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14)
낭선기환담-113화(114/600)
낭선기환담 – 113화
“우와아아악! 사, 살려주십시오!! 으아아아아아악!! 우웩!”
교룡의 격한 움직임에 만호가 호들갑을 떨어대며 난리를 피웠다.
산군은 미간을 좁히고 상황파악에 나섰다. 갑자기 나타난 흑의인들.
그들은 모두 환선 수준의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 그 수가 열 셋.
하지만 산군은 이내 심드렁한 낯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상관없나.’
그들이 누구든지.
어떤 목적을 가졌는지.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
‘어차피 내 적이니.’
쾅! 콰아앙!
굉음이 난무하고, 오묘한 신통의 기류가 부딪쳐 빛이 번쩍거렸다.
“네놈들은 누구냐!”
흑의인에 맞서는 환선들은 정체를 물었으나 그들은 묵묵부답.
안되겠다 싶었는지 도사들 중 하나가 교룡을 향해 손짓했다.
“저놈부터 저지합시다! 놈들의 목적은 쌍각부호요! 교룡을 잡으면 놈들은 독안에 든 생쥐꼴이나 다름없소!!”
그러자 도사들이 눈을 부릅떴다.
금제를 깨부수던 교룡의 몸이 순간 우뚝 멈춰졌다. 이내 온몸이 부풀어 오르고 기괴한 신음성이 메아리쳤다.
도사들이 움찔하던 그때.
펑!
교룡의 몸이 터졌다.
이내 시꺼먼 귀무가 일대에 퍼지며 그 사이로 작은 인영이 솟아올랐다.
날카로운 눈매의 소녀가 대도를 손에 쥐고 있는 게 아닌가!
갑작스러운 이변에 어안이 벙벙하던 도사들은 몸을 흠칫 떨었다.
[죽여라.]살기 짙은 음성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허공에 떠 있는 채로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쌍각부호가 있었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소녀가 구환도를 높이 들며 섬뜩한 미소를 흘렸다.
이내 귀무가 순식간에 대회장을 뒤덮으며 칠흑같은 암흑을 선사했다.
“크아아악!!”
그때였다.
돌연 귀무 속에서 나타난 온갖 해괴한 귀신들이 도사들을 무참하게 살육하기 시작했다.
귀신들 절반이 거대한 해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온갖 교룡들과 고래와 새우 등등, 기괴한 해수들의 총집합이었다.
귀신으로 변한 해수들이 귀무 속을 헤엄치며 달려들자 도사들은 보패 한번 꺼내들지 못하고 그대로 죽어 나갔다.
“이럴 수가….”
해눈파의 홍 장로가 탄식했다.
하리산맥의 모든 도사가 모여 있는 자리다. 그들 전부가 귀신들에게 도륙당하니 어찌 참담하지 않을까.
“그, 금제를 금제를 해제해!!”
후고파의 설 장로였다.
머리는 산발이 되었고, 옷가지는 여기저기가 찢겨나간 채였다.
그의 뒤에는 후고파의 어린 문주가 새하얗게 질린 낯으로 떨고 있었다.
“홍 장로! 금제를 해제해야 하오! 그래야만 살 수 있네!”
하지만 홍 장로는 고개를 저었다.
영문을 몰라 인상을 구긴 설 장로가 무어라 하려는 찰나.
홍 장로가 슬며시 손을 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
그곳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귀무 속에서 거대한 몸체의 무언가가 뱀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뭣!”
콰차창!!
둥그런 금제가 손쉽게 박살났다.
조각난 금제가 떨어져 내렸다.
설 장로는 후고보를 감싸 안고 푸른 빛줄기로 화해 솟아올랐다.
하지만 이내 멈출 수밖에 없었는데, 사방 천지에 흑실이 거미줄처럼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대체…!”
흑실을 경계한 설 장로가 멈춰 섰다.
그의 뒤로 도사 한명이 괴성을 지르며 흑실로 돌진했다.
“으아아악!!”
사사삭.
