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22)
낭선기환담-121화(122/600)
낭선기환담 – 121화
쿠르르릉!
심기가 불편하다는 듯 천둥번개가 요란했다. 기령차에 올라탄 인원들은 모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만호는 당연했고, 촉문경과 장천 또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곡공삼각주라니….”
촉만대인이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산군의 안색 또한 어두웠다.
“곡공삼각주가 무엇입니까…?”
만호가 겁에 질린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산군이 침음을 삼키며 오랜 기억을 떠올리듯 입을 열었다.
“시간과 공간이 비틀려져 있는 불안정한 삼각지대를 뜻한다.”
“시간과 공간이요?”
“그래. 예전… 내가 아는 재수 없는 놈이 이곳에 들어왔다가 10년 정도 헤맸는데 천운이 닿았는지 겨우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지. 그런데 시간이 비틀어진 탓인지 탈출하니 원래 세상에서는 1000년이 지나 있었다.”
솔직히 그 정도도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다른 이들은 평생 이곳에서 헤매다 망자가 되거나, 공간과 공간 사이의 유무간에 갇히기도 했다.
그도 아니라면 아예 자신이 있던 곳이 아닌, 다른 세계로 불시착하기도 하는 곳이 곡공삼각주다.
제정신을 지닌이라면 절대로 이곳으로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다.
만호는 산군의 설명에 넋이 나갔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지충의 기운은 사라졌으나, 음울한 기색은 떨쳐낼 수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이라면 이곳에 귀수산이 있다는 것이지.”
“예? 그렇지! 귀수산이 곡공삼각주에 있다는 말은 놈이 공간왜곡을 무시하는 신통이라도 가진 게지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미친놈 같은 곳에 들어왔을 리 있겠습니까!”
만호가 희색이 만연해 소리쳤다.
그 소리에 촉문경도 활짝 웃었다.
“그렇구만! 키야~ 만호 도사가 머리가 퍽 잘 돌아가는구만? 혜안이 아주 환선 저리가라야 그려!”
하지만 산군은 그 기대를 저버리듯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건 아니고.”
“그, 그럼….”
“문지기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려고?”
“방법이 있으니 이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조금 위험하지만 곡공삼각주보다는 훨씬 나을 테니까요.”
그때였다.
사라졌었던 지충의 기운이 다시금 나타났다!
“이런!”
* * *
폭풍우치는 해역.
곡공삼각주에 유유히 떠다니는 작은 섬에는 무수히 많은 검들이 지면에 꽂혀 있었다.
일 만개가 넘는 각양각색의 검들 사이에는, 얼굴에 검버섯이 잔뜩 피어난 노인이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때였다.
노인의 고개를 슬쩍 들렸다.
그리고는 하늘 한 점을 가없이 응시했는데, 이내 푸른빛과 자색 빛이 번쩍이며 다가왔다.
“…뭐야 저건.”
얼마나 오랜 시간을 앉아 있었는지 뼈마디가 다 쑤시고 아파왔다.
에구구 죽는 소리를 하고 허리를 피자 뼛소리가 우드득 들려왔다.
“아이고 허리야….”
등을 툭툭 두들긴 노인은 섬으로 안착하는 마차와 자색빛을 보며 안광을 빛냈다.
“오랜만에 손님이로구먼.”
얼마만의 손님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그저 언제나와 같이 방문객을 맞이할 뿐이었다.
“어서 오시게. 그대들은 어떤… 아.”
쿠당탕탕탕!!
내려서던 마차가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그만 노인을 들이박은 것이다!
한참을 수많은 검들과 나무들을 들이박다 멈춰섰다.
“젠장…!”
그 사이로 욕지거릴 뱉으며 일어선 사내가 있었는데 다름 아닌 산군이었다. 그는 홱! 고개를 돌리더니 품에서 주귀통춘을 던졌다.
쉬익!
끼기기기긱!!
“주귀통춘의 등껍질이라니! 하! 그러니 잘도 목숨을 부지했겠어!”
곧장 비검을 날린 지충이 가소롭다는 듯 냉소했다.
“네놈을 찾아 만리를 날아왔다. 고작 환선 주제에 해룡족에 이런 치욕을 안겼으면 응당 대가를 치러야지!”
