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36)
낭선기환담-135화(136/600)
낭선기환담 – 135화
나… 나는.
나는 미낭이라 불리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기질이 남다르고 총명하다는 소리를 들어왔다.
어느날 지나가던 도사 한분이 선천자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날로 난 곤륜의 제자가 되었다.
도의 길은 어지럽고 신묘하기만 하였으나 나는 그것이 좋았다.
알 수 없는 길을 개척하는 것은 어렵고 고된 길이었다.
누구는 아득하다 하였고, 또 누구는 나락과도 같다 말했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나 양소팽은 달랐다.
여러 갈랫길에 서 있었으나 두문 분출하여 항상 올곧게 걸어갔다.
그러다 보니 내 주위에는 시기와 질투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나의 길을 가다 보면.
그 길에 여명이 있지 않겠는가.
사부님은 한 때일 뿐이라 말했고,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내 나이 항년 342세.
환선에 이르렀을 때 일이 터졌다.
“…죄송해요 양 형.”
그녀는 차륙이라는 여인이었다.
미색이 뛰어났고, 마음씨가 비단결처럼 고왔던 그녀였다.
나 또한 그녀의 온화한 품성에 마음을 주었고, 백년해로를 맹세했다.
내가 태선에 올라 곤륜의 태상장로가 된다면 그녀와 혼인하겠다고.
그러나 그 꿈은 물 건너갔다.
나와 맞수라 할 수 있는 동문 녀석이 그녀의 곁에 있었다.
놈은 승리자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 속은 속이 아니었다.
시커먼 무언가가 눈송이처럼 차곡차곡 착실히 쌓이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의 선택이었으니까.
나쁜 건 나였을 것이다.
그녀를 좀 더 신경 쓰지 못하고 수행에만 매진한 내 과오다.
“축하하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 더 알맞을 것이다.
항상 날 바라보던 눈빛은 흔들리고 한층 흐려져 있었다.
그 눈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난 등을 돌렸다.
저 둘을 위한다면 내가 사라지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떠난 사람은 잊어버리고 수행에 매진하는 것이 옳다.
사부님 또한 그리 말씀하셨다.
도의 길은 아득하고, 그 길 앞에 돌부리는 헤아릴 수 없다.
그녀 또한 내 돌부리였으리라.
애달픈 마음이야 두 손으로 포개 마음 깊이 가라앉히면 되는 일이다.
수행에 더욱 매진했다.
그리고 차륙의 혼례일.
폐관수련을 마치고 출관했다.
왜인지는 모른다.
그저, 마지막으로 그녀를 두 눈으로 담아두고 싶었다.
혼례를 올릴 때의 그녀는 그 누구보다 아름다울 테니까.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담아두고 싶었다.
그 어여쁜 모습을.
소란을 피우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당도했다는 것을 알면 괜한 소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래서 은술을 펼쳐 엿봤다.
“쯧쯧, 차 소저도 참 안됐어.”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들으면 뭐 어때. 성몽이 놈이 차륙을 억지로 범하여 혼인하는 것은 양 사형 말고는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사실인데!”
사제들의 대화였다.
그리고 그 뒤의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많은 이들의 피가 내 손에 묻혀 있었다.
날 말리려던 사제들의 피였다.
그리고 온몸이 묶여 있었다.
장로님들과 사부님이 몸소 날 진압하셨고 나는 어느 동굴에 갇혔다.
그리 들었다.
내 마음을 모르지 않으셨던 사부님이 그리 말씀하셨다.
“잊거라. 잊어버리거라. 대도의 길 앞에 한낱 여인에게 휘둘려서야 어찌 신선의 도를 나아갈 수 있겠느냐.”
나는 말했다.
“한낱 제 여인 하나도 지키지 못한 불민한 사내가 어찌 신선의 도를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사부님은 고개를 가로저으셨다.
내가 난리를 피운 탓에 상처 입은 사제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머리 좀 식히고 있거라.”
동굴은 어마어마한 금제가 펼쳐져 있었고, 난 나갈 수 없었다.
그렇게 10년.
폐인처럼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동굴 한켠에 바람이 불었다.
