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20)
낭선기환담-119화(120/600)
낭선기환담 – 119화
콰앙!
쿠우우웅!!
천지가 격하게 흔들렸다.
선도와 야천귀문의 신통 탓이었다.
하지만 야천귀문의 비고에 들어온 산군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나쁘지 않네.”
값진 영초와 귀물들은 물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경전들과 통술서들이 한 가득이었다.
야천귀문 역시 괴뢰술이나 강시술에 관한 경전들이 많았다.
산군은 적당히 귀해보이는 물건들을 쓸어담고 나가려던 참이었다.
“뭐냐.”
어느새 다가왔는지 귀율이 모습을 드러내고 벽 한쪽을 응시했다.
왜 저러나 싶어 미간을 좁히니, 귀율이 순간 주먹을 뻗었다.
쾅!
율의 주먹질에 한쪽 벽이 단숨에 부서져 내리고 또 다른 공간이 보였다.
은밀히 숨겨놓은 밀실이었다.
‘시간을 오래 끌면 안되는데….’
도사들이 여기까지 다가온다면 산군도 귀찮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귀율이 저리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또 처음이라 고민됐다.
산군은 잠시 셈을 해보고는 귀율의 뒤를 따랐다. 뭔지는 몰라도 귀율이 저리 흥분하고 있는 걸 보니 보통 물건은 아닐 것이다.
‘파천마격을 생각보다 더 빨리 흡수하고 있는 듯하군.’
전력에 보탬이 되니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귀율의 힘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강시가 주인보다 강해진다면 그 뒤의 말로는 뻔할 뻔자이니까.
‘탐화처럼 귀여운 녀석도 아니니….’
언제 산군의 뒷통수를 칠지 모르는 녀석이다. 날이 갈수록 힘이 증가할 테니 유심히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한참이나 묵묵히 길을 거닐던 율이 문득 멈춰섰다.
그리고는 산군을 가없이 바라봤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가벼운 금제는 아니네.”
이전에 주먹질로 찢어버렸던 금제들과는 조금 다른 종류였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대문처럼 생겼으나 이번 금제는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단령금정으로 살펴보자 생전 처음 보는 핏빛 문자들이 주위를 떠다녔다.
“흠….”
산군은 가만히 바라보다 품에서 비도 한 자루를 꺼내 날렸다.
쉭!
콰작!
날아간 비도는 문에 닿지도 못하고 비틀어지더니 핏빛 연기에 먹혔다.
가만히 바라보다 품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를 집어 던졌다. 온갖 금제를 파하는 데 해봉석만 한 것이 또 있겠는가! 이내 해봉석이 허공에서 부서져 내리고 영묘한 빛을 뿌려댔다.
파지지직!!
하지만 산군의 눈이 이내 동그랗게 떠졌다. 금제의 일종으로 보이던 핏빛 연기는 구름처럼 짙어져 해봉석을 삼켜버리고 자취를 감춘 것이다!
온갖 금제들을 파(破) 해주던 해봉석 또한 통하지 않는 금제라니!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사도술에 일종으로 보이는데… 네가 어찌할 수는 없겠더냐?”
끄덕.
귀율도 어쩌지 못한다라.
산군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벌려 푸른 화염을 방출했다.
봉악청화 속에서 봉황이 날개짓하며 나타나자 곧장 대문으로 쏘아졌다.
산군의 청봉이 대문으로 향하자 또다시 핏빛 연기가 뻗어왔다.
청봉이 그 앞에서 날개를 퍼득이더니 거센 청염을 일으켰다. 산군이 지닌 것과 같은 봉악청화였다. 하지만 핏빛 구름과 청염은 서로 비등한 듯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이내 괴상한 소음이 흘러나오며 핏빛 구름이 귀신의 형상을 가졌다.
금제의 기운이 더 거세지며 요란한 굉음을 뿌려대자, 산군도 미간을 좁히며 수결을 맺고 입을 달싹였다.
이내 그의 몸에서 찬란한 은빛이 뿜어내지기 시작했다.
항보사인검의 항마기(降魔氣)였다.
귀율은 그 즉시 산군에게서 멀찍이 떨어졌고, 산군은 항보사인검을 꺼내 핏빛구름을 향해 찔러 넣었다.
콰직!
우윳빛같은 기운이 흘러들어가자 대문이 요동치며 핏빛구름이 들쑥날쑥하며 난리를 쳐댔다.
때를 놓치지 않은 청봉이 사인검으로 들어가 청염을 불살랐다.
은빛과 청염이 뒤섞여 신묘하게 번쩍이자 핏빛 구름은 이내 힘을 잃은 듯 흩어지고 대문이 쩌적! 갈라졌다.
쾅!
대문을 발로 차버린 산군이 사인검을 회수했다. 청봉은 그의 어깨위에 앉아 부리로 깃털을 정리했다.
“이건… 억!”
대문 안의 것을 보고 눈가를 좁히던 산군을 밀치고 귀율이 달려 나갔다.
