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ilding a human empire by creating a clan RAW novel - Chapter (173)
권속 생성으로 인류 제국 건설 175화(175/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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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황궁 집무실에서 눈을 떴다. 싸움이 끝난 전장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으니까. 여러 곳에 연결한 의식을 모두 끊고 짧게 한숨을 쉬었다.
“······.”
책상 위에 찻잔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있던 키슬러가 두고 간 것이라. 나는 식은 차를 한 모금 마신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쿵—
요란한 소리가 창밖에서 들렸다.
별일 아니다. 도심에 있는 공장에서 나는 소음이다. 시민이 떠난 자리에 권속이 남아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기다란 굴뚝이 여기저기 솟아서 까만 연기를 쉴 새 없이 내뿜었다.
쿵— 쿵—
증기 기관은 제국의 주요 동력이 되었다. 파시메아와 그녀의 연구소가 만든 기계가 제국 전역에 널리 퍼졌고, 노동력을 대체했다.
증기 기관을 굴리고자 석탄을 채굴했고, 석탄 공급의 안정과 속도를 높이고자 철도를 부설했다. 수십 마리의 거미가 들러붙어서 하나의 거미집을 짓는 것처럼, 노선이 늘어나고 있었다.
‘중세에서 근세 그리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순식간이군.’
내가 올리머스에 처음 부임했을 때, 촌락에 있던 기계가 기껏해야 물레방아였던 것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었다.
“다 아버지의 업적이에요.”
라헬이 그리프와 함께 집무실로 들어오면서 말했다.
“또 실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내가 실소를 짓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죠. 보세요. 아버지가 이 땅에 오시고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죠? 불과 십 년 하고 조금 지났을 뿐이죠. 그때, 이곳 올리머스의 인구가 몇 명이었나요?”
백 명 남짓이었지.
그마저도 라에라곤에게 사냥당하기 직전이었고.
“지금 올리머스의 인구는 60만을 넘고 있어요.”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만, 강산이 변한 수준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아프리카 오지의 부족이 현대화를 이룬 수준이지.
“올리머스뿐인가요? 오로코 대평원이 어떻게 변했는데요?”
“그래, 대단한 성장이다.”
내가 무덤덤하게 대꾸하자 그녀는 볼을 부풀렸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업적을 좀 더 아셔야 해요. 다른 누가 여기까지 인류를 이끌 수 있었겠어요? 오직 아버지만이 가능한 일이었죠.”
“라헬, 귀에 딱지 지겠습니다. 그만하시죠.”
그리프가 과장되게 귀를 후볐다. 그의 태도에 라헬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지만, 무어라 더 말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우리 폐하께 그리 말해 봐야 대답은 항상 똑같잖아요? 글쎄, 이게 어찌 다 내 덕이냐. 너희 덕이지. 너희가 그저 말 잘 듣고 일 열심히 하는 노예에 불과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느냐.”
그가 내 말투를 근엄하게 흉내 냈다.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내가 권속을 높게 보는 이유는 무력이나 충성심도 있지만, 그들이 품은 지혜도 그 못지않은 이유였다.
한 과학자 집단이 오지에 던져졌다고 생각해보라. 안팎에서 분란이 없고, 자원도 충분하다면? 이들이 문명을 어디까지 건설하고, 얼마나 빠르게 건설할까?
권속이 바로 그런 존재였다.
“파시메아와 걔가 부리는 연구원들을 보면 분명 대단하죠. 하지만.”
그리프는 품에서 연초를 하나 꺼냈다.
“하지만, 우리에게 방향을 제시한 사람이 누굽니까? 힘을 가졌어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죠. 만약 에다르 님의 능력을 서드렛 공작이나 알레온 같은 놈이 얻었다면요?”
“끔찍했겠지.”
연초를 받아서 입에 물었다. 정말 오랜만에 피우는 연초였다. 내 영혼의 마력이 커지면서 니코틴으로 버틸 필요가 없었으니까. 자연스럽게 손에서 놓았는데.
깊게 들이마셨다가 후, 하고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좋군.”
“귀쟁이가 만든 겁니다. 이젠 못 구하죠.”
생산자가 저 꼴이 났으니 별수 있나.
“신이 신이라 불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능력이 있어서 신이라면 악마가 왜 악마겠습니까? 에다르 님은 본인이 가진 능력으로 그에 걸맞은 업적을 했으니 추앙받는 거죠.”
“그래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라니—”
“라헬, 입 좀 다물라니까요.”
