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ilding a human empire by creating a clan RAW novel - Chapter (42)
권속 생성으로 인류 제국 건설 44화(44/185)
종말을 부르는 나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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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지.”
드래곤 로드, 아일레트리오네가 의자를 가리켰다.
나는 두 권속과 함께 접객실 탁자 앞에 앉았다.
백 명이 연회를 열어도 될 법한 넓은 공간.
그 공간에 있는 것은 네 명뿐.
겨울의 한기가 남아 감돌았다.
“추운가?”
“그다지.”
로드가 딱, 손가락을 부딪치자 벽난로에 불이 크게 일었다.
샹들리에도 환하게 빛을 발했고 찻주전자에서 김이 피었다.
로드는 주전자를 들어서 찻잔에 기울였다.
그의 모습은 늙은 개가 아니라 늙은 귀쟁이였다.
우리를 데리고 접객실로 향하는 와중에 육체를 바꾸었다.
“놀라지 않는군.”
“무얼 말이지?”
“전부다. 내가 육체를 바꾸는 것이나, 너를 이곳에 부른 것이나, 나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나, 모두 네게 새로워야 하는 경험 아닌가?”
나는 그가 주는 찻잔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쓴맛.
전생에서 몇 번이나 마셨던.
비록 데이터가 주는 가짜 감각이었지만.
“글쎄.”
로드는 훗, 소리 내어 웃음을 지었다.
“이 모든 게 익숙해 보이는구나, 인간 에다르.”
“그렇게 보이나?”
“그렇게 보이는군.”
찻잔을 내려놓고 품에서 연초 갑을 꺼내 연초를 물었다.
탁
파시메아가 불을 지피려던 차에 로드가 손가락을 퉁겨 지폈다.
“······.”
파시메아의 찌푸린 눈살이 로드를 향했다.
로드는 그녀의 눈살에 고개를 대각선으로 살짝 끄덕였다.
술렁이는 사념을 읽으며 나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하고 싶은 말은? 왜 나를 불렀지?”
“그냥, 신기한 인간을 구경하고 싶었을 뿐이다.”
의자에 앉아 로드는 긴 숨을 토했다.
목에 구멍이 난 것처럼 바람 새는 소리가 났다.
“내 평생 너와 같은 인간. 아니 존재를 본 적이 없다.”
“나와 같다라. 무슨 말이지.”
자신보다 오래 산 존재, 라고 로드가 답했다.
“내가 오래 살았다고?”
“아닐 수도 있지. 하지만 적어도 내 눈엔 영혼의 격이 너무 화려하게 보인다. 인간이여.”
“영혼의 격이 화려하게 보인다라.”
나는 철인의 효과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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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당신은 마지막 업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나약한 자가 되었습니다.
당신의 위대한 의지는 이 땅의 어떤 존재보다 높은 격을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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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격이란 그저 기세와 같은 분위기로 생각했다만.”
“기세와는 다르지. 마찬가지로 마력과도 다르고. 격이란 영적인 것이야. 약한 자는 느낄 수도 없고 평범한 자는 희미하게 느끼고 강한 자는 또렷이 느끼지.”
“강한 자라.”
그것을 로드는 느끼는 것이 아니라 본다?
흥미가 돋아서 비딱하게 앉은 자세를 바로 했다.
“너는 다른가?”
“나는 강하기만 한 것이 아니니까.”
늙어 쇠약한 웃음을 흘렸다.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육체가 주는 감각을 넘어서게 된다는 말을 아나?”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면서 육신에 얽매였던 감각이 개화되는 과정, 말이지.”
“또한 잘 아는군.”
로드는 제 앞에 손바닥을 펼쳤다.
펼쳐진 손바닥 위로 옅디옅은 연기가 일었다.
연기는 아지랑이처럼 흔들렸고 뱀처럼 꿈틀거렸다.
나는 연기 끝이 사람의 두개골과 닮았음을 알았다.
