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ilding a human empire by creating a clan RAW novel - Chapter (65)
권속 생성으로 인류 제국 건설 67화(67/185)
수녀 라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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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머스로 귀환하고 꽤 시간이 흘렀다.
짧은 봄이 가고 찾아왔던 긴 여름도 끝이 가까웠다.
봄에 심은 작물이 수확 철을 맞아 거두어지고 있었다.
곳곳에서 농민들이 흥에 겨워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노력의 성과를 거두는 순간은 언제나 기쁘지.’
나는 배급받은 포도주를 마시며 춤추는 농민을 보았다.
대평원의 비옥한 토양 덕에 첫해부터 수확은 대풍작.
면세를 약속했으니 수확물은 온전히 그의 것이었다.
~♬
농민은 취기에 몸을 들썩이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둘러앉아 있던 농민들이 큰 소리로 웃으며 놀렸다.
나도 그 광경에 무심코 실소를 지었다.
“에다르 님도 함께하시죠?”
설렁설렁 걸어온 권속이 말했다.
밀짚모자를 쓰고 입에 강아지풀을 문 녀석이었다.
직업은 용기병이고 평소에는 목초지 관리인을 겸했다.
“됐다. 분위기만 버리지.”
“아닐 것 같은데요.”
장난스럽게 웃는 모습이 누군가를 닮았다.
‘이 녀석은 그리프군.’
나는 권속의 성격을 크게 셋으로 나누었다.
이 녀석은 그리프, 게하르드, 라헬, 그중 그리프와 닮았다.
“부족한 건 없고?”
“부족한 거요? 굳이 말한다면 손재주가 부족합니다. 저기 보세요.”
녀석은 양털 깎는 이들을 가리켰다.
양이 풀을 뜯어 먹는 동안 빠르고 정확하게 털을 깎은 권속, 양을 눕혀 놓고 버벅대다가 양이 몸부림치자 어버버 하는 영지민, 녀석은 그 모습을 보고 낄낄거렸다.
“교육은 하고 있는데요. 속도가 안 나옵니다.”
“음···.”
나라고 별수는 없었다.
모자란 손재주를 내가 키워 줄 수는 없지 않나.
영지민 대신 권속에게 일을 시키면 조금 낫긴 하겠다만, 관련 직업을 가진 권속이 아니라면 익히는 속도가 차이가 날 뿐,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 것은 똑같다.
‘그렇다고 권속의 직업을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 녀석, 용기병에게 목초지를 맡긴 것처럼 적당히 연관이 있는 직업을 여기저기 배치하는 것으로 어찌어찌 해결하고 있었다.
녀석도 그것을 알기에 더 말하지 않고 머리를 긁적였다.
“양털 깎기 전문가, 같은 형제를 만들어주셨으면 좋겠군요.”
“할 수 있다면.”
적당히 대꾸해주고 밭과 목초지를 보다가 시내로 돌아왔다.
두 개의 계절이 지난 지금 올리머스의 변화는 놀라웠다.
수개월에 걸쳐 만든 외성벽 안에 도시가 형성되었다.
넓이만 따지면 소도모라보다 넓었다.
인구 밀도는 한참 낮았지만.
“싱싱한 과일! 제르마니아에서 온 과일입니다!”
“과자, 과자 팝니다! 오늘 아침에 구운 과자예요!”
성문을 넘으면 대로가 이어졌다.
소도모라와 똑같이 영주관까지 직선으로 이어지는 대로.
차후 유동 인구가 늘어날 것을 계산해서 폭을 넓게 잡았다.
덕분에 지금은 길가에 사람이 많은데도 한산하게 보였다.
나는 그중 권속이 자리 잡은 점포를 하나씩 들렀다.
“오, 폐하! 이른 시간에 어인 일이십니까? 마침 송아지 고기를 굽고 있었는데, 맛 좀 보시겠습니까?”
“다음에 먹지.”
요리점이나,
“이 둘을 달여 먹으면 불면증이 가실 겁니다.”
“고맙군.”
약제소나,
“에다르 님, 정말로 점 안 보시렵니까? 제가 봤을 때 에다르 님은—“
“됐다.”
점집이라던가,
“팔리긴 하나?”
“온통 까막눈뿐인데 팔리겠습니까?”
서점에 이르기까지.
권속의 생활상을 한 번씩 확인했다.
‘나름대로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군.’
굳이 확인한 이유는 적응이 걱정되어서였다.
그간 나는 권속을 막일꾼으로 부려먹었다.
전투 관련 직종이 아닌 권속조차 전투에 동원했고.
권속의 직업이 없는 것처럼 마구잡이로 부렸다.
‘부임 초부터 손이 너무 모자랐어.’
직업이 안 맞는다, 같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으니.
오직 레벨이 역할을 배정하는 기준이었다.
문제가 해결된 것이 요즈음이었다.
