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ilding a human empire by creating a clan RAW novel - Chapter (61)
권속 생성으로 인류 제국 건설 63화(63/185)
우리는 너희를 묻어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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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쿵, 쿵—!
땅을 두드리는 소리에 왕궁이 진동했다.
부서진 천장에서 돌가루가 떨어지며 먼지를 일으켰다.
객실 바닥에 깔리는 먼지와 블라드가 흘리는 검은 안개.
“······.”
블라드는 나를 노려보았다.
시뻘건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내게 분노하면서 놀라고 긴장된 감정이 읽혔다.
저 밖에 있는 무리의 기세를 느꼈을 테니까.
‘평범한 인간이 무리를 이루었다면 같잖았겠지.’
약하디약한 인간이 수천, 수만 모인다고 겁이 날까.
내가 우그다쉬의 군세를 수십의 권속으로 도륙한 것처럼.
보통의 인간은 아무리 모여도 블라드, 아니 혈족도 못 이긴다.
‘하지만 저 밖에 있는 이들은 권속이다.’
부임 이래 생성한 권속의 대부분.
레벨이 조금이라도 높다면 직업 상관없이 동원했다.
그렇게 모은 수가 200명이 넘었고 저 밖에 있었다.
그들의 평균 레벨은 우그다쉬 때보다 높았다.
낮게는 30, 높게는 70에 이르기까지.
모기를 잡기 위해 준비했다.
‘오지 않을 가능성도 높은데요?’
그리프에게 처음 계획을 전했을 때, 그리 물었었지.
낮은 가능성 하나에 권속을 너무 많이 동원한다고.
저레벨 권속을 제외한 모두를 동원하는 것이니까.
‘그리프, 게하르드 그리고 총독부 소속 행정 권속은 물론, 대평원의 순찰대와 운송대, 공방과 외벽 공사에 동원된 권속까지 다 동원해야 한다.’
업무가 마비되거나 엄청난 차질을 빚을 터.
‘거기에 소도모라로 가는 데만 열흘이 넘게 걸리는데, 가서도 바로 일을 보고 오는 것도 아니고.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을 블라드가 오느냐 마느냐 낮은 가능성에 소모해야 하는 거지.’
블라드가 오지 않는다면 한 달을 날리는 셈이지만,
‘만약 온다면?’
블라드가 직접 소도모라에 당도한다면?
칼리오페와 파시메아로 막을 수 있을까.
하다못해 내가 도망이라도 칠 수 있을까.
‘불가능해. 놈은 혼자 오지 않을 테니.’
단 한 번의 패착으로 이때까지 이룬 모든 것을 잃으랴?
가능성이 낮다고 방심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비용이 많이 나가는 보험 같군요.’
‘대신 보상금은 막대하지.’
오지 않으면 손쉽게 혈족과 종복을 정리하면 된다.
공작과 백작을 공멸시켜서 소도모라를 무력화시키고.
비용이 조금 많이 나갔다고 혀를 차고 잊으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너는 왔다.’
쿵, 쿵, 쿵—!
끊임없이 이어지는 땅울림.
땅울림이 일으키는 진동에 섞인 마력.
마력을 느끼는 블라드와 혈족의 당혹감이 또렷이 보였다.
‘놀랐더냐. 인간의 세가 어찌 이럴 수 있느냐고?’
분명 제국 전체와 비하면 한 줌도 되지 않는 위세였다.
흡혈 제국이 군을 일으키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사라질 무리.
그러나 지금 블라드는 군단은커녕 혈족조차 몇 없었다.
열 개의 손가락 중 고작 새끼손가락 한 마디.
제 새끼를 구하려고 급하게 달려온 탓이다.
너무도 적은 무리를 이끌고 내 앞에 섰다.
‘지금의 너는 벌거숭이나 다름없지.’
블라드는 힐끗, 칼리오페와 파시메아를 살폈다.
두 권속은 도도하게 놈을 지켜보았다.
놈은 입술을 깨물며 안개를 더욱 짙게 내뿜었다.
두 권속을 상대로 녀석이 승리를 장담할 수 있을까?
혈족이 함께한다면 당연히 그렇겠지.
‘칼리오페와 파시메아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블라드와 혈족 열을 더하고 싸우면 중과부적. 그러나 이것은 네놈들도 똑같아.’
10마리의 혈족으로 2명의 권속을 상대하려고 했던 것처럼,
200명의 권속이 10마리의 혈족을 상대할 것이다.
개개인의 격차로 피해는 크겠으나, 그런데도
‘우리는 너희를 묻어버릴 것이다.’
