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13)
낭선기환담-112화(113/600)
낭선기환담 – 112화
만호가 그리 소리치자 상황이 묘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해눈파의 홍 장로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고, 후고파의 설 장로는 고심하는 듯 턱수염을 매만졌다.
해눈파나 후고파나 쌍각부호의 뿔을 원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니 함부로 나설 수 없었다.
복수나 복충에 갖가지 금제를 걸어 두는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니다.
자신이 부리던 복수를 전투 끝에 빼앗기면 적이었던 자가 그대로 사용할 텐데 어찌 그 꼴을 두고 보겠는가.
대개 복수를 부리는 이들은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금제를 심는다.
자신의 죽음과 함께 하도록!
금제를 해제하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시일이 오래 걸리는 것은 물론, 안되겠다 싶어 자결이라도 해버린다면 손해가 막심하다.
쌍각부호가 어디 구하고 싶다고 구해지는 영수던가. 이제 세상에 남아 있지도 않은 영수다.
홍 장로는 뿔을 구해가지 못하게 되어 열이 뻗쳤고, 설 장로는 명분을 얻어 해눈파를 저지하려는 계획이 틀어져 근심하게 되었다.
“꼭 하리산맥의 일곱 문파 전체가 나설 필요가 있느냐?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기에 비무 대회를….”
뭘 원하는 것이길래 비무 대회를 열어달라 청한단 말인가! 갖고픈 것이 있다면 그냥 말로 하면 될 것을!
“제가 원하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석달 후, 비무 대회를 열어주시지요! 그 전까지…. 해눈파와 후고파에서 인원을 차출해 절 보호해 주십시오. 어떤 변고가 생길지 모르니 당연히 그래주시겠지만 말입니다!”
만호는 그리 말하고는 입을 닫았다.
그들은 한참이나 머리를 싸매다 서로 갖가지 금제로 만호를 수련동에 가두고는 둔광을 빛내며 사라졌다.
* * *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무엇을.]“어째서 비무 대회인 겁니까? 그리 한다면 도사들의 이목이 한데 몰리게 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내상이 완전치 않은 산군이다.
도사들의 이목이 쏠려 좋을 게 없다. 그렇기에 만호의 수련동을 빌려쓰고 있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 비무 대회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됐다.
[나도 필요한 게 있어서 말이다.]“필요한… 것 말입니까?”
[그래. 정순한 목신통 여선이 필요하거든. 그 때문이다.]“그것과 비무대회가 무슨….”
[일일이 찾기 귀찮지 않더냐.]산군이 비무대회를 열라고 지시한 것은 그것뿐이다.
촉만대인의 육신을 찾기 위해.
‘이미 이목이 쏠렸으니 상관없지.’
어차피 이 근처의 문파들 수준은 대강 알게 되었다. 영맥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수준 높은 도사는 없다.
그렇다면 오히려 쏠린 이목을 이용해주는 것이 맞지 않겠나!
“그렇다면 쉽게 목신통 여선의 육신을 달라 청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도선 놈이 환선의 육신을 내어달라 말해 보거라. 의심하지 않을 놈이 어디 있는지! 게다가 네놈이 말하지 않았냐. 하리산맥의 문파들 중에서 태선이 등극하지 않은지 몇십 년이나 지났다고. 그럼 최고 도사가 환선이라는 것인데, 그걸 넘겨주겠느냐? 괜한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음이다.]괜한 의심을 살 필요가 없다.
이대로 그들이 모르게 진행하는 방법이 최선책.
이 정도가 딱 적당할 것이다.
단순히 비무 대회를 열어 쌍각부호를 상품으로 내놓는 것이 낫다.
이리하면 저들끼리 알아서 혼란이 빚어지고 암중모략이 펼쳐질 테니까.
‘대인의 육신을 찾고, 빠르게 치료할 영약들도 얻을 수 있겠어. 동국 도사들의 신통도 엿볼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
판이 커질 대로 커졌다.
일이 이지경이 됐으니 놈들도 오히려 조심스럽게 행동할 것이다.
문파간의 세력다툼 따위는 산군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애초에 자신을 영약 취급하며 고아 먹을 생각으로 가득 찬 것 같으니 이용해주지 못할 것도 없다.
내상을 입었다지만 명은술로 경지는 완벽히 감추고 있었다.
저들에겐 일통 요수로 보였을 터.
‘석 달이면 급하게나마 내상의 2할은 치료할 수 있을 테니….’
그때 가서 탐화든 귀율이든 꺼내서 다 죽여 버리면 그만이다.
탐화는 아직도 잠들어 있으나 곧 깨어날 것이다. 심(心)이 연결되어 있어 산군은 느낄 수 있었다.
문제는 귀율이다.
귀율은 적잖은 상처를 입었기에 회복해야 함이 맞다.
공정강에 들어간 상태로는 몸이 봉인당해 있기에 회복이 어렵다.
‘이곳은 진법으로 인해 사기가 영력으로 바뀌고 있지. 하지만….’
