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ilding a human empire by creating a clan RAW novel - Chapter (53)
권속 생성으로 인류 제국 건설 55화(55/185)
아가톤, 혈족의 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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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애송이가!”
마젠킨 공작은 서찰을 쥔 손을 떨면서 이를 악물었다.
남은 다섯 개의 서찰을 하나하나 확인할수록 그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렇기 때문에 신속하게 마젠킨을 처리할 필요가···
여섯 개의 서찰은 내용이 똑같았다.
공작이 방해다, 죽여야 한다, 죽일 수 있도록 지원을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공작은 서찰을 찢어서 던지려다가 멈추었다.
유일한 물증을 쉬이 버릴 수야 없으니까.
화를 억누르며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네가 조작한 것 아니냐?”
“저는 호소할 뿐입니다. 믿는 것은 공작님께 달렸지요.”
공작은 잠시 나를 노려보다가 후우, 길게 숨을 내뱉었다.
나는 담담하게 깍지를 낀 채 공작과 눈을 마주했다.
‘서찰은 진짜다. 아무리 의심해도 사실은 변함이 없지.’
반지와 서찰, 소도모라에 있는 혈족의 거점에서 훔친 것이었다.
모기 새끼들의 거점은 뻔히 알고 있었으니까.
권속을 보내서 증거가 될 물건을 가져오게 했다.
‘고맙게도, 그리고 예상대로. 좋은 걸 남겨두었어.’
가문의 인장을 새긴 반지, 암살을 사주하는 서찰.
‘오만한 것. 누가 감히 저를 노릴까 방심했군.’
나는 반지의 주인을 떠올렸다.
혈족 중에서 가장 어리며 오만하고 잔인한 녀석.
조금이라도 경계심이 있었다면 이리 멍청하지 않았겠지.
그러나 혈족은 블라드의 자식으로 취급받는 족속이다.
황제의 자식을 누가 감히 손찌검할까.
고상한 삶이 방심을 부른 것이다.
“···일단. 이것은 자네와 나만 아는 것으로 하지.”
“알겠습니다.”
나는 공작의 눈초리가 날카롭게 변하는 것을 읽었다.
후고 백작에 대한 분노 못지않게 내게 의심을 품은 것이라.
혹시 내가 서찰을 조작한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러겠지. 한 번에 믿을 거라고 생각 안 했다.’
서류 조작은 흔해 빠진 술수니까.
올리머스에 부임한 첫날 도린 백작이 그러했다.
서드렛의 영지가 제 것이라고 날조한 서류를 내밀었지.
하물며 지금 이 자리에 인장 반지까지 있지 않나.
필체만 어찌할 수 있다면 조작 따위 간단했다.
‘하지만 결국 내 말을 믿게 될 거다. 진실이니까. 그리고 후고는 반드시 너를 죽이려고 할 테니.’
이전에 말했지.
플레이 시점이 되면 네 번째 왕가가 사실상 들어선다고.
그리고 네 번째 왕가를 제창하는 인간이 후고 차이켄이라고.
그 시점에서 마젠킨 공작은 뒷방 늙은이가 된다.
제 2왕조의 후예이자 귀족 의회의 거두였던 그였기에.
후고에게 패하여 몰락하는 것이 정식 시나리오다.
‘망설이지 않게 등을 더 밀어줘야겠군.’
“더 하실 말씀이 없다면 먼저 일어나도 되겠습니까?”
“약속이라도 있나?”
“약속은 없습니다만, 투기장에 관심이 있습니다.”
“하긴, 지금이 풍년이지.”
풍년.
노예 상인과 똑같은 말투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자네가 데려온 저것들 말이야. 요즘 들어서 수가 부쩍 늘었어. 날이 조금 힘들다 싶으면 어김없이 저 자신이나 가족을 팔아버려서.”
공작은 곰방대를 입에 물고 툴툴거렸다.
“덕분에 투기장이 성황이야. 후고, 그 애송이가 투기장의 주인이라 돈을 쓸어 담고 있지. 가는 걸 말리진 않겠지만, 돈은 너무 쓰지 않도록 하게. 자네가 거기서 쓰는 돈은 모조리 애송이의 주머니로 들어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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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다르, 당신 말투 이상해.”
저택을 나오자 파시메아가 혀를 내밀며 으엑, 소리 냈다.
“임금님처럼 말하던 양반이 존댓말을 하니까 엄청 음험해 보여. 뭐, 실제로도 음험하지만.”
“파시메아.”
칼리오페가 미세하게 눈살을 구겼다.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
나는 피식 웃으면서 정면의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마젠킨 공작이 장담할 만했다.
