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23)
낭선기환담-122화(123/600)
낭선기환담 – 122화
검령도(劍靈島).
자욱한 안개 속에 기둥처럼 솟아있는 기봉(奇峯)의 모습을 보노라면 이곳이 신선들이 산다던 선경(仙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수천 개가 우뚝 솟아있는 봉우리는 하늘과 땅을 잇는 기둥이라는 뜻의 건곤주라 불리는 기봉이었다.
검령도에는 수천 개의 건곤주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하늘 높이 닿아 운무가 자욱한 다섯 개의 건곤주가 가장 높고 장대했다.
그때였다.
가장 중앙에 있는 건곤주 위에서 돌연 금빛 거검의 형상이 나타나 벼락처럼 내리 꽂혔다.
콰앙!
거친 풍압에 뭉게뭉게 모여있던 운무가 고리 형태로 퍼져나갔다.
그러자 주변 기봉과 기암괴석 끝자락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몇몇 검도자(劍道子)들이 부러움과 시샘, 그리고 놀라운 낯빛으로 그곳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하늘 위.
점같은 빛 여러개가 번뜩였다.
그것은 기다란 꼬리를 늘어뜨리며 낙하하는 하얀 빛의 거검들이었다.
“별일이군, 한 번에 이리 많은 검도 자들이 나타나다니.”
유려한 자태의 장검을 소중히 닦던 사내 하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거검이 떨어져 내린다는 것은 새로운 검도자들이 나타났다는 뜻.
조용하던 검령도에 새 바람이 불어올 것이니 기대감이 샘솟았다.
* * *
쿵!
자욱한 운무가 걷히고 나타난 사내는 위주호연갑을 입은 산군이었다.
“크윽…!”
산군은 건곤주에 내려서자마자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했다.
‘만극일검(萬極一劍)…!’
그 이유는 검령도에 들어서자마자 머릿속으로 침투하는 방대한 검술의 구결 때문이었다. 검령도에 들어서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수순이었다.
그렇게 일각이 지나고.
“하하하하하하!”
미쳐버리기라도 했는지 뜬금없이 광소를 터트리며 웃어재꼈다.
산군은 한참이나 그러다 슬쩍 주변을 돌아봤다.
건곤주 꼭대기에 있는 검을 수련하는 검도자들이 그를 미친놈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침음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이제 됐다. 이제 됐어.”
그는 위주호연갑을 풀고, 품에서 연꽃 모양의 보물을 꺼냈다.
이내 주술을 외우자 연꽃 안에서 검은 빛이 스르륵 나와 형체를 이뤘다.
“화란!”
화란이었다.
화란은 슬쩍 눈을 뜨고는 옅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뭘 그리 애틋하게 부르십니까. 누가 보면 사별했던 부부가 다시 만나는 줄 알겠습니다?”
여전히 농짓거리를 던지니 정말로 화란이 맞다는 묘한 확신이 들었다.
쓰게 웃은 산군은 그녀를 품에 안으며 진한 그리움을 표했다.
그의 품에 안긴 화란 또한 흐뭇한 낯으로 온기를 느끼다 떨어졌다.
그리고는 돌연 산군의 뺨을 때렸다.
툭.
때렸다기보다는 건드렸다는 게 더 알맞은 표현이리라.
“말하지 않았습니까. 다시 보면 뺨을 때려줄 거라고.”
빙긋 웃으며 말하는데 무어라 할까.
애초에 그녀를 향로에 넣을 때 억지로 명령했던 산군이다.
할말이 없었다.
“그래서.”
화란은 가볍게 팔짱을 꼈다.
“무엇입니까? 방도가 있으니 절 저 안에 넣어 연명하게 했겠지요.”
물론이다.
“이곳이 어디인지 알겠느냐.”
“글쎄요. 이런 곳은 처음 봅니다.”
“이곳은 검령도다.”
“…!”
그녀 또한 생전에는 고계 도사였으니 검령도의 이름을 모를 수 없다.
온갖 검술에 통달한 선인이 후인들을 위해 만들었다 전해지는 섬.
“설마….”
“그래.”
그녀를 검령으로 만들 셈이다.
“말도 안 됩니다!”
하지만 화란은 격하게 소리쳤다.
