쫓듯이 투지에 몸을 맡기며 권속에게 달려들었으니.
탕!
이따금 머스킷이나 대포가 불을 뿜기도 했지만, 그도 소용이 없었다. 머스킷 탄환은 오리칼쿰으로 만든 갑옷이 튕겨냈고, 대포는 너무 굼떴다.
“전투라기보단 사냥이군.”
###
“적, 도주합니다.”
나는 지휘소에서 지도를 보았다. 방추형의 푸른색 표식이 원형의 붉은 표식 안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근위병이 적 도주를 말함과 동시에 붉은 표식이 파편처럼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6연대, 적 섬멸 목적으로 추격을 시작합니다.”
푸른 표식도 뿔뿔이 흩어지며 푸른 표식을 쫓았다.
“끝났군요.”
율리아 뢰제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피해는요? 바로 확인할 수 있나요?”
“총원 977명 중 사망 131명입니다.”
중상은 그 배가 될 터. 하지만 집계하지 않았다. 중상은 시간이 걸릴 뿐, 치료 가능하니까. 그러므로 실질적인 피해는 131명의 사망자뿐이고, 전과는 리자드맨 20,000마리다.
“이 정도면 그대로 수도까지 밀고 가도 되겠어요.”
교환비 1:150.
경이적인 전과에 율리아가 혀를 내둘렀다.
“폐하의 기사들이 대단하단 건 알았지만, 오크나 고블린도 아니고 이렇게 압도적일 줄은···.”
“서로의 무장 차이가 너무 났습니다. 리자드맨의 비늘이 단단하더라도 오리칼쿰과 비교하면 강철과 가죽 정도의 차이입니다.”
내가 적의 마력 흐름을 흔든 것도 치명적이었고.
“율리아, 그대는 살로니키로 가라.”
내 말에 율리아가 나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살로니키는 왈로키아 북동부에 있는 작은 어촌이었다. 지휘소의 권속들이 탁자 위에 기존 지도를 치우고 세계전도를 펼쳤다. 나는 마력을 보내어 살로니키에 표식을 띄웠다.
“살로니키에 7, 15사단이 수송선단과 함께 대기 중이다. 너는 이들을 지휘해서 테오칼 왕국 남부에 상륙 후 6연대와 합류해라.”
“리자드맨의 왕국을 정복하는 게 목적인가요?”
“아니. 6연대와 함께 리자드맨의 왕국을 초토화하라.”
율리아는 눈매를 좁히고 지도를 보았다.
“초토화···.”
미케나 제국에도 표식 두 개를 띄웠다.
성물의 티아마르를 돕기 위해 파견한 연대였다.
블라드, 라는 구심점을 잃은 뒤로 미케나는 사실상 끝이 났으나 성물이 육신을 바꾸어 가면서 유격전을 펼치고 있었다. 누아딜의 보고에 따르면 꽤 쏠쏠한 전과를 내는 터라, 불씨를 살려주고자 지원했다.
“미케나에 파견한 2, 8연대도 합류할 것이다. 두 연대는 격전을 치른 탓에 전력이 감소했지만, 작전을 펼치기에 모자람 없을 거다.”
“만약··· 화신이 나타나면요?”
“교전을 피하고 본국으로 퇴각하도록. 테오칼과 우아칸을 초토화하는 이유는 두 화신을 회군시키기 위함이다. 만약 화신이 그대 앞에 나타난다면 목적을 달성한 것이지.”
다시 마력을 움직여서 세계전도의 표식을 새로이 표기했다.
제국 연안을 시작으로 오로코 대평원, 제르마니아, 왈로키아는 물론 네루프 평야와 판토니아 그리고 수몬테마의 왕국 테오칼, 미케나 제국 등 엘프와 드워프의 영토를 제외한 모든 곳에 제국군이 있거나 향하고 있었다.
“자, 봐라.”
표식에 화살표를 달았다.
각각의 표식이 이동 중이라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호레이쇼의 원정 함대는 티시레돈에서 출항해서 나가의 거점으로, 제2, 8연대는 미케나 제국에서 제6연대가 있는 테오칼로, 그 외에 화살표는 한곳으로 쏠렸다.
