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31)
낭선기환담-130화(131/600)
낭선기환담 – 130화
구부령의 거처 안.
촉문경은 벌벌 떨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구부령 둘과 영겁의 해룡족 대장로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 볼 것 없다. 나 또한 네놈들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으니.”
“같은 목적이라면….”
“지네를 부리는 충사.”
구부령의 눈매가 좁혀졌다.
“하지만 놈은 건곤오봉의 검도자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네놈들도 저놈을 통해 빼내려던 거 아니었나?”
“맞습니다.”
“그 뒤에는?”
“그 뒤라 하시면….”
“놈은 영명 육사이나 신통이 남다르다. 게다가 내 본선법패를 막아내기도 했지. 이 세상 어느 영명 나부랭이가 해룡족 대장로의 본선법패를 막아낼 수 있을까! 또 놈의 복충은 어떻고! 하나하나 강력한 신통을 지닌 보패와 복층을 부리는 놈인데 자네들로 죽일 수 있을까?”
명백히 무시하는 어투였다.
그러나 영겁 중경의 본선법패를 막아냈다 하니 놀랍기도 했다. 자신이라도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여기까지 내게서 도망쳐온 놈이다. 머리가 보통 비상한 것이 아니지. 아마 혼자 다니진 않을 게야.”
그렇게까지 말하자 구부령들도 얼굴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리 말한다는 것은 그에게 남다른 묘안이 있다는 뜻.
“진법 하나를 일러주지.”
그러고는 안시석을 던졌다.
척 받아들고 신식으로 그것을 살피던 구부령의 눈이 치켜떠졌다.
* * *
“동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양 형.”
“이게 뭐 감사받을 일이라고. 마침 산보라도 하고 싶던 참이었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되네.”
산군과 양 형은 본신으로 변한 탐화의 위에 올라탄 상태였다.
양 형은 후덕한 체형에 산적같은 수염을 매달고 있는 중년인이었다.
“한데 구부령을 잡겠다니…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자네의 경지가 영명 후경이라지만 힘들 텐데.”
염려가 가득담긴 말이었다.
구부령은 영겁 초경과 맞먹는 힘을 지녔으니 그러는 것이다.
아무리 산군이 영명 후경이라지만 그 사이에 드리운 벽은 퍽 드높았다.
본래 영명 후경 열댓 명이 있어도 영겁 초경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공간 신통을 부릴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그 정도의 차이가 있다.
“자신이 있으니 이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양 형은 그저 지켜만 봐주시면 되겠습니다. 해룡족 대장로가 튀어나오지 않는 이상 절 위협할 수 있는 것은 딱히 없으니까요.”
오만은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뿐.
‘탐화 자체도 태선 정도가 아니고서야 상대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자신도.
축지를 사용할 수 있고, 강력한 보구들과 만극일검. 그리고 천양지보까지 보유했는데 동급 육사 정도는 손쉽게 찍어 누를 수 있었다.
탐화와 협공해 구부령을 상대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럼 일단 놈들을 찾는 게 우선이겠구만! 안 그래도 검도자들을 야금야금 잡아먹는 놈들이니 말이야.”
산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일단은 구부령을 찾는 게 우선이다.
커다란 섬이라고는 하나, 마음 먹고 찾아다니면 찾지 못할 이유가 없다.
산군은 입을 벌려 청봉을 불러내고, 품에서 종이인형을 날렸다.
단번에 꼭두각시 열 댓마리가 나타나 뿔뿔이 흩어졌다.
청봉은 산군의 머리맡은 선회하다 일순간 사라졌다.
“호오, 괴뢰술에도 정통한지는 몰랐군! 역시 범상치 않다니까. 어떤가. 검령도를 떠나 마땅히 자리할 곳이 없다면 나와 함께 곤륜산에 가는 건.”
산군의 눈이 치켜떠졌다.
“곤륜파의 제자셨습니까?”
“음! 자네도 곤륜은 알고 있는가 보군! 내 자랑 같아서 창피하네만 곤륜이 이름 높기는 하지! 한 천 년 전쯤에는 곤륜의 집법장로를 역임하고 있었으니 말이야, 하핫!”
곤륜의 장로였다라.
산군의 낯이 어지러워졌다.
곤륜은 100년 전쯤에 이미 멸문지화 당해 망해버렸다.
지금은 그 흔적만 찾을 수 있을 터.
아마도 검령도에 갇혀 지낸 터라 곤륜이 어찌됐는지 모르는 듯했다.
“표정이 왜 그러는가?”
“아, 아닙니다. 조금 놀랐기에….”
“사람 참 싱겁기는 하하!”
양 형은 호탕하게 웃으며 산군의 등을 손바닥으로 두들겼다.
“자네가 인간이 아니라지만 그런 게 무슨 상관이 있겠나. 노괴들도 노쇠한 몸을 버리고 젊은 혼아의 몸으로 바꿔 타는 일도 흔치 않으니 그런 것은 큰 의미가 없지!”