[다음 사용까지 남은 시간: 5시간 23분.]‘대기시간이 6시간으로 크게 줄면서 여유가 생겼다.’
하루에 4명의 권속을 생성하니까.
권속의 수요를 이전보다 2배 빠르게 채웠다.
블라드가 약해지면서 대의제의 공작도 약해졌고.
영지 개발도 기본 틀이 잡혀서 급한 불은 껐다.
‘그래서 권속에게 직업에 알맞은 자리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한 건데···.’
나는 그때를 생각하면서 피식 웃었다.
막상 하고 보니 직업소개소를 차린 느낌이었다.
명확한 직업과 알맞은 자리가 있으면 별일 아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던 탓에.
– 직업이 군납업자? 운송대로 가면 좋을 것 같구나.
– 좋군요. 가겠습니다.
이런 경우가 최상이었고,
– 교수? 음··· 아직 학교가 없는데.
– 책방이라도 하나 차려주시지요.
이런 경우는 다행이었고,
– 면죄부 판매원.
– 저는 예배당이 딱 입니다. 그쪽으로 보내주시면—
– 안 돼.
이런 경우가 난감했다.
면죄부 판매원, 노상강도, 주정뱅이···
이들을 어디에 알선해야 한단 말인가?
‘결국 면죄부 판매원은 라헬의 예배당으로, 노상강도는 산상노인 누아딜에게, 주정뱅이는 주점으로 보내기로 타협하긴 했지.’
내가 걱정 안 할 수 있나.
이들이 그 뒤에 적응을 잘 하느냐는 다른 문제였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이렇게 확인하러 돌아다니는 것이었고.
아직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서 안심이었다.
‘하지만 좀 다른 문제가 생겼단 말이지.’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아버지.”
뒤를 돌아보자 수녀 라헬이 다가오고 있었다.
“산책 중이신가요? 곧 회의 시간이에요. 같이 가요.”
“음.”
나는 라헬을 보면서 눈매를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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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관에 있는 회의실.
먼저 도착한 권속들이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내가 들어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나는 그들을 한 명 한 명 훑다가 물었다.
“그리프는?”
“늦는다고 합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리프가 히죽이며 회의실로 들어왔다.
“이런, 제가 조금 늦었지요?”
【Lv. 69】
찻잔을 기울이면서 그리프의 레벨을 보았다.
블라드를 사냥한 그날에 활약으로 레벨이 크게 올랐다.
기존의 레벨이 60이었으니까, 9나 오른 셈이었다.
“조금? 애초에 늦지 말았어야지.”
그리프를 쏘아보는 게하르드는 76에서 또 올라서 78.
“나도 주인보다 늦는 건 문제라고 생각하네.”
막 소환한 산상노인 누아딜도 80에서 두 단계 오른 82.
“······.”
“됐고, 얼른 시작해.”
【Lv. 93】
【Lv. 91】
칼리오페와 파시메아까지 한 단계 올랐다.
당시 전투에 참여한 권속 전원이 레벨이 오른 셈.
‘솔직히 조금 놀랍군.’
칼리오페와 파시메아는 오르기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블라드를 죽이긴 했지만 완전히 죽인 것이 아니고, 두 사람의 레벨이 너무 높아서 더 오르긴 힘들 거로 생각했다.’
레벨이 90이 넘는 시점부터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니까.
마치 사이사이에 몇 개의 레벨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좋은 것은 좋은 것이지만···.’
나는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피해가 꽤 컸어.’
사망한 권속의 수가 66명.
200명이 넘는 권속 중 사망자가 30%에 이르렀다.
우그다쉬 때와 비교했을 때 엄청난 피해였다.
하물며 그때보다 전력을 높였는데도 말이다.
‘혈족과 권속의 전력 차이가 너무 컸다. 중상이 없을 정도로 격차가 너무 컸어.’
손에 닿으면 죽거나 살거나 둘 중 하나뿐이었으니.
이미 수개월 지난 일인데도 뼈 아플 정도로 피해가 컸다.
하지만 그만한 희생을 치를 가치와 이유가 있었다.
‘블라드를 잡을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검지에 낀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 내 힘을 계승하라···
시선이 닿자 들리는 웅얼거림.
무시하고 반지를 반대 손으로 가리면 목소리가 뚝 끊겼다.
‘놈이 혈족의 몸을 빌려 부활해도 부질없다. 본체를 잃어서 레벨이 격감할 텐데, 영혼의 조각마저 내가 가지고 있으니 하락 폭이 상당할 터.’
추측건대 85 전후로 레벨 하락이 발생했을 것이다.
대의제의 대사 수준으로 급감한 것이다.
혈족을 여럿 잃은 것은 물론이고.
‘미케나 제국은 여전히 강대하다. 엘프, 드워프와 함께 3강을 유지하는 국가니까. 혈족 중에서 손꼽는 이들을 잃었어도 게하르드, 누아딜과 비등한 혈족은 차고 넘치지.’