이해가 됐다.
검령이란 본디 검 속에서 태어나는 검의 화신과도 같은 존재.
한데 어찌 귀신에 불과한 자신이 검령이 될 수 있을까.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한평생 검술을 수련하는 이도 검령을 만들지 못하고 죽는 일이 태반입니다!”
“안다.”
“저 향로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제 수명은 고작 10년 남짓입니다! 이제 향로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3, 40년이 고작인데 어찌…!”
산군은 다 이해한다는 듯 그녀를 다독였다. 될지 안 될지 모른다.
앞길 창창한 산군이 자신 탓에 한 평생을 쏟아붓기라도 할까 봐.
그리하여 화를 내는 것이다.
자신이 걸림돌이 될까 봐.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내가 여기에 오지 않았더냐.”
산군은 인자한 낯으로 그리 말했다.
화란은 화를 내던 것도 잊고, 가없이 바라보았다.
“또 그냥입니까…?”
“그래.”
조금은 슬퍼보이는 눈.
화란은 그것을 바라보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끄덕였다.
“…산군의 ‘그냥’ 이라면 제가 속아 줘야겠지요. 알겠습니다.”
“…고맙다.”
겨우 한시름 놓은 산군은 검령도에 날아오며 주입된 검술의 묘리를 알려 주기 시작했다.
“그게 말이 됩니까?”
“나도 영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대로다. 믿어라. 결코 너를 검령으로 만들어보일 테니!”
검령도로 들어오며 얻은 검술.
만극일검(萬極一劍).
만 개의 극의를 하나의 검으로.
아주 간단 명쾌한 검술이었다.
총 14성의 검술구결이었으나, 산군은 이것을 검술보다는 제조술에 가깝다고 보고 있었다.
술자의 신식을 바탕으로 1성에 만 개의 검을 만들고, 하나의 혼을 만갈래로 나누어 검에 심는다.
그리하여 경지가 올라갈수록 만 개의 검은 점점 서로 합쳐져, 14성이 되면 단 하나의 검이 완성된다.
그 검은 술자의 영력과 신식, 그리고 심에 영향을 받아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검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그리 만들어지는 검이다 보니 검령 또한 술자를 반서하지 못한다.
게다가 실체가 없는 검이다 보니 술자의 신식이 뻗는 곳 어디에서든지 나타나 적을 공격할 수 있다.
기습과 은술에 특화되어 있는 검이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6성에 다달하면 검노탁생(劍露托生)의 경지에 올라 검의 혼을 깨울 수 있게 된다. 그때가 되면 화란의 의식도 깨어나는 것이다.
본래 산군도 이 검술에 관한 것을 자세하게는 알고 있지 못했다.
대략적인 것만 알고 있었으나, 직접 구결이 머릿속에 들어가니 더욱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검노탁생이란 검의 혼을 깨우는 경지를 말한다.
이 경지는 본래 검술서와는 상관없이 오직 자신이 택한 검으로 동고동락하며 하나 될 때 발현할 수 있는 고등 경지 중 하나다.
하지만 산군은 만극일검을 순서대로 깨우치는 것만으로 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혼 또한 이미 들어가 있으니 화란과 산군을 위한 검술서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할 수 있다.’
신식으로 만드는 만큼, 그도 어느정도 자신이 있었다.
분합수결과 항보사인검을 품고 있는 산군은 동급 도사보다 신식이 배는 높은 육사이다.
모르긴 몰라도 영겁 초경과 맞먹는 신식을 지녔을 것이다.
만물을 감지하는 신식이 넓다는 것은 정신에도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것으로 만드는 검이라니 그 누구보다 자신있는 것이 당연했다.
‘만 개의 검을 만드는 것부터.’
그것부터 시작이다.
시간은 얼추 충분했다.
3, 40년이면 1성에 오르는 것 정도는 충분하고도 넘치지 않던가!
“그럼 산군이 6성… 그러니까 검노탁생의 경지에 오를 때까지는 잠시 이별인 겁니까?”
“이별이라고 할 것까지야….”
어찌보면 그 말도 맞다.
1성은 빠르게 할 수 있다지만 6성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걸릴 지는 감이 잘 오지 않았다.
