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30)
낭선기환담-129화(130/600)
낭선기환담 – 129화
퍼억!
“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이는 촉문경이었다.
그의 곁으로 구부령 둘이 보였는데, 온몸이 갑옷 같은 사내와 온몸이 피로 이루어진 놈이었다.
“이놈이 거짓말을 한 건 아닙니까?”
갑옷 구부령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놈의 머릿속을 뒤져 보니 거짓은 아니었다.”
“그럼 어째서 오지 않지? 이놈은 동료나 다름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 이유를 알았으면 이리 있었을까.
갑옷 구부령은 어깨를 으쓱이며 발로 촉문경을 걷어찼다.
빠악!
“으어억!!”
그 비명이 시끄럽다는 듯 핏빛 구부령이 인상을 구겼다.
“금제 탓에 건곤주를 오를 수 없으니 난감하군. 놈을 불러야 하는데 방도가 없어요.”
“어쩔 수 없지. 계속 전음부를 보내 보고… 쯧, 일이 귀찮게 됐군.”
“이놈은 어쩔 겁니까?”
핏빛이 묻자 갑옷은 심드렁하게 촉문경을 바라보다 말했다.
“혹시 모른다. 놈을 방심시키기 위해서는 이놈이 필요해.”
“머리만 있어도 되지 않을까요.”
“흠….”
고민하는 듯 보이자 촉문경이 대경실색해 사슬에 묶인 채로 조아렸다.
“사, 살려주십쇼! 절 살리셔야 수, 순조롭게 일을 마치실 겁니다!”
“어떻게? 말해봐라.”
“그것이….”
이내 촉문경의 말이 이어지자 구부령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딱히 방도가 없으니 말입니다. 저 놈을 믿을 수는 없으나 금제를 심어 놓은 지 오래니 상관없겠습니다.”
“네게 걸린 금제가 있으니 배신할 생각은 추어도 말아라.”
“무, 물론입니다!”
꿀꺽.
침을 삼킨 촉문경이 고개 숙였다.
사흘 뒤.
촉문경은 몸의 상처를 치료하고 말끔하게 차려입은 채로 건곤삼봉으로 향했다. 하지만 짙게 펼쳐진 환진탓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이내 소매를 흔들어 전음부를 보냈으나 건곤삼봉은 묵묵부답이었다.
“제발… 제발….”
그때였다.
돌연 기척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니.
“그놈 일행이군.”
대장로 지충이 서 있었다.
화들짝 놀라 도망가려 했으나 자색 기운이 그의 몸을 옥죄었다.
“으윽!”
“혹시 몰라 잠복해 있었더니 쓸만한 놈이 걸려 들었군.”
지충은 촉문경을 유심히 살펴보고는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금제가 심어져 있었다.
“재밌게 됐어.”
“사, 살려주십시오!”
“누가 죽인다더냐. 안내해라. 네놈에게 금제를 심은 놈을 만나야겠으니!”
* * *
한편.
산군은 생각보다 즐겁게 만극일검을 수련하는 중이었다.
건곤오봉의 검도자들은 생각외로 친절했고, 허물없이 대했다.
같은 뿌리를 지닌 검도자이니 이 또한 사형과 사제의 연이라 했다.
산군도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은 적은 없었으나 그들은 퍽 좋은 스승 같았다.
천년 넘게 검술만 수련했으니 깨달음 또한 남달랐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그래. 차라리 내 단허망검을 보여주는 게 더 간단하겠군.”
단허망검(團許罔劒).
내단이 점진적으로 진화한 화령을 검으로 만드는 기괴한 검술이었다.
건곤일봉의 주인인 강 형의 검술!
묘한 기대감이 서렸다.
강 형은 털썩 지면에 앉았다.
이내 두 눈을 감고 수결을 맺자 그를 쏙 빼닮은 아기가 나왔다.
젖먹이처럼 보이는 화령은 슬쩍 눈을 뜨더니 모습이 바뀌었다.
한 자루 검으로 변한 것이다.
검 주변에는 묘한 뇌기가 튀었다.
“본래 환선의 경지에서 금단이 단령이 되고, 태선이 되면 단령이 화령으로 바뀌는 것은 알겠지?”
“모를 리가요.”
내단에 깃든 분혼.
그것이 완전히 하나 되어 형(形)을 갖게 되면 화령이라 부른다.
