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ilding a human empire by creating a clan RAW novel - Chapter (3)
권속 생성으로 인류 제국 건설 4화(4/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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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했다.’
호위란 놈들이 반나절도 안 돼서 날 죽이려들 줄이야.
칼리오페가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죽었을 거다.
‘운이 좋았어.’
용병들을 처리하고 개척지로 향하는 동안 권속을 3번 더 만들었다.
‘순서대로 D, E, F등급. 레벨은 17, 12, 7. 이들이 먼저 나왔으면 내가 죽었겠군.’
호위로 위장한 용병들과 비등한 레벨이었다.
머릿수에서 밀리니 마지막 날에 들이닥쳐도 죽었겠지.
칼리오페가 첫수에 나온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당장 급한 불은 껐으니 한동안 목숨이 위험한 일은 없겠지.’
[다음 사용까지 남은 시간: 1시간 21분 06초.]‘얼른 스킬 등급을 올려서 대기시간을 줄이고 싶군.’
“개척지가 보입니다.”
칼리오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지평선 끄트머리에 점이 천천히 커지며 개척지가 형상을 드러내었다.
‘작다.’
건물을 하나하나 세보니 스무 채가 안 되었다.
‘집 하나당 한 가정이 산다고 가정하면, 10가구 조금 넘나? 세금을 걷기도 무안한 규모야.’
난감한 것이 세금뿐이면 다행이다.
전생이었다면 난민촌이 아닌가, 싶은 광경이었다.
가옥은 잔가지에 진흙으로 쌓아 올린 벽과 지푸라기로 엮은 지붕.
목책조차 없어 무방비로 촌락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꼴을 보라.
내가 이전까지 경험한 영주 생활 중에서 목책조차 없던 적은 없었다.
목책뿐인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강가에 부서진 물레방아가 보였다.
제분소였음이 분명한데, 꽤 오래 방치된 듯 보였다.
‘예상은 했다만. 생각 이상으로 처참하군.’
그러니 내게 선뜻 넘겨준 것이라.
피를 이은 자식인데도 피를 잇지 않았다고 믿는 아버지란 자가 종잣돈으로 준 것이니.
전생의 경험으로 이 땅의 중요함을 알고 있지 못했다면 지금쯤 내륙으로 도망갈 궁리나 하고 있었겠지.
‘이 땅의 가치를 몰랐나.’
혹은 알고도 지킬 여력이 없었거나.
내 시선은 개척촌 너머로 길고 넓게 펼쳐진 평야를 보다가 그 끝에 아주 작게 보이는 산에서 멈추었다.
산에 무성한 나무가 회색빛을 내어 마치 죽은 것처럼 보였다.
저 산이 회색 산맥, 라고 하는 대산맥의 시작지점이리라.
‘항상 저 산을 볼 때는 시기적으로 거의 끝물에 이르러서였는데.’
군주가 되어서든, 영웅이 되어서든, 이야기가 종막을 향해 한창 달리던 때에 보던 광경을, 이야기가 시작도 하지 않은 한참 전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보게 될 줄은 예상 못 했다.
“누구십니까?”
입구에 다다르자 파수꾼이 경계 어린 눈빛을 보내며 창대를 들고 막아섰다.
“서드렛 공작가에서 왔다.”
칼리오페의 대답에 파수꾼이 움찔했다.
“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파수꾼이 다급하게 촌락 안으로 들어가 사람을 몰고 왔다.
수를 보아하니 개척민 모두가 모인 듯 바글바글했다.
표정은 저마다 반기는 것부터 껄끄러움, 불안 그리고 짜증을 드러냈다.
“서드렛 공작가에서 오셨다고 들었습니다만.”
무리를 헤치고 턱수염이 풍성한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그대가 대표인가?”
“그렇습니다.”
촌락의 대표치고 젊어 보였으나 개척지이기에 그럴만했다.
개척이란 젊음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것이니까.
개척단에 오르는 이들은 대개 청년들이었다.
이 자리에 모인 개척민 중에 중년 이상의 연배로 보이는 이가 몇 없는 것으로 보아 정착하고 십수 년이 지났을 뿐이겠지.