귀율의 앞에는 두 가지 물건이 공중에 둥둥 떠 있었는데, 하나는 찢겨진 종이쪼가리였고 나머지 하나는 사이한 기운이 물씬 풍겨지는 것이었다.
“혓바닥인가?”
검은 빛의 혀로 보였다.
길이가 긴 것인지 둥글게 말려 있었으나 분명히 짐승의 혀였다.
그것을 가져와 살펴보니 혀 안에는 흑색의 작은 조각상이 들어 있었다.
팔은 여덟이요, 눈은 여섯인 산양 머리를 한 법상이었다.
아주 정교해 금세라도 살아 움직일 것만 같은 물건이었다.
“불구대천마(佛仇大天魔)….”
산군은 이 조각상이 뜻하는 바를 알고 있었다.
“부처의 원수를 자처하는 마귀의 법상을 이곳에서 보게 될 줄이야….”
만지기도 싫은 물건이었다.
마도와 사도를 향하는 이들에겐 굉장히 유명한 마신으로써, 마기와 사기를 동시에 부리는 악독한 놈이다.
붕계와 사계를 제집 드나들 듯 왔다 갔다 하며 부처를 죽이기 위해 수행하는 놈이기에 퍽 잘 알고 있다.
본래는 평범한 법승이었으나 모종의 이유로 타락해 마귀가 되었다 한다.
그 이유까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어쨌거나 엮이고 싶지 않은 물건이다.
“이게 갖고 싶으냐?”
끄덕.
생전 본 적 없던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리 바라보니 어안이 벙벙했다.
감정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던 아이였거늘 이리 좋아할 줄이야….
이것을 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던 산군은 이내 순순히 내줬다.
‘내가 쓰지는 못하니 율이가 요긴하게 쓴다면 나쁠 것 없겠지.’
조금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아 있으나 금제를 더 견고하게 만들어두면 상관없을 것이다. 게다가 보통 물건이 아니다 보니, 연화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산군은 이내 신경을 끄고 종이 조각에 손을 뻗었다.
그것은 찢겨진 경전으로 보였는데, 알 수 없는 문자들 투성이었다.
쿠우웅!!
그때였다.
돌연 비고가 거칠게 요동쳤다.
바깥에서 일어난 굉음이 여기까지 여파가 뻗친 것이었다.
산군은 경전을 품에 넣고 둔술을 펼쳐 단숨에 비고를 벗어났다.
콰르릉!!
비고를 나오자 비구름이 만연하고 천둥번개가 요란했다.
“선도문의 태선이 넷….”
그리고 사도 태선이 하나.
야천귀문의 문주, 귀실귀주는 다른 태선들의 협공에 안 그래도 하얗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산군은 냉소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상황은 대충 정리되고 있었다.
귀실귀주는 선도문의 태선들이 알아서 해줄 것이고, 야천귀문의 도사들 또한 다를 것은 없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야천귀문의 도사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숫자부터가 다르니 멸문지화는 피할 수 없을 것이 자명했다.
야천귀산 전체가 도사들의 꼭두각시들로 만연해 온갖 굉음이 난무하니 장관이라면 장관이었다.
“주, 주인님!! 어디 갔다 이제 오십니까! 어서 모셔오라고 난리입니다!”
힐긋 고개를 돌리자 만호가 헐레벌떡 뛰어오며 소리쳤다.
“주인님이라고 부르지 마라, 이놈아. 소름끼치니까.”
다 늙은 노인네가 주인님이라 부르니 온몸에 닭살이 다 돋았다.
“그럴 때가 아닙니다! 다른 도사님들이 어서 모셔오라 성화입니다!”
“알았다. 알았어, 가자.”
산군은 귀율을 슬쩍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율은 새로 장만한 노리개를 얻은 여인네처럼 눈을 빛내며 신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율아 가자.”
그제야 고개를 들고 은술을 펼쳐 허공으로 모습을 감췄다.
산군은 그제서야 만호가 이끄는 곳으로 당도했다.
야천귀문의 상문 중, 은매가 봉인되어 있는 지하였다.
“공자님!”
“육사!”
“왔느냐.”
단번에 많은 이들이 반겼다.
표정은 제각각이었으나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분명해보였다.
“어디서 뭘 하고 있던 게냐.”
“그냥 뭐….”
산군은 슬쩍 둘러보고는 어떻게 된 일인지 단번에 파악했다.
“봉인술을 풀어내지 못한 겁니까?”
“예! 저희들로서는 역부족입니다! 이,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부적은 고사하고 침 하나도 돌덩이에 박힌 것 마냥 뽑히질 않습니다!”
묶여있던 쇠사슬은 제거됐다.
하지만 온몸에 붙어있는 부적들과 수천 개의 침들은 뽑아내지 못했다.
“태선들의 전투가 한창이고, 이곳 또한 선도와 사도의 전쟁이 만연하니 어떤 화를 당할지 모릅니다! 한시라도 빨리 언니를 빼내야…!”
게다가 이리 놔두면 시일이 지체되면 지체될수록 사귀화가 진행되니 하루빨리 봉인술을 풀어내야 했다.