그것은 사람의 영혼이었다.
“그쯤 되면 영혼을 다루는 것도 가능해. 영혼을 다루는 것이 가능한데, 보는 것이 불가할 리 있겠나.”
나는 연초를 피우며 가만히 영혼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영혼은 로드의 손바닥 위를 노닐다가 손이 살짝 앞으로 기울자 내 쪽으로 물뱀이 헤엄치듯 다가왔다.
끼——
귀로는 들리지 않고 뇌리에 들리는 비명.
나는 눈살을 찌푸리고 연초를 입에서 떼었다.
입을 벌리고 다가오는 영혼에 후, 입김을 불었다.
영혼은 연기에 닿자 비명을 낮추다가 녹아내렸다.
“역시 재밌군.”
그 광경을 보고 로드가 허, 소리 냈다.
“영혼도 보다니.”
“그런 것 같군.”
“그런 것 같군? 아니. 조금 더 확신을 담아도 되지 않나. 너는 지금까지 한 번도 내게 새롭단 느낌을 드러내지 않았어. 이쯤 되니 더 궁금해지는군. 인간 에다르. 네가 모르는 것이 있나?”
“글쎄.”
모르는 것이 있기야 하겠다만, 많지는 않겠지.
한때 가상이었던 이 세계에 몰입해서 전생을 바쳤으니까.
회생 불가가 된 내 인생을 여기에 부었다.
‘전생, 그러니까 이 세계에 깃들기 전의 삶에서 나보다 데우스 엑스를 잘 아는 사람은 개발자밖에 없었을 거다.’
연기를 길게 뱉으며 싱겁게 웃었다.
로드가 갸웃하며 눈을 껌뻑였다.
“예전 생각이 나서.”
“예전?”
미묘한 표정으로 변했다.
내 외모가 고작 스무 살에 불과할 테니.
예전이라 말할 경험이 뭐가 있을까.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라.
“정말 이해할 수 없군.”
“살다 보면 그런 일이 많지 않나.”
“그건 그렇지만, 너는 그 이상이야.”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영혼을 보는 네 눈에 내 모습이 그리 달라 보이나? 영혼의 격이란 것이 어떻게 보이지?”
로드는 바로 대답하려다가 잔기침을 수차례 토했다.
혈색이 갑작스레 하얗게 질렸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영혼을 볼 수 있다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아나?”
“······.”
“평가가 달라지지. 영혼은 본질이라, 육신을 아무리 꾸며도 영혼을 꾸밀 수 없거든. 보잘것없는 영혼을 가진 자는 보잘것없는 삶을 살고, 거대한 영혼을 가진 자는 위대한 삶을 살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나를 가리켰다.
“너. 인간 에다르. 너는 너무 밝다. 그리고 커지는군. 그 이유를 알고 있나?”
“······.”
“나는 그 이유를 안다. 영혼이 커지는 이유는 수없이 많거든.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신기한 이유는 타인의 믿음을 먹고 커질 수도 있다는 것이야.”
나는 연초를 입에서 떼고 그와 허공에서 시선을 마주했다.
노쇠하여 기력이 빠져나간 얼굴에서 유일하게 힘을 잃지 않은 것이 저 샛노란 눈동자였다.
눈에 담긴 생기는 그 누구보다 진하게 빛을 냈다.
그것은 적어도 로드의 정신은 명철하다는 것이니.
“에다르. 너는 인간의 신이 되기를 원하나?”
움찔
칼리오페와 파시메아가 몸을 떨었다.
사념에서 당혹감이 흘렀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네 행적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군. 모르는 것이 없는 네가 룬드링겐, 이란 이름을 쓴 것부터 너무 노골적이지 않나?”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룬드링겐은 로드의 옛 가명이었다.
귀쟁이와 난쟁이에게 문명을 전파할 때 사용한 가명.
전생으로 치면 그리스 로마 신화의 프로메테우스.
