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culus of Joseon RAW novel - Chapter 250
250화 deus ex machina (1)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죠?
잘 생각해보세요. 이전 세계에서의 마지막 날을요.
이른 저녁부터 늦은 밤까지. 그날 선생님께서는 정말 ‘오래간만에 만난’ 제자, 저 김병진과 ‘술잔’을 기울이셨죠.
그 다음도 기억나세요? 선생님께서는 저를 선생님 댁에서 재우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택시를 잡으려고 함께 사거리에 서 있었고요.
그 이후도 기억나세요? 안 나시죠?
그 다음부터 조선으로 넘어오기 전까지의 기억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으실 거예요. 선생님의 ‘정확한’ 기억은 전생의 기억은 거기에서 끝일 겁니다. 아마 선생님이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조선 시대로 넘어온 후였을 테니까요.
선생님은 제게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며 물으셨죠. 그때 저는 ‘환생트럭’이 지나갔다고 대답했었어요. 얼렁뚱땅 대답했는데 선생님께서는 그냥 넘어가주시더라고요. 선생님께서 그리 사람을 잘 믿는 분이신지 몰랐습니다.
이제 조금은 눈치채셨나요? 설마 아직도 모르시는 건 아니시겠죠?
제가 환생트럭 운운했을 때,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죠.
“난 어제 그런 트럭을 보지도 못했는데…….”
라고요. 이제 확실히 아시겠죠?
예, 맞아요. 처음부터 환생트럭 따위는 없었어요. 그랬으니까 당연히 선생님께서 환생트럭을 본 기억이 전혀 없던 거예요.
선생님께서는 조선으로 넘어와 전쟁을 비롯한 숱한 일을 겪으셨잖아요. 그러는 동안 저는 선생님께서 저를 의심하실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선생님께서는 단 한 번도 저를 의심하지 않으시더라고요.
혹시…… 지금껏 저에 대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한 건 아니시죠? 에이……, 설마요.
네, 이제 아시겠어요?
여대세, 김세빈, 윤업, 노함, 최윤.
그러니까 이전 세계에서의 황인규, 이명준, 정중덕, 위상현, 나경현은 전부 서로 아는 사이에요. 모두 서로 비슷한 시기에 함께 학교를 다녔던 사이라고요.
하지만 저는요? 맞아요. 저는 선배들과 전혀 연관성이 없잖아요. 이전에 만난 적도 없고,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니지도 않았어요.
아니, 애당초 제가 율근 과학고를 다녔던 적이 있긴 하지만, 졸업을 아예 못 했잖아요. 재학 도중에 사망했으니까요. 그러니까 저 선배들과는 일면식조차 없다고 봐야 합니다.
제 예상에, 선생님은 진즉에 이것저것 예상하시고도 아무 말씀도 안 하셨을 거예요. 선생님은 늘 혼자 떠안고 자기 안에서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하시니까요.
그러니…… 원래 활기찬 수업만 주도해 오셨는데도, 갑작스럽게 학생들이 조용해진 이유를 자신의 부족함으로 돌리셨던 거잖아요. 본인이 말 주변이 없다든지, 말투가 딱딱하다든지 하면서요. 선생님은 스스로 판단하기에, 선생님 수업이 너무 재미없어서 별 수 없다고 생각하신 거잖아요.
아, 매일같이 살인적인 학습량을 소화해내야 하는 학생들이 불쌍하다고도 여기셨죠. 그러니 졸아도 별 수 없고, 자도 별 수 없고, 수업을 듣지 않아도 별 수 없다고 생각하셨잖아요.
아니에요. 전혀 아닙니다.
이미 죽어버려 영혼이 된 사람이 수업을 하고 있는데……, 들을 수 있는 학생이 어디 있겠어요. 학생들은 아예 선생님을 볼 수도, 인지할 수도 없었는걸요. 그렇더라도 선생님은 꿋꿋하게 수업을 하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며 어찌나 측은하던지……. 너무 어린 나이에 죽은 저 자신에게도 연민을 느끼지만, 죽은 줄도 모르고 생전에 하던 대로 행동하는 선생님에게도 연민을 느꼈답니다.
후후후.
그런데, 선생님. 그래도 정말 대단하세요.
나름대로 유쾌하게 수업한답시고 학생들에게 역사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잖아요.