으레 한 나라의 수도는 왕궁이 중심이건만.
소도모라에는 예외적으로 왕궁보다 큰 건물이 있었다.
그 건물은 투기장이었다.
“왕궁보다 크네. 몇 명이나 받을 수 있는 거야?”
“글쎄, 10만 명은 수용할 수 있을 거다.”
“10만?”
파시메아가 어처구니없다는 투로 되물었다.
“고작 경기장 하나를 이렇게 크게 짓는다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돈 때문에? 아니면 시민 복지 차원에서?”
“아니. 둘 다 아니다.”
외벽 높이가 수십 미터, 둘레는 수백 미터의 타원형 경기장.
경기장 내부의 중앙 무대 또한 타원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관중석으로 향하는 출입구만 따져도 백 개에 달했고.
자리는 빈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만석이었다.
와아아아아—!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갈채가 터졌다.
마침 우리가 입장했을 때가 다음 경기가 시작되려던 차.
100여 명의 인간이 무대 중앙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저 사람들··· 노예지?”
“그래. 자신을 스스로 팔거나 혹은 팔린 인간이다.”
벌거벗은 사람부터 신체 한 곳에 보호구를 걸친 사람까지.
들고 있는 무기도 각기 달랐고 인종, 체격, 성별까지도 달랐다.
유일한 공통점은 서로 겁을 먹고 있다는 것뿐.
관중들의 환호 속에서 허둥대며 주변을 살폈다.
“선생님.”
호객꾼이 다가와 손바닥을 내밀었다.
“어디 쪽에 거시겠습니까?”
나는 대답 대신 무대로 고개를 돌렸다.
호객꾼은 어깨를 으쓱하고 뒷자리의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는 왼쪽, 이라 말하며 동화 한 줌을 건넸다.
부———
노예들이 나팔 소리에 겁을 먹고 몸을 움츠렸다.
“도망치지마 겁쟁이 새끼들아!”
두 패로 나뉘어 관중석이 있는 벽으로 간 노예들.
벽 위에 있는 관중은 음식물을 던지고, 채찍을 날리고, 돌팔매질을 하며 노예를 무대 가운데로 돌려 보냈다.
“싸워!”
“죽이라고!”
그들은 싸울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곧 서로를 죽이기 시작했다.
찌르고, 자르고, 물고, 피를 보자 망설임은 사라졌다.
하나의 생명이 사라질 때마다 관중은 환호했다.
“이딴 걸 보러 온 거야?”
파시메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그럼? 왜 온건데?”
“두 번째 미끼를 던지려고.”
“미끼?”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
이종족이 인간을 어찌 대하고 있나.
그리고 눈 앞의 관중은 같은 인간을 어찌 대하고 있나.
서로를 죽이는 노예와 환호하는 관중을 보았다.
무대 위에 흐르는 피의 비릿함이 코를 찔렀다.
‘인간끼리도 서로를 가축으로 여기는 세상이라니.’
한 나라의 수도에 산다는 것이 특별한 권리이기에.
권리를 누리며 같은 인간을 핍박하는 것이 몸에 배었다.
그 수가 수십만이요, 내가 다스리는 인간의 수보다 많았다.
이 도시에 진정 인간으로 불릴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
생각을 마치고 말문을 열었다.
“공작이 투기장의 주인은 후고 백작이라고 했지. 그건 절반의 진실이다.”
“그럼?”
“정확하게 말하면 투기장은 혈족의 소유다. 후고는 제 주인의 것을 관리하는 집사에 가까운 역할이고.”
“혈족이 투기장을 소유해? 왜?”
“흡혈귀에게 가장 맛있는 것이 무엇일까?”
피, 라고 파시메아가 답했다.
“피. 그중에서도 동족의 피를 가장 맛있게 느끼지. 투기장은 소도모라에서 혈족과 종복이 된 족속을 위해 피를 공급하는 장소다.”
“왜 하필 투기장이야?”
“인간을 도살해도 의심받지 않으니까.”
무대를 적신 핏방울이 웅덩이가 되었다.
웅덩이는 무대 곳곳에 설치된 하수구로 흘러 빠졌다.
“저 하수구를 통해서 피를 모으고 걸러서 만찬에 올리지.”
“······.”
파시메아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욕지거리를 뱉었다.
수십 명에 달하던 노예 중 고작 넷이 남았을 때,
관중은 다음, 다음, 외쳤다.
“정말 우습네.”
“무엇이?”
