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1)
낭선기환담-10화(11/600)
낭선기환담 – 10화
사라락.
어두워진 산속은 같은 바람이라도 조금 더 서늘하고 온몸을 더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 느끼는 것은 곁에서 바람을 막아주던 이가 없어서일까. 커다란 몸과 항상 뚱한 낯으로 자신을 흘기던 눈빛이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할부지. 서방님은 언제와요……?”
“……글쎄다.”
곤륜의 청도산과 비청은 백척곡을 이미 벗어나고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발생했을 시를 대비해, 화란은 청도산에게 초아를 데리고 화장마을로 가라 했기 때문이었다.
청도산은 그들이 보여준 무력과 쥐 요수가 퍼트리는 강렬한 요기를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꼈다.
그것은 이전, 어깨너머 보았던 도선급 도인들이 상대하던 이통 요수의 그것이었다.
당연 그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적이었고, 그들이 아니었다면 자신과 어린 제자는 목숨을 잃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귀신은 이런 말도 했다.
마을에 도착하고 7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녀는 뒷말을 하지 않았지만, 청도산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초아를 곤륜으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백발이라는 것부터 기이하다 생각했지만, 은연중에 내비치는 근골과 기운이 예사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도사가 되는 것은 옛적에 물 건너 간 청도산이었지만 자신의 제자만이라도 도사로 키우고 싶었다.
‘도사가 되어 신선이 되고자 하는 것은 모든 무인들의 꿈이나 다름 없는 것이니…….’
비청도 비범한 근골과 자질을 지녔지만, 초아는 그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흐뭇한 얼굴로 초아를 바라본 청도산은 벌써 자신의 제자가 되어 도술을 부리는 제자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듯했다.
“초아야…. 범은 서방이 될 수 없어.”
“내가 서방님이라면 서방님인 거야. 나한테 이래라 저러라 하지마!”
노인은 초아와 비청이 투닥 거리는 걸 보며 쓰게 웃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찍소리 못 하는 걸 보니, 혼인을 해도 여자에게 잡혀 살겠구나 싶었다.
“근데 우리 어디까지가요? 서방님이 못 따라 오시면 안돼는데…….”
“이 산만 넘으면 작은 마을이 하나 나온다. 산골 마을이지만 목책도 있고 자경단도 운용하고 있는 곳이라고 하더구나. 그리 가면 편히 쉴 수 있을게다.”
‘그거 물어본 거 아닌데…….’
초아는 입술을 삐죽 거리며 힐긋힐긋 뒤를 돌아보고는 한숨을 뱉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자신 때문에 서방님이 싸우고 계시니 방해가 되지 않으려면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했다.
그리고 잠시 오해하기는 했지만 이걸로 확실해졌다.
‘서방님은 내 편이야.’
그러니 설령 몇 년이 걸리더라도 초아는 기다릴 수 있었다.
* * *
기하학적으로 이루어진 진.
이리 꼬이고 저리 꼬여 보기만 해도 머리가 어지러운 진이었으나, 영기를 주입하자 핏물이 밝게 빛나며 더욱 흉흉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괜찮은 겁니까?”
[쥐새끼도 했는데 나라고 못할까.]이상하다 싶으면 냅다 도망가면 그만이었다.
자신에게 흘러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그는 그저 영력만 주입할 뿐이기에 상황이 어찌 변해도 도망칠 여유 정도는 있었다.
한 10분 정도 영력을 주입하자 서서히 진 안에 놓여있던 제물들이 천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신기한 현상이었으나, 익히 그럴 것이라 예상했던 산군은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그것을 담담히 바라봤다.
하지만 이런 불길해 보이는 제련은 처음이었던 것인지 화란의 안색은 별로 좋지 않았다.
혐오스러운 것을 바라보듯, 연신 고운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것이 영 탐탁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보기 싫으면 나가있어.]“아닙니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그러던가.]산군은 그녀에게 신경을 끄고 진행되는 의식을 눈에 담았다.
제물들은 녹아내려 핏물로 화했다.
구정물처럼 시꺼먼 핏물, 그것들은 진을 따라 천천히 구환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구환도는 바닥에 꽂혀 있는 채였지만, 핏물이 도에 스며들자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잠시 뒤.
이내 아홉 개의 환이 딸랑딸랑 청 아한 소리를 내며 도명을 토했다.
[꽤 많이 잡아먹네.]산군의 수준으로는 솔직히 보물 급 보패를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수십 번의 실패를 거쳐야 될까 말까한 일인 것이다.
보물이 괜히 보물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듯, 고작 영물 영수의 수준으로는 보물 이상의 보패를 만들기엔 영력도 재주도 부족했다.
‘하지만 내겐 태양화리의 알이 있지!’
재주는 주진이 부릴 것이고, 그는 영력만 보충하면 되는 것이니 걱정할 것이 없었다.