섬뜩한 소음과 함께 흑실에 닿았던 도사가 조각조각 나 떨어져 내렸다.
꿀꺽.
설 장로의 목울대가 고저를 그렸다.
그제야 밑을 응시한 설 장로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백 장에 이르는 거대한 지네 영충이 대회장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네의 숨결에 주변의 지형지물이 모두 녹아내리고 있었다.
금제가 없으나 도망칠 수 없었다.
사방이 흑실의 거미줄이다.
안쪽은 또 어떻던가.
귀무 속의 귀신들이 살육을 벌이고, 거대한 악귀의 모습으로 장난치듯 도사들을 죽이고 있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거대 악귀는 뭉쳐있는 도사들을 주먹으로 짓뭉갰다.
설 장로는 초연한 낯으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곳에는 쌍각부호가 심드렁한 낯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줄곧 놀아나고 있었구나.”
처음부터 계획된 거였다.
애초에 뜬금없는 비무 대회였다.
도사들은 모두 쌍각부호를 노렸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생각지 못했다.
쌍각부호도 자신들을 노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 * *
산군은 죽어가는 이들을 내려다보며 냉소했다.
그들을 하나같이 죽기 직전, 하늘에 떠있는 자신을 보며 죽어갔다.
이전과는 다른 눈빛이었다.
탐욕으로 점철된 눈과는 사뭇 다른, 두려움과 분노에 잡힌 눈이다.
참으로 우스웠다.
[영약 쳐다보듯 보더니, 웃기는군.]귀율은 영성이 생긴 후, 산군이 조종할 필요가 없는 강시가 됐다.
탐화는 어째서인지 자신의 대한 호의가 가득한 놈이었다.
그렇기에 둘을 이용하는 것에는 영력을 소비할 필요가 없다.
산군 자체가 내상을 입어 힘을 부릴 수 없다 해도, 이 둘만 있다면 무서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귀율과 구환도가 잘 맞는군.’
어쩌면 산군보다 구환도를 더 잘 다루는 듯했다.
사기를 다루기 때문일까.
이대로 귀율에게 구환도를 넘겨주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이제는 저놈들인가.’
흑의인 무리.
소문이 널리도 퍼진 모양이다.
쌍각부호가 뭐라고 이렇게 다들 안달인지 원.
어렵사리 귀신들을 막아내는 흑의인들을 보던 산군의 눈이 빛났다.
“하압!!”
흑의인 중 하나가 수결을 맺고 기함성을 터트리자, 다른 흑의인들이 동시에 주술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돌연 공간이 일렁이더니 주변의 풍경이 바뀌고 있었다.
‘환계!’
한데 조금 이상했다.
환진패를 꺼내든 것도 아닌데, 환계가 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산군은 개의치 않았다.
환계를 펼친다 한들, 일대를 장악한 귀무를 어쩌지는 못할 것이니.
때마침 귀율이 나타나 흑의인을 향해 구환도를 들어올렸다.
‘죽겠네.’
목신통의 환선은 확보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결코 살아남지 못하리라.
그때였다.
돌연 귀율의 움직임이 멈췄다.
아니, 이내 기괴하게 머리를 움직이고 손발이 각기 다르게 움직이더니 지면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다른 귀신들도 마찬가지.
마치 손발이 바뀌기라도 한 듯,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졌다.
그 모습에 산군이 눈썹을 끌어올리려는 찰나.
‘응?’
눈썹을 움직였는데 돌연 꼬리가 움직였다. 뭐지 싶어 몸을 움직였다.
앞발을 움직이니 귀가 움직이고, 다리를 들어 올리려니 앞다리가 굽혀졌다.
‘이게 무슨….’
참으로 괴상한 환진이었다.
귀율은 지면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당황한 모양인지 기괴한 움직임으로 애벌레마냥 꿈틀거렸다.
살아남은 도사들 또한 다르지 않다.
보통의 도사라면 저 환계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다.
‘보통 도사라면 말이지.’
산군은 곧장 탐화를 불렀다.