하지만 혈족의 구심점인 블라드가 약해진 것은 치명적이다.
블라드와 혈족의 관계는 절대적인 주종관계가 아니다.
약해진 그에게 역심을 품을 수도 있었다.
‘녀석은 전면에 내세우면 안 되는 핵심 인물들을 데려왔다. 능력, 충성심 모두 제국에서 가장 높았던 혈족. 반면에 남아 있는 혈족은 제국을 경영할 능력, 충성심 모두 모자라.’
제국의 행정을 지탱하던 기둥을 상실한 것,
녀석을 아비로 여기어 충성을 바치던 근위세력을 상실한 것,
이는 블라드가 육신의 힘을 잃은 것 못지않게 큰 피해였다.
‘이제 블라드는 제힘이 약해진 것을 숨기면서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어.’
나는 목에 건 펜던트를 잡았다.
티아마르의 영혼이 담긴 푸른 보석.
본래라면 우연을 가장해서 떨어뜨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굳이 연기할 것도 없이 줄이 끊어졌다.
‘나를 죽이고 싶어 미치겠지. 하지만 어떻게 나를 죽일 것이냐. 너는 약해졌고, 나는 네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데. 너의 영혼과 티아마르의 영혼이 내게 있다.’
블라드는 반드시 나를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의 영혼을 되찾아야 힘을 회복할 수 있으니까.
티아마르의 영혼을 취하면 세상을 지배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
‘하지만 네가 두 영혼을 손에 넣기 전에 다른 누군가에게 빼앗겨서는 안 돼. 내가 남에게 영혼을 뺏기지 않게 해야 한다.’
나를 죽이고 싶겠지만, 동시에 나를 지켜야 하는 처지.
나는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머리가 꽤 아플 거다, 모기야.’
“음.”
나는 연초를 꺼내 탁자를 툭툭 쳤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권속들이 내게 시선을 모았다.
“슬슬 시작하지.”
“예. 그러면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리프는 헛기침했다.
“이번 소집은 평소보다 조금 빨랐는데요. 조만간 에다르 님이 서드렛으로 가실 예정인지라, 자리를 오래 비워야 해서 일찍 소집했습니다.”
“서드렛?”
파시메아가 갸웃했다.
“에다르 님의 본가요.”
“아, 그랬지.”
“거, 공방이 아니라 수도원에서 생활하셨습니까? 속세를 아주 잊으셨네.”
볼이 살짝 붉어진 파시메아가 눈을 부라렸다.
“깜빡할 수도 있지.”
그리프는 그녀의 눈초리를 피해 으쓱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러면 저번처럼 대평원의 현황을 먼저 보고하겠습니다. 일단 가장 큰 변화는 인구입니다. 지난달 기준으로 16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16만?”
“대체 얼마나 받아들인 거야?”
권속들이 혀를 내둘렀다.
왈로키아로 가기 전에 인구가 2만 명이 안 되었는데.
그로부터 몇 개월 만에 8배 이상 증가한 셈이었다.
“뭐, 이유는 다들 아시죠? 소도모라에서 해방 노예를 데려와 정착시켰다는 거. 덕분에 제가 고생 좀 많이 했지요.”
으스대는 그리프에게 게하르드가 코웃음 쳤다.
“그게 어디 너 혼자의 일이었나. 총독부도 죽어 나갔다고.”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형제자매들이 비운 자리를 제 아이들이 채우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아우성치는 권속들을 보며 그리프가 혀를 찼다.
“예, 깜빡했네요. 여러분도 같이 고생 좀 하셨죠.”
“······.”
그리프는 탁자 위에 지도를 펼쳤다.
지도는 대평원 전역을 그린 것인데, 그중 내 영토에 속하는 장소에 마을 표식이 여럿 늘어난 것이 눈에 띄었다.
“이야기를 계속하면, 16만입니다. 16만. 정말 많디많은 수입니다만, 아직 이주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한참 더 늘어날 겁니다.”
“그렇지. 소도모라에도 아직 절반 이상 남았고, 북부에서도 이주하려는 사람이 많으니까.”
게하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프는 올리머스 주변으로 추가한 마을 표식을 가리켰다.
“이들 전부를 올리머스에 수용하는 것은 과합니다. 다들 대평원의 인구 밀도가 얼마나 낮은지 알잖아요? 그래서 분산해서 받으려고 공터에 촌락을 여럿 지었습니다.”
“그게 여기 표기한 마을인가?”
“예. 개수는 31개. 대충 하나꼴로 3, 4천 명 정도 정착했습니다. 이주가 계속되고 있으니 더 늘어날 것 같군요.”
권속들은 지도와 서류를 보면서 으음, 말을 삼켰다.
