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21)
낭선기환담-120화(121/600)
낭선기환담 – 120화
한달 뒤.
동국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섬.
그곳에서는 사내 셋과 여인 둘이 마주 앉아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바닥에는 빽빽한 주술 문자가 그려져 있었고, 그 중앙에는 부적과 수천의 침이 박혀있는 여인이 있었다.
당연히 그들은 동국을 빠져나온 산군과 그 일행들이었다.
처음에는 야천귀문에서 멀리 달아날 셈이었으나 해족이 침공한 것을 깨닫고 급히 북쪽으로 달아났다.
그 직후, 야천귀문에서 가져온 경전들과 통술서들을 탐독하여 봉인술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애초에 이것은 봉인술도 아니었다.
강제적으로 혼아의 혈을 깨워 사귀화를 촉진 시키는 개변술(改變術)의 일종이었다.
산군은 그 해제법을 오래 지나지 않아 찾아냈고, 이제 막바지에 들었다.
쿵!
바닥의 진법이 사이하게 빛나고 중심에 있는 은매의 육신이 진동했다.
쿠웅!
영기가 박동하기라도 한 듯 충격파가 일어나고 몸에 박힌 침들이 갈대처럼 흔들렸다.
효과가 있자 산군은 재빠르게 수결을 맺어 바닥을 내리쳤다.
쿵!!
그러자 은매의 몸에 박혔던 침들이 거칠게 요동치다 사방으로 튀었다!!
수천 개의 침들이 빠져나가 허물어지자 막혀있던 진득한 사기가 은매의 몸에서 스멀스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아직이다.
산군은 입을 벌려 청봉을 불러냈다.
청염을 뿌리며 날갯짓하던 청봉은 이내 은매에게 날아갔다.
청봉이 주위를 재빠르게 돌자 청염이 솟구쳐 몸에 붙어있던 부적을 태우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움찔.
은매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산군은 곧장 수결을 맺었다.
이내 그의 몸이 부풀어 오르며 호랑이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회천각고 2성, 각체용손이었다.
본래보다 더 우람한 모습의 산군이 앞발로 은매를 찍어 눌렀다.
“키아아아아아!!”
그러자 은매의 입에서 귀신의 귀곡성이 터져 나왔다. 몸을 차지한 혈이 자아내는 목소리였다.
산군은 이내 은빛 항마기를 방출하며 놈을 억압했다. 그러자 사귀는 치를 떨며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지금!]가부좌를 튼 일행들이 동시에 기함성을 질러대자, 진법에서 새까만 촉수들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촉수들은 이내 은매에게 떨어져 내렸고, 산군이 비켜서자 그녀를 옭아매어 꽁꽁 묶었다.
산군은 다시금 인간으로 둔갑해 품에서 검집 하나를 꺼냈다.
혜연회검이었다.
빽빽 소리를 질러대는 은매의 이마에 검집을 툭 건드렸다.
그러자 신묘한 빛이 흘러나오며 검집에 있던 단령이 흘러갔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괴성을 질러대던 육신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제야 산군은 한시름 놓았다는 듯 깊은 숨을 내뱉었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네. 나머지는 은 소저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지.”
금매는 그윽한 눈으로 산군을 바라보며 감사 인사를 바쳤다.
괜찮다는 듯 손사래 치며 촉만대인을 바라보자 고개를 주억인다.
“갈 것이냐.”
“지금도 많이 지체됐습니다.”
대강의 일은 다 마쳤다.
이제는 정말 떠나야 할 때이다.
“벌써 가는 것입니까. 언니가 깨어나는 것도 보지 않으시고요….”
퍽 애처로운 눈빛이었으나 산군은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은매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가고 싶었으나 언제 깨어날지는 미지수다.
아쉽지만 떠나는 것이 맞다.
“인연이 있다면 또 보겠지.”
금매는 한참을 입을 달싹이다가 품에서 붉은 옥갑 하나를 꺼냈다.
“화신통을 수련하시는 공자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냉큼 받아든 산군은 신식으로 안을 살펴보고 조금 놀랐다.
“언니의 사귀화를 막아보려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다 우연찮게 구했던 것입니다.”
“두련마화(頭蓮摩火)!”
옥갑을 열어본 산군은 화들짝 놀라며 감탄했다.
화교룡 중 머리 위에 연꽃을 올려두는 영수가 두련마화다.
희귀하기도 희귀하고, 둔술이 극히 빨라 잡기도 어려운 영수 중 하나다.