나는 개척지의 상속을 입증하는 서드렛 공작의 인장이 찍힌 서신을 건넸다.
대표는 이를 받아 읽고서 작게 탄성을 내더니 곧 무릎을 꿇었다.
“에다르 님을 영주로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이곳 올리머스의 촌장을 맡은 키슬러입니다.”
키슬러를 따라 개척민들이 무릎을 꿇고 복창하는 가운데, 몇몇은 멀뚱히 서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들은 사슬갑옷을 입은 남자와 병졸 여럿이었다.
“그쪽은?”
남자는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보란 듯이 역으로 턱을 치키며 한쪽 입꼬리만 올렸다.
“안톤 세벨이오. 도린 백작님을 모시고 있지.”
“아, 그러신가.”
그딴 백작 모른다.
무수히 많은 회차를 거치면서도 들은 적 없는 이름이다.
그 말인즉슨,
‘잡놈이군.’
“그래서?”
“백작님께서 이곳을 원하시오. 귀하가 좋게 양도해주면 좋겠소만?”
나는 뜬금없는 헛소리에 실없이 헛웃음이 나왔다.
“참 재밌는 소리군. 키슬러, 무슨 일인지 설명해보라.”
키슬러가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서서 내 옆으로 다가와 이실직고했다.
“이전부터 안톤 경께서 올리머스가 백작님의 소유라며 세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저희는 서드렛 공작님을 섬기고 있었기에 말도 안 된다며 반발하고, 공작님께 사람을 보내어 고발했으나 아직 답신을 받지 못하여······.”
손을 들어 말을 멈추었다.
엄연히 주인이 있는 데 소유를 주장한다?
그것도 백작이 공작의 것을?
공작과 백작이 단순히 급을 따질 수 없어도 그렇지.
참으로 무례한 짓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턱을 긁적이면서 안톤을 보았다.
“백작은 어느 왕국 소속이지?”
“왈로키아 왕국에 속하시는 것으로 압니다.”
“과연.”
도린 백작과 달리 서드렛 공작은 제르마니아 왕국의 봉신이다.
제르마니아와 왈로키아는 여러 대에 걸친 앙숙.
전생에 멸망을 앞에 두고도 지원은커녕 저 혼자 살겠다고 서로를 약탈했던 관계다.
그렇게 아름다운 관계니까 내가 공작이니 쟤가 백작이니 따질 이유가 없지.
‘가장 큰 이유는 서드렛이 그간 대리인을 보내지 않을 정도로 방치한 탓이겠지만.’
“이야기를 어떻게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은 백작께서 미리 점지하신 땅이오. 공작은 그 뒤에 터를 잡은 것이지. 상식적으로 개척지는 먼저 깃발을 꽂는 쪽이 주인 아니오?”
“입증할 수 있나?”
“물론! 여기 그에 관한 서류가 있소.”
안톤은 품에서 개척 명령이 내려진 공문서를 꺼냈다.
나는 대충 읽다가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공문서가 오늘 만들었는지 백 년 전에 만들었는지 어찌 입증한단 말인가?
명분 중에서 가장 흔하고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이 기한이 적시된 공문서다.
“이딴 것을 믿으라고 주는 거냐?”
안톤은 수염을 파르르 떨면서 노려보았다.
“개척지는 국경 밖이오. 국경 밖에서는 사고가 잦다는 거 알고 있소?”
“잘 알지.”
안톤은 슬쩍 허리춤에 건 칼집에 손을 얹었다.
“사고당하지 않으려면 좀 더 고분고분해야 할 거요.”
【Lv. 21】
안톤의 레벨을 보아하니 으스댈만하다.
용병대장보다도 훨씬 높은 레벨이다.
이딴 개척지에서는 이보다 높은 레벨은 거의 없겠지.
‘그래 봐야 잡놈은 잡놈.’
능력이 있으면 더 잘난 귀족을 섬기거나 스스로 귀족이 되는 것이 낫다.
무엇하러 이딴 개척지를 탐내는 지방 귀족을 섬긴단 말이냐.