개중에 행정을 직접 도맡는 인물은 게하르드랑 그리프뿐이고, 나머지는 각기 다른 분야를 맡고 있으니까 딱히 할 말이 없을 터였다.
“촌락의 반 이상이 올리머스 주변에 몰려있군.”
“나중에 촌락을 도시로 키우면서 외벽을 단단하게 올릴 겁니다. 외곽 요새라고 할까요. 수도 주변에 요새처럼 굳건한 도시가 여럿이면 방위에 상당히 도움 되지 않겠습니까?”
게하르드는 고개를 주억였다.
“늘어난 인구가 10만이 넘는데, 식량은 충분한가?”
“충분합니다. 이전에 대형 식량 창고를 여럿 준비해둔 것이 꽤 유효했습니다. 거기에 제르마니아 쪽에서도 창구가 열려서 식량 수입이 상당히 안정적입니다.”
그리프는 서류를 한 장 넘겼다.
“그리고 올해는 대풍작이라서요. 식량 수입 비중도 많이 감소할 예정입니다. 지금 추세라면 내년부터 식량 수입이 아니라 수출을 하게 될 것 같군요.”
“오호.”
게하르드는 수염을 만지면서 서류를 읽었다.
“다만, 행정 관료가 한계입니다.”
“음··· 내가 총독부에서 차출을 해줬는데도 부족하다고?”
“예. 부족해요. 급한 대로 올리머스의 행정 관료까지 파견했는데도요. 권속 외에 새로 관료를 뽑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권속이 아닌 관료라··· 나야 기존에 영주들이 부리던 관료들을 재고용한 거라 괜찮았다만, 개척촌은 그런 사람이 없지 않나? 어떻게 뽑을 거지?”
“수녀님께서 도와주시기로 했지요.”
그리프는 라헬을 보았다.
권속들도 그의 시선을 따라 그녀를 보았다.
그녀를 보는 시선은 영 좋지 못했다.
네가? 라고 못 미더운 감정이 표정으로 드러났다.
라헬은 그런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싱긋 웃었다.
“제 아이 중에서 정말 괜찮은 아이가 많거든요. 아시잖아요? 노예도 다 같은 노예가 아니라 사용처에 따라 분류가 나뉜다는 거.”
노예 대부분은 날 때부터 노예로 태어나 단순 작업을 한다.
부모가 농사를 짓는다면 똑같이 농사를 배우고,
광산에서 태어났다면 채굴 노예로,
검투사라면 검투사로.
그러나 간혹 귀족, 자유민에서 노예가 되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보통 노예는 가지지 못하는 지식, 기술을 가진 경우가 많았으며 그 덕에 보통 노예와 다른 직업을 부여받았다.
‘회계를 보거나, 요리하거나, 서기, 수공업, 상업 등··· 전문적인 능력을 갖춘 특수 노예라고 볼 수 있지.’
우그다쉬로부터 해방시킨 노예들은 이런 능력이 필요 없으므로 보통 노예뿐이었지만, 소도모라는 한 나라의 수도에 정착한 귀족들의 노예답게 특수 노예의 수가 꽤 되었다.
라헬이 가리키는 ‘괜찮은 아이’가 바로 이들이었다.
“그래요. 그 애 중에서 사상이 검증된—”
“사상?”
게하르드의 지적에 라헬은 얼른 말을 바꾸었다.
“···능력이 검증된 아이를 보낼까 하거든요.”
“방금 사상이라 말하지 않았어?”
파시메아가 눈매를 좁히며 물었다.
다른 권속들도 똑같이 라헬에게 눈초리를 쏘았다.
라헬은 무슨 소리냐는 듯이 미소를 유지했다.
적당히 넘어가려는 모습이었으나, 그녀의 사념이 출렁이는 것을 읽지 못할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쯧쯧, 그리프가 혀를 찼다.
라헬이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만. 이야기를 마저 듣지.”
“네! 아버지 마음에도 드실 거예요.”
라헬은 내게 이들의 인적 사항을 적은 서류를 넘겼다.
인적 사항이래 봐야 이름, 나이, 성별, 출생지 같은 단순한 것에 라헬이 주관적으로 능력을 평가한 기록을 덧붙인 정도였다.
문제는 능력 평가라는 것이,
‘평가에 독실함은 왜 들어 있지?’
내가 라헬을 보자 그녀는 그저 미소를 지었다.
무슨 문제가 있냐는 당당한 표정이었다.
“그리프도 인정한 아이들이에요.”
“왜 저한테 떠넘기십니까.”
“아니에요?”
그리프는 그건 아니지만, 이라고 구시렁거렸다.
나는 서류를 내려놓고 관자놀이를 눌렀다.
“일단 직접 만나보지. 만나고 결정하는 게 좋겠군.”
“아, 그럼 그때 수여식도 해보면 어떨까요?”
“수여?”
“아버지가 처음으로 직접 행정관을 뽑으시는 거잖아요? 좀 더 느낌 있게 꾸며보는 거죠.”
