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29)
낭선기환담-128화(129/600)
낭선기환담 – 128화
검령도의 깊고 깊은 숲속.
온몸이 갑옷과 같은 구부령이 피투성이로 쓰러진 사내를 내려다봤다.
온몸이 난자당해 숨을 헐떡이고 있었는데, 봉두난발된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이 익숙한 얼굴이었다.
“네가 구부령을 잡아먹은 지네의 주인과 친분이 있다는게 사실이겠지?”
“그, 그렇…소.”
사내는 촉문경이었다.
재수 없게도 건곤주에서 내려서자마자 구부령에게 사로잡힌 것이다.
재수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검령도에 들어옴과 동시에 전수받은 검술을 시험하려 했다.
근데 그게 구부령이었을 줄이야.
“거짓은 아니겠지.”
“사, 사실이오. 금세 밝혀질 일을 내 어찌 거짓말을 하겠소.”
넷밖에 없는 구부령이었다.
그 중 한명이 너무도 어이없이 당했다. 당연히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였다. 하지만 쉽사리 몸을 드러내면 검도자들에게 일망타진 당할 터.
“재밌게 됐군. 지네를 부리는 검도자가 건곤오봉 중 삼봉에 주인이라! 천 년 전 만극일검에 당한 상처가 아직도 좀이 쑤시던 참이다! 그 노괴는 죽었으나 후인이 있다면 놈에게 내 원한을 갚는 게 응당 도리지!”
갑옷 구부령은 이내 주변에 있던 구부 몇에게 명했다.
“혈령을 불러라. 이번에야말로 만극일검을 씹어 먹고 진정한 검령이 될 기회가 왔다고!”
주변에 있던 구부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숲으로 사라졌다.
“네놈, 전음부는 가지고 있겠지?”
촉문경은 절망이 깃든 얼굴로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 * *
산군의 건곤삼봉.
청봉이 봉악청화를 내뿜고 있었다.
그곳은 형태가 기이해진 고륜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고, 주위에 고리 형 태의 주술문자들이 몇 겹이나 맴돌고 있었다. 요긴하게 썼던 침들이 망가진 터라 적당한 무기가 필요했다.
이제 쓸 일이 적어진 고륜에 침들을 녹여내 붙였고, 수중에 있던 광석들을 첨가해 제련 중이었다.
‘실패해도 상관없고 성공하면 쓸 만한 게 하나 만들어지겠지.’
광석 중에는 환철도 대량 섞여 있었고, 보패를 만드는 걸로 유명한 은묵철 또한 들어가 있었다.
동국에 들렸을 때 얻었던 것들이다.
그 동안은 쓸 일이 없었기에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며 제련해 볼 심산이었다.
산군은 이내 용염삼을 꺼냈다.
꺼내자마자 뜨거운 열기가 사방으로 치솟았다. 즉시 용염삼에 열린 열매들을 뜯어 밀실 한 켠에 심었다.
그 옆에 두련마화를 옆에 두고 영력을 불어 넣으니 싹이 4개 돋았다.
“이리 두면 되겠지.”
앞으로가 기대됐다.
청봉은 두련마화와 봉악청화를 다루는 녀석이니 그 기운을 머금고 자랄 용염삼은 극히 뛰어날 것이다.
밀실을 나선 산군은 온갖 금제를 전부 설치한 뒤, 귀율이 있는 곳을 바라보다 탐화를 안고 둔술을 펼쳤다.
“역시 부서지지 않았구나.”
푸른 불씨로 변해 하늘로 올라서자,
대장로와의 전투로 인한 여파가 한 눈에 들어왔다.
재밌는 사실은 그 난리를 피웠는데도 건곤주들은 무사했다.
애초에 신선이 만들어 놓은 것들이니 웬만한 충격에는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 건곤일봉으로 순식간에 날아갔다.
탓.
일봉에 내려서자 탐화는 작은 지네로 변해 산군의 팔목에 감겼다.
“여기요! 와주셨구려.”
산군에게 말을 걸었던 사내였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다른 분들은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를 따라 들어가니 작은 정자에 둘러 앉아 있는 인물들이 보였다.
저번에 보았던 이들이었다.
“반갑습니다. 범이라 불러주십시오.”
포권하며 인사하니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화답했다.
