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25)
낭선기환담-124화(125/600)
낭선기환담 – 124화
만극일검 1성을 완성한 산군은 그대로 한달을 내리 잠만 잤다.
31년간의 고생을 잠으로 치료하는 듯 꼭 죽은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많이 아파?”
탐화가 머리맡에서 그의 머리 위에 축축한 물수건을 올려 놓고 있었다.
철푸덕.
소리와 함께 올려진 물수건에서 물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제대로 물기를 짜지않은 듯 했다.
산군은 꿈뻑꿈뻑 눈만 깜빡이다 물수건을 치우고 일어났다.
“이제 괜찮아?”
“…그래.”
걱정스럽다는 듯 바라보는 눈망울이 어여쁘기 그지 없다.
산군은 탐화를 쓰다듬어주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한데 이런 건 어디서 배웠느냐.”
“화란이 알려줬어!”
자부심이라도 생긴 것일까.
자못 당당하게 어깨를 피며 말한다.
‘둘이서 뭘 하나 했더니.’
그런 것을 가르치고 있었던 모양이다. 자기 걱정이나 할 것이지….
‘변함이 없구나.’
생전에도 그러하더니.
잠시 흡족하게 미소 짓던 산군은 만극일검을 일으켰다.
돌연 주위의 허공이 거칠게 요동치며 푸른 검의 잔영이 떠올랐다.
하늘을 가득 메울 정도였다.
방대한 신식의 방출에 산군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참을 만했다.
이 두통도 익숙해지면 점차 나아질 것이다. 만극일검의 장점은 신식을 더 정교하게 다룰 수 있고, 수련을 거듭할수록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신식이 동급 도사들보다 높았던 산군이었다. 영겁 초경과 맞먹을 정도였으나, 만극일검을 수련하다 보면 영겁 중경은 물론, 후경의 수준까지도 노려 볼 만했다.
“한시름 놓았으니 됐다.”
그래도 이제는 한결 여유로워졌다.
1성으로 만 개의 검에 화란의 혼을 담았으니 그녀가 사라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산군은 품에서 은색 방패 하나를 꺼내 허공에 던졌다.
해족들을 해치우다 얻어낸 보구 중 하나였다. 은색 방패는 허공에서 돌연 열 장 가까이 커졌다.
그는 곧장 만극일검을 날렸다.
쇄액!
“……?”
물고기 떼처럼 쏘아지던 만극일검은 은색 방패를 단숨에 통과해 버렸다.
방패를 끌어와 살피니 흠집 하나 생기지 않은 말끔한 상태였다.
‘역시 1성으론 의미가 없어.’
전투 시에 사용하기도 애매했다.
실체가 있지 않으니 당연했다.
6성은 되어야 실체를 이룰 수 있다고 하니 하루 빨리 수행해야 했다.
그때였다.
돌연 허공에서 부적 하나가 그의 거 로 날아들었다.
척. 잡아채자 다름아닌 전음부였다.
신식을 불어넣고 내용을 살피자 산군의 낯이 묘해졌다.
“그러고 보니 고공금제가 풀렸군.”
전음부가 날아왔다는 것부터가 고공금제가 사라졌다는 이야기.
산군이 당도하고 31년이 흘렀으나 검령도는 전부터 존재하던 곳.
100년이 되어 1년간은 고공금제가 사라진 상태에 돌입한 것이다.
“…나쁠 것 없지.”
그리 중얼거리며 전음부에 신식 한 줄기를 불어넣고 화답을 보냈다.
그리고 잠시 뒤.
산군의 거처에 붉은 빛줄기 하나가 섬광처럼 내려왔다.
탓.
둔광이 가시자 듬직한 사내의 모습이 나타났다.
더벅머리에 인상이 굵은 사내였다.
머리 정수리에는 도톰한 뿔이 하나 솟아 있었다.
“안녕하신가!”
당차게 인사를 건네는 그를 보며 산군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산군이 딱딱하게 인사하자 그는 호방하게 ‘하하!’웃으며 다가왔다.
“그리 딱딱하게 대할 것 없네. 내 경지가 영겁이고 자네가 영명이라지만 여기서는 다 같은 검도자가 아닌가! 굳이 그러지 않아도 좋네!”
상대가 넉살좋게 말했으나 산군은 말없이 미소만 지으며 응했다.
영겁 초경이었으면 몰랐으나, 상대는 영겁 후경의 육사로 보였다.
무슨 속셈으로 다가오는지 모르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 참… 건곤오봉의 마지막 적임자가 누군가 했더니… 역시나 범상치 않은 사내로군. 하하하!”
건곤오봉(乾坤五峰).
그러고보니 산군이 있는 곳과 비슷한 높이의 나머지 네개의 건곤주를 그리 불렀다.