“갑옷은 좋은 걸 입고 있지만, 싸움은 장비가 다가 아니거든.”
칼리오페를 바라보며 비릿한 웃음까지 짓는다.
나는 칼리오페와 안톤의 레벨 차이를 보고 어이가 없어서 실없이 웃었다.
‘레벨 차이가 너무 나서 그런가. 보는 눈이 없군.’
왜 그런 말이 있지 않나.
심후한 내공을 지닌 고수는 일반인처럼 보인다고.
‘차라리 무장만 보고 겁먹은 용병들이 더 똑똑하겠어.’
놈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으면 칼리오페가 팔을 뻗었다.
“헙···!”
사방에서 숨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화살 한 발이 내 눈앞에서 멈추었다.
칼리오페가 내 머리를 노린 화살을 코앞에서 잡아 쥐고 있었다.
‘암살? 안톤의 짓인가?’
안톤을 보자 놀란 표정을 짓고 눈을 껌뻑이고 있었다.
‘아니군.’
“어디서 쏜 거지?”
“저쪽입니다.”
칼리오페가 가리키는 곳에 먼지가 일고 있었다.
내 레벨이 낮아 능력치도 낮은 탓에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음은 분명하게 보였다.
개척민들이 나를 따라 같은 곳을 바라보고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아악!”
누가 왜 개척지로 다가오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다급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제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상황을 이해 못 한 안톤 일행과 창백한 얼굴로 내 옷깃을 당기는 키슬러였다.
“영주님! 도망쳐야 합니다!”
“무슨 일이지?”
“엘프입니다! 엘프가 인간 사냥을 하러 온 겁니다!”
엘프, 인간 사냥.
두 단어에 나는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개척지라서 출몰하는 건가.’
칼리오페와 권속들이 내 주변을 둘러싸며 무장을 갖추었다.
세 마리의 말이 흙먼지를 뒤로 물고 달려오고 있었다.
그 위에는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그들 모두 귀가 뾰족했다.
키슬러가 말한 엘프였다.
“또 옵니다.”
칼리오페의 경고와 함께 놈들이 화살을 한 대 뽑아 활시위에 걸고 높이 들었다.
탕, 하는 탄성음이 여기까지 들리며 수차례 이어졌다.
“히이이익!”
놈들의 화살이 촌 밖으로 달아나려던 주민들 앞에 떨어졌다.
한 치 앞에 떨어져 땅에 박힌 화살을 보고 개척민들은 주저앉았다.
날 때부터 신궁인 엘프가 화살을 잘못 쏘았을 리 없지.
– 도망치지 마라.
직감으로 그 의미를 깨달은 개척민들은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오돌오돌 떨었다.
“제게서 떨어지지 마십시오.”
“음.”
칼리오페가 칼자루를 꽉 쥐었다.
그녀는 내 권속이기에 나는 그녀가 긴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절대 강자에 속하는 그녀가 긴장한다라, 어찌 말이 되지 않겠지만 그럴만했다.
당도한 엘프들의 레벨이 범상치 않았다.
【Lv. 91】
선두에 선 엘프의 레벨은 칼리오페보다 근소하게 낮았다.
뒤따르는 호위 둘은 60 언저리로 한참 낮았으나 칼리오페를 제외한 권속들에 비하면 한참 높았다.
칼리오페가 홀몸이면 모를까, 나를 보호하며 싸우기는 몹시 어려운 상황이다.
‘인생, 순탄하게 가는 법이 없군.’
왜일까, 생사가 달린 위험을 앞에 두고 이상하게 마음이 진정되었다.
위기 앞에서 심장이 일상보다 더 잔잔하게 뛰고 있었다.
‘철인 특성의 효과가 이건가.’
[당신의 격은 상대가 누구든 당신이 평정을 유지하게 합니다.]“안녕. 원숭이들아. 우리 대화 좀 나눠볼까? 신사답게.”
백마가 내 앞에서 멈추어 앞발을 들고 위협적으로 휘둘렀다.
자칫 내 머리가 발굽에 날아갈 수 있는 거리에서 나는 묵묵히 서서 엘프들을 보았다.
‘몇 번을 보아도 변함이 없는 놈이야.’