그리프는 마력을 부려서 라헬의 입을 막았다.
“에다르 님은 그런 점에서 훌륭하십니다.”
“······.”
“칭찬을 너무 부끄러워하지 마십쇼. 저희가 아부할 성격이 아니란 거 아시잖습니까? 저기 있는 사이비만 빼고요.”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랬지.”
창문을 열자 매캐한 연기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프가 바람을 만들어서 연기를 날려 보냈지만, 도시 상공에 공장 매연이 그득했다.
매연뿐만 아니라 미관도 삭막한 도시였다. 오로지 생산 효율 하나만 따져서 만든 도시니까. 스카디의 제안에 따라 극장, 공원 같은 시설을 뒤늦게 넣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일이 끝나면 꾸며보시죠.”
“아니면! 키루나로 수도를 옮겨도 되고요.”
“키루나라.”
키루나, 서드렛 공작가의 중심 도시였던 곳. 허나 이젠 공교회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제르마니아를 정복한 이후 늑대교를 사냥하면서 거점으로 삼은 것이 시발점이었다.
늑대교 토벌 총괄자가 라헬이었고, 마침 에다르가 태어난 곳이란 점이 맞물려서 재건과 함께 공교회의 중심지로 탈바꿈했다.
“거긴 당신네 수도 아닙니까?”
“수도라니요? 공교회는 제국 산하 기관인데요.”
“십삼조인지 뭔지 세금도 따로 걷고, 군사 조직도 가졌고, 제국 행정부에서 독립된 법까지 행사하는데 산하 기관이라고요?”
“···오해예요.”
“정문을 지나면 매분마다 전도꾼이 붙는다던데.”
라헬은 연신 헛기침하면서 시선을 피했다.
“그··· 정도는 아닌데요. 오히려 여기하고 정반대에요. 항상 활기차고 하늘도 맑고 겨울에도 따뜻하고 모든 건물이 새하얗죠. 빛의 도시라고요.”
“아, 그렇습니까?”
그리프는 코웃음을 쳤다.
“이 사람 말은 듣지 마시고, 스카디하고 한 번쯤 진지하게 이야기해 보세요. 스카디도, 칼리오페도, 내색은 안 하지만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이런 풍경.”
“그래.”
나도 이런 풍경이 싫다. 어쩔 수 없이 이리 만들었을 뿐. 아름다움, 같은 사치를 누르기엔 인류가 처한 상황이 워낙 나빴으니.
“내게 주어진 업이 풀리면.”
그때가 되면 조금은 어깨에서 힘을 빼도 좋을 터.
드드드드···
하지만 그때를 맞이하기 쉽지 않겠지.
“대피는 끝났습니다. 이곳엔 형제자매들밖에 없습니다.”
나는 고개를 주억였다.
저 멀리, 서남쪽 하늘에서 짐승이 날아오고 있었다. 날개 달린 짐승이 무리를 이루어서 다가오고 있으니, 저들이 발한 마력에 바람이 일고 땅이 흔들렸다.
나조차 피부가 오돌토돌 돋아날 정도로 강대한 마력이었다. 짐승 무리를 이끄는 한 마리가 로드의 시신이 발하는 마력보다 막대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살아 있었고, 로드의 유일한 살붙이였으니까. 제 아비를 배신하여 필멸자로 만들었으나 본인은 불멸의 삶을 지킨 패륜아였고.
쿵—
기관이 내는 소리가 아니다.
드래곤이 올리머스의 남쪽 성벽에 두 발을 올렸다.
후두둑···
발톱이 성벽에 파고들자 성벽이 갈라지며 내려앉았다. 무너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봐야겠지. 그녀가 앉으며 일으킨 충격에 몇몇 건물이 무너질 정도였으니.
“티아마르.”
나는 입에서 연초를 떼고 연기와 함께 그녀의 이름을 뱉었다.
– 에다르 룬드링겐.
그녀도 내 이름을 부르며 눈동자를 내게 향했다.
– 나를 어떻게 한 거지?
나는 내가 싫거든
– 말해.
티아마르의 사념이 울렸다.
– 내 조각, 어떻게 한 거야?
나는 연초를 다시 입에 물고 하늘을 보았다. 도시 밖 하늘에 드래곤이 날고 있었다. 티아마르가 만든 아종이 무리를 이루었는데 그 수가 수십에 이르렀다.
수십, 이란 숫자는 언 듯 적어 보인다. 바로 직전에 수십 만에 이르는 군세가 다투었기에 그리 보일 터. 허나 한 마리 한 마리가 티아마르의 아종이라면 다르지.