“봐봐. 투기장의 경기가 계속된다는 건 혈족이 존재한다는 뜻이잖아, 식량을 공급해야 하니까. 그러면 규모가 커졌다는 건 혈족이 늘었다는 뜻도 되지 않아?”
나는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 고작 경기장 하나가 이렇게 큰 이유가 그것이다.”
혈족과 그 종복에게 피를 공급하는 인간 도살 공장.
파시메아는 관중을 가리켰다.
“저 인간들을 보라고. 자유라는 특권을 가지고 하는 짓이 뭐야. 동족이 죽고 죽이는 것을 즐길 뿐. 저 인간들에게 행복은 경기가 계속되고 경기가 커지는 것뿐이야.”
제 동족을 먹는 기생충이 늘어나야 행복을 느끼는 것.
파시메아는 그것이 우스운 것이라.
“내 생각에 말이야. 혈족을 죽여도 투기장은 변함없을 것 같아. 어쩌면 더 성대하게 열리지 않을까? 적어도 모기는 먹을 만큼 빨잖아. 근데 얘들은 안 그럴 것 같거든?”
칼리오페가 파시메아에게 조용히 하라고 사념을 보냈다.
그러나 파시메아는 코웃음 치고 말을 마저 이었다.
“에다르, 당신 정말로 혈족만 잡으러 온 거야?”
나는 입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도 대답을 바라지 않았다.
권속은 내 사념을 읽을 수 있으니까.
사념을 읽고서 이미 답을 구한 뒤였다.
“소도모라의 위대한 시민 여러분!”
사회자가 돌출된 관중석에 서서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은 살육을 원합니까? 이 비루한 노예들이 아니라 진정한 전사들이 맞서 싸우는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화려한 살육을 보기 원합니까?”
시민들은 네! 라고 소리쳐 대답했다.
사회자는 손뼉을 크게 치고 무대 한편의 출입구를 가리켰다.
“여기 300명의 전사가 있습니다! 사쿤의 전사들! 여러분을 기억하실 겁니다! 이들이 얼마나 용맹하게 제르마니아로부터 고향을 지켰는지, 이 소도모라를 위해 희생했는지 말입니다!”
출입구에서 남녀 혼성의 노예들이 나왔다.
이전의 노예보다 더 무장했고 체격도 좋았다.
관중을 보고 놀라는 기색도 없었다.
“이제 이들은 소도모라 최고의 전사에게 맞서게 됩니다! 누가 이길까요, 누가 살아남을까요.”
관중은 한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사회자는 귀에 손을 대고 더 크게 부르라 시늉했다.
경기장의 분위기가 절정에 이르자 두 팔을 높게 벌렸다.
“전하! 이 경기에 축복을 내려주소서!”
관중석에서 가장 높은 곳.
상석의 붉은 색 휘장이 열리며 뚱뚱한 남자가 나왔다.
멀리서 보아도 얼큰하게 취한 그는 이 나라의 국왕이었다.
이미 허수아비가 되었고 머지않아 후고에게 왕위를 넘겨줄.
‘파베 쿠스로르프.’
술에 전 왕이 잔을 들며 외쳤다.
“싸워라. 그리고 멋지게 죽어라!”
둥— 둥—
북소리가 경기장을 덮으며 노예들이 들어온 출입구의 반대편 출입구에서 한 남자가 나타났다.
【Lv. 61】
그리프보다 높고 마젠킨 공작과 근접한 레벨.
“저거 인간이 아니네.”
파시메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에게 있어서 60레벨이란 절대 강자다.
평생 뼈를 깎는 노력을 해도 대부분 다다를 수 없는 강함.
마젠킨 공작을 보라, 그 나이가 되어서야 63레벨이 아닌가.
그러나 무대 위의 남자는 아무리 높게 보아야 서른 살 남짓.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아가톤. 블라드의 혈족이다.”
게하르드가 도린 백작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조종했듯이 후고를 왕으로 세우고 왈로키아를 지배하게 되는 블라드의 혈족.
그리고 혈족 중 가장 어린 녀석.
‘투기장에 빠져 살던 건 똑같군.’
이전 회차에서도 투기장의 전사를 연기했지.
누가 놈을 왈로키아의 지배자라고 생각했을까.
“해가 떴는데? 이렇게 대놓고 활동한다고?”
“혈족이 위험한 이유가 그것이니라. 피부가 조금 창백할 뿐, 햇볕에 대한 피해나 공포가 없는 족속이니까. 무리 속에 숨어들어 모기처럼 기생하기 수월하지.”
종복은 햇볕에 몸이 녹거나, 이지를 잃거나, 환각 증세를 앓거나, 다양한 부작용을 겪지만, 혈족은 그런 것이 없었다.