나는 친근함이 들 정도로 익숙한 얼굴을 살펴보았다.
설정에 따르면, 엘프란 머릿결은 은을 뽑아 만든 것 같고, 피부는 달빛을 담은 것 같다지.
실물을 보면 정말로 그런 묘사를 할 법하다.
하지만 나는 저 외모에 현혹되지 않는다.
아름다운 겉모습 안에 악마를 담고 있는 종족이 엘프다.
그리고 내 앞에 있는 이 자는 그중에서도 가장 악마 같은 존재다.
‘인간 도살자, 라에라곤. 전쟁 전이니 도살자가 아니라 사냥꾼인가.’
많은 판타지에서 엘프는 숲에 사는 고고한 존재로 묘사된다.
너무도 고고해서 왕국도 제국도 없이 저마다의 숲에 흩어져 살다가 인간에게 사냥당한다.
그러나 이 세계의 엘프는 아니다.
이 세계의 엘프는 인간을 사냥하고, 노예로 판다.
천 년을 넘어 만 년을 사는 귀가 긴, 이 빌어먹을 족속은 왕국과 제국을 건설했거든.
놈들에게 있어서 천 년도 되지 않은 역사는 문명의 축에도 끼지 못하는 야만이다.
‘엘프뿐이냐? 드워프도 있고, 오크, 나가, 고블린, 리자드맨 같은 몬스터도 저마다의 나라가 있지.’
인간은 이 세계에서 가장 늦게 문명을 건설한 종족이다.
인간은 이 세계에서 가장 약한 종족이다.
이 게임에서 엔딩이 생존인 이유가 그것이다.
– 가장 약한 종족, 멸종 위기의 종족으로 살아남아라.
Lv.91. 라에라곤
“너, 꽤 강하네?”
라에라곤은 칼리오페에게 방긋 웃음을 지었다.
“원숭이 중에서 너처럼 강한 녀석은 처음 본단 말이야. 이름이 뭐지?”
“······.”
칼리오페는 대답하지 않았다.
투구를 착용하고 있어서 표정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무표정이겠지.
인간 중에는 간혹 엘프의 외모에 현혹되는 이가 있었으나, 권속은 다르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들 권속의 마음을 흔들 수는 없다.
칼리오페는 침묵을 지키며 라에라곤이 검의 간격에 들어오는 순간 베기 위한 자세를 지켰다.
“건방진···!”
“됐어.”
호위가 이를 드러내며 역정을 내자 라에라곤이 턱짓으로 제지했다.
인간을 원숭이라 여기면서도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것에 화를 내지 않고 있었다.
‘강한 자를 좋아하니까 그런 거겠지.’
라에라곤은 유독 힘에 대한 존중이 뚜렷한 녀석이다.
반대로 약자에 대해서는 가차 없기도 하고.
인간에게 잔혹한 것은 그러한 성격의 일환이다.
녀석이 보기에 인간은 사람 말을 흉내 내는 원숭이에 불과하다.
“말을 할 줄 모르는 건가? 혹시 혀가 없나? 투구 좀 벗어보지그래. 서로 얼굴은 맞대고 이야기해야 할 거 아냐?”
여전히 웃음기를 띠며 사근사근 말을 거는 라에라곤에게 내가 손짓했다.
“그럴 필요는 없다.”
라에라곤이 눈살을 찌푸렸다.
시선이 내게 닿고 서늘한 감각이 가슴을 훑었다.
“원숭아. 대화에 함부로 끼어드는 게 아니다.”
“입 다물어라. 귀쟁이.”
“뭐?”
라에라곤이 눈을 깜빡였다.
눈이 깜빡이는 소리가 들린다고 착각이 들 정도로 정적이 내렸다.
“···귀쟁이?”
살기가 나를 휘감았다.
숨이 턱 막히고 심장이 따끔거렸다.
레벨의 격차는 기세에서도 이렇게 차이가 난다.
그러나 나는 나를 휘감는 압박감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썰물처럼 살기가 떨어져 나가 몸이 평정을 되찾았다.
나는 이것이 철인의 특성이 주는 효과임을 알았다.