“일단 진정하시게. 내가 볼 테니.”
단령금정으로 샅샅이 살펴보자 산군은 속으로 탄식을 자아냈다.
‘침 하나하나에 금제가 들어있다.’
해봉석으로는 해결하지 못한다.
박혀든 침의 숫자가 천이 넘어간다.
일일이 다 제거하다간 시간도 시간이지만 해봉석의 수량이 부족하다.
고심하던 산군은 이내 품에서 혜연회검을 꺼내 들었다.
“단령부터 빼낼 생각이십니까.”
장천이 물었으나 산군은 답하지 않고 검집을 은매의 뿔에 가져다댔다.
이내 오묘한 빛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짙은 혈향과 함께 핏빛 사기가 용솟음쳤다.
꼭 그녀의 단령을 구속하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산군이 가열차게 영력을 불어넣고 검집을 잡아채자 그녀의 단령이 빠져나왔다.
단숨에 단령이 혜연회검으로 들어가자 금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 단령은 무사하군. 그녀의 육신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몸속의 혈을 흩어버리고 정양하면 나아질 것이니 염려치 말게.”
“봉인술은 어쩝니까?”
“야천귀문의 비고에서 이와 비슷한 비술이 적힌 경전을 보았네. 운이 좋다면 시일을 들여 내가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운이 나쁘다면 새로운 육신을 구해야겠지.”
“선도문의 태선들에게 자문을 구해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장천다운 말이었다.
그리고 택도 없는 소리였다.
저들이 정의감에 휩쌓여 야천귀문을 쳤겠는가?
아니다.
그저 명분을 잡았기 때문이다.
“은 소저는 사도에 귀의한 몸이네. 사정이 딱하다 한들, 선도를 걷는 이들이 도와줄지는 조금 의문이로군.”
게다가 금은자매는 야천귀문의 사람이다. 사정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 하여 그들이 도와줄 의무는 없다.
이번 기회에 사도들을 전부 몰아낼 생각일지도 모른다.
심성이 선하다 해도, 대의를 앞에 두면 어찌 변할지 모르는 것이 사람이고, 그보다 더한 것이 도사라는 것들이다.
“육사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는 할 수 없으나 노괴들 속이 어쩔지는 모르는 법이지! 괜한 부탁을 했다가 도리어 발목을 잡힐지도 모르는 법!”
촉만대인까지 그리 말하자 장천은 입을 달싹이다 침묵했다.
산군은 왼팔에 감겨있는 탐화를 툭툭 건드렸다. 그러자 탐화의 입에서 검은 실 다발이 뿜어져 은매의 몸을 고치처럼 만들었다.
그것을 공정강에 넣은 산군은 모두와 함께 지상으로 올라갔다.
콰과광!!
하늘이 두 쪽 날 것 같은 태선들의 신통에 태풍이 몰아치고 경천동지할 굉음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아직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보기만 해도 개안할 만한 신통들의 난무였으나 지금은 몸을 피할 때였다. 괜히 놈들의 눈에 들어 화를 당할 수도 있지 않던가.
잠시 뒤.
야천귀산에서는 푸른 둔광을 빛내는 마차 하나가 유유히 빠져나갔다.
그로부터 한 시진이 흐르고 나서야 태선들의 싸움이 끝이 났다.
적잖은 시간이 소요됐으나 태선 하나를 죽이는 일은 녹록치 않았다.
귀실귀주는 온갖 비술에 정통해 시간을 끌다 화령을 조각조각으로 나누어 분혼을 만들어 달아났다.
대부분의 분혼을 멸했으나 두 개의 분혼은 놓치고 말했다.
“귀실 놈의 신통이 생각보다 더 대단했습니다. 화령을 갈라버리는 신통을 부릴 줄이야!”
“어쩔 수 없지요. 솔직히 놈의 경지가 지선을 목전에 두지 않았습니까. 저희에게 큰 피해가 없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지요.”
태선들이 아쉽다는 듯 넋두리를 내뱉을 때, 그들의 곁으로 환선 하나가 날아왔다.
“크,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호들갑이냐.”
“지, 지금 해족 놈들이 서쪽으로 침입해 단숨에 도격으로 향하고 있다는 급보입니다!”
“무어라?!”
“그, 그뿐만이 아닙니다! 놈들은 신단수로 만든 비승선을 타고 거대 진법을 펼치니 도사들이 족족 죽어나가고 있다 합니다!!”
그러자 태선들의 안색이 급변했다.
신단수로 만든 비승선이라니!
하지만 환선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신도 조금 의아한 낯으로 눈치를 살펴가며 말했다.
“비승선의 해족이 말하기를, 지네를 복충으로 부리고 위주호연갑을 펼치는 도사를 데려오라고 하고 있습니다. 또 놈의 용모파기와 신통들을 알려주고는 사흘 내로 찾아오지 않으면 동국 자체를 지워버릴 거라고….”
태선들은 곧장 환선이 들고 있는 용모파기를 빼앗아 보았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맞추기라도 한 듯 똑같았다.
“…이놈이 누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