“그래, 일단 소개를 해야겠지. 난 검령도 터줏대감! 이라고 하면 조금 오만방자해 보이려나? 뭐 어때! 대충 대감이라고 불러주게! 어찌 보면 내가 검령도에 가장 오래 있었으니 사형이라 해도 틀리지 않으니!”
산군은 포권하며 답했다.
“전 유정이라고 합…”
“아니아니! 검령도에서 자네는 그저 검도자일 뿐이네! 본명을 꺼낼 이유도 없는 것이지! 이곳에서는 모두 검을 수행하는 자들 아니던가.”
손사래치며 못들은 것으로 하겠다는 말에 산군이 피식 거리며 답했다.
“그럼….”
산군은 옛 기억을 떠올리며 답했다.
“김범. 아니, 범이라 불러주십시오.”
“범! 좋군! 범 사제! 어떤가, 고공금제가 풀린 경사스러운 날 아닌가. 자네만 괜찮다면 내 여기저기를 소개해 주고 싶네. 사형이니 이 정도는 해 주어야지! 우하하하하!!”
조금 어이가 없었으나 이내 고개를 주억였다. 귀율은 아직도 밀실에서 수행중이었고, 탐화는 힐긋거리며 눈을 빛냈다. 작게 손짓하자 후다닥 달려와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섰다.
“호? 딸…은 아닐 테고. 꽤 독특한 녀석을 시비로 삼고 있구먼!”
“어여쁜 아이지요.”
“안녕!”
한쪽 손을 치켜들며 인사하는 탐화가 퍽 어여쁜지 대감이라는 사내도 똑같이 한쪽 손을 번쩍 들었다.
“안녕!”
유쾌한 사내였다.
그렇기에 더 수상했다.
“한데, 어딜 소개해주시려 이리 발걸음을 하셨습니까.”
“아아, 뭐 있겠나. 그저 건곤오봉의 적임자가 어떤 놈인지 얼굴이나 보려고 만든 구실일세. 아 참. 우리는 고공금제가 해제된 날을 비상이라 부르네. 많은 이들이 다시금 하늘을 만끽하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날이니.”
그것이 날아오르는 비상(飛上)인지.
독으로 쓰이는 비상(砒霜)인지는 제 하기에 달렸다는 소리 같았다.
‘구부(救不)들을 보여줄 셈이군.’
아니나 다를까.
“자네 구부라고 알고 있나?”
“글쎄요.”
“하긴, 그렇겠지. 자네가 당도하고 첫 비상이니 당연히 모르겠지! 허나 안다고 해도 한번은 보아야지. 이곳에 있다 보면 몇 번이고 비상의 날이 찾아올 테니 말이야! 우하하하!”
조금 시끄러운 사내였으나 심성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겉치레를 따지지 않는 허물없는 성격이라 산군도 그다지 싫지 않았다.
‘유정이 검령도에 왔을 때 이런 사내는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조금 의아했다.
이런 성격이라면 본래 만극일검의 주인인 유정과도 인연이 있을 터.
그러나 산해발산고에서 대감이라는 사내가 등장했던 기억은 없다.
“천 번의 말보단 한 번 눈으로 보는 것이 더 낫겠지! 가세! 검령도를 한 번 보고 구부들도 보고!”
대감은 이내 붉은 빛줄기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산군도 푸른 기운으로 탐화를 감싸고 날아올랐다.
적색과 청색의 빛이 나란히 비행하며 고운 곡선을 그렸다.
그가 가는 길을 뒤따르니 검령도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도 알게 됐다.
길쭉한 대검을 뉘어놓은 모양의 검령도는 남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산군이 있는 곳은 정중앙.
북과 남으로 갈수록 건곤주의 높이가 낮았고, 금세 허물어질 듯 볼품없는 모습이었다.
마땅한 밀실도 없는 곳도 많았으며 열악한 환경이었다.
산군의 건곤오봉과는 천지차이의 모습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 중 최고로 열악한 곳은 두 발만 디딜 수 있는 기봉도 있었으나 두 말하면 입 아플 정도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돌연, 하늘 위에 멈춰선 대감이 검령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신기하지 않은가.”
“그렇네요. 곡공지간(谷空詩間)을 이리 거대하게 만들고 검을 수행하기 위한 장소로 쓰이다니 대단합니다.”
“아니아니. 저것들 말야.”
손짓하는 방향으로 안광을 집중하니 건곤주를 오르는 인영들이 보였다.
인간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영수인 것도, 영충인 것도 아니고 죄다 해괴한 몰골이었다.
팔다리가 열댓 개인 것부터 없는 것까지 다양했고, 피부가 인간과 같은 것부터 돌처럼 딱딱한 것까지.
하지만 공통점은 있었다.