티아마르는 드래곤이다. 드래곤의 아종이 무엇이겠나.
“인간이 되었지.”
– 뭐?
“나는 그녀를 인간으로 만들 수 있었고, 그녀는 인간이 되기를 바랐다, 그뿐이다.”
나와 그녀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그녀의 눈동자는 검은색 원형 동공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붉은 눈을 가졌다, 너와 달리.”
– 헛소리. 그 애는 나야. 나는 인간이 되기를 바라지 않아.
“정말 그리 생각하나?”
– 당연—
“시작이 같다고 끝마저 같진 않다. 그녀가 네게서 발하였어도 너와 다른 바를 원할 수 있지. 그녀는 자유 의지를 품었으니까.”
– 그게 인간이 되는 거라고?
이해할 수 없다는 투였다. 그도 그럴 것이, 티아마르는 드래곤이다. 옛 신조차 완벽하다고 여기는 종족이다. 그녀가 무엇을 바라여 인간이 되겠나.
– 그 애는 조각이야. 조각은 맞춰져야 하는 거지. 퍼즐처럼, 맞추지 않은 조각은 불완전한 존재일 뿐. 그 애가 그걸 모를 리 없는데 불완전하게 남기를 바랐다고?
“그래.”
– 거짓말.
“진실이다. 내가 물었고 그녀가 원했지.”
– 그럴 리 없어.
그래서도 안 되고, 라는 말이 빠졌다.
– 그 애를 데려와. 내가 직접 봐야겠어.
“내가 거절한다면?”
티아마르는 대답 대신에 마력을 흘렸다. 분노 섞인 마력이 흐르자 그녀의 주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더니 곧 도시 전역을 덮었다.
드드드드···
지진이 일어서 도시 곳곳 건물이 무너졌다. 하늘은 맑게 개었다가 우중충해지기를 반복하고, 천둥과 강풍이 몰아쳤다. 만약 도심에 권속 아닌 인간이 남았다면 적잖은 피해를 보았을 터.
티아마르의 아종도 괴성을 지르며 날았다. 황궁을 중심으로 뱅글뱅글 돌면서 언제라도 덮칠 듯이 위협을 가했다.
– 조아려라!
– 어머니를 분노케 하지 마라!
아종은 와이번이라고 불렸다. 티아마르가 봉인을 가장한 채 낳은 알에서 태어난 족속이었다. 드래곤은 자웅동체가 아니기에 본래라면 부화할 수 없지만, 그녀의 힘을 탐한 호르비드와 관리자가 손을 썼다.
동화 속에 나오는 용기사가 되기를 꿈꾸었을지도 모를 노릇이나 결과는 비참했다. 와이번은 티아마르의 명령에만 따랐기에 관리자는 먹이 주는 노예로 전락했다.
“실없는 짓 하지 마라.”
나는 다 핀 연초를 지르밟고서 와이번 무리를 훑어보았다. 그러자 먹구름을 뚫고 햇볕이 내렸다. 빛은 와이번의 등을 태웠고, 비늘을 녹였다.
치이익, 타는 소리와 함께 증기가 일자 와이번은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내게 달려들고자 했으나, 그들의 어미가 허락하지 않자 빛을 피해서 물러났다.
“너는 오랜 시간 나를 보아 왔지. 그렇다면 잘 알고 있을 터. 내게 위협 따위 부질없음을, 내가 네가 올 것을 알기에 기다리고 있었음을 말이다.”
– 넌 내 걸 뺏었어.
“글쎄, 그녀는 네가 싫다더군.”
– 네가 그렇게 만든 거겠지. 그 잘난 세 치 혀로 말이야.
티아마르는 나를 노려보았다.
– 네가 감추어도 소용없어. 그 애는 나야. 결국, 와야 할 곳으로 오게 되어 있지. 내 영혼이고, 네 소유가 아니니까. 인간 따위, 열등한 육체에 담아도 내게 이끌릴 수밖에 없어.
“흠. 인간 따위라.”
나는 가만히 서서 생각하다가 피식, 웃었다.
– 왜 웃지?
“아니, 확실히 달라서.”
티아마르가 시선으로 이유를 물었다.
‘이전까진 티아마르와 대화를 나눌 일이 없었기에 몰랐는데 사고가 꽤 다르군.’
지금껏 대화를 나눈 티아마르, 라고 해 봐야 셋이다. 블라드의 육신을 빼앗은 티아마르와 인간이자 권속이 된 티아마르 그리고 눈앞에 본체, 이 셋이 전부지.