‘허세 부리기 좋은 특성이군.’
나는 미소를 지으며 라에라곤을 올려다보았다.
라에라곤은 제 살기를 직격으로 받고도 멀쩡한 나를 보며 갸웃했다.
“주인을 놔두고 아랫것과 이야기할 셈인가?”
“주인? 네깟놈이?”
분노와 당혹이 섞인 표정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변했다.
레벨을 볼 수 없어도 직감으로 재는 강함이 있으니까.
녀석이 보기에 나는 개미만도 못한 약골로 보이겠지.
나는 막아선 칼리오페를 뒤로 물리고 앞으로 나섰다.
라에라곤이 나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라에라곤. 은빛 잎사귀의 왕자야. 천년도 못 산 애송이라 사람 보는 눈도 없구나.”
엘프들이 눈을 부릅떴다.
처음 보는 상대, 그것도 교류할 가치도 없는 야만인보다 못한 원숭이가 왕자의 정체를 안다?
표정이 사뭇 진지해지고 나를 보는 눈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너는 누구냐?”
“글쎄?”
나는 웃음소리를 흘리면서 비딱하게 섰다.
내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위험한 짓이다.
하지만 이대로 칼리오페가 엘프들과 붙으면 그 또한 위험하다.
라에라곤을 죽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테니까.
되려 엘프의 왕자를 죽인 책임을 묻고자 감당하기 힘든 후폭풍이 닥칠 것이다.
‘이곳이 내 땅임을 인정받으면 끝날 일이다. 무식하게 싸울 필요가 없지.’
“여기는 무슨 일로 왔지?”
“내가 내 땅에 온 것이 문제인가.”
“이곳은 나, 라에라곤의 땅이다.”
“처음 듣는군.”
키슬러에게 손을 까딱하자 얼른 공작의 서신을 넘겼다.
“나는 서드렛 공작으로부터 이 땅을 넘겨받았다. 너희 귀쟁이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 본래 너희의 땅이었다면 공작이 내게 이야기하지 않았겠나?”
라에라곤은 서신을 받아 읽다가 화가 올라 얼굴을 붉히며 찢어 던졌다.
“감히! 원숭이가 이 몸을 속였다는 거냐!”
‘속였다라. 이미 개척지를 넘겨주기로 합의가 된 건가.’
과연, 그렇게 생각하니 이해가 되었다.
왜 개척지에 대리인을 파견하지 않고 버려뒀는지 말이다.
아무리 작은 땅이라도 제 것이라면 눈에 핏발을 세우고 지키는 것이 귀족이다.
나를 이곳에 콕 집어서 보낸 것을 보면 이 땅의 존재를 몰랐을 리도 없다.
‘처음부터 나를 죽일 생각으로 이렇게 만들었군.’
이벨라의 간교함을 떠올리면 그러고도 남는다.
‘하나가 되어 싸워도 모자란 판에 제 종족을 팔아넘겨?’
매국노와 급이 다른 쓰레기가 아닌가.
이전 회차에서 수없이 보았던 거지 같은 부류 중 하나다.
매국노는 나라는 바꾸어도 종족은 바꿀 수 없음을 안다.
그러나 동족을 팔아넘기는 족속은 자기들은 명예 엘프라도 된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엘프들에게는 그저 말 잘 듣는 원숭이에게 불과함에도 말이다.
‘죽일 이유가 하나 더 늘었군.’
“속은 것은 그쪽 잘못이지. 나한테 따질 건가?”
“입 닥쳐라!”
강렬한 바람이 얼굴을 후려쳤다.
동영상의 프레임이 끊긴 것처럼 말 위에 앉아 있던 라에라곤이 내 앞에 있었다.
녀석은 발검하여 내 머리 위로 곡도를 내려치고 있었고, 그것을 칼리오페가 막고 있었다.
“큭!”
라에라곤의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레벨은 고작 1 차이였으나 그 격차는 숫자 이상으로 컸다.
힘껏 내려쳐 내 머리를 쪼개려던 라에라곤은 칼리오페에게 힘으로 밀려 등이 뒤로 휘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의 대치를 가만히 지켜보며 속으로 안도했다.