게다가 극렬한 용암지대에 서식해 용암 속을 종횡무진하며 쫓지 않는 이상은 극히 잡기 어려운 녀석이다.
지성이 꽃피지 않아 육사로 오르지는 못하지만, 그 대신이라 말할 정도로 고강한 신통을 지닌 교룡.
그 두련마화의 연꽃을 달여 먹으면 영기의 정순함은 두말할 것 없고, 화염에 더욱 친숙해져 강력한 화기를 다룰 수 있다고 하니 산군에게 이만한 선물이 또 없었다.
두련마화가 만년을 묵으면 화염의 성질이 다르게 바뀐다고도 한다.
어찌 변하게 될지는 하늘에 달렸으나 먹어도 좋고 키워도 좋은 게 바로 두련마화의 연꽃이었다.
‘경전에서도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 했었는데 이리 구할 줄이야.’
산군은 기쁘게 옥갑 속에서 두련마화를 꺼내 허공에 띄웠다.
연꽃은 피어나지 않고 봉우리처럼 굳게 닫혀있었다.
통결을 외우며 손가락을 튕기자 연꽃이 서서히 벌어졌다.
만개하는 연꽃은 활화산이 용암을 분출하듯 금색 화염을 뿜어냈다.
그때였다.
산군의 청봉이 날갯짓하며 두련마화로 달려드는 게 아닌가!
이내 부리를 벌려 금색 화염을 빨아들이더니 두련마화 위에 안착했다.
그러자 서서히 신형이 불분명해지더니 그 속으로 스며들어버렸다.
“…….”
금매와 산군은 순간 머리가 멍했다.
미처 막을 새도 없이 일이 벌어지자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한동안 말이 없던 산군은 정신을 차리고 중얼거렸다.
“제 집으로 삼은 것 같군….”
정답이라는 듯 두련마화에서 청염과 금염이 치솟았다.
둘이 만나 영롱한 비취색 화염이 되니 자못 아름답기까지 했다.
“고맙네. 적잖이 도움이 되겠어.”
“그,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금매는 당황한 얼굴을 감추고 이내 환한 미소를 내보였다.
산군은 금매와 작별인사를 하고는 주변에 흐드러진 침들을 보다 품에서 죽통 하나를 꺼내 들었다.
흑의인을 잡고 얻은 죽통이었다.
죽통 마개를 열자 사방으로 흩어졌던 침들이 그 속으로 거두어졌다.
그 뒤, 산군은 일행들을 이끌고 사라졌고 금매는 그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절을 했다.
* * *
그 시각 동국은 시산혈해가 펼쳐져 있었는데, 비승선을 이끌고 공격한 해족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단수 자체가 온갖 속성의 신통을 다양하게 받아들이는 신목이다.
그것으로 비승선을 만들었으니 웬만한 공격은 통하지도 않았다.
동국의 도사들 수천이 나섰지만 결국 막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동국의 고계 도사들은 죄다 자취를 감춰버렸고, 결국 동국은 해족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만족할 수 없었는데, 동국은 점령했으나 그들이 찾던 도사는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동해의 삼대해족들 대다수가 그 도사 하나에게 바다의 핏물로 변했다.
도저히 원수를 갚지 않고서는 성미가 차지 않음이 당연했다.
“동국을 이 잡듯 뒤졌는데도 나오지 않는다니… 이미 이곳을 떠난 게 아닌가 싶소!”
동해삼왕 중 하나인 도극경족의 왕.
극총령왕(戟總靈王)이었다.
“나 같아도 진즉 도망갔을 것이오.”
그 옆에는 온몸이 비늘로 뒤덮인 괴인이 있었는데, 그가 교족의 왕인 교총령왕(鮫總靈王)이었다.
“놈의 잔혹한 손속에 해족의 피가 동해를 붉게 물들였소.”
마지막으로 해룡족의 왕.
해총령왕이 한껏 화를 억누르며 부들부들 떨었다.
삼대해족 모두가 적잖은 피해를 입었으나 가장 지대한 피를 흘린 것이 다름 아닌 해룡족이다.
두 아들을 잃었고, 천에 가까운 육사들을 잃었으니 왜 안 그럴까.
그러나 그들은 동해삼왕.
영명 하나를 쫓기에는 시간이 없다.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 해룡족의 대장로를 보내기로 했다.
그들 다음으로 경지가 높은 영겁 중경의 육사이니 부족함이 없을 터.
고작해야 영명을 잡지 못하겠는가.
이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동해 삼왕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 * *
동국에서 동쪽으로 만 리.