사방이 막혀있을 터인 석실이었다.
바람이 있다는 것은 구멍이 있다는 것과 진배없었다.
난 10년을 들여 쇠사슬을 풀어내고 구멍을 파내 곤륜을 나왔다.
후에 들은 이야기다.
장로님들은 나의 금단을 폐해야 한다 말하셨지만, 사부님이 간곡히 요청해 그것만은 막으셨다 한다.
구멍 또한 사부님의 안배였다.
그 길로 나는 피눈물을 삼키며 다시 돌아오리라 맹세하고 길을 떠났다.
도의 길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 몰랐으나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제 여인 하나 지키지 못한 사내는 무엇도 이룰 수 없음을.
* * *
수월문에서 태어난 나는 태생부터 길이 정해져 있었다.
“강룡아. 오늘도 수행이더냐.”
“제자 불민하여 사부님의 가르침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으니 수행이라도 부지런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다 손가락질 받기도 했으나, 내 부모는 사부님이고 내 고향은 수월문이다.
내 인생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수행뿐이었다.
“강룡아! 범인들 마을에 오늘 축제를 연대! 너도 갈래?”
“미안, 오늘은 수행해야 해.”
“야야, 가자. 룡이는 항상 수행만 하는 놈이잖아.”
내가 할 수 있는 건 수행뿐.
다른 것은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언젠가 사부님은 내게 말씀하셨다.
“우리 내 삶이 퍽퍽할 수밖에 없지. 하늘을 거스르고 점지된 수명을 뛰어 넘어 살고 있지 않더냐. 도사란 무릇 역천(逆天)을 행하고 하늘과 맞닿는 존재가 되기를 염원하는 이들이다. 한데 어찌 색동옷과 같은 삶을 바랄 수 있겠느냐.”
“저희는 하늘을 거스르는 겁니까?”
“글쎄다. 사숙조께서는 그리 가르침을 일러주셨다만 내 생각은 다르다. 우리는 하늘의 시험을 받는 게지.”
“시험이요?”
“그래. 시련이라 해도 되겠구나. 하늘은 항상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 답은 우리의 선택으로 답하는 것이고 그것이 나는 섭리라 생각한다.”
사부님의 말씀은 어린아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심오했기에 납득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깨달은 것은 있다.
도사는 하늘을 거스르는 존재.
동시에 시험 받는 존재.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는 이들은 다른 범인들과 같이 윤회한다.
그렇기에 수행을 멈출 수 없었다.
수행을 멈춘 도사는 범인과 같다.
그럼 수월문에 있을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수련에 매진했다.
그러던 어느날.
“이번 놈들은 실패군.”
“허허… 들어간 영석과 귀물이 만만치 않았거늘…. 어쩔 수 없지. 실패작들은 내 본선법패에 넣어두리다.”
“어허! 거 무슨 소리요. 기장로는 저번에도 해먹으셨잖습니까.”
“해먹다니 거 무슨 막말이요!”
“그나마 강룡이 놈이 없었으면 기 장로도 이처럼 기를 피고 다니지는 못했을 것을 잊지 마시오. 인위적으로 선천자를 만드는 금술을 행하는 것이니까요!”
“거, 거! 말본새하고는!”
요양정류라는 요수의 은술을 우연히 얻어 펼쳤던 날이었다.
사부님과 우 장로님은 날 전혀 눈치채지 못하셨고, 나는 문파의 비밀을 한 가지 알게 된 듯 했다.
그러나 나는 묻지 않았다.
아마 두려웠던 것 같다.
내가 있을 장소가 사라질 것을.
무서워했던 것 같았다.
* * *
화산파는 오늘도 매화향이 짙었다.
나는 미색이 뛰어나고 선천의 자질을 지녀 수행에 벽이 없었다.
신근을 품고 있는 선인이 태어난 게 아니냐며 아버님은 호들갑을 떠셨다.
위엄 있지 못한 모습에 어머님과 나는 나무랐으나 개의치 않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싫지 않았다.
“화란아.”
“네, 화봉 언니.”
“놀러가자.”