쿠구궁!
탐화도 별반 다르지 않은 듯했으나, 그 크기가 삼백 장이 넘는 영충이다.
조금 뒹구는 것만으로도 환계를 다 부숴버리리라.
콰앙!!
아니나 다를까 탐화가 온몸을 비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몸으로 난장판을 만드니 천지가 뒤척이는 듯했다. 도사들의 힘으로 만든 거대한 대회장이 쩌저적 갈라져 부서져 내렸다.
파파파파팟!
흑실 수백 개가 난사됐다.
난사된 수백 개의 흑실이 사방 천지로 솟구쳐 도사들은 물론이요, 흑의인 몇의 몸체를 꿰뚫었다.
콰다다당!!
대회를 위해 만들었던 암벽이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때 탐화의 몸에서 시꺼먼 연기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하후미농의 담즙이었다.
“꺄악!”
그러자 풍경이 원래대로 돌아온다.
탐화의 난동에 거대한 암벽으로 이루어진 기둥이 반파되었다.
곧게 뻗어있던 기둥은 그대로 지면으로 떨어져 내려 그대로 와해되었다.
콰가가가강!!
모래구름이 형성되어 주변을 자욱하게 가렸다.
산군은 유유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흙먼지 속에는 하나의 인영이 주저앉아 거센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담즙에 당했는지 흑의인의 옷자락이 녹아들었고, 삿갓은 온데간데없었다.
흙먼지가 걷히자 놈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흙먼지를 뒤집어썼으나 찰랑이는 금색의 머리칼과 금빛으로 빛나는 눈이 평범한 외모는 아니었다.
[설마….]산군의 미간이 좁혀졌다.
금발에 금안.
흔치 않은 외양이다.
그리고 산군은 그런 용모의 여인을 하나 알고 있었다.
조금 놀란 산군이 인간으로 둔갑하여 귀율과 탐화를 멈춰 세웠다.
쿠구궁!
떨어져 내리는 암벽의 굉음.
그 속에서 한발 한발 내디뎠다.
아우성치는 귀신들 속을 유유히 걸어 나가자, 주저 앉아있는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이를 짓씹은 채 산군을 노려보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 공자님?”
“넌… 금매가 아니더냐.”
그녀는 만변각귀의 혼아혈.
금은자매 중, 금매였다.
* * *
쿠웅!
부서져 내리는 비무 대회장을 뒤로 한 산군은 반가운 기색으로 금매와 마주보고 있었다.
“네가 어찌 여기 있느냐.”
“공자님은요? 어, 어쩌다 여기에… 그리고 그 모습은….”
그러고 보니 금매는 산군이 영수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산군이 아차싶어 입을 다물자 금매가 혼란스러운 눈빛을 흘렸다.
“공자께서 쌍각부호셨습니까?”
산군은 잠시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주억였다. 딱히 밝히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으나 이제와 어쩌겠는가.
“이, 이게 어찌 된… 아, 아니… 공자께서 쌍각부호라니….”
동요하는 안색이었다.
그녀의 금안이 산군을 차마 쳐다보지 못하고 쉴 새 없이 깜빡였다.
그녀의 손이 주먹을 쥐었다폈다를 반복하며 고민하는 듯 했다.
번민하는 모습이었다.
산군은 말없이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고는 입을 열었다.
“아쉽게 됐구나. 너 또한 내 뿔이 탐이 나 그러했을 텐데.”
“아, 아닙니다! 공자께서 쌍각부호라는 것을 알았다면….”
아연실색한 그녀의 표정을 보자 산군이 진득한 미소를 흘렸다.
“농이 짓궂으십니다.”
농담한 것이라 알았는지 한쪽 볼을 부풀리며 새초롬한 표정을 짓는다.
원하던 반응이었는지 산군이 웃음보를 터트리며 답했다.
“하하, 오랜만에 봐 반가워 그러는 것이니 노여워 말게. 그건 그렇고….”
