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ilding a human empire by creating a clan RAW novel - Chapter (96)
권속 생성으로 인류 제국 건설 98화(98/185)
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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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고요했다.
마치 침묵의 수도원에 있는 것처럼.
도시에 숨소리조차 죽인 정적이 깔렸다.
“······.”
나는 말을 몰아 천천히 도심 중앙 도로를 걸었다.
뒤로 권속과 징집병 그리고 서드렛의 군세가 따랐다.
제르마니아를 정복한 자로서 개선식을 행하는 것이라.
무수히 많은 군사의 걸음 소리가 울리는데도 고요했다.
꿀꺽···
걸음 소리 사이에서 군중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올후스의 군중은 침묵을 지키고 눈동자를 떨며 나를 보았다.
“힉···!”
나는 군중의 시선을 훑었다.
도로 양옆에 늘어서서, 건물 옥상에 움츠려서, 닫힌 창문 틈에 숨어서 등등··· 온갖 장소와 방법으로 내게 보내는 시선.
그 시선에 담긴 감정은 하나였다.
“다들 두려워하는군요.”
스카디의 속삭임대로.
올후스의 시민은 나를 두려워했다.
나, 에다르가 혹여 그들을 벌하게 할까 봐.
시민은 두려움을 품고 나를 보았다.
“아버지는 정복자시니까요. 무엇이든 할 수 있죠. 정복당한 도시의 운명은 항상 그렇잖아요?”
라헬은 비웃음을 지으며 군중을 보았다.
그녀가 보기에 올후스는 동족을 배신한 죄인이니까.
나는 군중을 향한 눈길을 거두어 행렬의 맨 앞을 보았다.
터벅, 터벅···
맥 빠지는 발걸음 소리.
화려한 옷을 입을 남자가 홀로 걸었다.
그는 포승줄에 묶였고, 고개를 깊이 숙였다.
표정은 보이지 않았으나 굴욕이 가득하겠지.
제르마니아의 국왕, 크리스티안.
그것이 저 죄인의 이름이었으니까.
“왕이시여···.”
군중 속에서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몇몇 군사가 인상을 찌푸리고 그들을 보자 힉 소리를 내며 소리를 죽였지만, 곧 사방 곳곳에서 울음이 터졌다.
“머저리들.”
파시메아는 귓가를 만지면서 툭 쏘아붙였다.
다른 권속의 반응도 그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놔두어라.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드렛 공작이 키루나의 시민에게 영도자로 여겨졌듯이.
올후스의 시민은 크리스티안을 도시의 영도자로 여겼으니까.
뻥 뚫린 대로를 죄인으로서 걷는 영도자의 모습에서 올후스가 더는 이전과 같은 영광을 가질 수 없음을, 올후스의 시민 또한 영광을 잃었음을 직감한 것이라.
“동족을 팔아 쌓은 영광이 사라졌다고 울다니.”
게하르드가 허, 탄식하며 고개를 저었다.
“고쳐야 할 것이 정말 많겠습니다, 폐하.”
“그래.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
나는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고 왕궁을 보았다.
도로의 끝에 활짝 열린 왕궁의 정문이 보였다.
그리고 정문에 널려 있는 여러 흔적도.
“우리보다 먼저 다녀온 분이 계시는구먼.”
누아딜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왕궁 정문부터 알현실에 이르기까지 난장판이었다.
지진이라도 일었다 지나간 것처럼 너저분했다.
떨어진 깃발, 깨진 도자기, 벗겨진 금박.
그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겠나.
도둑이 한바탕 휩쓸고 간 것이지.
“밖은 떠난 영광에 취했는데, 안은 참 현실적이군.”
범인이야 뻔하디뻔하다.
왕궁에 있던 시종과 근위대, 그런 족속.
도시가 항복을 결정하자 제 살길을 찾아 떠나면서 퇴직금을 챙긴 것일 터.
“옥좌까지 벗겼군요.”
“권세란 덧없는 것이지.”
나는 금박이 벗겨진 옥좌를 올려다보았다.
불과 아침까지 인간 세상에서 가장 화려했을 장소.
지금은 찢어진 어전 앞에 쓰러진 옥좌가 있을 뿐.
“올라가시지요. 아버지.”
스카디가 단상 위를 향해 손을 뻗었다.
“······.”
나는 단 위에 올라 옥좌를 바로 세우고 그 앞에 섰다.
“그리 높지는 않군.”
알현실에 웃음소리가 흘렀다.
나는 단상 아래 도열한 이들을 살폈다.
좌측에는 서드렛의 가신, 우측에는 권속과 포로.
포로들은 내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고, 가신과 권속은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제국을 선언하시고 황제가 되십시오!”
노신 헬무트가 지체 없이 목청을 높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뭐가 필요하지?”
“왈로키아와 제르마니아의 왕위입니다!”