“음.”
고작 행정 관료를 임명하는 일에 수여식을?
“잠깐만.”
톡톡, 탁자를 검지로 치며 파시메아가 이목을 끌었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라헬을 가리켰다.
“너, 정말로 그것뿐이야?”
“무슨 말씀일까요.”
“네 사이비 사제들, 서임시키려는 거지? 행정관인 척 하면서.”
“······.”
라헬은 대답하지 않았다.
조용히 그녀에게 집중된 시선.
그녀는 시선을 피하려고 눈동자를 굴렸다.
사념이 다시 무섭게 요동치는 것이 정곡을 찔린 것이라.
누아딜이 서류를 내려놓고 중얼거렸다.
“이러다 우리 수녀님을 성하라고 불러드려야겠구만.”
그리프가 낄낄거리며 말을 받았다.
“그러게요. 이름은 정했습니까? 이참에 지어 볼까요?”
게하르드는 턱을 긁적였다.
“황제교, 이런 식으로 말인가?”
“그건 좀.”
미묘한 침묵이 회의실에 깔렸다.
화약
“오해에요.”
수녀 라헬은 목소리를 떨면서 두 손을 저었다.
“무슨 오해?”
파시메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사제를 행정관인 척 보내서 사제로 알박기하려는 게 딱 보이는데? 마침 개척촌의 이주민이 해방 노예 출신이니까, 세뇌하기 쉬운 걸 노린 거잖아?”
“오해라니까요! 저는 그냥 믿음이 깊고 똑똑한 아이들에게 자부심을 품게 해주고 싶어서···.”
“믿음?”
“······.”
라헬은 말을 하다가 굳었다.
눈동자를 가만두지 못하고 빙글빙글 굴렸다.
“어디서 머리 굴리는 소리가 들리네.”
옆에서 그리프가 흥얼거렸고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뭐, 뭐가 문제 있나요!”
탕! 탁자를 내리쳤다.
나는 찻잔이 쏟아지지 않게 얼른 들었다.
그녀가 씩씩거리며 항변했다.
“여기 있는 형제자매님들 중에 아버지를 믿지 않는 사람이 있나요? 저는 거기서 조금 더 나갔을 뿐이고, 아이들도 똑같은 겁니다! 이 세상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믿고 따르는 정도는 문제없잖아요?”
“아 그렇게 나오시겠다?”
파시메아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냉소를 지었다.
“그래요. 툭하면 제가 이거를 한다 저거를 한다 그러는데요. 제가 뭐 늑대교처럼 교리를 만들었나요? 아니면 조직을 만들···.”
“그렇다면 이건 뭔가?”
산상노인 누아딜이 말을 끊고 품에서 소책자를 꺼냈다.
막 가죽 제본을 마친 듯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표지.
가죽 표지에 금실로 그린 옆얼굴이 있었다.
옆얼굴의 대상은 나였다.
“아···.”
라헬이 눈을 크게 뜨며 놀란 소리를 냈다.
“폐하의 초상이 아닌가. 무슨 내용이지?”
게하르드가 소책자를 들고 내용을 훑었다.
휙휙 장을 넘기는 그의 표정이 갈수록 기괴해졌다.
누아딜은 코웃음을 쳤다.
“경전일세. 폐하의 말씀을 정리했더군. 소도모라에서 유통되던 것을 구해왔지.”
나도 흥미가 돌아서 게하르드에게 소책자를 건네받았다.
라헬하고 그리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지 않았는데.
대체 무슨 말을 듣고 정리했단 말인가?
“보, 보지 마세요!”
라헬이 잽싸게 소책자를 빼앗아 품에 넣었다.
잠시 경전에 모였던 시선이 다시 라헬에게 쏠렸다.
“경전이라니요. 와, 손 참 빠르시네.”
“안 그래도 요즘, 해방 노예 출신들을 데리고 단체 훈련도 하고 있지 않았나? 교리뿐만 아니라 조직도 이미 갖춘 것 아닌가?”
“너··· 좀 무섭다.”
권속들은 저마다 감탄 아닌 감탄을 토했다.
라헬은 더는 웃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렸다.
“오, 오해입니다. 오해라고요.”
그리고 앵무새가 되어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투덕거릴 수 없는 노릇.
손뼉을 쳐서 이목을 모았다.
“라헬이 저리 행동하는 것은 내가 묵인했기에 그런 것이다. 너희 모두에게 내키지 않는 행위라는 것을 안다. 나 또한 그렇다. 그러나 독도 때로는 약이 되는 법.”
“독이 너무 냄새나는데.”
파시메아가 투덜거림에 산상노인 누아딜이 거들었다.
“음. 별수가 없지 않나. 인간에게 종교는 떼려야 뗄 수 없네. 특히 지금처럼 힘든 시기에는 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은 이번 일의 잘잘못을 따지지는 않겠다.”