이 중 블라드에 깃든 티아마르는 옛 신 아카코스크의 영향을 짙게 받아서 변질되었다 쳐도 나머지 둘의 성격이 다른 이유가 무엇일까.
‘열등, 그녀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
옛 신의 영향 탓이 아닐까. 눈앞 티아마르가 흘리는 기운도 그들과 비슷했다. 그녀는 옛 신의 노예가 아니지만, 그들의 술수에 타락했기에 영향을 깊게 받은 것이라.
‘그 애는 순수했으니.’
알레온의 유언을 떠올렸다.
인간이 된 티아마르가 그가 말한 순수에 가깝지 않을까. 입담은 거칠어도 그녀는 다른 종족을 열등하다고 비웃지 않았고, 인간이 되기를 택하기까지 했으니. 지금 본체가 보이는 태도와 너무도 달랐다.
‘어쩌면 로드가 그녀의 영혼을 빼낸 이유가 하나가 아닐지도 모르겠어. 티아마르를 조각내어 약하게 만드는 것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변절한 그녀 안에 남은 순수를 지키고자 한 것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었다. 답을 알고 있는 존재는 사라졌으니까, 영원히 풀 수 없는 문제지.
“그래서 어찌할 테냐. 지금 결론 내리기를 바라나?”
내가 물음에 답하지 않고 역으로 묻자, 티아마르가 마력을 거두며 답했다.
– 지금은 양보하지.
“지금은.”
– 네 말대로 나는 널 오래 보았으니까.
로드가 나를 불러서 티아마르의 영혼 조각을 넘긴 순간부터 그녀는 나를 보았을 터. 시간을 따지면, 내가 최초로 생성한 권속 칼리오페와 그리 많은 차이가 나지 않았다.
– 지금 이 상황은 네가 바란 대로 흘러가고 있겠지. 그러니 인형도 몇 없이 무방비하게 나를 기다린 거야.
스스스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마력을 발하여 도시를 고쳤다. 티아마르의 마력 탓에 무너진 건물이, 시간이 되돌아가는 것처럼 붕괴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 나는 너를 포기할 수 없다. 놈들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데 포기할 리 없지. 그러니까 네가 조각을 훔치고 도발을 걸어도 참겠다. 네가 바란 대로 말이야.
남은 옛 신은 로드도 죽이지 못한 존재다. 티아마르도 그들을 어찌할 수 없다. 그녀가 타협하여 옛 신을 봉인하는 선에서 끝내지 않는다면, 반드시 내가 필요하지.
– 네 뜻에 놀아나는 것은 이번만이다.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 네가 놈들의 영혼을 먹었다고 똑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마. 너는 우리와 달라. 본디 우리 세상에 뿌리를 내린 존재가 아니지. 그렇기에 우리를 죽일 수 있겠지만, 네가 육신을 잃으면 네 영혼이 우리 세상에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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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토니아 평야에 세찬 바람이 불었다. 티아마르의 육신에 깃들었던 황제 에다르가 떠나면서 마력이 사라진 탓이었다. 황제라는 울타리가 사라지자 옛 신의 마력이 평야를 휘감으면서 기상이변이 나타났다.
휘이이—
티아마르는 바람에 살랑이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등을 돌렸다. 인간이 된 그녀는 남쪽을 보았다. 제국의 수도, 올리머스가 있는 방향이었고, 에다르가 머무는 방향이기도 했다.
움찔
일순간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조금 전, 에다르가 카르카스와 대치할 때 느꼈던 마력의 파동, 그것을 다시 느낀 탓이었다. 그녀는 파동의 정체를 알기에 작게 한숨을 쉬고 옆을 보았다.
“넌 걱정 안 돼?”
칼리오페가 그루터기에 앉아 있었다. 벗은 갑옷을 무릎에 올리고 기름을 칠하며 고개도 들지 않은 채 그녀를 무시했다.
“······.”
티아마르는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가 다른 권속을 보았다.
파시메아가 한 곳에 쌓은 노획품을 정리하고 있었다. 스카디는 게하르드와 함께 작전 지도를 보았고, 메르세포네는 어린아이로 돌아와서 수녀의 품에 안긴 채 돌아다녔다.
그들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입 한 번 떼지 않고 몸짓만 가끔 보일 뿐, 말소리를 내지 않았다. 티아마르는 그 모습을 멀뚱히 지켜보았다.
“말로 하지 마.”