10년이 걸릴 수도 있고, 100년이 걸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혹시 잘못되어 이대로 영영 이별이라면 퍽 슬플 듯하니, 1년 정도만 이곳에서 함께 보내지요. 마침 경관도 나쁘지 않으니 요양 왔다 생각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뭐, 그 정도야.”
상관없겠지.
“한데 이 봉우리에서만 지내야 하는 겁니까? 아래로 내려가지는….”
“아, 못 간다. 이곳은 고공금제와 환진이 펼쳐져 있으니 말이야.”
“네? 어째서입니까?”
“글쎄다. 검령도는 나도 자세한 것은 모른다만….”
아마도 검도자끼리의 사투를 막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둔술을 펼쳐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다면 다른 이의 수련을 방해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100년에 한번 금제가 풀린다고 알고 있으니 그때는 이곳을 유람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퍽 넓은 섬이다.
대검과 비슷한 모양의 섬이였으나 그 크기가 실로 방대한 편이다.
그리고 건곤주 밑에는 꽤 보기 힘든 놈들도 살고 있으니 찾아보면 구경할 곳이 꽤 될 것이다.
“그렇습니까? 하긴, 이곳도 그리 좁지는 않으니까요.”
건곤주 꼭대기가 좁지는 않다.
산군의 거처로 선택된 곳은 다른 건곤주보다 배는 크고 높은 곳이다.
불편함이 있을 리 없다.
게다가 이전에 누가 사용했었는지 초가집과 밀실 몇 개가 있었다.
산군은 공정강에서 종이인형 몇 개를 날려 꼭두각시를 불렀다.
얼굴이 모호한 괴뢰였다.
그들에게 의식으로 주변 청소를 맡기고 위주호연갑을 풀었다.
“어? 이 아이 탐화입니까?”
“아아, 어. 인사해라. 화란이다.”
“응? 어! 화란이다!”
탐화는 반갑다는 듯 화란에게 안겨들었고 그녀는 어리둥절했다.
그녀가 잠들기 전, 탐화는 거대한 지네였으니 당연했다.
저리보니 어미와 딸이 상봉하는 것 같아 퍽 보기 좋았다.
이내 돌돌 말린 옥간을 꺼내 이마에 가져가 머릿속에 있는 만극일검의 구결을 하나하나 복사했다.
혹시 잊어버릴 수도 있었고, 옥간에 적어놓는다면 지나쳤을 묘리를 다시금 깨달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극일검 구결을 전부 복사한 산군은 이내 품에서 목갑을 꺼냈다.
안에는 검은 고치가 하나 들어 있었다. 수결을 맺으니 고치가 배는 부풀어 오르고, 이내 스르륵 풀려나니 그 안에서 귀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귀율은 구환도는 품에 쥐고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흠….’
불구대천마의 신상을 얻은 후로 귀율의 기운은 더욱 난폭해졌다.
신상에는 불구대천마의 관련 구결이 적혀 있었는데, 귀율은 풀어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한데,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귀율은 불구대천마의 기운을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사기와 마기가 공존하니….’
언제 터질지 모르는 스산한 불안감이 맴돌게 되었다.
지금은 그가 억누를 수 있기에 더 강력한 금제를 심었으나….
‘언제 저 홀로 풀어낼지 모르지.’
그래도 그러기 위해서는 퍽 많은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산군이 그리 두지도 않을 거고.
“그렇다고 이리 가둬둘 수도 없지.”
혈붕수를 꺼내 핏방울을 튕기니 귀율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귀율은 슬쩍 고개를 돌려 화란을 바라보고는 눈에 이채를 빛냈다.
“죽고 싶으면 탐내 보거라.”
어마어마한 살기가 귀율을 억누르자 그녀라 할지라도 눈살을 찌푸렸다.
“내 사람을 건드리면 아무리 너라 해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서늘한 음성을 흩뿌리자 귀율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는 몸을 돌렸다.
그리곤 밀실 중 하나로 들어가 입구를 봉해버렸다.
쿵!
심통이 난 모양이다.
슬쩍 고개를 돌리자 화란은 탐화가 마음에 들었는지 도란도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해야지.’
화란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단숨에 만극일검을 대성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