“하하, 생각해보지요.”
“그래그래! 이러나저러나 검령도를 나가야 가능한 일이지만!”
괜시리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알려봤자 혼란만 부추길 터.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긴 하지.’
이내 생각을 지워버리고는 정신을 집중했다. 꼭두각시들은 사방팔방을 휘젓고 다니며 흔적을 쫓았다.
그렇게 한시진이 흘렀을 때.
파직.
산군의 아미가 좁혀졌다.
꼭두각시 하나와 연결이 끊겼다.
“찾았습니다.”
“음! 그럼 가세!”
잠시 뒤.
검령도의 동쪽에서 나타난 산군과 양 형은 침음을 삼켰다.
“살려주십시오! 놈들이 제 몸을 강탈해가고 단령만 여기 심었습니다!”
“촉문경, 자네가 어찌….”
산군도 할 말을 잃었다.
어째 안 보인다 싶었더니 구부령들에게 잡혀 있었던 것이었다.
“진법이 펼쳐져 있군. 이곳으로 들어가는 건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이나 다를 바 없네.”
“함정을 팠군요.”
검령도에 남은 구부령은 둘.
양 형과 함께라면 진법이 있어도 별로 상관은 없다.
산군은 위주호연갑이 있으니 무서울 것이 없었고, 양 형은 태선 후경의 도사이니 무엇이 무서울까.
게다가 그는 살성갑검을 익혔다.
피부가 검과 같이 단단하고 날카로우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우려하는 것은 대장로 지충.
그가 개입되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이곳에 다른 놈은 없었나?”
“없었소!”
산군은 양 형을 바라봤다.
양혀은 고개를 주억이고는 꼭두각시에 심어진 촉문경을 면밀히 살폈다.
“금제가 심어져 있군.”
“그렇군요….”
산군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살려주시오 육사! 우, 우리가 그동안 정도 많이 들었잖습니까! 이제 곧 대사부님 또한 검령도에 당도할 것이니 모른 척 하시면 안 될 겁니다!”
자못 절박해보였다.
촉만대인을 언급하며 자신을 살려달라 애원하지만 협박과도 같았다.
산군은 무감정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 양 형에게 말했다.
“금제를 푸실 수 있겠습니까?”
“음… 힘들 것 같군. 생전 처음 보는 금제고… 피로 새겨 넣은 것이네. 자칫 하면 단령이 흩어져 죽겠지.”
금제에 걸린 이를 믿을 수는 없다.
산군은 잠시 고민하다 한숨을 내쉬고는 단령금정을 펼쳤다.
그의 눈에 불게 물들고 금제를 바라봤다. 그의 내단 깊숙이 심어져 있는 금제는 온갖 기괴한 문자들이 천천히 선회하고 있었다.
“내게 거짓을 고한 건 없나?”
산군이 촉문경에게 물었다.
“없소!”
“촉만대인을 걸고도 없나?”
“…없소.”
꼭두각시에 담겨 있기에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다.
산군은 품에서 해봉석을 꺼냈다.
“해봉석! 그걸 가지고 있었나?”
“어쩌다 하나 구했습니다.”
“아… 그, 그렇군.”
양 형은 아깝다는 눈으로 연신 해봉석을 바라봤다.
산군은 희미하게 미소 짓고는 해봉석에 영력을 주입했다.
빛무리가 터지고 단령에 깃든 금제가 반발하더니 스르륵 사라졌다.
“자네에게 심어진 금제는 사라졌네. 이제 다시 한번 묻도록 하지. 정말로 이곳에 구부령을 제외한 다른 놈이 없는 건가?”
“그, 그것이….”
* * *
같은시각.
진법 안의 구부령들은 만연에 희색을 가득 담고 있었다.
“용융오이진(龍隆俉羅鎭)의 진법이 신묘하기 그지없습니다. 공간신통을 이용한 진법이니 놈이 들어오기만 하면 죽은 목숨이나 다를 게 없어요!”
핏빛 구부령이 기뻐하며 말했다.
이 진법에 소모된 영석과 귀물들이 천하에 둘도 없을 진귀한 것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대단한 위력을 지닌 진법이니 감수함이 마땅했다.
“당연하지. 해룡족의 시조께서 창안하신 진법이다. 고작 영명 육사에게 쓰기엔 아깝기 그지 없으나 동족의 원수나 다름없는 놈이니 확실하게 죽일 수 있다면 무엇이 아까울까!”
득의양양한 그들은 기다림마저 즐거울 따름이었다.
지충이나 구부령이나 동족의 원수를 갚을 수 있으니 왜 안 그럴까.
하지만 그때.
돌연 핏빛 구부령이 눈을 치켜떴다.
“헛!”
“뭔가.”
이내 말도 안된다는 듯 인상을 와락 구겼다.
“놈에게 심은 금제가 파훼됐다….”
“뭐? 금제?! 놈의 단령에 심어놓은 그 금제 말인가?!”