“아버지···.”
라헬이 눈물을 글썽였다.
권속들은 입맛을 다셨다.
내 말을 거역하기는 싫고, 그녀의 행동이 내키지는 않고.
‘권속마다 성격이 다르니 다툼이 너무 잦군.’
특히 라헬과의 관계가 너무 나빴다.
대다수 권속의 관점에서 그녀의 행동은 광적이니까.
몇몇은 포교가 아니라 세뇌라고 여기고 있겠지.
“일단 네가 선정한 사람들을 데려와라. 단, 이것은 사제 서임이 아니다. 관료로서 능력을 확인하는 자리다.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도록.”
행정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는데 사제를 서임한다?
신권 정치제 국가도 아니고 순서가 이상하지 않나.
‘종교는 필요악으로 둔다. 그러나 국가와 종교는 분리한다. 관료를 임명하는 것이 사제를 임명하는 것과 같게 여겨진다면 종교가 사회를 억압할 위험이 있으니.’
“그리고 또 나나 형제자매를 속이려 한다면, 이번처럼 가벼이 넘어가지 않겠다. 알겠나, 라헬.”
“네에···.”
라헬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자리에 앉았다.
“자, 이주와 행정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다음은 뭐가 있지, 그리프?”
“차례대로라면 북부 왈로키아 총독부, 게하르드입니다만··· 보고는 이미 들으셨지요?”
“들었지.”
인구 조사, 늪지대 매립, 이 외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인구 조사 결과, 북부의 인구가 70만이라고.’
생각보다 많았다.
이전 회차에선 50만도 안 되었는데.
우그다쉬와 핀토가 일찍 처리된 덕이겠지.
그리 생각하면 핀토가 정말 엄청난 짓을 했구나, 싶다.
‘대평원과 합치면 거의 90만 명이 내 영지에 있는 셈인가. 나도 참 열심히 살았군.’
어처구니가 없어 저도 모르게 웃음이 툭 나왔다.
막대한 자금, 정복, 이주로 끌어모은 인구였지만.
그래도 불과 반년이란 기간에 이리 모으다니.
경이로운 기록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만족하지 않겠다.’
내 목적을 이루려면 이 정도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인구가 급증했어도 앞으로 내가 상대할 적에 비하면 하찮다.
소도모라의 이전 인구가 북부 인구에 맞먹지 않았나.
인간 세상에는 소도모라보다 큰 도시가 여럿이었다.
이종족과 비교하면 말할 것도 없었고.
“대평원, 북부, 다음은 내 차례겠군.”
산상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인이 지시한 대로 소도모라의 암흑가를 통제하에 두었네. 종복은 아니나 모기와 깊게 연관된 이들은 처리했고, 문제가 될 법한 사업장도 처분했지.”
“수고했다. 왈로키아의 정세는 어떻지?”
“곧 내전을 시작할 것 같네.”
그렇겠지.
중앙 귀족은 힘을 너무 잃었다.
반면에 지방 귀족은 힘을 유지하고 있고.
새로이 세력 구도를 정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앙에서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방 귀족 몇을 본보기로 잡으려 들걸세. 하지만 우연하게도 그 정보가 당사자에게 흘러가서 말이야. 일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아.”
누아딜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정보를 흘린 범인은 그였다.
산상노인이란 이명은 내 전생에서 어쌔신 지도자의 이명이고, 그에 걸맞게 누아딜은 암살과 첩보에 능한 권속이었다.
암흑가를 손에 넣으라 내가 명한 것이나, 종복과 연관된 무리를 자의로 암살한 것이나, 기밀을 취하고 흘린 것이나, 그의 특기에 걸맞은 일이었다.
“귀족의 힘을 최대한 빼야 한다. 공멸에 가깝게. 쉽지 않겠지만 부탁하지.”
“걱정하지 말게. 그림자 속에서 사태를 조율하는 것. 내 특기 아닌가. 때가 되면 알릴 테니 기다리고 있게.”
확답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누아딜은 혈족이 만든 암흑가를 손에 넣었다.
왈로키아의 눈과 귀가 그의 것이 되었다.
그가 목숨을 노린다면 잡지 못할 인간이 몇이나 있을까.
하물며 그의 존재조차 모르고 내란이 격화된 상황에서 말이다.
‘그리프는 재상, 게하르드는 북부 총독, 누아딜은 첩보, 라헬은 사제. 나름대로 자리가 잡아가고 있군.’
사제가 영 불안하지만 말이다.
“다음은 나지?”
파시메아가 깍지 낀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으며 물었다.
“예. 마지막입니다.”
“좋았어.”
자리에서 일어나 깊게 숨을 내쉬고 자신감 있게 말했다.
“내가 보여줄 것은 신무기야.”
“오호?”
무기라는 말에 게하르드가 귀를 쫑긋했다.
