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08)
낭선기환담-107화(108/600)
낭선기환담 – 107화
팟!
둔광을 거둔 지도는 허망한 낯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섬의 앞 바다에는 교룡들의 사체가 난자된 채 돌아다녔다.
그들의 피가 바다를 붉게 물들였다.
까드득.
이를 짓씹은 그는 신식으로 샅샅이 살폈으나 개미 새끼 하나 없다.
어이가 없었다.
키우고 있던 신단수는 물론, 혼아혈들까지 모조리 사라졌다.
“헛! 이럴…수가.”
“…대단한 실력자입니다.”
뒤따라온 지래와 지파가 주변을 돌아보며 암담한 낯으로 말했다.
“찾아라.”
뿌드득.
지도의 분노에 대기가 흔들렸다.
화를 억누르듯 말아 쥔 주먹에 핏물이 고였다.
“얼마 가지 못했을 것이다. 찾아라. 찾지 못한다면….”
꿀꺽.
뒷말은 굳이 듣지 않아도 안다.
마른침을 삼킨 형제는 고개를 주억이고는 빛줄기로 화해 사라졌다.
한 차례 심호흡을 한 지도는 돌연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내 바다 속에서 사백 장에 이르는 거대한 해룡이 나타나 전광석화처럼 바다를 가로질렀다.
* * *
같은 시각.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위.
그곳을 가로지르는 푸른 불꽃이 맹렬한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탐화오공과 귀율 또한 함께였다.
[대단한 신통이기는 하다만… 너무 무모한 것 아니더냐? 네놈 혼자 감당하기엔 적들이 너무 많을 텐데?]“장천이나 촉문경에게 맡기기엔 위험해서 그랬습니다. 그들은 백산으로 향하고 있으니… 혹여나 해족들이 백산을 향하게 되면 안 될 일이니까요.
차라리 제가 그들을 유인하는 것이 그나마 안전합니다.”
자신과 비교하면 약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들은 호접량충의 혼아들을 데리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이리 하는 것이 맞다.
‘위주호연갑도 있고, 해왕이 나타난 다 해도 도망치는 것 정도는 가능해.
내가 이리 하는 것이 맞아.’
함께 도망친다면 놈들에게 백산이라는 자신의 터를 알려주게 되는 꼴.
그것만큼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 주변은 바다뿐이다.해족보다 바다를 더 잘 아는 놈들이 누가 있겠느냐. 바다 위에 천라지망(天羅地網)이라도 펼친다면 아무리 네놈이라 해도 어려울 것이야.]
“그럼 좀 알려주시죠.”
귀수산의 행방만 알려준다면 해족의 추적을 따돌릴 수도 있을 터.
[고민 중이니 좀 더 설득해보거라.]“그게 무슨 말입니까. 알려줄 거면 그냥 알려주면 되지 설득을 하라니.”
[본좌가 손해 보는 것 같지 않더냐. 네놈이 알맹이만 빼먹고 육신을 찾아 주지 않으면 새 되는 것이 누굴까!]그 또한 맞는 말이다만….
“제가 죽으면 대인 또한 좋은 꼴을 보지는 못할 겁니다.”
[홍! 지금도 별반 차이는 없다. 언제 네놈에게 화령을 멸 당할지는 모르는 법 아니더냐? 마찬가지니라.]설득해보라더니 설득이 통하지도 않는다.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자 뻔뻔한 낯짝으로 턱을 들이민다.
“나 참… 됐습니다. 목신통을 수행한다 하여 나중에 기회 되면 신단수나 조금 나누어주려 했더니….”
운을 띄우자 여지없이 대인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치켜떠진다.
검집에 봉인되어 있지만 않았다면 단박에 산군에게 달려들었으리라.
[정말이냐? 비록 반쪽짜리 신단수라지만 그것을 내준다면 도와주지 못할 것도 없다!!]산군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귀수산의 행방을 알려주실 겁니까?”
[그건 안 될 말이지.]올라갔던 입꼬리가 단박에 내려갔다.
“…그럼 어찌 도와주려고요.”
[본래 노인의 지혜꾸러미는 하늘만큼 넓다지 않다더냐. 흐흐, 귀수산의 행방을 알려주지는 못하겠으나 해족 놈들의 천적 정도는 알려줄 수 있지!]촉만대인의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흐른 뒤, 산군은 그가 하는 말을 경청하였고 이내 개안한 듯 눈을 부릅 떴다.
“확실히… 명안은 명안이군요.”
[끌끌! 어떠냐, 존경심이 들지는 않느냐? 매일 아침저녁으로 절을 올린다면 지혜를 좀 나누어줄 수도 있다.]“헛소리만 안 하면 좋겠습니다만.”
[이놈이! 못 하는 소리가 없구나!]그 뒤.
그는 방향을 틀어 동쪽으로 향했고, 가는 내내 촉만대인과 입씨름을 했다.
* * *
동해 어딘가.