그 말인 즉슨.
계획이 어그러졌다는 뜻.
지층의 살기가 치솟았다.
“왜, 왜 그러십니까….!”
금제가 사라진 인질은 더 이상 인질이 아니다. 몸은 새로 구하면 되는 것이고 본래 일행이었던 놈이다.
이 진법에 대해 알리지 않았을 리가 없다. 게다가 구부령은 검도자의 적.
자신은 그들의 적과 손을 잡은 셈!
생각을 마치자 행동은 빨랐다.
지충이 품에서 양날 도끼를 꺼내 단번에 핏빛 구부령을 찍었다.
푸확!! 비명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구부령이 반으로 갈라졌다.
대경실색한 갑옷 구부령이 혼비백산해 둔술을 펼치며 달아났다.
하지만 지충은 수결을 맺으며 발을 한번 굴렀다.
그러자 진법이 빛나며 이내 갑옷 구부령의 비명만이 메아리쳤다.
하지만 지충은 진법을 바라보며 아깝기 그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쯧. 빌어먹을.”
이내 진법을 흩어버리고 촉문경의 몸뚱이를 들어 올렸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자 저 멀리서 거대한 흑빛 지네가 다가왔다.
그는 촉문경의 육신을 지네에게 던지고는 팔짱을 꼈다.
“우연이군. 여기서 다 보다니.”
뻔뻔하기 그지없는 소리다.
산군은 냉소하며 말을 받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구부령들을 잡으러 왔더니 자네가 모습을 내비치는군. 노괴들 뒤에 숨어서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말야.”
“하하.”
그의 비아냥거림에도 산군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러게 말입니다. 어떤 물뱀 한 마리가 여간 귀찮게 해서요. 하지만 그 물뱀도 건곤오봉이 무섭기는 했나 봅니다. 이리 꽁무니를 빼니 원….”
그러자 지층의 살기가 일대를 뒤덮었다. 살기가 형체를 갖췄다면 단박에 산군을 찢어놓았을 정도였다.
“저는 또, 해룡족의 대장로라는 분께서 일개 낭선을 잡으려고 구부령들과 손을 잡고 흉계를 꾸민 줄 알았습니다만…. 아무래도 그건 아니었나 봅니다. 순식간에 구부령들이 죽어나갔으니 말이에요.”
“네놈이 언제까지 그리 기세등등할 수 있는지 보자꾸나.”
열이 뻗쳤는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대장로 지충은 자색 빛줄기로 화해 하늘 저편으로 날아갔다.
삽시에 삼백장 멀리 사라진 것을 본 후에야 산군이 입을 열었다.
“뻔뻔한 놈 같으니라고.”
“게다가 현명하기까지 하군.”
양 형은 감탄하는 듯 말했다.
산군도 다르지 않았다.
만일 놈이 끝까지 구부령과 함께 했다면 곧장 건곤오봉의 이들을 불러모아 놈을 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놈이 단번에 구부령을 죽이고 시인하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촉문경이 있다고는 하지만 조금 상황이 애매해졌으니 방도가 없었다.
그들이라해도 영겁 중경과 생사를 논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니….
‘어쩔 수 없지.’
그의 목적은 어차피 구부령이었다.
다행히 놈은 구부령의 사체에 손을 대지 않았다.
산군은 구부령들을 샅샅이 살피고는 놈들의 공정강을 수거했다.
“먹어라.”
사체를 먹인 후, 공정강을 살핀 산군의 입가에 호선이 걸렸다.
안에는 작은 비석 하나가 있었다.
산군이 찾던 혈곡비석(穴曲碑石)이었다. 이름과는 달리 그저 투박한 비석의 모습이었다.
‘이것만 있으면….’
희색이 돋았던 산군은 이내 주춤거리며 다가오는 촉문경을 발견했다.
미소가 만연했던 산군의 얼굴이 순간 냉랭하게 변했다.
“미, 미안하게 됐소.”
“내가 금제를 풀지 않았다면 자네는 날 죽게 만들 수밖에 없었겠지. 무슨 진법인지는 모르나 보통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야.”
“어쩔 수 없었네! 자네라도 단령에 금제가 심겨져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가 되면 날 이해할 걸세!”
“그렇다고 자네의 잘못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어디 나만 죽이려 했었나? 양 형까지 죽었을 걸세.”
촉문경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무리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나, 태선 도사와 산군을 나락으로 밀어넣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촉문경은 곧장 무릎을 꿇었다.
자신의 죄는 자신이 제일 잘 안다.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고, 그에 대한 보답 또한 반드시 하겠소!”
하지만 산군은 어찌된 일인지 순간 인자하게 웃어 보였다.
“보답을 바라는 것은 아니네만, 자네 본선법패가 만익편이지 않나?”
“그, 그렇소.”
“좋아 보이더군.”
씨익.
그날.
양 형은 도사가 평생을 바쳐 배양한 본선법패가 강탈되는 것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