땅 속은 어떨까.
진법이 닿지 않는 지하라면?
애초에 동국은 사기가 공기처럼 떠도는 곳이다. 귀율에게 이곳보다 좋은 곳은 없을 것이다. 귀율이 아닌 귀술을 수행하는 도사 또한 마찬가지겠지.
하지만 이곳에서 미리 꺼내두지 않은 이유는 당연히 반서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꺼내두면 금세 몸을 회복해 산군을 공격할 테니 말이다.
‘이제는 상관없겠지. 환진 정도야 영석을 이용해 펼치면 되니까.’
땅밑에 묻어두고 환진과 금제를 설치한다면 귀율도 어쩌지 못한다.
마지못해 몸을 회복할 것이다.
‘귀율이 구환도와 잘 맞으니 함께 두면 더할 나위 없겠지.’
그리하면 회복이 더 빠를 것이다.
귀율이 회복한 후에는 산군 또한 몸을 회복했을 테니 상관없다.
잠시 고민하던 산군은 만호를 불러 명령했다.
[삽질은 잘하나?]“…예?”
섬뜩하게 웃는 낯짝에 만호의 낯이 삽시에 일그러졌다.
* * *
산군과 만호가 수련동에 갇히게 된 지 일주일이 지난 뒤.
하리산맥에서는 비무 대회를 개최한다는 공문이 널리 널리 퍼졌다.
해눈파는 이참에 하리산맥의 제일문이 어디인지 공고히 할 셈이었고, 후고파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 밖에 다른 문파들은 뜬금없는 비무 대회 개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우승 상품의 이야기를 듣고는 안색을 바꾸고 뛰어 들었다.
쌍각부호가 무엇인지 모르던 이들이 많았으나, 효능이 전해지자 눈에 불을 켜며 달려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리산맥은 다시없을 활기를 띠었고, 비무 대회 이야기가 일파만파 퍼졌다. 쌍각부호의 뿔만 있으면 지선도 꿈이 아니라는데 누가 욕심을 내지 않을 수 있을까. 소문은 발이 달린 것처럼 퍼져나가 하리산맥 바깥 문파의 귀에도 들어갔다.
석 달 후.
기둥처럼 솟아오른 석벽 꼭대기.
그 위에는 수백의 도사들이 모여 있었다.
“공을 많이 들이지 않았습니까. 도사들이 한데모여 비무 대회장을 건설하다니 말입니다!”
“대단할 것이 뭐 있나요. 어디로 할지 정하다 안되겠다 싶으니 한가운데에 만들어버린 것이지요.”
대화하는 이는 후고파의 설 장로와 후고파의 문주 후고보였다.
“그렇다 해도 이리 일곱 문파들이 한데 모여 무언가를 하는 것이 처음이다 보니 감회가 새롭지 않습니까.”
“예. 그것이 비록 탐욕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그렇다 해도 나쁘진 않네요. 본래 하리산맥의 문파들은 한 줄기에서 갈라진 종파(宗派)이지 않습니까. 아버님이 이 모습을 보셨다면 누구보다 기뻐하셨겠지요.”
“이 설차풍. 반드시 문주님께 쌍각부호의 뿔을 안겨 드리겠습니다!”
후고보는 싱긋 미소 지을 뿐이었다.
대회에 출전하는 도사들은 환선.
각 문파의 장로들이다.
그 때문에 참가하지 않더라도 식견을 넓히러 찾아온 도사들이 많았다.
후고보는 객석에 앉아 있는 도사들 중 하나를 보고 아미를 좁혔다.
복면을 쓰고 삿갓으로 용모를 가린 도사들 12명이 눈에 띠었다.
‘외부 도사인가….’
“한데 잘도 허락하셨군요. 만호 사질의 생떼나 다름없는 요구였는데요.”
“다른 방도가 있나요. 그만큼 쌍각부호가 지닌 이름값은 강대했으니까요.”
그때였다.
펑, 퍼펑!
화신통 도사들의 화려한 불장난이 하늘을 수놓았다.
푸른 하늘을 붉은 용과 봉황이 수놓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럼! 제 1회 비무 대회를 거행하겠습니다! 그럼 먼저, 여러분들이 가장 원하시는 쌍각부호부터 보시겠습니다!]철컥!철컥!
쿠구궁!!
경기장 윗부분의 땅이 갈라졌다.
그 안에서 우리에 갇힌 쌍각부호가 서슬 퍼런 눈빛을 뿌려대며 나타났다.
기관을 설치했는지 우리는 하늘높이 치솟다 멈추었다.
[저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자면 전설 속의 쌍각부호가 확실하지요! 왜 안 그렇겠습니까. 저놈 하나 때문에 이 난리를 피우며 비무 대회가 개최됐는데!]해설을 맡은 도사의 언변에 객석의 도사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는 탐욕의 눈빛을 지우지 못한 이들도 한 가득이었다.