[말해라.]“해수들의 목격담과 흔적을 조사한 결과 놈은 동쪽으로 향했을 겁니다.”
교룡의 모습인 지도가 바닷물 위로 고개만 내밀고 있었다.
[확실한가?]“예! 확실합니다!”
자그마치 사백 장에 이르는 거대한 모습의 지도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마치 천둥이 치는 것과 같았다.
[놈에게 동해가 누구 것인지 보여주자! 반드시 놈을 잡아 우리 것을 되찾고! 사지를 찢어 놈의 피로 동해를 번영케 하자!!]그러자 그의 뒤로 수백의 교룡들이 포효하며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의 움직임에 파도가 몰아치고 폭풍우가 동반했다.
애꿎은 주변 해수들은 부리나케 도망치거나 쥐죽은 듯 숨었다.
가만히 지켜본 지도는 아가리를 벌렸다. 어금니 사이에는 공정강이 끼어 있었는데, 돌연 거대한 소라껍질을 꺼내 허공에 띄웠다. 입을 달싹이며 주술을 외우자 거대 소라에서 기이한 소리가 흘러나와 널리널리 퍼졌다.
잠시 후.
창공에서 그림자가 바다를 가리더니 두 마리의 괴조가 날아들었다.
[우릴 불렀다는 것은 이전의 빚은 이걸로 지워지는 거겠지?]녀석은 산여(酸與)라고 하는 영수로, 눈은 여섯, 날개는 넷, 다리는 셋인 기괴한 놈이었다.
그 크기 또한 엄청나 날개 달린 영수 중에서는 가장 빠르기로 유명했다.
[약조하지. 놈만 찾아낸다면!]* * *
사흘 뒤.
비행하는 탐화의 머리 위에서 가부좌를 틀던 산군의 눈이 떠졌다.
“…벌써 들켰나.”
소비한 영력을 채울 겸 운기조식하고 있었건만…. 무언가가 온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고심했다.
‘죽이는 건 문제가 없다만….’
따라붙는 놈을 죽이다 보면 시간이 지체될 것이고, 그러다보면 그를 쫓는 대군과 맞딱드리게 될 것이다.
“어쩔 수 없나. 노인장이 말한 곳까지는 아직 거리가 있으니….”
시간이 지체되면 안 된다.
즉살만이 답이다.
“귀율.”
스륵.
그의 곁에 나타난 귀율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산군을 노려봤다.
“그 사나운 눈빛도 이제는 귀엽게만 보이는구나. 좀 더 연구해보거라.”
실없는 소릴 하자 귀율의 인상이 더 사납게 변했다.
픽 웃은 산군은 품에서 혈붕수를 꺼내 핏방울을 귀율에게 먹였다.
그러자 소녀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지며 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혈붕수가 여러모로 쓸모가 많네.”
본래는 자신의 정혈을 주어야 하는 것이 맞지만, 혈붕수가 있다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대체 무슨 원리로 이리 쉼없이 피가 나오는 건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때였다.
저 멀리 은색 빛이 번뜩였다.
둔광이다. 그것도 아주 빠른.
“숨어라.”
귀율이 허공으로 사라지고.
탐화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고생 좀 해줘야겠다.”
끼잉!
덩치에 안 맞게 참 활기차다.
이내 탐화의 몸이 하늘 위에서 둥글게 파리를 틀었다.
은은한 검빛이 맴도니 탐화의 몸이 연기처럼 산군의 몸에 스며들었다.
위주호연갑.
이것으로 단숨에 즉살한다.
팟.
어느새 드리워진 그림자는 거대했다.
펄럭이는 두 쌍의 날개가 광풍을 동반하며 그의 앞에 멈춰 섰다.
‘날개가 넷에 다리는 셋. 그리고 눈알은 여섯이라… 산여로군.’
대강 예상은 했다.
감지할 수 있는 신식 안에 들어왔을 때부터 빨라도 너무 빠른 속도였으니.
[네게 원한은 없다.] [우리는 빚을 지우기 위할 뿐!]두 마리의 산여는 광을 잃지 않으며 눈으로 쫓을 수 없는 빠르기를 내보였다.
빛줄기로 화한 산여 두 마리가 산군의 주위를 맴돌았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잠시 상황을 살피자 돌연 바닷물이 치솟아 올랐다.
놈들이 선회하며 맴돌자 그 속도를 못 이겨 와류가 생겨난 것이다.
[우리에게 손 하나 못 댈 것이다.] [그야말로 광속(光速)!]휘이이이이이잉!!
치열한 와류 속에 갇힌 산군은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다 중얼거렸다.
“산여의 날개가 있으면 둔보(道寶)를 만드는데 더할 나위 없다던데….”
둔술을 펼치는데 도움을 주는 보물.
둔보를 만드는데 산여의 날개는 아주 제격이라고 한다.
그 소리를 들은 산여는 노기를 뿜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이제 곧 죽을 놈이 잘도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는구나!] [천천히 죽이려 했지만 네놈은 즉살!]산여의 속도가 배는 빨라졌다.