표정들이 각기 제각각이었다.
“영이라 불러주세요 범 육사.”
“전 홍입니다.”
“저는 강이고요.”
“위입니다.”
산군을 안내한 자가 강이라는 도사였다. 그 옆으로 영, 홍, 위였다.
홍일점인 위 선자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산군을 훑어봤다.
“제가 여인에겐 익숙지 않은 터라 그리 바라보시면 어째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 바라보시니….”
그러자 위 선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다른 사내들은 당돌한 산군의 말에 호탕하게 웃어재꼈다.
“하핫! 범 육사가 퍽 짓궂으시구먼! 하긴! 위 선자가 뜨거운 눈길로 육사를 바라보기는 했지!”
“뭐요!? 제가 언제 그랬답니까!”
위 선자가 화가 났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양 형은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허허 웃었다.
“하하, 이거 한방 맞았군요! 애초에 검도자는 경지의 고하를 따지지 않으니 위 선자가 잘못하셨습니다!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찾는 법 아니겠습니까. 애가 타는 건 저희이니 육사를 곤란하게 해서는 안되겠지요.”
한 차례 인사를 하고 자질구레한 한담을 나누다 본론으로 들어갔다.
“만극일검의 1성은 완성하셨지요?”
산군의 입가가 꿈틀거렸으나 빙긋 미소 지으며 답했다.
“예. 얼마 전 겨우 1성을 완성했습니다. 자질이 부족해 아직 1성밖에 되지 못하는 것이 한입니다.”
“한이라니요! 고작 30년 남짓으로 만극일검의 1성을 완성한 것은 도사가 처음이실 겁니다!”
다소 격한 반응이었다.
산군이 어색하게 웃자 자신의 추태를 깨달았는지 헛기침을 했다.
“크, 크흠. 추태를 보였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 여쭈어도 될까요.”
“예, 답해드릴 수 있는 거라면 무엇인들 답하지 못하겠습니까. 기탄없이 질문하세요.”
“만극일검이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검술이라 들었습니다. 게다가 강 형께서는 만극일검을 퍽 잘 알고 있는 듯한데 연유를 여쭈어도 될까요.”
“아아, 먼저 답변부터 드리자면 약 천 년 전, 만극일검을 6성까지 깨우친 도사가 한 분 있었습니다. 비록 수명이 다 되어 영면하셨으나 덕분에 많은걸 알게 됐지요.”
6성까지 깨우친 도사!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그렇군요. 더 이야기를 청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러려고 범 도사를 부른 것 아니겠습니까.”
그 뒤.
산군은 만극일검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만극일검은 1성과 2성이 가장 어렵고, 그 다음에는 6성 검노탁생을 이루는 부분이 제일 고비라 했다.
만극일검의 경지가 오르면 오를수록 구현하는 방식이나 속도가 빨라진다고 한다. 처음 2성은 벽이 있을지나 그것을 뚫으면 6성까지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 했다.
이야기를 듣던 산군은 잠시 손을 들어 대화를 멈췄다.
“꼭, 저를 6성으로 올리려 하시는 것 같은데 틀렸습니까?”
“…맞소. 이거 참, 육사의 혜안이 남 다르니 숨길 수도 없군. 하긴! 숨길 필요도 없지.”
잠시 고민하던 강 도사는 돌연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범 도사도 알 것이오. 검령도를 나가는 방법은 오직 검술을 대성하는 방법뿐이라는 걸.”
“예.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 다른 이들이라면 몰라도 건곤오봉에 거주하는 이들은 모두 그렇지. 건곤오봉의 검술은 난해하기가 산해와 같아 태선이라도 대성하기가 어렵소. 수명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고, 천운이 따라주어 검술에만 몰두하다 보면 극의에 이를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이후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계에 달한 수명 탓에 죽기만을 기다려야 할 것이오. 지금도….”
강 형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곳에 있는 이들이 전부 천년에 근접하거나 넘게 이곳에 있었다.
극의의 길은 멀고도 험했고, 검술에만 매달렸으나 이제는 수명의 한계가 다가오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렇군요.”
검령도에 부푼 꿈을 안고 찾아온 도사들이 대개 안는 고충이다.
‘나야 나갈 방도가 있지만 이들은 알 리가 없으니….’