“오늘은 수행하셔야죠. 아니면 남 몰래 배꼽 맞춘 사내라도 있어요?”
화산파 장문인의 여식인 내게 이리 당돌하게 말하는 애도 얘 말고는 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래서 좋았다.
“계집애 말하는 거 하고는, 됐으니까 가자! 오늘 아버님 생신이니까 엄청난 보물을 선물할 거야!”
“보물이라 해봤자 저번처럼 이통 요수의 고환 주머니 같은 거, 주시려는 것 아닙니까?”
“아니야. 이번에는 정말 보물이야.”
화란과 나는 화산파를 나가 홍해 어딘가의 숲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계곡이 산으로 역행한다하 여역천곡이라는 곳이었다.
저번에 그곳에서 우연히 발견한 물건을 묻어놨는데 이번에 가져올 생각이었다.
“화란아 빨리, 읍.”
누구였는지 잘 기억은 안 난다.
난 그때 누군가에게 납치당했었다.
“이년 맞아?”
“맞아. 화산파 장문인 양딸.”
“양딸이라니 우습군.”
그때의 나는 아직 몰랐다.
도사가 되면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렸던 내게 그 사실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납치 사건은 다행히 빠르게 눈치채신 아버님이 나선 덕에 곧장 마무리됐다.
하지만 내 마음은 마무리되지 아니하여 골이 쌓여만 갔다.
그리고 내가 환선에 올랐을 때.
고계 마사가 찾아와 아버님과 언성을 높이다 화산파를 공격했다.
하지만 놈도 대책이 없었는지 어쩌다 보니 나와 어머님이 인질이 됐다.
그리고 그때.
아버님은 어머님을 버리셨다.
어머니는 그때 돌아가셨다.
놈의 마수에 단전을 공격당하셨고 환선이셨던 어머니는 절명했다.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양딸에 불과한 나다.
한데 어찌 어머니를 살리지 않고 나를 살리셨는지 의문이었다.
장례를 마치고 나는 아버님에게 달려가 물었다. 왜 그랬냐고. 어째서 날 살리시고 어머니를 죽게 만들었냐고.
그러자 아버님은 기괴한 이야기로 내 질문에 답하셨다.
“사실 너는 화봉이 아니라 윤령이다. 지금의 네가 되기 전에는 본래 나와 혼인하여 부부의 정을 나누던 사이였다.”
“예? 그, 그게 무슨….”
“생전에 너는 역전통술을 익혀 죽음에 위기를 느끼면 성장이 역전하여 아이로 변하게 된다. 그때의 나는 널, 아니 당신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어. 나 또한 그때가 되서야 알았기에 부랴부랴 당신을 양딸로 키웠지.”
이유 없는 배신감이 독충마냥 내 몸을 갉아먹었다.
무어라 할 수 없었다.
얼이 빠진 사람처럼 한참을 멍하니 아버님의 이야기를 듣다 돌아갔다.
* * *
나의 어린 동생.
그리고 부모님.
마을 사람들을 잡아먹은 것은 전부 요수의 소행이라 말했다.
나는 요수를 증오하게 됐다.
요수라는 것들이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치기어린 마음에 손도끼를 들고 요수의 행적을 쫓았다.
그러다 요수를 발견해 놈의 뒤통수에 손도끼를 휘둘렀다.
놈의 머리가 깨질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깨져버린 것은 내 손아귀요, 내가 들고 있던 손도끼였다.
복수심은 증발하듯 사라졌고, 그 자리를 공포심이 가득 매웠다.
놈의 키는 10여 척이나 됐으며 온몸에는 갈대 같은 털이 수북했다.
생전 처음 보는 생물이었다.
저런 것이 어찌 존재하고 움직이는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놈은 내가 때린 뒤통수를 긁적이다 고개를 갸웃하더니 괴성을 질렀다.
입을 벌리자 멍청하던 얼굴이 흉측한 이빨이 성성해 흉측했다.
눈물이 나왔다. 공포심과 복수심이 뒤섞여 이도저도 아닌 무언가가 되었다.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던졌다.
그때였다.
숲에서 돌연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바람소리와 함께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자신을 무당의 도사라 소개했고 단칼에 요수를 베어 죽였다.