“화령 자체는 아직 완전하다 할 수 없으나 본인의 신통 그 자체이지.”
자신의 화령 자체를 검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검술이었다.
“강 형은 뇌신통을 다루시는군요.”
“바로 맞췄네. 이처럼 균천보화의 검술은 자신의 몸 일부를 검으로 만드는 특징을 가지고 있지. 자네의 것도 다르지 않아.”
강 형은 단허망검을 흩어버리고는 인자한 낯으로 말했다.
“처음으로 돌아와서, 신식을 검으로 만드는 만극일검은 실체가 없으나 있는 것이지. 눈에 보이지 않으나 느낄 수 있는 검. 참으로 신묘한 검술이지만 그게 그리 다른 것은 아니지.”
“무슨 소리입니까?”
“자네는 자신의 심장을 꺼내 살펴본 적이 있나?”
“…없습니다.”
“하지만 심장이 있다는 것은 알지. 자네의 정순한 영력도 마찬가지. 본래는 있으나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 또한 없다고 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런 궤변이….”
산군이 난처한 낯을 하자 강 형이 호방하게 웃어 재꼈다.
“하하하! 말이 그렇다는 걸세. 만극일검의 묘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여 실체가 없다면 이 세상에 움직일 수 있는 게 있겠는가. 만극일검은 그 이치와 같은 맥락이지. 난 실체가 갖추어지지 않은 게 아니라 아직 찾지 못한 것뿐이라고 생각하네.
우리 피부에, 핏물에, 뼈에 숨겨져 있는 것처럼 말이야.”
숨겨져 있다.
손을 펼쳐 만극일검을 불러낸 산군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실체는 있다.
그것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애매한 말이었으나 묘한 울림이 있는 말이었다.
산군이 깊이 생각에 빠지자 강 형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끝났습니까?”
위 선자였다.
“뿌리가 같다하여 다 같은 검술이겠소. 사제에게 필요한 몇 마디 조언이면 충분하겠지. 내가 본 누구보다 뛰어난 자질을 지녔으니.”
“신근(身根)을 지니기라도 했다는 말씀입니까?”
“어찌 하계의 도사가 선인들이나 지녔다는 신근을 논하겠소. 만극일검을 30년 내로 깨우친 것 자체가 유달리 남다른 자질을 지녔다는 것이겠지. 게다가 범 사제는 200여년밖에 살아오지 않았다 하더군. 극히 젊은 나이에 영명 중경이니 어찌 평범하다 할 수 있겠소.”
“200년이요? 그리 젊단 말입니까?”
200년에 영명. 극히 빠른 속도다.
위 선자가 놀라자 강 형이 은근한 눈빛을 보냈다.
“그러고 보니 위 선자도 혼기가 꽉 찼다고 들었지. 어떤가. 난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육사들의 둔갑은 대개 탈형을 이룬 모습과 닮아있다고 하지. 외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고, 수명 또한 남다르니 나쁠 것 없지. 게다가 성품은 또 어떠한가. 신랑감으로는 사제만 한 사내가 또 없을 것이야.”
도계에서 부부의 연을 맺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자식을 낳을 수는 없어도, 음과 양의 조화로 쌍수통술을 익힌다면 수행을 쌓는 것에 도움이 된다.
“흥, 됐습니다. 대도를 목표로 하는 도사가 어찌 사사로운 연정에 매달릴 수 있겠습니까. 남녀의 정은 도를 나아가는 데 방해만 됩니다.”
허나 위 선자는 생각이 없는 듯 콧방귀를 꼈다.
애초에 만난 지 며칠이나 됐다고 신랑감을 운운한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혹시 모르지 않나. 자네가 태선 중 경의 벽에 막혀 있으니 쌍수를 이룬다면 벽이 허물어질지도 모르지. 게다가 도의 길 앞에서 종의 다름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됐습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크흠, 떡이라니… 위 선자도 참 그리 남사스러운 말을 하시는군.”
“뭐, 뭐요!?”
위 선자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목소리를 높여서인지 산군이 고개를 돌려 위 선자를 반겼다.
“오셨습니까.”
그녀의 얼굴이 유달리 붉었다.
무슨 대화를 하는지는 들었으나 모르는 척 해주는 게 옳았다.
“아, 글쎄 위 선자가 떡을….”
“조용히 하세요! 나이를 잡수시더니 노망이라도 나신 겝니까!”
