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15)
낭선기환담-114화(115/600)
낭선기환담 – 114화
그 시각.
산군은 가장 가까운 후고파에 들려 들고 갈만한 물건은 죄다 챙기고 있는 중이었다.
“쓸만한 건 별로 없군.”
그나마 수확이라면 오래된 고서와 경전들이었고, 비축하고 있던 영석들이 대부분이었다.
보구들 또한 몇 개 있었으나 산군의 눈에 찰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다른 문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괴뢰술과 강시술에 관련된 경전을 몇 개 얻었으나 그것이 다였다.
“내상은 금세 치료할 수 있겠어.”
그나마 내상을 치료하는데 도움이 될 영초들이 있어 다행이었다. 그리고 사기를 영력으로 치환하는 경전들 또한 다수 확보했다. 이것으로 내상을 치료하는데 부족함은 없을 것이다.
일곱 문파를 모두 돌아 한 몫 톡톡히 챙긴 산군은 여러 물품을 정리하다가 찢겨진 경전 몇 개를 꺼내들었다.
모두 일곱 장으로 된 경전이었다.
오래된 경전으로 보였으나,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만 써져 있었다.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어 인상을 찡그리게만 했다.
“이게 뭔데 그렇게 엄중히 보관하고 있던 거지?”
해봉석까지 써가며 금제를 파해 얻어낸 경전이다.
다른 문파들 또한 한 조각씩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뭔가 엄청난 비밀이 있는 게 틀림 없었다.
“나중에 차분히 살펴보아야겠군.”
후에 살펴보아도 상관없을 것이다.
적당히 챙겼으니 이제 금매를 만나러 가야 할 때였다.
수월산맥에서 헤어지고 통 소식을 못들었는데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못다한 회포를 풀고 싶었다.
그녀는 벌써 환선의 경지에 있었으니 내상을 치료하는데 적당한 도움을 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저….”
흡족하고 있던 산군에게 만호 노인이 입을 열었다.
“뭐냐.”
“보잘 것 없는 몸이겠으나! 이 아랫것을 거두어 주신다면! 사유질병즉필약지(師有疾病卽必藥之)하여 모실 것이고, 온고지신(溫故知新)하여 하나의 가르침이라도 감사히 여길 테니 부디 절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지면과 하나가 되기라도 한 듯, 엎드린 모양새가 결심을 보여주는 듯했다.
“갑자기?”
하지만 뜬금없기도 했다.
조용히 따라오길래 무슨 생각을 하나 했더니….
“몸이 편찮으신데도 이런 강대한 힘을 부리시는 분이십니다! 어찌 도를 나아가는 자로서 감복하지 않을까요!! 게다가 상대를 쥐락펴락하는 심계 또한 대단하시니 스승으로 모시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나쁜 기분은 아니었으나 딱히 좋지도 않았다.
애초에 제자라고 한다면 백산을 지키고 있는 연아가 있다.
제자는 더 필요하지도 않다.
“내가 네놈을 제자로 들일 이유가 있는 것 같으냐?”
“제가 비록, 자질이 미천하기는 하나 누구보다 성심을 다하여 사부로 모실 것임은 의심치 않습니다!”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던 산군은 품에서 약병 몇 개를 꺼내 내려두었다.
도사들 공정강에 있던 것이다.
산군에게는 쓸모가 없기도 했고, 놈의 도움이 있기도 했으니 이것으로 인연을 마무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
금매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조금 더 데리고 있었겠으나 이제는 필요없다.
“약속했던 선단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난 제자가 필요치 않다.”
“하, 하인이라도 좋습니다! 육사의 뒷모습이라도 바라보게 해주십시오!”
하인이라….
잠시 고민을 거듭하던 산군이 여러 경전들과 통술서를 떠올리다 놈을 힐긋 바라보았다.
꽤 절박한 표정이 역력했다.
산군은 만호에게서 등을 돌린 후, 금매에게서 받은 꼭두각시를 내던졌다.
그러자 종이 인형이 부풀어 오르며 성숙한 여인네로 변모했다.
이내 따라오라는 듯 선녀처럼 하늘로 둥실 떠올라 솟구쳤다.
“마음대로 하거라.”
그리 말한 후 산군은 탐화의 등에 올라탔고, 만호도 헐레벌떡 올라탔다.