멋있었다.
동경이었다.
난 곧장 그에게 나 또한 도사가 될 자질이 있을 테니 데려가라 했다.
도사는 어이없다는 듯 웃고는 내 몸 여기저기를 만지더니 허락했다.
그렇게 나는 무당의 도사가 되어 여러 곳을 다니며 요수를 죽였다.
죽이고 또 죽였다.
문답무용으로 죽였다.
요수는 전부 삿된 것이니, 착한 요수는 죽은 요수뿐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앞에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작은 아이가 벌벌 떨고 있었다.
인간과 닮았으나 머리에는 짐승의 귀가 달려 있었고, 엉덩이에는 털달린 꼬리가 붙어 있었다.
혼아혈이라는 존재였다.
요수의 피가 절반.
인간의 피가 절반.
참으로 애매한 존재였다.
나는 검을 거뒀다.
그 아이가 인간에게 해를 입히는 존재인지 알 필요가 있었다.
그 아이의 거처로 향했다.
하지만 그때.
아이의 거처에는 요수가 있었고, 나는 단칼에 요수를 베어 죽였다.
“아아!!”
말을 못하는 혼아혈은 요수를 끌어 안고 눈물을 흘렸다.
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던 혼아혈은 이내 내게 달려들어 이빨을 드러내고 공격했다.
난 얼떨결에 그 아이를 죽였다.
혼란스러웠다.
내가 죽인 것은 요수인가 인간인가.
그러다 어느 한 도사와 만났다.
우리는 금세 친해졌고, 의형제를 맺어 형님 아우하며 지내게 됐다.
내 혼란은 잠잠해졌다.
그리고 평소와 같이 요수를 죽였다.
죽이고 죽였다.
요수는 나쁜 거니까.
혼아혈 또한 요수가 될 잠재적인 나쁜 것이다.
그러니 죽인다.
발길 닿는 대로 요수가 있다면 죽이고, 혼아혈이 있다면 죽였다.
어느 날이었다.
아우가 찾아왔다.
난 아우를 반겼다.
하지만 아우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왜 그러냐 하니 다짜고짜 내게 검을 날렸다. 우린 삼일 밤낮을 싸웠다.
승패는 나지 않았다.
아우는 돌연 쓰러졌다.
그러더니 인간의 모습이 아닌, 요수의 모습으로 변했다.
아우는 육사라는 것이었다.
지성을 얻은 요수.
그리고 내가 죽인 요수 중에 아우의 처와 아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혼란스러웠다.
“왜! 왜 죽였소! 우리 가족은 인간을 해한 적이 한 번도 없거늘!!”
어지러웠다.
구토가 치밀었다.
아우의 말이 내 가슴속에 사무치며 그동안 내가 해했던 요수들의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실 알고 있었다.
은연중 느끼고 있었다.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고, 마음이 있으며 지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르는 척 해왔을 뿐이다.
난 비틀거리며 무당파로 돌아갔다.
심신을 안정시키고 싶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사부님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당도했을 때 사부님은 병상에 누워 오늘 내일 하셨다.
사부님은 내게 이런 말을 하셨다.
“미안하다….”
“어찌 미안하다 하십니까.”
“요수 탓이 아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사부님의 말씀은 이랬다.
그 시절, 내 가족들을 죽인 것은 요수가 아니라 사부님이었다.
사부님은 자신의 수행을 높이기 위해 복수를 하나 길렀는데, 그것이 잘못되어 통제를 못 해 가족들을 죽이게 되었다 한다.
무당파 도사의 실수로 사람이 죽었으니 탈로나면 질책을 받게 될까 두려워 마을 사람 전부를 죽였다 한다.
“어찌 도사라는 자가 그럴 수 있는 것입니까!!”
화를 냈으나 사부님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당부했다.
“하늘을 거스르는 놈들이 선을 행하는 것 또한 우스운 일이지. 너는 그런 겉치레를 두르지 말고 오직 널 위해 살거라. 애초에 도라는 것은 불노장생의 탐욕일 뿐이니까.”
사부님은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