쿵, 쿵, 쿵—!
“네놈···.”
분노로 목소리가 떨렸다.
“이딴 짓으로 날 압박하려는 거냐!”
노성과 함께 마력이 터지며 강풍이 일었다.
“압박? 내가 지금 너를 압박한다고?”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내가 너를 압박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뭐냐?”
“나를 위협하고 겁먹게 하여 물러나게 할 속셈이렷다. 세 치 혀로 나를 속여서 말이다. 대의제에서 그런 것처럼.”
“틀렸다. 모기야.”
나는 녀석을 노려보며 말했다.
“너는 죽는다.”
“뭐? 내가? 내가 죽어?”
하, 싱겁게 웃음을 터트리고 곧 크게 웃었다.
뒤따라 혈족도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 갑작스레 정색했다.
“네깟놈이—!”
쾅!
“감히 나를 모욕해!”
쾅!
“내 아들 죽여놓고! 이제 나를 죽이겠다고!”
“그래, 너를 죽이기 위해서 네 버러지 새끼를 잡은 거다.”
움찔
블라드는 눈을 크게 떴다.
“나는 네가 혈족을 어찌나 아끼는지 알고 있다. 혈족이 죽임당하면 어찌 반응하는지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렇게 준비를 해두었지.”
나는 검지로 관자놀이를 톡톡 쳤다.
“한데 너는 모르는 것 같구나. 네가 혈족을 아끼듯이 나 또한 인간을 아낀다는 것을.”
“······.”
“네가 진정 혈족을 아꼈다면 내가 대의제의 아홉 번째가 되었을 때, 혈족을 물려야 했던 것 아니냐? 너는 내가 인간의 대표로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라 믿은 거냐? 네 자식이 이 땅에 기생하고 있음을 내가 알고 있는데도?”
블라드는 침묵했다.
몰랐을 리 없으니까.
다만 설마 설마 했겠지.
감히 인간이, 제깟 것이 감히 그러겠느냐고.
녀석은 낮은 가능성을 무시했다.
나는 낮은 가능성에 걸었다.
그 결과가 지금 이렇게 찾아왔다.
“나는 그저 네가 만든 버러지 중에 가장 멍청한 것, 그리고 가장 탐욕스럽고, 오만하며, 악한, 네가 가장 사랑하는 벌레를 징벌했을 뿐.”
나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너는 오히려 내게 감사해야 한다. 네 버러지가 받아야 할 벌은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었으니.”
으드득!
블라드는 이를 악물면서 내게 몸을 기울였다.
당장 바닥을 차고 내게 튀어올 것처럼 격양된 모습.
그 모습을 보고 곁에 선 혈족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버지.”
당장 달려들 기세였던 블라드가 멈칫했다.
시뻘건 눈동자에 담긴 분노가 제 아들을 향했다.
혈족은 시선이 닿자 흠칫 놀라고도 단호하게 말했다.
“물러나야 합니다.”
“······.”
일순간 블라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에 혈족이 재차 말했다.
“물러나야 합니다, 아버지.”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눈매를 좁혔다.
‘콘라트.’
흡혈 제국 미케나의 재상.
‘옆으로 요제프, 슈터이버까지. 핵심을 전부 데려왔군.’
잔해 위에 서 있는 혈족 모두를 나는 알고 있었다.
제국에서 수위에 꼽히는 강자인 동시에 제국의 두뇌.
미케나는 블라드가 세운 나라지만, 이를 제국으로 만들고 대의제의 한 축이 되게 설계한 것은 저들이었다.
‘제국의 기둥을 뿌리째 가져오다니. 멍청한 것.’
블라드는 확실히 급했고 감정에 휘둘렸다.
본래라면 전면에 내놓아서 안 되는 이들을 이끌었으니.
놈은 콘라트의 호소에 뒤늦게 조금씩 화를 삭였다.
감정이 이성에 눌리면서 침착함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망설임이 언뜻언뜻 표정으로 드러났다.
이대로 싸우면 피해가 적지 않으리라 판단한 것이라.
‘그러면 안 되지.’
“블라드 폰 홀슈타인.”
연초를 입에서 떼고 녀석을 불렀다.
“나는 참 이해가 가지 않아.”
“듣지 마십시오!”
“······.”
콘라트가 놈을 잡고 무시하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놈은 내가 말을 잇기를 기다렸다.
나는 턱을 세우면서 비웃음을 지었다.