“그래. 왈로키아와 제르마니아.”
나는 포로 사이에 있는 크리스티안을 보았다.
고개를 돌리고 있었으나 내가 보고 있음을 알았을 터.
움찔, 하고 더욱 고개를 깊이 숙여서 나를 무시하려 애썼다.
“제르마니아는 이곳에 있다. 그렇다면 왈로키아는? 내게 왈로키아의 왕위가 있는가?”
헬무트가 눈을 깜빡이며 입을 다물었다.
짚어보면 나는 왈로키아의 국왕은 아니지.
사실상 왈로키아를 손에 넣은 것이나 다름없을 뿐.
“파베.”
내 부름에 권속 뒤에 서 있던 뚱뚱한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두툼한 그의 두 손에 얹은 자줏빛 비단으로 감싼 목함.
그는 계단 아래에서 걸음을 멈추고 두 손을 뻗었다.
“나는 파베 쿠스로르프. 왈로키아의 국왕이오.”
알현실에 숨을 삼키는 소리가 울렸다.
권속 외에 그의 정체를 아는 자가 없었을 테니까.
제르마니아의 귀족이라도 그의 외모를 어찌 알겠나.
나는 파베와 시선을 마주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왈로키아의 왕위를 그대, 에다르 룬드링겐, 오로코 대평원의 대영주, 북부 왈로키아의 변경백에게 양위하고자 하오.”
첫 만남에서 보였던 취기 가득한 모습은 없었다.
흐리멍덩했던 눈동자는 확고한 의지로 가득 찼으니.
그 예전, 내 기억 속의 파베 쿠스로르프의 모습.
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칼리오페.”
단상 아래에 서 있던 그녀는 비단을 풀고 목함을 열었다.
왈로키아의 왕관과 쿠스로르프의 인장 반지.
그것이 목함 안에 있었다.
“나, 에다르 룬드링겐은 파베 쿠스로르프, 그대로부터 왈로키아의 왕위를 받겠다.”
일순간 파베의 표정이 무너졌다.
평생의 짐이 떨어져 나갔기에, 가면이 풀린 것이겠지.
표정은 금세 근엄한 가면을 되찾았지만 나는 알았다.
“그간 고생 많았다. 파베.”
내 미소에 파베는 잠시 서 있다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칼리오페에게 물건을 넘기고 뒤로 물러났다.
“놔라! 놔!”
크리스티안은 권속의 손에 이끌려 단상 앞에 무릎 꿇렸다.
“이노옴! 네 놈이 이런다고 왕이 될 수 있을 것 같더냐? 왕위는 네가 가진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왕관은 아무런 의미 없어! 나는 네게 양위도 하지 않을 것이다!”
바둥대는 녀석에게서 파시메아는 왕관과 반지를 빼앗았다.
“왈로키아와 제르마니아.”
단상 좌측에 왈로키아의 왕관과 반지를 든 칼리오페,
단상 우측에 제르마니아의 왕관과 반지를 든 파시메아.
“보아라. 나는 이 둘을 얻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남은 인간 국가가 몇이나 되지?”
게하르드가 활짝 핀 오른손을 들었다.
“이 손안에 꼽히지요.”
“그렇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땅은 이 두 나라를 합친 것에 반조차 되지 않으니. 이로써 나는 인간 대부분을 내 영향 아래 두었다.”
나는 오른손을 들어서 서드렛의 인장 반지를 빼냈다.
“나는 인간을 대표한다고 봐도 되지 않겠나.”
“그렇습니다, 폐하!”
만세를 외치려는 가신들을 반대 손을 들어 막았다.
그리고 서드렛의 반지를 떨어뜨렸다.
“헛···.”
혹시 내가 실수한 것일까.
그리 착각한 가신들이 숨을 삼켰다.
이 중요한 순간에 내가 가문의 상징을 떨어뜨렸다고.
콰직!
“실수가 아니다.”
칼리오페가 왈로키아의 왕관과 반지를 두 손으로 구겼다.
콰직, 콰직, 금속 마찰음을 내며 둥글게 말린 금덩이.
그녀는 무심하게 내가 떨어뜨린 반지 옆에 던졌다.
데구루루—
“무, 무슨···?”
“폐하? 이게 대체···.”
화르르륵!
파시메아는 제르마니아의 왕관과 반지를 불로 녹였다.
그녀의 손에서 발한 불꽃이 황금을 녹여 손 아래 흘렸다.
뚝, 뚝, 액화된 왕관과 반지에서 분리된 루비 몇 점.
그것 외에 본래의 형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
이제 내게 묻는 말이 없었다.
충격이 작지 않았을 터.
“······.”
도시에 처음 들어섰을 때보다 더 무거운 침묵.
그 가운데에 내게 욕지거리를 뱉던 크리스티안도 있었으니.
나는 그의 반응이 썩 마음에 드는지라, 웃음을 지었다.