“에다르는 이미 알고 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성내를 순회하면 모를 수가 없었다.
공방에서 파시메아가 장인을 들볶는 모습을 말이다.
애초에 내가 먼저 제안한 것이기도 하고.
“완성품은 아직 못 봤다만, 완성했나?”
“외형은. 작동 여부는 확인 안 했어.”
“보러 가지.”
파시메아는 어깨를 으쓱이고 문을 가리켰다.
나는 그녀를 따라 영주관 뒤에 있는 공터로 나갔다.
공터는 차후에 영주관을 확장하기 위해 마련한 부지였다.
담 하나를 대충 세워 경계를 구분했을 뿐인 공터.
잔디가 무성하게 자란 이곳에 대포가 있었다.
“이게 그 신무기인가?”
게하르드는 갸웃하면서 대포를 살폈다.
대포를 처음 보는 그로서는 신기할 따름이겠지.
청동으로 만든 기다란 통이 무기라니? 그런 표정이었다.
포신에 얼굴을 들이대고 바람을 불어보기도 했다.
“그러고 있으면 머리 날아갈걸.”
파시메아가 히죽였다.
“머리가 날아간다고? 이 구멍에서 뭐가 나오나?”
“보면 알아.”
그녀는 대포 옆에 둔 양동이를 들었다.
양동이는 화약이 알갱이째 가득 차 있었다.
대포 안에 양동이를 부은 그녀는 기다란 봉을 집었다.
끝이 포신과 같은 굵기의 천으로 되어 있는 장전봉이었다.
장전봉으로 화약을 꾹꾹 눌러서 다져주고, 둥글게 깎은 돌을 안으로 굴려 넣었다.
“뒤로 물러나.”
화약, 포탄을 넣어 장전을 마치고 심지를 꺼냈다.
대포 후방에 있는 작은 구멍에 심지를 꽂고 불을 지폈다.
파지지직—
배배 꼬아 놓은 심지가 빠르게 타들어 갔다.
“고막 다치기 싫으면 귀 막고.”
심지가 대포 속으로 파고든 그 순간,
콰앙!
굉음과 함께 돌이 쏘아졌다.
바닥에 고정한 포신이 뒤로 밀릴 정도로 강한 충격.
그리고 돌은 백여 미터 앞에 있는 담을 넘다가 깨졌다.
마력으로 일으킨, 아지랑이 같은 막이 돌을 막아 부수었다.
“우와.”
그리프가 물개 박수를 쳤다.
“이거 폭발로 발생한 힘으로 돌을 날린 거죠?”
“맞아. 아까 양동이에 있던 까만 알갱이가 화약이란 거고, 그게 불이 붙어서 터지면 그 힘으로 돌을 날려 보내는 거지.”
“오···.”
그리프는 실눈을 번쩍 뜨고 눈을 빛냈다.
“몸통 재질은 청동이죠?”
“어, 청동 합금.”
“제작 방법은 주물인가요?”
“그럼 망치고 두드려서 만들까?”
“굳이 청동을 쓴 이유가 있나요?”
“주철로 할까 했는데, 아무래도 기술 문제가···.”
“크기를 더 줄일 수는···.”
“안 그래도 그러려고···.”
“저 화약이란 건···.”
“자, 잠깐만···.”
파시메아는 두 손으로 그리프를 밀치며 물러났다.
저리 지식욕에 불타던 모습을 언제 본 적이 있었나.
그와 자주 투덕대는 게하르드도 어처구니없는단 표정을 지었다.
“마도학자라더니 학자가 맞긴 맞았군.”
게하르드는 포신을 손바닥으로 탁탁 치며 물었다.
“이거 하나가 다인가? 꽤 마음에 드는데.”
“몇 문 더 있어. 하지만 그 이상 만들기는 좀 힘들 거야.”
“음? 이미 완성했잖나? 그냥 찍어내면 되는 거 아닌가?”
파시메아는 한숨을 푹 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손이 너무 부족해. 영지에 청동 주조 기술자가 없어서 내가 직접 가르치고 만들어야 했다고. 이 사람들이 손에 익고 설비가 갖춰지기 전에는 시간이 꽤 걸려.”
그리고, 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화약이 모자라.”
“화약이라면 아까 그 검은 알갱이를 말하는 거겠군.”
“그걸 만들려면 초석이란 게 필요해. 근데 영지에 기술자만 없는 게 아니라 초석 산지도 없단 말이지.”
금광은 있으면서 이건 왜 없는데?
···라고 파시메아는 빈 양동이를 차면서 투덜거렸다.
“이만큼 만드는 것도 상당히 고생했다고.”
“음, 고작 한 번 쏘는 것도 힘들 정도면···.”
“대포를 만들어도 못 써먹는 거지 뭐. 그래서 딱 써먹을 수 있는 만큼만 만든 거야. 그 이상 만들어봐야 장식품이니까.”