바로 판토니아 남부에 있는 주둔지로.
또 한 번 표식을 추가했다. 이번에는 적을 나타내는 붉은 색 표식이었다. 모든 종족의 표식이 제국군과 똑같이 판토니아를 향해 화살을 겨누었다.
“옛 신이 엘프, 드워프, 나가, 리자드맨, 그들이 노예로 만든 모든 종족을 소집했다. 그 목적은 우리 인간을 정복하고자 함이다.”
율리아를 비롯한 인간들이 표정을 굳혔다.
“이게 폐하께서 이전에 말씀하셨던, 대재앙이란 건가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그들이 깨어나면서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이미 재앙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 다만, 내가 그것을 느끼지 못하게 막고 있을 뿐.”
“······.”
“리자드맨, 나가와의 전투는 전초전이다.”
“전초전···.”
“인류와 옛 신 그리고 티아마르, 셋의 결전을 위한 전초전이지.”
대의제는 이 싸움의 주역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착각하고 있다. 옛 신을 풀어주고 그들의 마력을 품은 시점에서 목숨과 영혼이 저당 잡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종족은 이제 노예보다 못한 존재고, 옛 신들이 나와 싸우기에 앞서서 인간의 수를 줄이기 위해 부리는 소모품에 지나지 않아.”
에테모스가 오크와 고블린에게 세례를 내리고, 리자드맨의 산란장을 개량해주고, 알레온이 하이엘프를 창조하도록 도운 이유는 단순했다.
그들이 세상을 지배하면 누구의 섬김을 받을까?
한 번 반기를 든 이종족을 다시 노예로?
‘그들에게 있어서 귀쟁이, 난쟁이는 감히 옛 주인에게 반기를 든 더러운 족속이고, 다른 종족은 로드의 때가 탄 열등 생물이다. 타협의 대상이 아니야. 좋게 봐야 그들을 섬길 노예를 만들기 위한 거름일 뿐.’
인류와 티아마르에게서 승리를 거둔 다음은?
지배자가 있다면 피지배자가 있어야지.
‘에테모스가 카르카스를 비롯한 다른 옛 신의 도움을 받은 이유가 거기에 있지. 그의 역할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노예 제작이니까.”
에테모스는 지배자를 섬길 노예를 만들어야 했다.
그가 권속에게 집착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그들이 바라던 최상의 노예일 테니까.
‘내가 에테모스를 살린 이유도 거기에 있고.’
그가 있어야 이종족의 몰락이 빨라진다.
이종족을 돕는 척하면서 타락시키기에.
‘어차피 너희는 실패한다.’
나는 에테모스의 성공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다.
이번이라고 다를까?
“그러면···.”
율리아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엘프, 드워프와의 전투는 언제 시작될까요?”
“글쎄.”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올리머스에 있는 내 의식을 북쪽으로 보냈다. 네루프 평야를 지나서 판토니아 남부를 지나서 서북쪽 끝을 날고 있는 철새와 의식을 연결했다.
새의 오감이 내게 전해지자 매서운 추위를 느꼈다. 잔잔한 바람과 함께 눈이 내렸다. 옛 신의 거점과 가깝기에, 탑을 짓지 않았기에, 그들의 마력이 일으킨 기후 변화가 몰아쳤다.
나는 눈발을 해치며 서쪽으로 날아갔다. 곧 하얀 대지를 걷고 있는 무리가 보였다. 높디높은 방벽 너머에서 판토니아를 향해 나아가는 엘프의 군대였다.
“······.”
행렬에서 한 엘프가 고개를 들었다.
살에 핏기가 없어서 푸른 기가 도는 엘프였다. 머리도 색이 빠져서 윤기 없이 하얀데, 마주친 눈동자마저 동공과 홍채의 색이 옅어서 거의 흰자위와 구별이 안 될 정도였다.
엘프의 외모는 신이 깎은 조각과 같다고 하지만, 이와 같은 외모는 아름답기보다 섬뜩함이 강했다.