산군은 주위를 둘러보다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눌 자리는 아닌 듯싶군. 난 이곳을 정리해야 하니, 금 사매는 물러나 주시겠는가?”
“금 사매요? 하핫, 옛 생각이 나네요…. 그때로부터 50년이 지났는데….”
수월 산맥에서 한수 놈을 속여먹을 때 사용했던 칭호를 사용하자 금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 말이 없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답했다.
“알겠습니다! 공자께는 마음의 빚이 많으니 물러나지요. 이것을 드리면 오시는 데 불편함은 없을 겁니다.”
“이건….”
“제 꼭두각시 중 하나입니다. 녀석이 길을 알려줄 테니 용무를 마치시면 제게 들려주세요!”
주술문자가 빼곡히 적혀있는 종이 인형이었다. 그녀의 꼭두각시이리라.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금빛을 뿌리며 하늘로 솟구친 그녀는 이내 하늘을 가로지르며 사라졌다.
잠시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보던 산군은 참혹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제 정리해야겠군.”
이 와중에도 살아남은 도사들이 있기는 했으나 그들은 탐화와 귀율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렇게 일곱 문파의 도사들 대부분을 죽여 버린 산군은 유유히 사라졌다.
잠시 뒤.
그가 사라진 대회장.
돌연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산발이 된 노인과 앳된 여인 하나가 나타나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괜찮으십니까?”
“괘, 괜찮습니다….”
후고파의 설 장로와 후고보였다.
“전 문주께서 남겨주신 보물이 아니었다면 저희도 이리 살아남지는 못했겠지요…. 하, 어찌 이런 일이….”
어린 문주는 아직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듯 어버버거렸다.
설 장로는 측은하게 바라보다 이내 후고보를 일으켜 세웠다.
“아직 놈이 근처에 있을 겁니다. 놈이 하리산맥의 일곱 문파를 전부 불러 모은 것은 모종의 뜻이 있었을 터. 아쉽지만 저희는 놈의 힘에 대항할 세력도 힘도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도망쳐야 할 때입니다….”
“하, 하지만…! 놈이 만약 일곱 문파가 나눠 관리하던 경전을 얻기라도 한다면 만보시대부터 이어오던 선조의 유지를 잃어버리게 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설 장로는 묵묵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 한들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찾아가 그를 향해 살수라도 뻗어야 한단 말인가?
그럴 수 없다.
자신이라면 죽어도 그만이지만, 아직 약관의 나이에 이르지도 않은 어린 문주를 죽게 할 수는 없다.
지금은 참고 인내해야 할 때다.
숨죽이며 발톱을 갈아야 한다.
“나누어진 일곱 개의 경전 모두를 얻는다 하더라도 저희 또한 풀지 못한 선조의 비밀을 풀어낼 순 없겠지요. 그 안에 후인을 위한 대단한 보물을 두었다고는 하지만 이 날까지 열어보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그 탓에 하리산맥의 문파는 쇄락의 길을 걸었지요.”
“그렇다고는 하나…!”
“아무리 선조의 유지, 경전이 중요하다고는 하나 지금 막아서봤자 죽기 밖에 더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의 분노를 원동력 삼아 더 높은 경지를 이룩하시어 후일을 도모하심이 맞습니다.”
후고보는 주먹을 불끈 쥐며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깊은 숨을 내뿜었다.
“하아…. 어쩔 수 없지요. 놈 또한 경전의 비밀을 풀어내지 못할 테니 설 장로의 말대로 제가 힘을 키워 마땅히 돌려받아야 할 것입니다.”
“후미동천로(喉微洞穿路)는 몇 세대 동안 합일 되어 열린 적이 없으니 저희는 그동안 힘을 키워 다시금 문파를 일으켜야 할 것입니다!”
그 뒤.
설 장로와 후고보는 조용히 몸을 숨겼고, 또 다른 인영 둘이 허물어진 암벽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홍 장로와 해눈파의 하백이었다.
그들 또한 후고파와 다를 것 없이 분노하다 이내 조용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