“네가 모기가 되고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무엇이었나? 너를 간호하는 어미를 물고 아비를 먹고 형제자매까지 쳐 죽이는 것이었지? 한데, 이제 피 몇 방울 나눈 족속을 가족처럼 대하여 아낀다고?”
놈은 주먹을 불끈 쥐며 눈을 부릅떴다.
내가 지은 눈웃음이 녀석의 매서운 눈초리와 만났다.
“왜 갑자기 가족 놀이에 심취했느냐?”
잠시 돌아오는 듯했던 이성이 꺼졌다.
눈의 흰자가 시뻘겋게 물들고, 손톱이 길어지고, 머리카락은 곤두섰으며, 다리 아래 안개가 넓게 퍼졌다.
“네놈!”
“안 됩니다. 아버지!”
콘라트를 뿌리치고 블라드가 뛰쳐나왔다.
“물러나십시오!”
칼리오페가 앞으로 달려나갔다.
챙—
찰나에 발검한 칼날이 횡으로 가로지르며 블라드를 베었다.
허나 칼날이 살에 닿기 직전, 놈의 전신이 안개로 변했다.
“꺼져라!”
안개는 칼날을 통과하며 칼리오페를 덮쳤다.
그리고 흩어졌다가 그녀의 뒤에서 모여들었다.
모여든 안개 속에서 손이 튀어나왔다.
“······!”
샛노란 손톱이 번뜩이며 그녀의 등을 노렸다.
허나 그녀는 그보다 먼저 몸을 돌렸다.
서걱!
안개가 물러나고 다시 모여들어 블라드가 되었다.
주륵···
오른손 상처에서 피가 흘렀다.
“열등 종족이···.”
놈은 피를 핥고 사납게 소리쳤다.
“죽여라! 죽여! 노예로 만들 필요도 없다! 찢어 죽여!”
혈족이 제 아비의 명을 따라 달려들었다.
칼리오페에게 블라드와 세 마리의 혈족이,
파시메아와 내게 일곱 마리의 혈족이 쇄도했다.
“어딜!”
나를 밀치고 파시메아가 왼발을 들었다.
그녀는 발끝에 마력을 모아 바닥을 찍었다.
쩌적, 바닥이 금이 가더니 땅이 뒤집혔다.
혈족의 발아래 지면이 폭삭 무너졌다.
“에다르!”
그녀의 손끝에서 발한 마력이 나를 감쌌다.
발이 지면에서 떨어지고 객실 밖으로 던져졌다.
“히, 히히히, 히히히히히!”
무너진 지면을 헤집고 혈족들이 튀어나왔다.
그중 두 마리가 객실 밖으로 던져진 나를 보았다.
‘요제프, 레니.’
블라드의 세 번째, 아홉 번째 혈족.
【Lv. 81】
【Lv. 80】
한 놈은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종종 이성을 잃는 모기고, 다른 한 놈은 침묵을 지키겠다고 혀를 뽑은 암살자다.
“히, 히히히! 넌 내 꺼야!”
“······.”
두 모기가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접객실을 나와 왕궁 복도에 섰다.
“잡았다!”
“잡히는 건 너다, 모기야.”
미소 짓는 요제프에게 나는 손을 뻗었다.
빛이 활짝 펼친 손에서 발하여 두 모기를 덮쳤다.
“캬아아아아아악!”
치이이익, 살이 타며 온몸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고통 가득 한 괴성을 지르며 두 혈족이 주저앉았다.
“순수한 믿음은 때론 어둠을 이겨내지.”
나는 뒤로 물러나며 반대 손을 들었다.
곧장 혈족 주변의 마력이 응집하고 폭발이 일었다.
콰광!
“너무 가까웠군.”
옷에 튄 불똥과 먼지를 털면서 중얼거렸다.
“폐하!”
돌아보면 게하르드와 그리프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뒤로 권속의 무리가 뒤쫓았다.
방금 마력을 터트린 것은 그리프의 솜씨였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주억였다.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리프가 투덜거렸다.
“미끼가 앞에서 살랑거려야 물 생각이 나지.”
“그러다 진짜로 물리면 본전도 못 찾는데요.”
“그럴 일 없다. 나는 너희를 믿으니까.”
어이쿠, 하면서 그리프가 어깨를 으쓱였다.
폭발로 자욱한 먼지 속에서 안광이 번뜩였다.
후두둑 잔해가 떨쳐내며 두 혈족이 걸어 나왔다.
파시메아의 공격에도 멀쩡했던 육신이 피로 흠뻑 젖었다.
“너, 너, 너 인간 죽인다!”
분노로 가득 찬 외침을 지르는 혈족.
나는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높이 치켜들며 소리쳤다.