물론 선생님이 돌아가셔서 영혼이 된 이후의 수업 시간에 질문하거나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한 학생은 저밖에 없었지만요. 기억을 더듬어 보시니까 맞는 것 같죠?
황인규, 이명준, 정중덕, 위상현, 나경현. 그 선배들은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기 훨씬 이전에 하신 수업 시간에 선생님 질문에 대답한 학생들이었던 거예요.
어쨌거나 저는 이렇게 질문했죠.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어. 뭔데?”
“고려가 먼저입니까? 아니면 조선이 먼저입니까?”
아마 그 날인가? 그 다음날인가? 선생님께서는 탄원서도 넣으시더라고요. 입시 과목에 국사를 반드시 포함시켜 달라고요.
들을 사람이 없는데……. 아니,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없는데도 선생님께서는 열심히 주장하셨던 걸로 기억해요. 참 열성적이셨죠.
이쯤 되니까, 선생님이 왜 돌아가셨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건 아마도 다른 선배들도 궁금했던 사항일 겁니다.
음……. 그때가 언제였더라…….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네요. 아무튼 율근 과학고에서 매년 치러졌던 ‘홈커밍데이’에서 벌어졌던 일이었어요.
아, 혹시 홈커밍데이가 뭔지 잊으신 건 아니시죠? 그 왜 있잖아요. 졸업한지 10년 이상 된 졸업생들이 모교에 방문해서 후배들에게 이공계 진로와 관련된 설명이나 상담을 해주는 거 있잖아요.
선생님 죽음과 관련된 홈커밍데이에 찾아온 선배들 중에 황인규, 이명준, 정중덕, 위상현, 나경현 선배도 포함되어 있었죠.
다른 선배들도 많았다고 하는데, 사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저도 이것저것 주워 들었을 뿐이거든요. 그것도 죽은 뒤에 학교에 가서 들었던 것이라,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어쨌거나 홈커밍데이를 주관했던 사람은 선생님이셨고, 행사가 끝난 뒤 행사를 도와준 선배들을 데리고 조촐하게 뒤풀이 자리를 가졌었죠. 그 뒤풀이 자리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황인규, 이명준, 정중덕, 위상현, 나경현, 그리고 다른 몇 명의 선배와 함께였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날 사고가 터졌어요.
선생님께서 선배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던 중국집 근처에 있던 주유소가 폭발해버린 거예요. 엄청난 폭발 사고였다죠. 연일 뉴스에서 보도할 만큼이요.
누가 담배꽁초를 아무렇게나 버렸던 건지, 누군가 잘못된 마음을 먹고 일부러 폭발시켰는지 그건 나중에까지 밝혀지지 않았었어요.
그걸 보자마자 선생님을 비롯해 다른 선배들은 곧장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주유소 폭발로 인해 인근에 있던 건물에 불이 붙었던 거예요. 그리고 그 속에는 미처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밖에서는 함께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어요.
선생님께서는 평소 성격대로 불속으로 달려 들어갔습니다. 그 뒤를 황인규, 이명준, 정중덕, 위상현, 나경현, 그리고 또 한 명의 선배가 달려 들어갔어요.
다들 소방관이 오기까지 최선을 다해 건물 안에 갇힌 사람들을 구출해냈습니다. 뭔가 데자뷰가 일어나지 않나요? 선생님은 그때 무모하게 뛰어들었던 것처럼, 조선에 와서도 무모할 만큼 전장 속에 몸을 던져 사람들을 구했었죠.
온몸이 불타가며 선생님과 선배들은 사람들을 구해냈어요. 정말 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렸었죠.
하지만…… 정작 안에 들어간 선배 한 명이 빠져나오지 못했답니다. 선생님께서도 기억하시죠? 여자 선배였는데……, 김소희 선배라고……. 제가 듣기로는 황인규 선배와 동기라고 하더라고요. 소희 선배가 빠져나오지 못했단 사실을 알아챈 선생님께서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세차게 소리를 지르셨죠.
“으아아아아! 이 씨바아아아알!”
어때요? 이것도 데자뷰 현상이 일어나지 않나요?
추풍령에서 사상자를 수습하던 도중, 취사병의 시신이 운구되어오자 선생님께서는 저리 똑같이 소리를 지르셨지요.