빼액 소리를 내지르자 강 형은 허허 웃으며 스르륵 사라졌다.
“헛소리에 귀 기울일 것 없습니다! 자! 어서 수행을 시작하지요!”
위 선자는 괜히 툴툴거리며 산군과 대련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검술은 혈영난검.
피를 검으로 만드는 검술이었다.
이후로도 산군은 나머지 네 개의 검술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내단의 단허망검(團許罔劒).
골의 골화척검(骨話刺劒).
혈의 혈영난검.(血英亂劒).
피부의 살성갑검(殺聲鉀劒).
균천보화는 몸에 있는 것을 검으로 만드는 검술이었다.
만극일검과 일맥상통하는 검술들이라 많은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통술을 부리는 것에 한해서도 많은 견식을 넓힐 수 있었다.
상위의 도사들과 이야기를 나눌 자리는 좀처럼 찾아오는 게 아니었다.
산군은 이번을 계기로 생각만 해오던 깨달음을 물었고, 그들은 단점과 장점의 맥을 짚어주며 교류했다.
그리하다 보니 반년이 훌쩍 지났다.
* * *
밀실에 들어온 산군은 빙글빙글 돌고 있는 고륜을 응시했다.
옆에서는 청봉이 주위를 맴돌며 불을 내뿜고 있었다.
“이제 됐다.”
말이 끝나자마자 청봉은 한번 삐익 울고 두련마화로 사라졌다.
반년 간 쉬지 않고 고륜에 불을 뿌려댔으니 피곤할 만도 했다.
산군은 고륜의 주위로 펼쳐져 있는 제련술에 법결을 쏘아 풀어버렸다.
고륜은 이전과 달라진 모습이었다.
조금 더 커졌고, 수레바퀴 모양이었던 전과 달리 완벽한 륜의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둥그런 모양의 륜은 불꽃이 새겨진 듯한 날을 가지고 있었다.
고륜을 끌어오자 예리한 음성을 토하며 순식간에 날아들었다.
후웅.
“실패라기엔 나쁘지 않고, 성공이라기엔 환진패의 능력을 잃은 것이 아쉽구나.”
단단함과 예리함은 높였다.
그러나 환진을 이룰 수 없다.
수중에 지니고 있던 단단한 경도의 광석을 모조리 때려 넣었다.
그렇기에 공격 보패로서의 성능은 월등히 뛰어나졌지만 환진패로서의 신통은 잃어버렸다.
조금 아쉬웠으나 어쩔 수 없었다.
상관없기도 했다.
어차피 환진은 괴비여각으로 펼칠 수 있었으니까.
“이 정도면 보구는 넘어섰고… 칠선 보구라도 상대해볼 만하겠어.”
고륜을 품에 집어넣은 산군은 손가락을 뻗어 지면을 두들겼다.
그러자 용염삼 4개가 솟아났다.
푸른 화염을 머금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금색 화염이 깃들었는지 은은한 금빛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덜 자란 상태.
고작 반년으로 자라면 얼마나 자랐겠는가. 장뇌삼 수준이었다.
“100년 뒤엔 어떨지 기대되는군.”
용염삼을 다시 넣은 산군은 탐화를 불렀다. 이제 반년 뒤면 다시 건곤삼봉에서 100년간 나올 수 없다.
그러니 만호와 장천을 부르고, 구부령들을 모조리 잡아볼 요량이었다.
‘구부령 중 한 놈에게 얻을 것이 있으니 필히 잡아야지.’
무리를 해서라도 잡아야 한다.
놈이 지니고 있는 비석.
그것을 얻어야 했으니까.
“해룡족 대장로가 조금 걸리지만….”
상관없었다.
사형들에게 부탁하면 될 일이었다.
그에게 우호적인 이들이다.
네 명 중 하나라도 같이 동행해 준다면 그가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나도 이제 영명 후경이니까.”
용염삼을 용염단으로 만들어 3개나 먹어버려 손쉽게 후경에 올랐다.
이전보다 영력이 올라간 산군이다.
지충과 마주친대도 그리 손쉽게 당하지는 않을 자신이 생겼다.
“맛난 거 먹으러 가?”
어디서 얻어왔는지 만두를 입에 물고 있는 채였다.
산군은 탐화의 볼을 툭툭 건들이며 살갑게 말했다.
“그래. 맛난 거 먹으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