‘레벨이 낮은 것이 득이 되었군.’
레벨이 극단적으로 낮으니 라에라곤의 움직임에 반응할 수가 없었다.
어정쩡하게 몸이 반응해서 도망치려 했다면 움직임이 허접하다는 것을 들통났겠지.
칼날이 코앞까지 왔는데도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이 역으로 담대하다는 착각을 일으켰을 거다.
‘표정을 보면 속이 훤히 보이지.’
라에라곤은 칼리오페와 겨루면서도 힐끗힐끗 나를 경계했다.
혹여 내가 달려들면 위험하다는 것처럼.
나를 과대평가하기에 그런 것이었다.
“이··· 망할!”
녀석의 얼굴에 경악과 분노가 솟았다.
이를 악물고 몸을 틀어서 몇 번이나 검격을 날렸으나 그때마다 칼리오페에게 막혀 물러났다.
누가 보아도 명백히 라에라곤이 밀리고 있었다.
‘아직 저주를 풀지 못했나.’
레벨 1의 차이가 이토록 격차를 만드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나는 라에라곤이 저주가 담긴 부상을 아직 완치하지 못한 시간대라는 것을 떠올렸다.
분위기가 달아오르는 가운데, 라에라곤의 호위들이 나를 힐끗 보며 활시위에 손을 얹는 것이 보였다.
‘나부터 노릴 셈인가.’
라에라곤을 돕기에 방해되는 가지부터 쳐낼 의도겠지.
칼리오페가 우위를 점하고 있으나 나를 지키며 싸우는 것은 중과부적.
내 곁에는 다른 권속들이 있었으나 레벨의 격차가 50이나 났다.
실상 화살받이도 못할 격차다.
‘이쯤에서 끊어야겠군.’
“그만.”
“······.”
밀어붙이던 칼리오페가 내 앞으로 돌아왔다.
라에라곤은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고 긴 호흡을 내뱉으며 나를 노려보았다.
녀석의 목 아래 얕지만 길게 베인 상처가 보였다.
깃을 세워서 상처를 감추지만, 얼굴에 드리워진 굴욕감은 감출 수 없었다.
“굳이 서로 싸울 필요는 없지.”
“무슨 개소리냐.”
“여기서 네가 죽으면 네 형제자매가 올 거 아닌가?”
“······.”
“그건 아주 귀찮아. 미슈의 약정이 있는데, 일을 키우면 안 된다고.”
미슈의 약정.
원숭이 취급받는 인간이 아직 정복당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
한때 인간 외에 모든 문명이 모여 국경을 그어두었기 때문이다.
약정의 기한이 거의 끝나는 시점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지켜지고 있다.
얼마 후에 사라질 약정을 무리하게 깨버릴 필요가 없으니까.
“그리고 몸이 성하지 않은 상대를 이겨봐야 기분만 나쁘지.”
내가 녀석의 몸에 걸린 저주를 넌지시 언급하자 라에라곤이 눈동자를 떨었다.
그것을 어떻게 알고 있냐는 표정, 나는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내 땅은 건드리지 말 것. 그러면 나도 그냥 넘어가마.”
“······흥.”
라에라곤은 검을 거두고 물러났다.
“좋아. 대신 조건이 있어.”
“조건?”
“대의제에 참석해.”
“대의제에?”
내 말투가 대의제를 알고 있는 투라 라에라곤이 눈에 이채를 띠었다.
“대의제도 알고 있군.”
대의제는 이 세계의 주요 문명국들의 회의를 가리킨다.
이곳에서 처리하는 안건은 대개 국가 간의 군사, 정치, 외교 등의 갈등.
나름 문명인을 자처하는 이들이니까, 쓸데없이 큰 다툼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만든 제도다.
비유하자면 상임이사국 간의 회의에 가깝다고 봐야겠지.
“대의제는 인간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안다만?”
“긴급 안건이니 이번만 예외로 하면 돼. 이 땅은 본래 내가 받기로 된 것. 대의제에서 먼저 결정한 사안이다. 그것을 내가 일방적으로 너에게 넘겨줄 수는 없어. 마찬가지로 대의제에서 결정이 내려져야 하지.”