[자, 그럼 시작하기에 앞서 각 문파 문주님들의 담화가 있겠습니다!]어딜 가나 높으신 분들의 담화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산군은 졸지에 구경거리가 된 자신의 인생을 탓하다 힐긋 객석에 자리한 이들을 둘러보았다.
[염병할 놈들이 많이도 모였구나.]개 중에는 정순한 목신통 도사들 또한 여럿 보였다.
“육사께서 바라시는 대로 되시지 않았습니까. 전 지금도 오한이 듭니다. 정말 제 목숨은 걱정할 것 없겠지요?”
함께 우리 안에 갇혀 있는 만호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걱정할 것 없다. 난 삼귀와 다르게 약속한 것은 지키는 주의다.]“삼귀도 약속은 지켰을 것입니다.
살아 있었다면 말이지요!”
그러자 산군이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죽기라도 할 거라는 말이냐.]“그렇지 않을 거란 보장도….”
틀린 말은 아니다.
세상사가 어찌 생각대로 돌아가기만 하던 것이던가.
속단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네놈이 죽어도 난 안 죽는다.]죽을 생각 따위는 없다.
지금껏 그래왔으니 앞으로도.
“저희 일련탁생 하는 사이이지 않습니까! 어, 어찌 그런 말씀을….”
[일련탁생은 개뿔. 단약 몇 개와 둔보로 날 팔아넘기려고 했던 걸 모를 줄 알았더냐, 괘씸한 놈아!]산군이 이전 일을 들춰내 호통 치니 만호는 합죽이가 되어 입을 다물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으리라.
그런 만호를 흘기며 산군은 잠시 생각에 깊게 잠겼다.
‘이곳에 태선이라도 있었다면 쉽사리 이런 짓을 벌이지도 못했겠지.’
그가 갇힌 우리는 철창으로 만들어진 보패 중 하나였다.
그 밖에도 부적이 덕지덕지 붙어져 있어 쉽사리 파괴하지는 못할 듯 싶다.
‘석 달.’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산군의 발치에 둔 갑각무늬가 있는 검은 구슬과 시꺼먼 고치를 꺼냈다.
우승자가 가려지고 우리가 열리는 순간이 곧, 아비규환이 도래할 것이다.
[자, 나와 주십시오!]때마침 시작됐다.
양 쪽에서 각 문파의 도사들이 위풍당당하게 입장했다.
회색 장포의 무리들과 녹색 도포의 무리들이었다.
잠시 뒤.
문파의 비무가 끝이 났다.
[동국의 도사들은 괴뢰술에 정통한가 보군. 꼭두각시들이 특이해.]신기하게도 동국의 도사들은 종이인형을 내던지더니 그것을 실체화시켜 꼭두각시를 부려 싸웠다.
“동국은 괴뢰술과 강시술이 특출하다고 알고 있습죠. 아마 해족과의 사투가 잦은 이유도 있고, 동국 전체가 사기로 휩싸이다 보니 그런 것이지요. 그래서 괴뢰술과 강시술이 진보한 것입니다.”
이건 또 놀라운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괴기한 통술이 많습니다. 수백 년 전에는 제국이라 불리던 동국의 나라 중 하나가 괴뢰술사의 심기를 건드려 나라가 통째로 증발한 일도 있다고 하더군요.”
산군은 동국에 관한 이야기를 잘 알지 못했다. 산해발산고에서도 잘 나와 있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흥미로운 눈으로 그들의 비무를 지켜보았다.
그때였다.
순간 회장 전역에 심상찮은 영기의 기운이 휘몰아쳤다.
그러자 비무를 지켜보던 각 문파의 문주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제를 펼쳐라!!”
동시에 객석이 어수선해지며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객석에 자리하던 삿갓을 쓴 흑의인들이 둔광을 빛내며 솟구쳤기 때문!
쿠구궁!
뜬금없는 난입자의 등장에 대회장의 주변으로 둥그런 금제가 펼쳐졌다.
녹색의 원형 금제였다.
“흥, 쓸데없는 짓을.”
여인의 음색이었다.
회장을 감싸는 금제가 펼쳐졌으나, 그런 금제를 비웃기라도 하듯 흑의인 중 하나가 품에서 보석을 내던졌다.
푸른빛이 유려한 청석이었다.
청석이 찬란히 빛나자 그 속에서 몸을 말고 있던 교룡이 나타났다.
길이가 무려 백 장이 훌쩍 넘었다.
그 교룡은 곧장 쌍각부호가 있던 우리를 아가리를 벌려 물고 달아났다.
“쫓아라!”
“뭣 하고 있는 것이야!”
한바탕 난리가 났다.
비무를 준비하던 도사들은 곧장 흑의인을 공격했다.
객석에서 구경하던 도사들은 겁에 질려 도망치려 안달이었다.
그런 아비규환 속에서.
교룡의 아가리에 있던 쌍각부호.
산군은 우리 안에 갇힌 채로 얼빠진 얼굴로 헛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