내가 이 이름을 성으로 사용했다는 것은 의도가 뻔하긴 하지.
그렇기에 대의제가 기묘한 반응을 보인 것이기도 했다.
“다시 묻지, 인간 에다르. 너는 인간의 신이 되기를 원하는가?”
이전보다 강렬한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되묻지 않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필요하다면.”
“그렇군.”
로드는 깡마른 팔로 탁자를 짚고 일어섰다.
그리고 벽에 걸린 액자 앞에 섰다.
액자를 옆으로 밀자 손 하나 간신히 들어갈 틈이 나왔다.
“감출 곳이 여기밖에 없었어. 나는 이제 뒷방의 늙은이거든.”
틈 안에 내 연초 갑과 같은 크기의 상자가 숨겨져 있었다.
아무런 세공도 가하지 않은 밋밋한 나무 상자.
회차를 거치면서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물건이었다.
로드가 기침 섞인 웃음을 지었다.
“이게 뭔지 아나?”
“음.”
“모르는군.”
내가 모르는 것도 있다는 것이 그리 좋을까.
기침을 토하면서도 웃음을 흘리며 상자를 내게 넘겼다.
“가져. 네게 주지.”
“이게 뭐지?”
“티아마르의 영혼.”
티아마르?
사룡 티아마르 말인가?
나는 눈을 껌뻑이면서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보석이 있었다.
물방울 모양의 푸른 빛을 내는 보석.
크기가 엄지손톱에 불과한 사파이어였다.
“미친 티아마르와 싸우는 과정에서 나는 그녀의 영혼 일부를 뜯어냈다. 그리고 영혼이 뜯겨 불완전한 존재가 된 그녀를 간신히 봉인했지.”
“이걸 나한테 주는 이유는?”
“나는 곧 죽는다. 내가 죽으면 누가 그녀의 영혼을 가질까.”
“엘프나 드워프. 어쩌면 뱀파이어.”
보석을 쥐고 살펴보면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속에 금실로 드래곤이 그려져 있을 뿐.
마력 한 줌 느껴지지 않는 보석에 불과했다.
“맞아. 그 셋 중 하나. 그중에서도 귀쟁이나 난쟁이 중 하나가 될 거다. 너는 그 둘이 왜 이번에 참석하지 않은 줄 아나?”
둘?
라에라곤, 고타바를 말하나?
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티아마르의 봉인을 파손한 것이 두 종족이기 때문이다. 서로 책임을 떠밀며 다투고 있거든.”
“과연.”
나는 미소를 지었다.
라에라곤에게 던진 의심이 이리 커졌나.
본래라면 한참 뒤에 터져야 했을 분란.
십 년 이상 앞당겨 터트렸으니 내겐 기회다.
대의제의 가장 큰 축인 두 종족이 나를 견제할 여유가 없게 될 테니, 블라드를 제외하면 나를 견제할 세력이 마땅히 없을 터.
‘아주 좋은 소식이야.’
“봉인을 파손한 이유도 걸작이지. 티아마르를 지배할 수 있다고 믿은 거야. 한심한 놈들.”
“본성이 오만한 족속이지 않나. 그럴만해.”
“용은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아. 지배를 하면 했지.”
로드는 이를 드러내고 혐오를 토했다.
“그런 족속에게 그것을 넘겨준다고 생각해 보라.”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군.”
“그렇다. 티아마르의 봉인을 푸는 것을 넘어서 완벽한 영혼을 가진 그녀를 깨우려 들겠지. 그러면 이 세상은 끝이야. 누구도 종말을 막지 못해.”
“······.”
나는 탁자 위에 보석을 두고 연초를 다시 집어서 입에 물었다.
“그 미친 것을 봉인하는 과정에서 나는 큰 상처를 입어 필멸자가 되었다. 그녀가 영혼이 손상된 것처럼 나 또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나는 로드의 레벨을 확인했다.