그 심정이 오죽하랴.
“제가 6성에만 오른다면 탈출할 수 있는 방도가 있는 겁니까?”
“물론이지! 애초에 우리는 같은 뿌리를 지닌 검술을 익히고 있네. 하니, 극성으로 검진을 펼친다면 이곳을 나갈 수 있을 것이오!”
“어떤 검진입니까?”
“신검합일(身劍合一)!”
검진의 이름이 신검합일이라니.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검과 하나 된다라….’
“나 또한 한 번도 펼쳐본 적 없는 검진이기는 하나, 그 위력이 경천동지할 지경이라는 걸 알 수 있소.”
“그 검진을 펼치면 안전하게 이곳을 나갈 수 있는 겁니까?”
“우리끼리 펼치면 6할! 육사가 도와 준다면 8할로 늘어날 것이네. 검령도가 어느 공간에 속하는 곡공지간인지는 모르나, 우리가 살던 좌표는 알고 있지. 검진을 펼쳐 공간을 뚫어내고 전송진을 펼치면 능히 탈출할 수 있을 것이야.”
순간 미간을 좁혔으나 잠시뿐.
옅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주억였다.
“그러하면 일단 제가 6성을 이루어 검노탁생을 완성해야겠군요.”
이러나저러나 산군이 6성을 완성해야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 점은 걱정 마세요. 저희가 돌아가며 깨달음을 전수하고 범 도사의 수련을 봐드릴 겁니다.”
이미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마친 듯했다. 산군으로서는 나쁠 것 없었다.
검령도에서 천년 이상 수련한 검도자들의 깨달음이다.
본래는 돈 주고도 받지 못하는 가르침이니 거절할 이유가 없다.
“잘 부탁드립니다.”
건곤오봉의 검도자들은 인자한 낯으로 고개를 주억이며 답했다.
그 뒤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천년 이상 지낸 검도자들로 오랜 수련 끝에 대부분 10성 이상을 이룩했다고 한다. 태선들이 공간신통을 부릴 수는 있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검령도를 탈출할 수는 없었다. 선계의 인물이 만든 검령도인데 그리 간단하겠는가.
그런 점도 미리 안배를 해 놓았을 것이 다분했다.
섣불리 공간을 찢었다가는 유무간에 떨어져 평생을 헤매다 죽을 수도 있을 터. 허나 그렇다 해도 막연하게 죽을 날을 기다릴 사람이 누가 있으랴! 감안하고 탈출하려 하는 것이니 얼마나 절박한지 알 수 있었다.
나름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 뒤.
그들은 곧장 순번을 정하여 산군의 수행을 봐주기 시작했다.
비상의 날은 1년 밖에 남지 않았다지만 같은 장소에서 머문다면 여러가지 금제들이 발동해도 상관없다.
“어떻소. 건곤일봉에 이리 모여 있으면 방해하는 이도 없을 것이고, 수련상의 도움도 쉽게 줄 수 있겠지.”
그러나 내심 마음 한 켠에는 이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런 것이면 건곤삼봉으로 오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제가 한수 배우는 것이니 마땅히 초대함이 옳지요.”
내심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했으나 그들은 흔쾌히 응해줬다.
이내 다섯의 빛줄기가 건곤삼봉으로 향했고, 산군은 그들의 거처를 정해 주며 바쁜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건곤삼봉에는 여인 하나가 손아귀에 부적을 쥐고 있었다. 산군의 거처에 머물게 된 위 선자라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부적을 들고는 잠시 고민하다 그것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범 도사는 한시가 바쁘니 이 정도는 용서해주길 바랍니다.”
전음부로 보였던 부적은 바람을 타고 흘러 사라졌다.
“위 선자. 거기서 뭐하십니까.”
산군이었다.
“아무것도요. 흠흠, 전 만극일검에 대해 아는 것은 없으나 제가 얻은 묘리의 깨달음을 전수해드리겠습니다. 범 도사는 늦지 않도록 이 깨달음을 자신의 것으로 해 6성을 이룩해야 할 것입니다.”
새초롬하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산군은 옅게 미소 지었다.
그의 건곤삼봉은 희뿌연 안개가 자욱했는데, 다른 이들의 이목을 사지 않게 하기 위한 금제였다.
“자! 시작하시죠! 육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