블라드가 최초의 흡혈귀는 아니었을지언정 햇빛을 극복한 존재로서는 최초였기에 그 피를 전해 받은 혈족 또한 햇빛을 극복한 것이다.
“그럼 저 얼굴로 속은 할아버지란 거네.”
할아버지?
그 이상이다.
가장 어린 혈족인 아가톤조차 수백 살이 넘었지.
“하.”
“혈족이란 블라드가 직접 제 피를 내린 족속. 흡혈귀가 제 피를 준다는 것은 제가 가진 힘을 나누어 준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그 의심 많은 모기가 어디 쉽게 피를 내려주겠나.”
업적을 이루거나 놈과 아주 오랜 시간 함께했거나.
차고 넘치는 종복 중에서 한 줌의 한 줌만이 받는 피.
무대 위의 남자는 그 귀한 피를 받은 흡혈귀였다.
“모기가 꽤 귀여워하는 녀석이다.”
천 년 먹은 귀염둥이라, 파시메아가 헛구역질을 했다.
“으엑··· 수백 살 먹은 아들을 귀여워해?”
“부모에게 자식이란 자식이 노인이 되어도 귀엽지.”
유사 가족이지만.
“전사 아가톤! 당신의 힘을 보여주시오!”
사회자의 외침과 동시에 노예들이 달려들었다.
“즐겁게 보고 있나?”
나는 무대를 향했던 고개를 뒤로 돌렸다.
화려하다 못해 눈부신 금색 차림의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턱을 세우고 비웃는 미소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아. 너는 내가 누군지 모르겠군. 나는—“
“후고 차이켄.”
후고는 눈썹을 씰룩였다.
아네? 라고 말하는 눈초리였다.
“혈족의 노예가 겁도 없이 돌아다니는구나.”
“······.”
일순간 녀석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무슨 소리냐?”
“네 목의 흉터가 그리 선명한데 숨길 수 있을 것 같더냐?”
후고는 즉각 손을 들어서 목을 만졌다.
그러나 흉터 자국이 느껴지지 않자 얼굴을 붉혔다.
이미 십여 년도 더 전에 사라진 흉터가 남아 있을 리 있나.
내게 농락당했음을 깨닫고 부아를 일으켰다.
“너···.”
“장난이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알고 있다. 네가 사냥 중에 혈족에게 물려 노예가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왈로키아의 왕위를 노리고 있단 것도.”
어떻게 그걸, 이라고 무심코 말이 새어 나왔다.
황급히 입을 다물지 않았다면 어찌 알았냐고 물었을 터.
이를 꽉 물어서 말이 새나가는 것을 막고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그 꼴을 보면서 비웃음을 지었다.
“네가 섬기는 혈족의 아비도 나를 어찌하지 못했다. 너라고 다를 것 같더냐, 어리석은 노예야.”
“···인간 주제에 혓바닥이 길구나.”
“너는 자신을 인간이 아니라 여기나?”
“······.”
후고가 무어라 말하려던 차에 환호가 터졌다.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싸움이 끝났다.
핏물로 가득 찬 경기장에 아가톤 혼자 서 있었다.
수백 구의 시신이 난자되어 무대에 흩뿌려져 있었다.
우와아아아아아——!
아가톤! 아가톤!
관중은 일어나 흡혈귀의 이름을 불렀다.
아가톤은 무대를 돌아보다가 가장 멀쩡한 시신을 들었다.
배꼽 아래가 잘려나가 상체만 남은 시신은 시신이 아니었다.
아직 숨이 붙어서 희미한 생명의 불을 태우고 있는 남성이었다.
아가톤은 그를 들어서 관중에게 보였다.
“물어! 물어!”
“피를 빨아!”
관중은 이를 드러내며 무는 시늉을 했다.
그 반응에 아가톤은 크게 웃다가 남자의 목을 물었다.
“컥!”
죽어가던 남자는 눈을 부릅떴다.
쩍 벌린 입에서 바람 빠진 소리가 났다.
피부는 급속도로 창백해지면서 미라처럼 변했다.
아가톤, 저 흡혈귀가 남자의 피를 빠는 것이라.
“그래 그거야!”
“아가톤!”
“이 멋진 놈!”
관중은 기뻐하며 큰 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정말로 피를 빨아 먹고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니다.
그저 행위 예술로 이해하고 환호를 보냈다.
그 모습을 아가톤은 즐기고 있었다.
“······.”
피를 빨면서 관중을 훑던 아가톤의 시선이 내게서 멈추었다.
“······?”
그리고 아주 잠깐, 이맛살을 구겼다.