영겁 육사.
그것도 해룡족의 대장로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산군은 곧장 손목에 감긴 탐화를 두들겼다. 탐화가 이내 몸을 부풀리더니 위주호연갑으로 변했다.
흑색의 갑주를 두르자 대장로의 얼굴이 더 표독해졌다.
저것을 두르고 얼마나 많은 해족들을 도륙했단 말인가! 당장 씹어 부쉬 버려도 시원찮은 갑주였다.
“죽어라!”
틈을 주지 않을 생각인지 곧장 품에서 양날 도끼를 내던졌다. 도끼는 자색 빛을 머금으며 날아들었다.
순간 오싹함을 느낀 산군이 천리마양부를 발동해 허공으로 축지했다.
쉭.
콰좌자자작!!
양날 도끼는 괴기한 자색 빛을 뿌리며 주변을 초토화시켰다.
자색 기운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쉽게 닿아서는 안될 것임이 자명했다.
산군이 침음을 삼키고 혜연회검을 꺼내려 했을 때.
“우와아아악!!”
돌연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만호 놈이 검 하나를 들고 있었는데, 팔부터 시작해 온몸이 그곳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흐드러진 검을 실수로 잡은 것 같았다. 그 기현상에는 지충도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오직 산군만이 희색이 만연해 입가에 호선이 짙어졌다.
제대로 찾아온 듯 싶었다.
“에구구… 이게 뭔….”
그때였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처음보는 노인 하나가 앓는 소릴내며 일어섰다.
도사인가 했으나 그건 아니다.
아무런 기운도 느낄 수 없었다.
‘그래. 저 노인네가 확실해.’
산군에게 복수하려던 우란은 누군가에게 기연을 얻어 검진을 전수 받았다고 했다. 처음에는 검령도와 관련된 인물인가 했으나 그게 아니었다.
한줌 영기를 느낄 수 없으니 당연하지 않던가! 그제야 산군은 이해가 됐다는 듯 노인의 곁으로 축지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 꺼지시오.”
지충은 갑자기 나타난 노인에게 살기를 드러내며 위협했다.
참 의아한 일이었다.
놈의 성정을 생각하면 문답무용으로 살수를 날렸어도 상관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 점이 산군에게 더 확신을 안겨다 주었다. 놈 또한 무언가 의아한 점이 있으니 저러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곳에 왔으면 검을 뽑아야지 무얼 하는 겐가! 어서 검이나 뽑게!”
하지만 노인은 상황이 어찌되든 개의치 않은지 검을 뽑으라 했다.
귀수산 전역에 꽂혀있는 수많은 검 중 하나를 뽑으라는 소리였다.
“검…?”
“뽑겠소!”
의아한 지충과 달리, 산군은 흔쾌히 답하며 노인의 손을 잡았다.
사람 손과 다를 것이 없었다.
산군은 저 홀로 감동에 젖었다.
“검을 뽑으라니까 노부 손을 왜 잡는 게야?”
“그렇습니까? 이상하군요. 전 분명 검을 잡았을 뿐인데요.”
그러자 찌푸려졌던 노인의 얼굴이 느슨해지며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재밌는 놈이 찾아왔군.”
그 말만을 흘리며 날카로운 검기가 노인의 몸에서부터 폭사됐다.
이내 노인이 형상이 모호해지며 작은 빛과 함께 유려한 보검이 되었다.
“뭣!?”
산군은 지충을 보며 냉소하고는 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검 속으로 빨려들어가 보검 한 자루만이 허공을 돌다 지면에 툭 꽂혔다.
지충은 곧장 달려가 보검을 쥐었으나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젠장!”
보검을 쥐고 온갖 기운을 폭사했으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때였다.
보검이 은은히 빛났다.
지충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지만 보검은 이내 형상이 바뀌더니 다시금 노인의 모습으로 변했다.
“다른 검 찾아보게. 이제는 안돼.”
“무슨 소리냐! 네놈! 날 그놈이 있는 곳으로 보내라! 보내지 않으면…!”
하지만 노인은 피식 조소했다.
“이미 자리가 찼으니 안 되지.”
“무슨 소리냐!”