“그렇군.”
‘정말 그뿐인가?’
대의제는 그리 가벼운 곳이 아니다.
라에라곤도 그리 관대한 성격이 아니고.
무언가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나는 의심하면서도 거절은 하지 않았다.
‘대의제에 참석하는 것은 이 땅을 소유한 이상 언젠가 있을 일이었다. 다만, 생각보다 이르군. 매우.’
내키지 않지만, 라에라곤이 제 땅이라고 주장한 이상 확전 없이 이 땅의 소유를 인정받으려면 별수가 없다.
이 땅은 대의제가 오랜 기간 중립 지대로 지정한 대평원의 극히 일부.
그 중립 지대를 해체하고 분배한 것도 대의제였기에, 대의제의 구성원인 라에라곤이 소유를 주장하면 누구의 편을 들 것 같나?
저들이 보기에 열등하여 원숭이에 불과한 인간?
아니면 대의제의 창립 종족이며 만 년의 역사를 지닌 엘프?
‘아직 아무런 기반도 쌓지 못한 상황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놈들과 얽히는 것은 너무 위험해. 하지만 그 못지않게 이 땅의 잠재력은 높다.’
소유권을 포기하고 물러난다는 선택도 가능은 하다.
서드렛이 내게 준 땅은 고작 백 명 남짓의 개척촌 하나와 그 주변.
이런 곳에 부임한다는 것은 영주가 아니라 촌장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나는 이 땅에 터를 잡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알고 있었다.
‘비옥한 토지, 마르지 않는 광산, 인간으로 향하건 이종족으로 향하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위치는 물론이고, 방어자로서 최상의 조건인 산맥까지 있다. 이런 곳을 포기하라고?’
물론, 그러한 혜택 중 올리머스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은 비옥한 토지 하나뿐.
그마저도 올리머스 주변부에 불과하니 넓지도 않다.
하지만 이 땅을 소유하면 그 주변으로 확장할 수가 있었다.
‘본편과 같은 시간대였다면 이미 이종족 놈이 뿌리를 깊이 내린 뒤였겠지. 다행스럽게도 이제 막 손을 뻗던 참. 그렇다면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내가 선점해야 해.’
내가 이 땅을 갖는 것은 미래의 적을 싸움 없이 약하게 만드는 셈이니까.
대평원의 가치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지금이 적기였다.
‘그리고 잘하면··· 거꾸로 더 큰 것을 노려볼 수도 있고.’
애초에 그것이 내가 순순히 유배지나 다름없는 개척촌에 온 이유였다.
다만, 상정한 것보다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을 뿐.
스킬 재사용 대기시간이 얼마 남지 않을 것을 보며 계책을 가다듬었다.
라에라곤의 호위가 마법을 주창하여 게이트를 열었다.
“따라와.”
권속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려던 때, 안톤이 갑작스레 나섰다.
“자, 잠깐!”
라에라곤이 안톤을 돌아보았다.
나를 처음 볼 때와 달리 눈빛이 경계의 빛을 띠었다.
혹여 나처럼 실력을 감추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탓이겠지.
“이 땅의 권리는 백작님에게 있소! 나도 참여하겠소.”
라에라곤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관련 있냐고 묻는 것인지라, 나를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군.”
경계가 풀리고 같잖은 것을 보는 시선으로 바뀌었다.
“그럼······.”
안톤이 무어라 말을 하려던 차에 라에라곤이 손짓을 했다.
“뭐··· 억!”
바람이 새는 소리와 함께 뼈가 으스러지며 몸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으스러진 뼈는 살을 찢고 핏물이 길게 튀어 올랐다.
라에라곤은 그저 손을 뻗었을 뿐이었다.
손끝에 맺힌 마력이 안톤의 육체를 감싸 단번에 뭉개버렸다.
“하찮은 원숭이가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라에라곤은 눈에 담는 것조차 더럽다는 듯이 시선을 치웠다.
그리고는 나를 보며 눈웃음을 짓고 게이트에 팔을 뻗었다.
“자, 들어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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