【Lv. 96】
설정상 드래곤 로드의 레벨은 96이 아니라 100.
여러 전설 속 무구를 착용하면 그 이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티아마르와 맞서면서 육신은 나을 수 없는 상처를, 무구는 수복할 수 없는 파손을 당했기에 칼리오페와 비교해서 크게 높지 않은 96레벨로 떨어졌다.
‘쌍둥이가 가지고 있던 무기가 몇 안 되게 무사한 무구.’
사용자의 레벨을 무려 2나 올려주는 무기였다.
쌍둥이의 수준을 알고 있는 내가 보기엔 돼지 목의 진주였다만.
“내 뒤를 이어 누가 세상을 지배할지는 관심 없다. 어차피 내 종족은 나와 티아마르밖에 남지 않았고. 내가 죽으면 멸종한 것이나 다름없다. 피도 영혼도 이어지지 않은 족속이 내 뒤를 잇는 건 알 바 아냐.”
나는 연초를 피우며 가만히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내가 필멸자로 떨어지면서 행했던 업적이 허망하게 사라지는 것은 두고 보기 어렵더군.”
“대의제는 남지 않겠나.”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당연히 아니지.
나는 낮게 웃었다.
로드가 죽으면 대의제는 끝이다.
중재자가 없는 중재 기구는 끝이지.
로드의 목소리가 기운 없이 떨렸다.
“내 죽음은 필연적이다. 죽음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이제 결정을 해야 해. 내 가진 것을 물려주고 죽느냐, 아니면 그대로 두고 죽느냐.”
“그리고 나를 택했군.”
“그래. 너, 인간 에다르. 네가 나의 상속자다.”
“왜 나지?”
“적어도 너는 헛짓거리를 하지 않을 것 같거든.”
나는 고개를 주억였다.
로드의 추측은 정확했다.
무수히 많은 회차에서 티아마르는 항상 깨어났으니까.
스스로 봉인을 부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으로.
티아마르를 지배할 수 있다고 믿었다가 거꾸로 지배당한 족속이 그녀의 봉인을 풀고 세상의 파멸을 불러오게 된다.
‘이 영혼이 봉인을 푸는 마지막 열쇠였군.’
“네가 그것을 사용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너무 나를 신용한단 생각 안 드나?”
“글쎄. 나는 네가 아니라 네 영혼을 신뢰하는 것이라.”
영혼이라.
지금껏 거쳐왔던 회차를 떠올렸다.
로드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나?
아니, 없었다, 로드는 언제나 침묵을 안고 죽었다.
한데 인제 와서 내게 이러는 이유란 무엇일까.
내 영혼의 격이 플레이어였던 시절과 다른 것인가?
‘영혼의 격이 다른 것인지, 내가 가진 의무가 다른 것인지.’
로드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말을 이었다.
“그것을 어떻게 쓸지 이제 네 마음에 달렸다. 부수어 영혼이 그녀에게 돌아가게 하건, 아니면 봉인을 영원히 지키건.”
“마치 종말을 부르는 나팔을 가진 것 같군.”
“그리 볼 수도 있지.”
잠시 숨과 생각을 고르느라 정적이 깔렸다.
벽난로의 장작 타는 소리만이 들렸다.
이윽고 로드는 고개를 들고 나를 보았다.
샛노란 눈동자가 노려보듯이 나를 주시했다.
“인간 에다르. 나는 너를 상속자로 지명하며 네게 티아마르의 영혼을 넘기겠다. 영혼을 지키는 것이 내가 네게 더한 의무이지만, 필요하다면 부수어도 좋다.”
티아마르의 영혼이 담긴 보석이 일순간 옅게 빛을 일었다.
부수어서 자신을 해방하라고 유혹하는 것처럼.
그러나 유혹은 내게 어떤 감응도 주지 못했다.
“이 세상이 더는 가치가 없다고 여겨졌을 때, 보석을 부수어 종말을 불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