“게하르드, 그리프. 너희를 증명할 때가 왔다. 너희 삶의 이유를 증명할 때가 왔다. 싸워라!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다! 인간을 좀 먹는 기생충을 죽이고 인간을 구하라!”
게하르드가 나를 따라 창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형제자매들아! 폐하께서 원하신다!”
“아버지께서 원하신다!”
권속은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선두에서 게하르드는 거세게 땅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허공에서 거합과 함께 창을 내질렀다.
“감히 누구 앞에서 고개를 들고 있느냐!”
요제프는 잽싸게 몸을 틀어 창날을 피했다.
아슬아슬하게 피할 듯 보였던 날이 볼을 스쳤다.
긴 혈선이 볼에서 귀까지 이어져 피를 흘렸다.
“감히?”
안 그래도 폭발로 얼굴에 상처 입은 요제프.
한쪽 입술이 귀까지 찢어지자 괴물 그 자체였다.
녀석은 격정을 토하며 가슴으로 내질러오는 창을 잡았다.
창을 잡을 팔의 근육이 급격하게 부풀어 올랐다.
“윽!”
창을 놓지 않으려 버티는 게하르드를 창과 함께 벽으로 던졌다.
그는 처박힌 벽이 무너지며 벽돌 속에 파묻혔다.
“감히 누구를? 내가 할 말이다!”
요제프의 레벨은 81.
게하르드보다 8이나 높은 레벨이었다.
물론, 레벨이 높다고 무조건 압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요제프는 전투 경험이 많은 혈족이었고, 게하르드를 던진 팔이 허벅지보다 두 배는 굵어진 것을 보듯 능력도 전투에 특화되었다.
게하르드가 맨손으로 제압당하는 것이 당연한 수준.
그러나 이를 보고 권속이 놀라거나 겁먹는 일은 없었다.
“몰아붙여!”
“아버지를 지켜라!”
“폐하를 위해 죽어라!”
권속들은 요제프와 레니를 둘러싸고 사방에서 공격했다.
“떨어져라! 열등 종족아!”
요제프가 손을 휘젓자 세 명의 권속이 찢겼다.
마치 물먹은 종잇장이 찢어지는 것처럼.
그리고 죽은 권속의 자리를 다른 권속이 채웠다.
창, 칼, 도끼, 쥐고 있는 대로 찌르고 휘두르며 쇄도했다.
게하르드 또한 잔해를 내치고 대열에 끼어들었다.
“허?”
나는 혈족의 표정에서 당혹감을 읽었다.
왜 겁먹지 않느냐, 왜 물러나지 않느냐는 것이리라.
‘그들은 너희 따위와 다르다.’
오로지 나에 대한 애정과 충정 그리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존재.
그것이 권속이고 그들에게 죽음은 따위에 불과하니까.
나를 욕되게 하는 것이 죽는 것보다 두렵지.
“이놈드을···!”
요제프는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상황이 좋지 않음을 깨달은 것이라.
거리를 두고 하나하나 사냥할 생각이었겠으나,
권속이 모를 리 없었다.
“도망친다!”
“거리를 두지 마!”
“붙들어! 달라붙어!”
권속은 피해를 마다하지 않고 접근했다.
팔이 날아가면 반대 팔로,
다리가 날아가면 기어서라도,
죽음이 그들을 멈추게 할 때까지.
“이, 이···! 레니!”
요제프는 다급하게 동료를 불렀다.
‘내게 붙은 혈족은 고작 둘. 너희가 아무리 강해도 권속 전체를 이길 수는 없다. 너희가 시체로 산을 쌓으면 산이 너희를 묻을 테니.’
나는 상태창을 보았다.
[다음 사용까지 남은 시간: 없음.] [권속 생성 스킬을 사용 가능합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누가 나와도 승패는 변함 없다.’
변화가 있다면 피해의 규모뿐.
스킬을 발동했다.
그러자 빛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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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속 생성 스킬을 사용하여 숙련도를 획득했습니다.] [권속 생성 스킬의 등급이 오릅니다.] [등급: 3성 -> 4성] [스킬 재사용 대기시간이 6시간으로 감소합니다.] [낮은 등급의 권속이 생성될 확률이 감소합니다.] [높은 등급의 권속이 생성될 확률이 상승합니다.]————————————
칼리오페, 파시메아처럼 강렬하지는 않지만, 게하르드보다 밝은 빛이 내 눈앞에서 터지고 빛 속에서 칼날이 날아들었다.
쉭!
그것은 단검이었다.
한 뺨보다 조금 더 긴 단검.