“왕관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크리스티안?”
“······.”
크리스티안은 인상을 구기고 이를 악물었다.
“제르마니아와 왈로키아는 잊어라. 그것은 이종족이 만든 작위다. 내가 그것을 계승하고 제국을 만든다면 무슨 의미가 있지?”
나는 주먹을 꽉 쥐어서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이전의 역사를 계승하지 않겠다. 가축의 역사는 필요 없어. 인간의 역사는 지금부터다. 오늘부로 제르마니아, 왈로키아, 그 이름은 지방으로 격하되어 불릴 것이고, 이 나라는 앞으로 단 하나의 이름으로 불릴 것이다.”
바로 제국으로.
“제국. 그 이름 앞에 아무것도 붙이지 않겠다. 만일 붙는다면 오로지 인류, 그 두 글자뿐. 인류 제국, 그 외에 다른 이름을 허락하지 않겠다. 따라서 나는 선언한다. 인류를 위한 제국이 지금 이 순간 건국되었노라고. 그리고 나는 제국의 황제로서 인간을 대표한다고.”
“오만한 놈!”
크리스티안은 목에 핏대를 세웠다.
“위대한 종족조차 감히 이름 없이 제국이라 부르지 못한다! 그런데 너 따위가 두 개의 왕위를 가졌다고 제국이라 한다고? 고작 인간 중에 강대하다고 그토록 오만하게 구는 거냐! 이종족 중 누가 네 힘을 인정해줄 것 같느냐!”
“나는 누구의 인정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굳이 따진다면 이미 이종족의 인정을 받았지.”
“뭐?”
나는 서드렛의 가신들을 보며 물었다.
“그대들은 대의제를 아는가?”
당연히 모르겠지.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너희가 위대한 종족이라 부르는 족속이 한자리에 모여서 이 세상의 통치를 논한다는 것은 아는가?”
그제야 가신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대의제라 한다. 여덟 개의 종족이 그곳을 이끌지.”
드래곤, 엘프, 드워프···
나는 의석을 가진 종족의 이름을 읊었다.
그들은 짐작으로 알던 지식을 접하자 귀를 세웠다.
“대의제의 자리는 종족에 수에 맞게 여덟 개. 그리고 최근에 그곳에 자리가 하나 더 생겼다. 내가 이 말을 하는 이유를 알겠나?”
잠시 눈을 껌뻑이던 이들이 눈을 크게 떴다.
아홉 번째 자리, 그것이 내 자리임을 깨달은 것이라.
“설마···.”
헬무트의 중얼거림에 나는 빙긋이 웃었다.
“그렇다. 그 자리가 바로 나의 것이다. 인류가 가지지 못 한 아홉 번째 자리. 그것을 내가, 나 개인이 가진 것이라. 그렇다면 내가 인간을 대표하지 못할 것이 뭐가 있지?”
“거, 거짓말! 어디서 이야기를 들어서 헛소리를 퍼트리는 거다! 어찌 인간이 그럴 수 있단 말이냐!”
“너희는 불가능하다고 믿었고, 나는 가능하다고 믿었으니까.”
그리고 너희는 약했고, 나는 강했으니까.
이종족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을 만큼.
크리스티안은 부들부들 떨면서 입을 벌렸다.
내게 다시 호통을 치며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는 순간,
“들어라.”
나는 내 영혼의 빛을 터트렸다.
“······!”
크리스티안은 손을 들어 빛을 막았다.
귀족 포로들도 그와 같은 행동을 보였다.
허나 서드렛의 가신들은 빛을 막지 않았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빛을 보았으니까.
“곧 대의제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내가 이룬 것을 추궁하기 위해서. 그때 나는 대의제의 아홉 번째 자리를 가진 자로서 고하겠다. 이제 인간을 세계의 무대에 올릴 때가 되었다고.”
나는 솟구치는 두통을 억누르면서 목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나는 내 자리에 내가 아니라 인간을 두도록 요구하겠다. 나 개인이 인간을 대표하지 않고, 인간의 황제가 아홉 번째 자리를 가지도록.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물론, 내 요구는 이루어지지 않겠지.
이종족은 절대 인간을 동급에 두지 않을 테니까.
오히려 내 요구는 또 다른 전쟁을 부를 것이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
앞서 두 번의 대의제에서 그러했듯이.
나는 내 가진 모든 것을 걸고서 맞서야 하므로.
그렇지 않다면 내 가진 모든 것을 빼앗으려 할 테니.
“그렇다면 저희 인간은 당신께서 영원한 황제가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헬무트는 내 말에 담긴 뜻을 이해하고 고개를 깊이 숙였다.
“항상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충심으로 찬양할 수 있게 하소서. 황제 폐하.”
참 힘든 부탁이군.
나는 그리 생각하면서 광휘에 휘감긴 채 옥좌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