그렇게 한순간에 멸문지화를 당한 하리산맥의 문파를 뒤로 한 채, 산군 일행은 북쪽으로 나아갔다.
* * *
반나절을 꼭두각시만 따라가던 산군 일행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다른 곳보다 사기가 한층 짙은 귀산(鬼山) 꼭대기에 있는 누각이었다.
음산한 기운이 풀풀 풍기고, 초목대신 앙상한 나무만 자리한 곳이었다.
자세히 보니 나무도 하후미농의 안에서 보았던 시수목들이 대거 있었다.
“공자님!”
주변을 둘러보고 있자, 금매가 한걸음에 달려나와 그를 반겼다.
“이곳이 금 사매가 지내는 곳인가?”
“예, 임시로 지내는 곳이에요.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귀율과 탐화에게 주변에 있으라 한 뒤, 그녀를 따라 나섰다.
만호는 탐화와 귀율과 함께 있는 것이 무서웠는지 산군을 졸졸 쫓았다.
누각 안은 별다른 것이 없었다.
중간 중간 인간 형태의 꼭두각시들이 세워져 있었고, 많은 보패들이 지저분하게 널브러져 있을 뿐이었다.
“하하, 좀 지저분하지요?”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지 뭘.”
조금 창피하기는 했던 모양이다.
산군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작게 안도하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그나저나 네가 어찌 동국에 있는 것인가? 그때 폐관수련에서 나온 후, 은매와 함께 사라졌다는 말만 들었네. 혹시 핏줄과 관련된 것인가?”
금매는 싱긋 웃으며 긍정했다.
나이가 먹어 성숙한 여인의 모습이 되더니 풍기는 분위기가 요염해졌다.
“만변각귀의 후손인 저희는 인간과 귀신의 피가 흐르고 있지요. 덕분에 수행 또한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 탓에 이 먼 동국까지 오게 되었지요.”
반인반귀.
그녀의 체질을 생각하면 동국으로의 여정은 좋은 선택이다. 사기가 철철 흐르는 곳이니 그녀들에게는 적잖은 도움이 됐을 터. 그때로부터 겨우 50년 만에 환선에 올랐으니 왜 안 그럴까.
“한데, 어찌 숨기셨습니까? 쌍각부호라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공자를 구하러 가지 않았겠습니까. 서운합니다.”
“어쩌다 보니 그리 되었네. 알다시피 표적이 되기 쉬운 몸이 아닌가. 그러하니 너무 섭섭해 하지 말게.”
산군이 손사레를 치자 금매가 배시시 웃다가 서서히 표정을 굳혔다.
“계속 묻고 싶었습니다만, 공자께서는 지금 몸이 편찮으시지 않으신지요.”
“잘 맞췄네. 해수들과의 전투로 몸에 적잖은 내상을 입은 상태지. 그 탓에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보고만 있었지 않은가.”
“해수요? 설마 해족들을 학살하고 다니신 분이 공자셨습니까?”
숨길 것도 없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금매의 낯에 놀라움이 스쳤다.
“설마 그게 공자셨을 줄이야. 해족들을 단신으로 그리 죽이는 것은 태선이라 해도 쉽지 않을 겁니다!”
“덕분에 나도 죽을 뻔 했네.”
허심탄회하며 말하자 금매가 헛웃음을 머금었다.
“하기사, 공자는 남달랐지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만약 공자가 저를 알아보지 못하셨다면 그대로 죽은 목숨이었겠어요. 50년 전에도 그러셨지만 지금은 감히 따라잡을 수도 없을 힘을 가지게 되셨습니다.”
금매는 부럽다는 듯 은근히 말했다.
그도 그렇다.
50년 전에는 영명 육사에게 그리 호되게 당했었는데, 이제는 환선들을 쥐락펴락하며 모조리 몰살하니 당연했다.
해족들도 그렇고, 이번 하리산맥의 일곱 문파들 또한 그렇다.
모두 그의 손에 목숨을 빼앗겼다.
동급의 도사들을 쥐락펴락하며 죽일 수 있는 힘이라면 앞으로 그의 행보가 퍽 기대되기도 했다.
‘태선, 아니… 영겁에 오르시면 대체 얼마나 강해지시려는 건지.’
금매는 산군과의 인연을 다시 한번 복기하고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와의 인연이 아니었다면 자신 또한 한줌 핏물로 사라졌을 게 아니던가.