마치 눈부신 빛에 쬐여 눈을 뜨기 힘든 투로 목에서 입을 떼 시신을 내던지고 검지로 나를 가리켰다.
후고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속삭였다.
“너를 찾으시는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겁먹었나?”
“······.”
“너는 내게 인간이 아니냐고 물었지. 내 답해주지. 왜 내가 인간이어야 하지? 왜 열등한 가축 따위로 살아야 하지?”
오른손을 펼쳐서 아가톤을 향했다.
“저 강대한 모습을 봐라. 인간이라면 감히 보일 수 있는 모습이었을까? 인간은 나약하다. 결코 저리될 수 없어.”
목소리에 자부심이 그득했다.
“나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 아니다. 인간을 넘어서 진화한 것이지. 그리고 혈족이 되어 인간을 초월할 것이다.”
“초월이라.”
나는 코웃음 치고 파시메아에게 손짓했다.
“너는 젊어서도 어리석었구나, 후고.”
“뭐?”
파시메아는 난간을 뛰어 무대 위에 착지했다.
환호하던 관중은 난데 없는 참가자에 환호를 멈추었다.
그리고 곧 키 작은 여성이란 것에 웃음을 터트렸다.
“누가 밀었냐?”
“얼른 올라와 멍청한 년!”
“아니다! 그냥 죽어!”
온갖 욕지거리가 경기장에 울렸다.
직전까지 터졌던 환호보다 더 큰 외침.
귀가 아플 정도로 소란이 난무하는 가운데 아가톤이 다가왔다.
“계집. 네년 말고 저 역겨운 빛을 내는 주인을 불러와라.”
“뭐라고?”
아가톤은 피에 젖은 입술을 손등으로 닦았다.
입꼬리를 가로로 길게 찢으며 혀를 내밀었다.
“못 들은 거냐. 네년의··· 흡!”
파시메아가 오른손을 뻗었다.
“다시 말해봐.”
손끝에서 발한 마력이 아가톤을 휘감았다.
아가톤은 다급하게 목을 부여잡고 마력을 일으켰다.
“모기가 앵앵거리는 소리라 안 들리는데.”
그러나 제 몸을 감은 마력을 떨쳐내지 못했다.
파시메아가 천천히 손을 위로 들자 아가톤의 몸이 떴다.
“그거 알아?”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고 목을 조르는 힘은 더욱 강해졌다.
흡사 올가미에 매인 것처럼 목을 부여잡고 발버둥 쳤다.
어디에도 디디지 못한 다리가 허공에서 파닥였다.
“사람들은 나를 황금 제작자라고 부르거든? 그건 직업이기도 하고 이명이기도 해. 근데 제작자라고 하면 다들 내가 뭐 어디 공방에 틀어박혀서 꼼지락대는 사람으로 안단 말이지.”
파시메아는 뻗은 손을 꽉 쥐었다.
“너 같은 새끼는 뭣도 아닌데 말이야.”
“꺼, 으··· 억···!”
뒤따라 아가톤의 몸이 우그러들었다.
콰직, 콰직, 뼈가 뒤틀리며 몸이 동그랗게 말렸다.
아가톤은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숨조차 뱉지 못했다.
그저 입과 눈을 크게 뜨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를 뿐.
“네 애비나 불러와. 애새끼야.”
손을 활짝 펼쳤다.
파삭—
아가톤의 몸이 터졌다.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바닥은 이미 핏물로 흥건했건만, 아가톤의 살과 피가 떨어지자 부글부글 끓었다.
꼭 상처 위에 소독약을 흘린 것처럼 거품을 냈다.
그리고 거품은 비명과 같은 소음을 냈다.
“으··· 냄새.”
파시메아는 왼손을 한 번 휘저었다.
그러자 끓기를 멈추고 하얀 가루로 변하려던 살과 핏물에 불이 발하여 거세게 타오르고 이내 재가 되었다.
그 누구도 아가톤이 혈족이었음을 모르게.
“이래서 싸우기 싫다니까. 내 전문 분야도 아니고.”
파시메아는 투덜대면서 몸을 돌렸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파시메아, 너는 내게 미끼가 무엇이냐고 물었지.’
나는 재가 된 아가톤을 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10만 명을 채운 투기장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관중의 시선이 그녀와 그녀가 보는 나를 향했다.
‘두 번째 미끼를 던졌다. 이제 누가 미끼를 무느냐를 기대할 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가 듣게끔 말했다.
“이게 다냐? 이토록 약한 것이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을 전사라는 것이냐? 어린애도 지루하고 한심해서 보지 못할 수준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