게하르드는 입맛을 다셨다.
군단장인 그는 화약 무기의 가치를 깨달았을 터.
“우리한텐 별 위협이 안 되겠지. 하지만 우리 밑으로 급이 낮은 상대한테는 꽤 효과적인 것 같았는데, 아쉽군.”
“기다려봐. 조만간 개량해서 더 작고 다루기 쉽게 만들 거니까.”
나는 그녀가 만든 청동 대포를 살폈다.
구경은 성인 남성 머리 하나 들어갈 정도.
여기서 날리는 것이 아까와 같은 돌덩이더라도, 어정쩡한 레벨은 맞으면 육편이 될 뿐이다.
물론 눈앞에 있는 청동 대포로는 움직이는 물체는 맞추기조차 어렵겠으나, 이는 개량하면 해결될 문제다.
‘영지에 기술자가 없어서 파시메아가 직접 교육하고 만든 것이 이 정도다. 숙련이 쌓이고 개량을 거치면 양과 질 모두가 급격하게 호전될 터.’
그때는 그녀가 말한 더 작고 다루기 쉬운 물건이 나오겠지.
‘소구경 대포와 화승총.’
물론 그때가 오려면 넘어야 할 산이 여럿이었다.
당장 초석 산지부터 구해야 하지 않겠나.
허나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내게는 사람과 돈 그리고 지식이 있으니.
‘개개인의 무력으로 만든 격차. 그것을 기술로 좁힐 것이다.’
이종족이 눈 뜨고 구경만 하지는 않겠지.
당연히 이종족도 똑같이 화약 무기를 도입할 것이다.
내 기억으로 드워프는 이미 화약을 개발해서 쓰고 있으니까.
다만, 그것이 축제 때 폭죽으로 쓰이고 있을 뿐이었다.
무기로서 가치를 깨닫는다면 뚝딱 만들어내고도 남았다.
‘놈들이 우리와 똑같은 무기를 쓰느냐 마느냐는 걱정할 가치도 없어.’
쓰면 써서 고맙고, 안 쓰면 안 써서 고맙다.
‘작금의 기술력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전장식 무기. 이런 수준으로 이종족 개개인이 가진 무력을 압도하는 것은 어려워.’
화약 무기를 독점한다고 무조건 승리가 아니다.
‘오히려 이종족들은 개인의 뛰어난 무력을 버리고 도구 따위에 집착한다고 업신여길 가능성이 높다.’
허나 그것은 이종족의 기준이다.
인간은 이종족과 달랐다.
‘인간은 아직 너희처럼 강하지 않아. 보통은 너희를 상처 입힐 수 없지. 이것은 그런 인간을 위한 도구다. 평범한 인간이 너희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다루기 아주 쉬운 무기지.’
블라드의 혈족을 권속이 사냥할 때처럼.
한 명 한 명은 종잇장처럼 찢길지라도.
그들이 조금씩 만든 상처가 괴물을 잡았듯이.
나약한 인간에게 주어진 이 무기가 이종족을 상처 낼 것이다.
‘상처를 낼 수 없다면? 권속이 찾아갈 것이다.’
내 영역은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덩달아 내 적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언제까지 권속이 모든 적을 다 잡을 수는 없다.
권속이 아닌 인간 또한 직접 괴물을 잡아야 한다.
그들이 잡을 수 없는 괴물을 권속이 잡을 뿐.
‘인간은 여전히 약하지만, 이것이 있다면 사냥꾼이 될 수 있다.’
아무리 이종족이라도 초인이 모래알처럼 많지는 않으니까.
‘인간과 이종족의 격차는 개인의 무력 격차와 깊은 상관관계를 가진다. 따라서 인간이 화약 무기로 무장하여 무력을 취한다면 인간과 이종족의 격차도 좁아진다.’
그렇게 격차가 좁혀진 상황에서 이종족은 무슨 선택을 할까?
‘개인의 무력을 포기하고 우리와 같은 무기를 쥘까? 그 또한 재밌겠군.’
나는 상상했다.
인간과 이종족의 싸움을.
이종족이 개인의 무력을 앞세워 칼을 들고 돌격하는 모습이 아니라, 화려한 군복을 입고 일렬로 도열하여 질서정연하게 사격 자세를 취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들 앞에 인간 또한 똑같은 복장과 무기, 자세를 취하며 대치한다면··· 이런 싸움에서 인간과 이종족의 차이는 무엇일까?
‘너희가 우리와 맞서기 위해서 거리를 두고 똑같은 무기를 쥐는 순간이, 우리가 너희와 동등한 존재가 되는 때다.’
파시메아가 힐끗, 나를 보았다.
“뭐어··· 문제는 많지만 말이야.”
툭, 툭, 주먹 쥔 손으로 대포를 쳤다.
“서드렛에 가져가기엔 충분하지 않아?”
“되레 넘치지.”
나는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