“하면 내상을 치료할 장소가 필요하시겠습니다. 이 귀산이 사기가 들끊기는 하나 진법을 이용한다면 공자께서 내상을 치료하기 좋은 영기가 솟아 올라 도움이 되겠지요. 어떠십니까?”
“그리해준다면 나야 고맙지. 안 그래도 낯선 땅에 당도해 조금 불안하던 차였는데 이리 금 소저를 만나니 한결 안심이 되는군!”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리 선뜻 나서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도 없다.
혹시 모를 위험을 방지할 수 있음은 물론, 상대의 호의를 받는다는 것이 오랜만이라 기분이 좋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산군은 편안한 기분으로 물었다.
“한데은 소저는 어디있는가?”
“…….”
순간 금매의 입이 굳게 닫혔다.
아미를 좁힌 그녀의 얼굴에 수심이 한가득 맺혔다.
눈가를 가늘게 뜬 산군은 짐짓 모르는 척 차를 들어 한 모금 마셨다.
한 식경이 흐른 뒤.
금매는 한숨을 내뱉고는 말했다.
“제… 아니, 저희 이야기를 들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자못 진지한 낯이었다.
고개를 돌려 만호를 돌아보았다.
만호는 눈치 좋게 고개를 주억이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시간은 넉넉하니 천천히 말해보게. 듣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으니까.”
그러자 금매는 넋두리 하듯 산군에게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쏟아냈다.
기울었던 해는 산 너머로 자취를 감췄고, 달이 하늘 높이 떠올랐다.
산군은 품에서 훌쩍거리는 금매를 안아들고 침소로 가 눕혔다.
이불을 덮어주고 밖으로 나오자, 만호가 누각 문 앞에 앉아 졸고 있었다.
앙상한 시수목의 가지 사이로 떠오른 달이 참으로 영롱했다.
보름달이었다.
여느때보다 달이 가까워 꼭 손에 잡힐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은소저가 혈(血)에 잡아먹혔다라….”
혼아혈들에게는 종종 있는 일이다.
인간과 영수의 피가 뒤섞인 자다.
어느 한쪽의 피가 치우쳐 몸에 변화가 생길 수 있는 것이 혼아혈이다.
게다가 금은자매는 만변각귀의 혼아.
반인반귀의 몸이다.
“몸이 귀신화되고 있으니 그것을 막으려면 꽤 진귀한 귀물이나 영약이 필요하겠지.”
그녀가 쌍각부호를 노린 것도 그러한 연유였을 터.
한줄기 희망을 가지고 그런 짓을 벌인 것이다. 산군 또한 돕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마땅한 방도가 떠오르는 것은 아니었다.
‘산해발산고에서도 자세한 내용은 나와 있지 않았으니 어떻게든 이겨내지 않을까 싶지만….’
자신으로 인해 여러 운명이 바뀌고 있는 시점이다.
막연히 확정짓기에는 불분명하다.
다행인 것은 귀신화의 진행을 멈추기 위해 은매를 봉인했다는 것일까.
‘한번 상태를 확인한 뒤에 고민해 볼 수밖에 없겠어.’
다음날.
금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귀산 주변에 진법을 설치했다.
산군이 내상을 치료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쳐놓은 상태였다.
“뒤집어진 기운이 한 곳으로 집중될 수 있게 해놓았으니 내상을 치료하는 기간이 반절은 줄어들 것입니다.”
사기를 영기로 바꾸는 진법에는 다량의 진귀한 귀물이 필요했다.
금매는 선뜻 귀물을 내놓았고, 산군이 얹어준 것으로 준비를 마쳤다.
이내 진법이 발동하자 귀산이 작게 흔들리며 진득한 사기가 영기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을씨년스러웠던 귀신의 기운이 사라지고 충만한 영기로 가득찼다.
백산에 비하면 볼품없는 영기였으나 이것으로도 충분했다.
산군은 그녀가 안배해준 수련실로 들어갔고, 만호는 그 옆에 작게 만들어진 밀실로 들어가 자리를 지켰다.
그가 들어간 후.
하리산맥의 문파가 멸문지화됐다는 흉문이 널리 퍼졌다.
그리고 그것이 멸종되었다던 쌍각부호가 일으킨 일이라는 이야기가 입소문을 타고 흘렀다.
그렇게.
3년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