검을 가지고 있다는 것.
“나도 잘은 모르네만 풍문으로는 버려진 검의 귀신들이라 하는 자들도 있고, 영락한 검령이고도 하더군. 어찌 구부라 부르는지는 모르나… 맹목적으로 검도자를 공격하니 우리에겐 영 꺼림칙한 것들이지.”
눈살이 찌푸려지는 몰골.
하지만 기운을 엿보니 그리 위협적인 놈들은 아니었다.
비교하자면, 일통부터 삼통까지 다양하기는 했다.
그러나 산군이 몸 사릴 정도의 놈들은 결단코 아니었다.
“하지만 나름 도움이 되기도 하지.”
놈들이 지닌 검은 명검이다.
새로이 검을 만들거나 하기에는 굉장히 아까운 검들이기도 하다.
구부의 경지가 높으면 높을수록 검의 예기도 남다르니 말이다.
‘시험해 볼까.’
마침 잘되기도 했다.
만극일검을 시험해볼 요량이었으니.
“여기 있는 놈들은 지성이 없고 본능만 있지만, 수천 년을 살아온 놈들은 또 다르지. 놈들은 구부령(救不令)이라 부르는데 영명인 자네라도 조금 버거울 것이야.”
산군은 속으로 흠칫했으나 티내지 않고 고개를 주억였다.
영겁과 동급이라는 구부들의 왕.
놈들 중 하나는 산군도 볼일이 있던 참이었다.
“어찌할 텐가? 구부들을 사냥해볼 요량이라면 어울려 드리지.”
산군의 눈이 조금 가라앉았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 주신다니 감사드립니다. 대감이 계신다면 마음 놓을 수 있겠죠.”
그리 말하고 산군은 죽통을 꺼냈다.
그러자 죽통에서 수천 개의 침들이 튀어나와 구부들에게 쏘아졌다.
하나하나가 청염이 번들거리며 강력하게 내리꽂히자 구부들은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내렸다.
“잘 됐습니다. 검술이 너무 난해하여 아직 익히지도 못하던 참이니, 이놈들로 적당한 검을 벼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요.”
만극일검은 산군이 피를 토할 정도로 난해한 검술이다.
그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터줏대감이라 하는 걸 보니 적잖은 세월을 이곳에서 보냈을 것이다.
게다가 상대는 영겁.
작은 것 하나라도 쉽게 알려줄 이유가 없었다. 자신을 이리 데려온 것도 검술을 익혔는지, 아니면 어떤 검술인지 탐이 나 그랬을 수도 있다.
긁어 부스럼은 만들지 않는게 상책.
하지만 심각한 낯을 하는 대감의 모습에 산군은 눈을 꿈뻑였다.
“자네… 청염이 예사롭지 않군.”
“…변변찮은 것일 뿐입니다.”
“아니. 설마. 나 또한 화신통을 다루는데 그것을 못 알아보겠나! 대단하군! 그 경지에 그 정도의 화신통을 다룰 줄이야… 생각지도 못했군.”
산군의 경계심이 곤두섰다.
예상치도 못했던 봉악청화로 상대의 관심을 끌게 될 줄이야.
산군의 낯이 가라앉자 탐화도 그의 곁에 서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러자 대감이 아차하며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하하, 이거 범 사제를 곤란하게 했구먼! 사과하겠네. 나 또한 화신통을 다루는 자이고, 내가 골머리를 썩고 있는 게 있어 자네가 도움을 줄 수 있겠다 싶어서 말이야!”
“무엇인지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럼! 그러려면 내 보물을 보여줘야겠구만. 검도자에게 보물이 무엇이겠는가! 놀라지 말게.”
그리 말하고는 허리춤에 내걸린 검을 뽑아 들었다. 산군이 슬쩍 떨어지자 대감은 쓰게 웃었다.
“본래의 이름은 있었으나… 제련한 뒤에는 합환호환검이라 불러야겠군.”
늘씬하니 유려한 검이었다.
여인이 들기 좋은 검이라 해야 할까.
대감에게는 썩 어울리지 않는 듯한 검이었다.
“합환호환검?”
합환호환검(合煥互幻劍).
합해져 불꽃으로 서로 변하는 검.
“내 정인이나 다름없는 검이지. 본래의 신통이 특이해 내 화신통으로는 제련이 어렵거든. 그래서 말인데….”
“제련을 도와달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말귀가 잘 통하는구먼! 물론 공으로 해달라는 것은 아니네! 도와 주기만하면 내 아껴뒀던 귀물도 하나 내어줌세!”
“귀물이요.”
“화신통 수련에 극히 좋은 것이네 이름 한번은 들어봤을 것이야. 화교룡의 불을 듬뿍 먹고 자라야만 나타난다는 용염삼(龍炎蔘)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