중얼거리듯이 칼리오페가 말했다.
“뭐?”
“권속답게 행동해.”
권속답게?
티아마르는 눈을 껌뻑이다가 깨달았다.
사념을 읽으라는 뜻이었다.
“권속은 말을 할 필요가 없어. 비효율적이야.”
사념은 소리가 전할 수 없는 감정과 기억을 담고, 전달 속도도 찰나였으니까. 사념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굳이 입을 움직여서 소리를 낼 필요가 없지.
“아, 싫은데.”
그러나 티아마르는 사념을 읽기가 내키지 않았다.
사념을 통제하기 어려운 탓이었다.
——?
———. ——.
——! ——.
막고 있던 사념을 받아들이자 해일이 몰아쳤다. 평야에 있는 권속의 수가 일 만에 달했으니, 일만 명의 사념이 동시에 쏟아진 것이라.
“으.”
티아마르는 짧게 신음하고 관자놀이를 눌렀다.
시장통의 소란과 비교가 안 되는 정보의 해일이었다. 귀로 듣는 소란은 귀가 아플 뿐이고, 목청을 높이면 된다. 그러나 사념은 말했듯이 소리 외에 온갖 정보를 전한다.
그리고 그 수가 일 만에 달한다고 생각해 보라.
“익숙해져야 해.”
무심코 다시 사념을 막으려 하자 칼리오페가 말했다.
“쉽지 않은데.”
“그래도 익숙해져야 해.”
길게 한숨을 쉬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사념을 처음 접한 것이 아니고 그저 너무 많은 정보에 정신이 사나웠던지라, 금세 안정을 찾았다.
그녀는 여유가 생기자, 담담하게 앉아 있는 권속의 속내를 읽었다. 머리색처럼 차분하리라 예상했던 바와 다르게 심하게 요동치는 감정이 느껴졌다.
“너도 속으론 걱정 많이 하는구나.”
“······.”
“그렇게 걱정하면서 일이 손에 잡혀?”
“해야만 하니까.”
칼리오페는 기름칠을 이어가며 답했다.
“걱정한다고 일이 해결되지도 않고.”
“그건··· 그래.”
“에다르 님은 올리머스에 남기기로 하셨어. 그러면 나는 기다릴 뿐이야. 에다르 님이 나를 믿으시는 것처럼 나도 에다르 님을 믿어.”
그게 권속이라고,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작게 숨을 뱉었다. 성격답지 않게 너무 길게 말한 탓이라.
“너도 권속이라면 익숙해져야 해.”
“권속···.”
티아마르는 손가락으로 귀밑머리를 꼬았다.
“솔직히 실감이 안 가.”
“······.”
“본체에서 떨어진 뒤로 정말 오랜만에 육체를 가지는 거라서 오감은 신선하지만, 그 이상 느껴지는 게 없거든. 굳이 말한다면 시야가 좀 좁아졌다? 아무래도 내 옛 몸뚱이가 어마어마하게 컸으니까.”
“응.”
“권속이란 게 대체 뭐야? 인간하고 뭐가 다른 건데?”
칼리오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긴 뭐, 너도 권속이 아닌 적이 없으니 모르겠지.”
“응.”
대화가 끊어졌다. 티아마르가 무어라 말하려고 입을 열었으나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다시 다물었다.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고, 바람은 점점 거세졌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그리고 자리를 옮기려던 차에 칼리오페가 말했다.
“앞으로?”
“에다르 님은 너를 지키기 위해서 다른 너를 만나고 있어. 그리고 다른 너는 너를 찾고 있어. 너는 어느 쪽을 택할 거야?”
칼리오페가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짙은 푸른색 눈동자가 짙은 주황색 눈동자와 마주했다. 색만 다를 뿐, 모든 것이 같은 두 사람이었다.
티아마르는 자신이 칼리오페를 빼닮은 이유를 알았다. 그녀는 최초의 권속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에다르 곁에 있는 권속이기도 했기에, 권속이 된다면 그녀처럼 되기를 바랐으니.
“이미 택했잖아.”
“······.”
“나는 돌아가지 않아. 이제 사룡 티아마르는 내가 아니야. 돌아갈 곳도 아니지. 이제 나는 인간 티아마르야. 내 결정을 뒤집을 생각은 없어.”
“왜?”
티아마르는 사념에 깃든 호기심을 읽고 미소를 지었다.
“나는 내가 싫거든.”
그래서 아버지, 로드를 따라갔다고, 그녀가 답했다.
또 하나의 종족이 끝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