단검은 내 머리를 노리는 듯이 가깝게 날아들었다.
그리고 나를 지나서 혈족 레니의 어깨에 박혔다.
“······큭!”
레니는 권속의 목을 쥐고 비틀려던 차였다.
반사적으로 목을 놓고 뒤로 물러났다.
소환과 함께 발한 빛이 사그라들며 노인이 나타났다.
“물러나시게, 주인.”
주름이 가득하고 고목처럼 거친 손을 가진 노인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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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노인
누아딜
Lv. 80
등급: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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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속 누아딜은 땅을 박차고 레니 앞에 섰다.
그가 쥔 것은 레니의 어깨에 꽂은 단검과 같은 단검 한 자루.
걸친 것은 회색 넝마뿐이었다.
“···너.”
레니는 눈살을 찌푸리며 뒤틀린 발음으로 중얼거렸다.
그 순간 누아딜이 바닥을 박찼다.
챙!
새하얀 목을 한 뺨 앞두고 칼날이 멈추었다.
누아딜의 단검을 막은 것은 레니의 단검이었다.
혈족은 보통 무기를 쓰지 않지만 몇몇은 예외였다.
레니는 그 예외 중 한 명이었고 단검을 주로 사용했다.
“······.”
“······.”
맞닿은 단검이 한 치 밀었다가 밀리기를 반복했다.
권속과 혈족은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힘을 겨루었다.
팽팽한 대치는 누아딜이 레니의 배를 걷어차면서 끝났다.
“큭!”
레니는 저만치 뒤로 밀려났고 누아딜이 뒤쫓았다.
“레니이이!”
요제프의 목소리가 비명에 가까우리만큼 처참하게 울렸다.
레니가 누아딜에게 밀려난 탓에 부하가 녀석에게 몰렸다.
게하르드와 그리프 그리고 거의 모든 권속이 붙었다.
조금씩 기울던 추가 완전히 기울어 바닥을 찍었다.
“나를 두고 어딜 가려는 겐가.”
힐끗, 형제에게 시선을 돌린 레니에게 누아딜이 팔을 휘둘렀다.
그녀는 찰나에 틈을 보인 대가로 코가 베였다.
“······!”
레니는 잘린 코를 부여잡고 눈동자를 떨었다.
나는 그녀의 눈동자에 어린 절망을 읽었다.
이제 일말의 가망도 없음을 깨달은 것이라.
“오지 마라! 저리 가란 말이다! 언제까지—!”
분명 요제프는 강했다.
그러나 녀석은 지쳐가기 시작했다.
분명 권속은 녀석의 기준에서 약했다.
그러나 바람 한 번 분다고 죽을 상대는 아니었다.
권속 한 명을 죽이기 위해 녀석은 힘껏 팔을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몇 명을 죽여도 틈 없이, 물러남 없이 몰아붙였다.
권속은 의지도 체력도 숫자도 모자람 없었다.
모자란 것은 요제프의 힘이었고, 대가는 죽음이었다.
“그만! 그만! 그마아아아아아악!”
푸욱!
절정에 달한 순간, 게하르드의 창이 요제프의 심장을 찔렀다.
요제프는 뻔히 찔러오는 창을 보고도 피할 수 없었다.
녀석의 팔이, 녀석의 다리가, 녀석의 몸이 붙잡혔다.
사지 하나 멀쩡한 곳 없는 권속들이 녀석을 붙잡았다.
마치 십자가에 못 박힌 죄인처럼 녀석은 붙들렸다.
그때 게하르드는 녀석의 심장에 창을 찔렀다.
“커, 어어억!”
역류한 피를 입 밖으로 토했다.
피가 빠져나가면서 녀석의 힘도 급격하게 빠져나갔다.
부릅뜬 눈동자가 현실을 부정하며 시선 둘 곳을 찾으려고 서성댔다.
녀석의 시선이 그와 같은 시간에 목이 잘린 레니에 닿았다.
누아딜은 단독으로 레니를 죽이고 녀석의 단검을 취했다.
“이건··· 말도 안 돼, 말도 안···.”
상처에서 흐르던 핏물이 부글부글 끓다가 하얗게 변했다.
이내 육체 또한 색이 빠져나가고 결정이 되어 분해되었다.
두 혈족이 있던 자리는 소금과 같은 흔적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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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단장
게하르드
Lv. 73 -> Lv. 76
등급: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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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형제자매들의 값에 비하면 너무 싸.”
게하르드는 벽에 박힌 창을 빼내고 퉤, 피가 섞인 침을 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