그곳에는 두 남녀가 한창 티격태격하며 다투고 있었다.
미부인의 손에는 부적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항아리를 들고 있었는데, 그들은 이전 귀실귀주와 친분이 있던 사도문의 문주.
곽리귀주와 완안귀주였다.
“신세 한번 초라해졌군. 그러게 바로 구하러 가자고 하지 않았소! 귀실귀주는 물론, 본문 제자들 또한 모조리 죽어버리지 않았소!”
“흥! 그때 갔다고 해도 달라질 것이 뭐 있었겠습니까. 해족들의 습격에 동국의 태선들도 적잖이 죽었습니다. 우리라도 사지 멀쩡하니 다행으로 아셔야 하시지 않을까요? 귀실의 분혼이라도 찾았으니 다행인 겁니다.”
완안귀주는 항아리를 애틋하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머지 분혼들을 모조리 잃어버렸지만 그나마 두 개의 분혼을 찾았으니 수명이 허락하는 한 300년 내로는 회복이 가능할 겁니다.”
완안은 품에서 돌돌 말린 용모파기를 펼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놈이 귀실을 그 꼴로 만든 장본인이라고 하더군요. 야천귀문의 장로 중 하나가 제게 이것을 주며 명을 달리했습니다.”
“고놈 참 기생오라비처럼 곱상하게도 생겼구먼. 할 일도 없는데 이놈이나 찾아놔야겠다.”
용모파기에 그려진 얼굴은 다름 아닌 산군의 것이었다.
“귀실이 이리 됐으니 우리도 300년간은 쥐죽은 듯 수행이나 해야겠군. 아, 그거 들었나? 야천귀문을 친 선도문 도사들도 해족들의 습격에 꽁지 빠지게 도망쳤다는군, 하하핫!”
“그게 뭐요. 우리도 똑같은 처지이거늘 뭐가 우습다는 겁니까.”
“사람 참… 더럽게 야박하긴.”
곽리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리 앞뒤가 꽉 막혔으니 여태껏 배필 하나 구하지 못했지.
“뭐요? 죽고 싶다는 말씀입니까?”
“뭣구녕엔 뭐만 들린다더니.”
피식 웃은 완안은 조용히 항아리를 내려놓고 지팡이를 꺼냈다.
“그래요, 기분도 뭣같은데 오늘 한 번 끝을 봅시다. 내 몸에 구멍이 좀 많은데 어떤 구멍을 말하는 건지 한 번 보자고 이 영감탱이야!!”
콰앙!!
* * *
그로부터 1년 뒤.
대서양(大西洋)을 가로지르는 마차 하나가 둔광을 쉼 없이 흩뿌렸다.
“아직 입니까?!”
“이제 거의 다 왔네! 조금만 더 가면 된다네!”
마차를 타고 있는 이들은 산군 일행으로 그들의 표정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산군 또한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불길한 자색 빛줄기가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염병.”
한동안은 촉만대인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귀수산의 행방을 좇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를 쫓고 있는 거대한 기운을 느꼈고, 알고 보니 그가 해룡족의 대장로 지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보름 전.
지충과의 거리가 급속도로 좁혀졌고 산군은 죽을힘을 다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놈의 추적술이 대단한 모양인지 명은술 또한 통하지 않았고, 산군은 촉만대인만 믿고 달아나고 있는 상태였다.
“이제 다 왔어! 저곳이네!”
촉만대인은 어떤 비술로 인해 귀수산의 위치를 알 수 있었는데,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절대 알려주지 않았다.
아무튼 산군은 촉만대인이 가리킨 방향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곳은 온갖 폭풍우와 소용돌이가 샘솟는 곳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당장 뒤에서 눈에 불을 켜고 쫓아오는 영겁 육사가 있는데!
영겁 초경이면 모를까 중경의 경지에 속한 지충 대장로이다.
도망치는 게 상책이다.
산군은 눈을 질끈 감고 기령차를 몰아 폭풍우 속으로 뛰어 들었다.
잠시 뒤.
자색 둔광을 거둔 지충 장로는 수십 개의 소용돌이가 하늘로 치솟고, 칠흑 같은 먹구름이 일대에 깔린 곳을 보며 안색을 굳혔다.
심상치 않은 흉폭한 천지원기였으며 공간조차 때때로 비틀리는 곳이었다.
“하필이면 곡공삼각주(曲空三角洲)로 도망칠 생각을 하다니…!”
지충의 수심이 깊어졌으나 이내 마음을 다잡은 듯 폭풍우 속으로 둔광을 뿌리며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