화란에게 태양화리의 알을 건네받고 와작 씹어 영력을 보충한 산군이 다시 집중하여 영력을 불어 넣었다.
구구궁.
이제 와서는 동굴이 작게 진동하고, 진의 빛이 더욱 더 밝아졌다. 눈이 조금 시릴 정도였다.
그러자 구환도는 이제 시끄럽게 몸을 떨며 서서히 색이 검붉게 변했다.
진 안에 있던 제물들이 모두 녹아내리고, 끝바지에 이른 검은 액체들이 모두 구환도 속으로 스며들었을 때.
끼에에에에에에!
그 순간, 구환도에서 여러 짐승과 사람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것에 눈살을 찌푸린 산군과 화란이었지만 주진을 멈추지는 않았다.
구환도의 비명은 갈수록 목청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 위로 검붉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나 동굴 천장을 가득 메웠다.
그 흑운들은 인간의 형태로도 변하고 짐승들의 형태로도 변하며 마치 발버둥치는 것처럼 보였다.
쿵! 쿵! 쿵!
구환도에서 거대한 진동이 울렸다.
쩌저적 쩌쩍!
구환도가 꽂혀있던 진을 중심으로 동굴 암벽이 쩌적 갈라지고, 그 틈에서도 검붉은 연기는 살아있는 것처럼 여러 형태를 갖추려다 사라지고 천장으로 피어 올라갔다.
이쯤 되니 자신만만했던 산군도 긴장되기 시작했다.
멈출까 말까.
고민하던 산군의 동공이 흔들렸다.
끼에에에에!
천장을 가득 메운 흑운들이 서서히 구환도의 안으로 스며들어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차차차차차차창!
구환도의 구환(九環)이 미친 듯 요동치고, 꿀렁거리는 흑운들은 마치 들어가기 싫어하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것 같았다.
산군은 본능적으로 혈묘서자에게 죽임당한 사람들과 영수들의 혼이 구환도 안으로 들어가는구나 싶었다.
조금 동정심이 일었으나 이미 예상한 일이었다.
혈묘서자를 상대하며 절실히 느꼈다.
지금의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풍족하고 편안한 삶을 보내려면 어느 정도 힘이 필요하다는 걸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만일, 화란이 없었다면? 그리고 자신이 부무검을 찾아놓지 않았다면?
그리 쉽게 혈묘서자의 목을 자를 수 없었을 것이다.
손쉽게 힘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은 강력한 보패였고 산군은 차려진 밥상을 보고 그냥 떠날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가질 수 있는 힘이라면 가져야 하는 게 응당,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꾸우우우우웅!!
어느새 흑운들은 모조리 구환도로 모두 들어갔다. 구환도는 미친 듯 요동치고 발이 저릴 만큼의 거대한 진동을 뿜어냈다.
이러다 터지는 게 아닌가 하던 순간!
“헛!”
[억!]빛이 잠잠해졌다.
[휴우……, 터지는 줄 알았네.]“저, 저도요.”
안정적이다라고 느낄 만큼 점점 고요해지는 구환도의 모습에 흐르던 긴장감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이내 일각의 시간이 더 흐르고.
[좋아. 된 거 같다.]“됐다고 확실히 말해주시죠.”
[음…… 됐어!]본래의 짙은 회색이었던 구환도는 온통 검붉은 색으로 변화했고, 뿜어내는 요사스러움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오금을 저릴 정도였다.
영력을 더 주입해도 주진도 그렇고, 구환도도 그렇고 더 반응이 없었다. 솔직히 될지 안 될지 반신반 의였는데 잘 성공한 것 같다.
물론, 완전한 보구 급의 보패가 된 것은 아니었다. 보물보다는 높은 영기를 보유하고 있었고, 보구 보다는 조금 낮은 기운이었다.
일반적인 보패보다 월등히 뛰어난 능력을 지닌 보패를 보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보물보다 더 강력한 것이 바로 보구. 보물 열개가 있어도 보구 하나의 능력에 미치지 못하니, 구환도가 보구 급에 근접한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해야 했다.
‘사기(死氣)라고 해야 하나.’
영기라고 하기엔 너무 탁하고 지독한 한이 서려있는 기운이었다.
‘영화보다 더 까다로운 도선들을 상대하는 것도 해볼 만하겠지.’
여러 가지 보패를 다루며 신통을 부리는 도사라 해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진정한 보구를 든 도사와 전투를 벌이게 된다면 밀리겠지만, 각 보패마다 성능과 상성의 차이가 있으니 잘만 한다면 같은 보구에도 비벼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봤자 인간이 되지 못하면 제 대로 사용할 수는 없겠지만.’
꼬리로 들 수 있다고는 해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었다.
화란에게 들게 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녀는 산군의 창귀. 영력을 사용하지 못하니 완전한 신통을 부릴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그녀에게 영력을 전해준다면 가능하지만…….’
혼으로 연결된 범과 창귀라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것은 산군에게 조금 버거운 일이었다.