“한 번 쥐었던 검은 수행자가 죽지 않는 이상에야 다시 쥐어도 검령도로 갈 수 없다는 말일세.”
“검…령도? 이곳이 검령도로 통하는 입구란 말이냐!?”
“그렇소. 그리고 난 이곳을 관리하는 비루한 노인네일 뿐이지.”
검령도로의 입구!
그제야 지충은 흥분을 삭혔다.
검령도의 입구를 관리하는 자라면 함부로 대할 수 있는 놈이 아니다.
“당신이 문지기군.”
“좋을 대로 부르게. 노부의 일은 방문객에게 검을 쥐어주는 것뿐이니.”
초연한 낯의 노인은 같은 말만 반복했다. 지충은 그를 사납게 노려보기만 했다. 검령이라면 검에서 태어난 이들을 말한다. 드문 일은 아니지만 간혹 가다 나타나기는 한다.
본선법패로 오래도록 배양하다보면 영성이 깃드는 이치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 검령은 그 중에서도 특히 특이하다 말할 수 있다.
검령도를 지키는 수호령.
또는 문지기로 불리는 자.
사실이라면 그는 족히 수만 년이라는 세월을 이곳에서 보냈을 것이다.
간단히 치부할 존재가 아니다.
“여기 있는 것들 어느 것을 쥐어도 검령도로 가는 것은 똑같소.”
“그 말! 사실이겠지?!”
“아무렴. 내 평생을 이곳에 있었는데 그것도 모를까.”
노인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지충이 터질 듯한 눈시울로 그를 노려보다 주변에 널브러진 검 한 자루를 움켜쥐었다.
이내 그의 몸이 검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노인이 슬쩍 중얼거렸다.
“뭐… 좀 어긋날지도 모르겠지만.”
“이 자식 죽…”
쉭!
빙그르르 툭.
“자네들도 가지 그래?”
그러자 풀숲이 흔들리며 셋의 인영이 나타났다. 장천과 촉만대인, 그리고 촉문경이었다.
“길이 각기 다른 것입니까?”
“그런 게지. 하지만 그 끝은 하나니 굳이 다를 것 없을 걸세.”
답변을 들은 장천은 잠시 고민하다 조금 뭉툭한 검을 잡았다.
쉭!
바람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남은 건 이제 둘이었다.
“난 이곳에 남지. 자네는 가게나.”
“예? 제, 제가 어찌 대사부님을 두고 간단 말입니까!”
무서운 모양이었다.
하기사. 운이 나빠 지충과 가까운 위치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 날로 죽은 목숨이니 당연했다.
“본좌는 갈 이유가 없어. 친우에게서 검령도에 관한 이야기를 몇 들었지. 오직 검만을 위한 곳이라고….”
슬쩍 노인을 바라보자 모르겠다는 듯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촉 사질은 들어가서 고생 좀 하게!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하는 법이지!”
촉만대인이 촉문경을 발로 퍽! 때리자 바닥을 뒹굴더니 검 하나에 손이 닿아 사라져버렸다.
“마침 잘됐지 뭐. 안 그래도 잃어버린 경지를 되찾으려던 참이었소. 곡공삼각주이기는 하나 나쁠 것 없지. 때가 되면 다 나갈 것인데. 게다가 마침 딱 좋은 말벗도 있으니!”
촉만대인은 은근한 눈빛으로 노인을 바라봤으나 노인은 묵묵부답이었다.
“예전 친우가 이곳에 몰래 검 하나를 던져 놨는데 아직 잘 있나 보군. 그 덕에 내가 찾아왔으니 말이야.”
그제야 노인이 눈썹을 끌어 올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촉만이 검령도를 찾아올 수 있던 것도 모두 벗이 숨겨둔 검 때문이었다.
그것이 없었다면 찾아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검령은 그것이 퍽 마음에 들지 않을 터.
“검… 어디 있는지 찾고 싶지 않소? 이곳의 위치를 알려서는 안 될 텐데?”
그는 심기가 불편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다 쯧, 혀를 찼다.
촉만은 흡족하게 웃으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귀수산에는 예로부터 대나무가 유명했고, 그것은 목신통 도사에게 더할 나위 없는 것이니!
잠시 뒤.
방문객이 사라진 귀수산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