그날 사고와 추풍령에서의 전투. 모두 똑같았던 것 같아요.
전투에서 밀려 사상자가 속출하자 무작정 달려 들어가 사람들을 구해낸 것이나, 사고가 일어나자 뛰어 들어가 사람들을 구해난 것이나. 제가 볼 때는 다 같아 보여요.
그리고 선생님은 달려 들어가 새까맣게 타버린 소희 선배를 안고 밖으로 나오셨어요. 그리고는 소희 선배를 끌어안은 채 그대로 쓰러지셨죠. 아마 이미 호흡곤란을 겪고 계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선생님이 쓰러지시는 것과 동시에 황인규, 이명준, 정중덕, 위상현, 나경현 선배도 죽고 말았어요. 이미 일산화탄소를 너무 많이 마신 상태였고, 다들 호흡이 곤란한 상태였거든요. 선생님이 소희 선배를 구한다고 불길 속에 뛰어 들어갔을 때 이미 다른 선배들도 숨을 꼴딱거리고 있었으니까요.
음…… 이 대목에서도 선생님께서는 뭔가 눈치채셨을 겁니다. 예상……하셨겠죠?
네……. 선생님께 국을 끓여 올린 취사병은 바로 소희 선배였어요. 그러니까…… 저희들 말고도 미래에서 온 사람이 한 사람 더 있었는데, 결국 선생님께서는 못 알아보셨던 것이지요.
물론, 갑작스럽게 조선으로 넘어와서, 그것도 남자가 되어버린 소희 선배가 선생님을 못 알아봤을지도 모르지만요. 소희 선배는 원체 소심한 성격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사람이 무슨 용기가 생겨서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갈 수 있던 건지…….
만약 선생님과 소희 선배가 서로를 알아보고, 저희들을 이끌어 주셨듯이, 소희 선배를 이끌어주셨다면 아마도 다른 방향의 발전을 이루었을지도 모릅니다. 소희 선배는 장래가 촉망되는 지질 및 기상 연구원이었거든요.
이제 아셨죠? 왜 여러 명이 한꺼번에 조선으로 올 수 있었는지를 말이에요. 모두 다 한꺼번에 죽었으니, 한꺼번에 조선으로 올 수 있던 겁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어요. 소희 선배의 두 번째 죽음으로 선생님께서는 황인규, 이명준, 정중덕, 위상현, 나경현 선배와 다른 모습을 보이셨거든요.
선생님을 비롯해 황인규, 이명준, 정중덕, 위상현, 나경현 선배가 구천을 떠돌 때, 다들 머릿속에는 행복한 기억만 남아있고 슬픈 기억은 전부 지워진 상태였거든요.
어떤 기억이든 몽땅 지니고 있는 저와는 많이 다르죠?
그건 ‘의롭게 죽었기’ 때문이래요. 자신을 희생해 많은 사람을 살렸으니, 그 보답으로 행복했던 기억만 남겨주는 거래요.
그렇게 보면……, 어쩌면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님도 행복한 기억만 갖고 저승으로 떠나셨는지도 모릅니다.
학창시절 몰래 선생님 담배를 훔쳤다던 위상현(노함) 선배도, 기숙사 군기반장을 했다던 황인규(여대세) 선배도. 모두 그것이 즐겁고 잊지 못할 정도로 행복한 기억이었나 봐요. 물론 선생님께서는 조금 나무라실지도 모르지만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뭔지 아세요? 아이러니하게도,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이혼 소송 중이었기에 사이가 좋지 않았다던 정중덕(윤업) 선배도 사실은 상대를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바람을 펴서 헤어졌다는 여자 친구를 그렇게 욕하던 이명준(김세빈) 선배도 그래요. 사실은 그때 당시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어쩌면 바람을 펴서 헤어졌다는 말도 거짓말이었을지 모르죠.
누나와의 행복한 기억 때문에 자살한 누나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사실 이명준 선배는 잘 모르겠어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건지, 어디까지가 자신의 진짜 마음을 표현한 것이고, 어디까지가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것인지. 몇 년 동안 함께 활동해도 모르겠더라고요.
어쩌면 민현준 선생님 때문일지도 모르고요. 아, 그 부분도 설명 드려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