산군은 잡념을 털어버리고 화란을 보며 외쳤다.
[자, 화란. 구환도를 공정강에 넣거라.]“……지금 저로 시험하시는 겁니까?”
화란의 눈가가 씰룩거렸다.
만지기만 해도 저주 받을 것 같은 것을 만지라니! 아무리 자신이 귀신이라지만 너무한다 생각했다.
[시험이라니? 나는 애초에 범이라 구환도를 잡을 수 없지 않더냐. 당연 나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네가 해야 하는 일이지.]산군은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저 꺼림칙한 것을 잡으면 혹, 잡혀 먹히거나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그럴 리 없다. 설사 그런다 해도 그러기 전에 공정강에 집어넣으면 그만이지 않더냐.]산군의 말은, 그럴 수도 있겠지만 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 해봐라. 라는 말과 다를 것 없었다.
“이럴 때만 위엄 있는 말투 쓰지 마십시오.”
[어허! 어서 하지 않고 뭐하느냐! 어서해라! 어서!]화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산군을 째려봤지만, 그는 얼굴에 철판이라도 깐 듯 강경했다.
그녀는 작게 콧김을 뿜으며 구환도에게 다가갔다.
산군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범의 앞발로 도를 잡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애초에 공정강 또한 자신에게 있기도 하고.
틀리지 않는 말이었지만, 꺼림칙한 것을 손으로 잡고 싶지 않았다.
화란은 구환도를 바라보다 공정 강에서 작은 천 하나를 꺼내 손에 쥐고 그대로 겹쳐 구환도를 뽑아 들었다.
[어, 어때? 광기가 들 것 같다거나……, 날 죽이고 싶은 감정이 든다거나 하진 않지?]대도를 뽑아든 화란은 기이하게 목을 꺾으며 산군을 바라봤다.
“……조금 죽이고 싶은 거 같기도 합니다.”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는 산군은 긴장감에 혀를 빼내 코를 적셨다.
그 모습에 화란이 그만 참지 못하고 픽 웃어버렸다.
[큼, 장난치지 말거라.]“아무렇지 않은 듯 싶습니다.”
예상외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꽤 커다란 대도였으나,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뽑아들고는 공정강 속에 미련 없이 집어넣었다.
[좋아. 위력 확인은 나중에 하고 일단 나가자.]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밖으로 나가자 벌써 동이 트고 있었다. 체감상 느낀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소요한 모양이다.
[초아는 어디 있더냐?]“혹시 산군님이 전사하실 것을 대비해, 그 노인에게 화장마을로 가라 일러뒀습니다.”
[……어? 왜?]“혹시라도 산군님이 죽임을 당한다면 저 또한 힘을 잃을 것이고, 그리 된다면 당연 혈묘서자는 산비님을 노리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다.
최악을 대비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역시 똑똑한 수하를 두면 이런 점이 좋다.
하지만 미묘하게 무시당한 것 같은 기분은 떨칠 수 없었다.
‘뭐 위험했던 건 사실이니까…….’
초아가 화장마을로 향했다라.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았다. 곤륜의 노인네가 지닌 힘은 보잘 것 없었으나 영물 급에서도 강한 축에 속하는 자신이나 화란이 아니라면 그리 쉽사리 당할 인물은 아니었다.
얼핏 도선의 경지에 한발을 남겨 두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굳이 내가 화장마을로 안 가도 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지사.
애초에 초아를 화장마을에 보내 버리려 했던 것은 자신이고, 저 알아서 그곳으로 가는데 자신이 꼭 따라가야 하나 싶었다.
“가지 않으실 겁니까?”
[음.]여기서 헤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자꾸 서방님! 이라는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리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초아의 운명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백 년의 시간을 보내며 영물이 되었다곤 하나, 진정한 강자들에 비한다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물론 지금은 초아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은?
초아는 평범한 운명을 지닌 아이가 아니다. 영물인 자신의 곁에 둔다면 상상보다 더 가혹한 미래가 찾아올 확률이 높았다.
결정적으로 산군은 초아를 지켜 줄 자신이 없었다.
물론 지닌 힘도.
‘힘도. 그런 각오도 아직은 없다.’
게다가 지금은 인간으로 둔갑을 할 수 있는 역근환(易根丸)을 만들 재료를 찾아보고 싶었다.
초연방.
그것만 있다면 그리웠던 인간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
그리 된다면 구환도를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고 더 강력한 신통을 부려 전력 역시 높아질 것이다.
그렇게 강해지다 보면 초아를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
‘그리고 봉악청화도…….’
앞발이 아닌, 다르게 운용할 수도 있겠지. 여러모로 생각해 보아도 일단 초연방을 찾는 게 나아보였다.
[초연방을 찾는 것이 좋겠다.]“예, 알겠습니다.”
[어? 어어……]당장 산비님에게 가야 한다 소리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순순히 따르니 의아했다.
조금 의구심이 일었으나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고 동굴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