이제는 아예 빛덩이가 와류 자체와 하나가 되는 것 같았다.
산군이 아닌, 평범한 도사였다면 진즉에 몸이 갈가리 찢겼으리라.
하지만 위주호연갑을 입은 산군은 아무런 타격도 없었다.
“딱 좋군.”
입가에 호선을 그린 산군이 전신에 기운을 방출했다.
그러자 갑주에서 수백 개의 검은 실이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파파파파파팟!
담즙을 머금은 검은 실은, 와류는 물론, 그것과 하나 되어 선회하던 산여를 꿰뚫었다.
[컥!] [카아아악!]단숨에 와류가 흩어졌다.
허무하게 사라진 와류를 위로하듯 치솟았던 바닷물이 비처럼 쏟아졌다.
산여들은 허공에서 꼼짝도 못 했다.
움직이고 싶었으나 온몸이 가는 실로 꿰뚫려 실에 묶인 꼭두각시 같았다.
산군은 그들을 보며 냉소했다.
“찢어라.”
그러자 수백 개의 실이 채찍처럼 움직이며 난도질을 시작했다.
촤자자자작!!
그대로 조각조각 잘려나갔고, 산여들은 바다 속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별것도 아닌 게 지랄은.”
귀율에게 괜한 걸 시켰다.
그럴 필요도 없었는데 말이다.
유유히 산여의 날개를 챙긴 산군이 멈칫했다.
“머리가…없군”
빠르다 빠르다 했더니 도망치는 것도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쫓고 싶었으나 그건 안 될 일.
“벌써….”
그 잠깐 사이.
산군의 신식 안으로 들어선 이들이 벌써 오십을 넘어간다.
쯧.
혀를 찬 그는 둔술을 펼쳐 푸른 불꽃으로 화해 달아났다.
* * *
세 달 뒤.
봉우리가 새하얀 백산에는 빛줄기 두 개가 당도했다.
“세 달을 내리 비행했더니 조금 지치는군요.”
“왜 안 그럴까요. 혹시 몰라 빙 돌아오느라 이리 지체되지 않았습니까.”
둘은 장천과 촉문경이었다.
“한데… 조금 아쉽지는 않으십니까.”
촉문경이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무엇이 말입니까.”
“혼아들은 그렇다 쳐도… 그들이 지닌 신단수 또한 백산에 다 심겨지겠죠.
결국 대호 육사에게만 좋은 일이 아닙니까? 고생은 같이 했는데….”
장천이 미간을 좁혔다.
아쉽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신단수가 가진 이름값이 얼마던가.
비록 완전한 것이 아니라고는 하나, 그 수가 천 그루나 된다.
욕심을 내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목숨 걸고 미끼를 자청한 육사께 그런 짓을 어찌 할까요.”
“알지요! 그러니 한 그루 정도는 가져도 되지 않냐는 겁니다! 목숨은 저도 걸고 장 도사도 걸지 않았습니까.
천 그루 중에 한 그루인데 그것 정도로 무어라 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장천의 눈빛이 흔들렸으나 이내 곧게 촉문경을 응시했다.
“아니요. 애초에 그 나무들은 혼아들의 가족이 몸을 던져 만든 것입니다.
저희들이 왈가왈부 할 것이 아니죠.
신단수의 주인은 저희도, 육사도 아닌 호접량충 혼아들의 것입니다.”
확고하고 단호한 어조였다.
그리 말하자 촉문경도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그때 백산에서 붉은 빛줄기가 솟아 그들이 있는 허공에 멈춰 섰다.
“…부군은 어디 있느냐.”
요호였다.
그녀는 오자마자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찾는 이가 없자 인상을 찌푸렸다.
“육사는 아직 동해에 계십니다.”
“동해? 미꾸라지 놈들이 판치는 곳 말이더냐? 그곳은 왜? 그리고 네놈은 거머리처럼 따라다니더니 왜 홀로 온 것이야! 무슨 일인지 낱낱이 고해라!”
장천은 간략히 사정을 말했고, 요호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지기만 했다.
“빌어먹을 남정네. 아주 죽으려고 작정을 하고 돌아다니는구나! 역시 안 되겠다. 내가 곁에 있어야겠다!”
요호가 흥분해 둔술을 펼치려던 때.
“멈추세요.”
새하얀 머리칼을 나부끼는 여인이 나타나 그녀를 말렸다.
“서방님이 그리하셨다니 다 생각이 있으셨을 겁니다. 장천 도사, 말씀하셨던 혼아혈들을 백산에 인도해주세요.
먼 길 오느라 지치셨겠지만요.”
“예. 물론 그러도록 하지요.”
“그리고.”
백산의 안주인.
초아는 그를 바라보며 당부했다.
“최대한 빨리 돌아가 주십시오.”
말투는 나긋나긋했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그를 책망하는 듯한 눈초리였다.
장천과 촉문경은 서릿발 같은 눈빛에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주억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