모든 엘프가 그와 같은 것은 아니었다. 이런 외모를 가진 엘프는 수십 명 중 한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 각각이 주변의 존재감을 삼킬 정도로 강렬한 기운을 발하고 있었다.
스윽···
그 엘프가 날고 있는 나를 보다가 오른손을 뻗었다. 손에 마력이 맺히고 내 의식과 연결된 새의 육신이 터졌다.
“하이엘프라.”
새를 잡은 엘프가 하이엘프다. 알레온이 에테모스와 함께 만든 엘프의 상위 종족이다. 로드처럼 완벽한 존재를 만들기 위한 과정 중 하나.
‘멍청한 것. 너는 네 종족을 노예로 만들었을 뿐이다.’
나는 속으로 웃으며 율리아를 보았다.
“다시 말하지. 율리아, 그대의 역할은 호레이쇼와 같다. 이목을 끌어라. 하나로 뭉치지 못하게 물고 늘어져라. 대의제가 우리에게 했듯 물러날 때까지 보이는 모든 것을 파괴하라.”
그 말을 해야 할 건 나야
###
똑··· 똑···
거대한 홀 안에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천장에 난 균열에서 물방울이 맺히고 떨어지기는 반복했고, 균열이 하나가 아니었기에 벽을 타고 흘러내리기도 했다.
주륵···
흐르는 물이 벽화를 지나며 마른 벽을 적셨다. 벽화는 회반죽 벽에 그린 것으로, 안료가 벽에 스며들어 건조되었기에 물에 닿았다고 지워지는 일은 없었다.
주륵, 주륵, 물은 계속 흘렀다.
벽화는 만 년 전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었다. 옛 신의 가축이요, 노예였던 이종족 앞에 제 모습을 발한 존엄한 자를 남긴 것이니. 광휘를 발하는 용과 그에게 기도하는 이종족의 모습이었다.
주륵···
흐르는 물이 기도하는 이들의 눈동자 아래로 흘렀다.
벽화의 원래 의미는 찬미였지만, 그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지금 벽화를 본다면 달리 해석했으리라.
넓고 거대한 홀에 촛불 몇 개가 불을 지키고 있었기에, 존엄한 자와 기도하는 자 사이에 균열이 갔기에, 마치 단절된 관계 속에서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는 모습 같았으니.
“······.”
알레온은 벽화를 보고 있었다.
홀을 지나다가 무심코 걸음을 멈추고, 노란색의 세로 동공으로 말없이 벽화를 훑었다. 보는 이로 하여 경외를 느끼게 했던 벽화가 이제 다른 감정을 일으키는 것처럼, 그의 외모도 변했다.
왼쪽 관자놀이에 뿔이 자랐고, 길고 뾰족했던 귀는 축 늘어졌으며, 피부는 곰보와 주름으로 찼다. 엘프, 라는 종족의 조건에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는 엘프가 아니겠지.
똑—
알레온은 다시 걸음을 옮겨서 회의실로 향했다.
“오셨습니까?”
엘프, 드워프, 나가, 리자드맨 네 종족의 대사가 있었다. 대사들은 서로를 불신하며 노려보다가 알레온이 들어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지? 긴급한 일인가?”
알레온은 인사를 받지 않고 바로 본론을 물었다.
“인간이 움직였습니다. 이전보다 심각합니다.”
“심각하다··· 언제는 안 그랬나?”
코웃음 치면서 자리에 앉자 엘프 대사가 고개를 저었다.
“웃고 넘어갈 수준이 아닙니다.”
“음?”
엘프 대사가 벽에 걸린 지도에 팔을 뻗었다. 그의 왼손이 나가의 거점을, 오른손이 리자드맨의 영토에 닿았다.
“두 곳이 동시에 공격받았습니다. 나가는 본거지에 인접한 섬 9곳이 점령당했고, 리자드맨은 테오칼의 수도가 점령당했습니다.”
알레온이 웃음을 거두고 인상을 찡그렸다.
“머저리들이··· 뭔 짓을 했기에 멍청하게 당한 거냐?”
“인간들이 선체를 강철로 두른 배를 만들었습니다. 에테모스가 만든 바다괴물도 소용없다고 합니다. 여기에 대포까지 얹은 탓에 해상을 완전히 빼앗겼습니다.”
대사는 양손을 움직이며 바다를 통해 인간들이 두 영토를 침공했음을 표현했다.
“허, 선체를 강철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눈을 깜빡였다.
“또 무슨 마법을 부린 거냐?”
드워프 측의 대사 또한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아시다시피 여왕과 화신의 주력이 판토니아로 오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본토에 남은 군사력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테오칼의 수도를 점령할 정도면··· 왕국 전체를 정복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
알레온은 검지로 탁자를 툭툭 치면서 고민하다가 물었다.
“그뿐인가? 거점을 점령한 뒤에 움직임은?”
“모든 걸 파괴하고 있습니다. 테오칼의 수도를 점령한 뒤에 며칠에 걸쳐서 파괴하고 인근 도시도 똑같이 파괴했습니다.”
“너희가 했던 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군.”
“예.”
“그래, 내가 어찌해주길 바라지?”
엘프 대사가 나가와 리자드맨에게 눈길을 보냈다. 그러자 나가가 조심스럽게 몸을 앞으로 빼면서 말했다.
“어머니께서 회군을 바라십니다.”
“음···.”
“사실, 이미 일부 군사를 물렸습니다. 산란장이 공격받았다는 소식에··· 미리 전해드리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알레온은 리자드맨을 보았다.
“저희는 아직 결정을 못 했습니다. 두 머리가 각각 다른 말을 하고 있기에··· 다만, 저희도 원정군 일부가 회군했습니다. 나가와 마찬가지로 산란장을—”
“회군은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말을 끓고 두 대사를 보았다.
샛노란 눈동자에 마력이 일렁이자 그들은 몸을 움츠렸다.
“똑똑히 전해라. 이미 돌린 병력은 이해해주겠으나, 그 이상은 허락하지 않는다고. 머뭇대지 말고 판토니아로 합류하라고.”
“하, 하지만···.”
나가가 알레온의 마력이 일으킨 압박감에 말을 더듬었다.
“이, 인간이 산란장을 집중적으로 노리고 있습니다. 가만두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겁니다. 종족의 장래를 생각하면 놈을 막는 것이···.”
“그게 바로 놈이 원하는 거다.”
쿵, 하고 탁자를 쳤다.
“너희가 했던 짓을 똑같이 하고 있다. 이를 보고도 느끼는 바가 없는 거냐? 너희가 놈을 노렸을 때, 놈이 어찌 했는지 떠올려 봐라.”
“······.”
“거꾸로 생각해라. 놈이 우리의 결집을 막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다. 이럴 때 있을수록 무시하고 결전을 벌여야지. 놈이 우리를 분산시키기 위해서 제 전력을 분산시켰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의 호통에 대사들은 입을 다물었다. 나가와 리자드맨은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모습이었으나, 감히 그에게 대들지 못했다.
“날뛰는 무리가 몇이나 되지?”
“각각 최소 수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게 전부 순수한 인간일 리는 없겠지.”
“예. 황제의 인형이 족히 수천은 될 겁니다.”
알레온이 미소를 지었다.
“좋아. 오히려 좋지 않나. 우리가 미끼를 물지 않는다면 놈이 스스로 전력을 깎은 셈이야. 피조물이 많아야 일만이 넘지 않을 텐데 그걸 나눈 거지.”
세계수를 조작하여 만든 하이엘프조차 몇 안 되는데.
인간의 황제가 그보다 많은 수의 권속을 만들 수 있을까?
‘황제의 피조물은 옛 신조차 탐내는 완성품이다. 그런 것을 하이엘프보다 쉽게 만들 수 있을 리 없어.’
제국 수립 이후에 권속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났지만, 그것은 설비나 자원이 그만큼 늘어났기 때문일 터.
“무시해라. 놈들이 너희 종의 미래를 부수고 있다고? 그 정돈 감내해야지. 희생 없이 대계를 이룰 순 없는 법이야.”
대사들은 침묵했다.
“이견은 받지 않겠다. 가서 내 말을 전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