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37)
낭선기환담-136화(137/600)
낭선기환담 – 136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 않았다는 게 맞다.
그저 가만히 지켜보았다.
저들은 괴이한 신통을 부리는 인간을 뛰어넘은 존재들이었다.
난 그저 짐승일 뿐이다.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짐승.
그렇기에 방관했다.
화란이 노괴의 단전을 찌르는 것을.
푹!
“크윽, 이런 개년이!”
퍽!
노괴는 태선.
화란은 환선.
기습을 꾀했으나 죽이지는 못했다.
태선의 화령은 단전에 없으니까.
노괴의 살수에 당한 화란의 단전만 부서져나갔다.
“미색이 고와 이뻐해주려 했더니 크으…. 오냐. 네년이 그리 죽고 싶다니 온갖 치욕을 다 보여주마!”
그때였다.
쾅! 콰앙!
꺄악!
폭음과 비명이 난무했다.
십해만척귀의 습격이었다.
종남파와 화산파의 혼례일에 기습.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노괴는 이를 짓씹으며 밖으로 뛰쳐나갔고, 화란은 토혈을 하며 입가를 둥글게 그렸다.
곧 죽게 생겼는데 뭐가 그리 좋은지 희희 웃고 있었다. 난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우두커니 앉았다.
“왜 그리 보느…냐. 아직도 내가 그리 어여쁘더냐.”
피가 철철흐르고, 핏물을 토해내는 그녀였으나 어여뻤다.
내 눈에는 그러했다.
백옥같은 피부에 새빨간 피가 그림처럼 드리우는 것 같았다.
죽음의 문턱에 있는 그녀는 아직도 내게는 어여뻤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내게 허락된 것은 곁에 있어주는 것 뿐이었다.
그것이 몹시도 안타까웠다.
“아…. 시끄럽고 좋다.”
밖에서는 한창 귀수들의 숨소리와 도사들의 비명. 그리고 전투의 폭음이 빗발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과는 퍽 동떨어진 것 같았다.
기이하다 말할 수 있었다.
내게는 아직도 모든 일들이 꿈과 같이 몽롱하고 얼떨떨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내가 느끼는 것이.
정녕 현실이기는 한 것일까.
장자의 호접지몽처럼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판별할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이 있다면 점점 옅어지는 그녀의 숨소리가 안쓰럽다는 것.
“대호야….”
그녀가 날 불렀다.
대호.
이곳에서 내 이름은 대호였다.
그녀가 지어준 이름.
“범이 사람을 잡아먹으…면, 그 사람은 창귀가 된다 하더구나.”
애써 웃는 낯을 한다.
힘들 텐데도.
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이대로 죽는다 해도 윤회하여 만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 난… 난 사실 이리 살고 싶지도 않았어. 나는… 나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샘솟았다.
나 또한 눈물이 핑 돌았다.
항상 장난기 많은 그녀다.
짖궂은 그녀다.
그녀가 우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싫었다.
보고 싶지 않았다.
말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살았으면 했다.
지금보다 더 오래.
더 많이.
* * *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그, 그럴 리 없습니다! 제가 생전에 아버님과 부부의 연을 맺었다니요! 마,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어찌 사람이 다시 아기로 돌아갈 수가 있, 있어요!”
손발이 덜덜 떨렸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냥 떨렸다.
손발이 떨리니 온몸이 떨렸다.
왜일까.
모르겠다.
머리가 아파왔다.
도깨비가 내 머리통을 꽈악 쥐고 비트는 것처럼 너무 아팠다.
온몸이 털이 곤두서고 식은땀이 등줄기를 따라 흘렀다.
“당신이 어머니라 부르는 사람은 나와 동거동락하던 동문이지. 그녀에게는 참 몹쓸 짓을 시켰어. 시집도 가지 않은 아녀자에게 그런 거짓 행세를 맡겼으니까. 생전에는 당신과도 참 자주 어울렸던….”
듣고 싶지 않았다.
듣기 싫었다.
두 귀를 막았다.
“혼란스러운 거 잘 아네. 그러나 이제는 내 마음도 헤아려주었으면 해. 나 또한 어찌해야 할지 판가름이 잘 서지 않아. 당신을 부인으로 대해야 하는 건지, 딸로 대해야 하는 건지.”
듣기 싫어.
말하지 마.
“나도 이제는 모르겠소. 당신이 나의 하나뿐인 부인인지, 아니면 하나뿐인 나의 딸인지. 모르겠어.”
나도 몰라.
묻지 마, 그런 거.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서로의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그때가 되면 다시 찾아오겠네.”
그것으로 아버님은 사라졌다.
나는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으나 아이처럼 목 놓아 울었다.
울면서도 눈물의 연유가 궁금했다.
그러나 알 수 없었다.
한 달을 내리 울었던 것 같다.
그러다 문득 떠올렸다.
지금의 나는 화봉인가.
아니면 윤정인가.
300년이 넘게 화봉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이전에는 윤정의 이름으로 천년을 넘게 살아왔다고 한다.
나는 화봉인가 윤정인가.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러나 무서웠다.
한 가지를 선택하면 다른 것이 죽어 버리고 부정되는 것 같았다.
나는 선택할 수 없었다.
* * *
사부님의 죽음은 초라했다.
태선조차 죽음이라는 글자 앞에서는 다를 것이 없었다.
거슬렀던 수명을 이제 와서 달게 받는 듯 먼지처럼 변해 풍화되었다.
한줌 먼지로 변하는 태선의 죽음은 한없이 초라하기만 했다.
그가 밝힌 진실도 마찬가지.
“그냥 말하지 말지.”
그냥 가슴 한켠에 묻어 놓지.
어찌하여 케케묵은 옛일을 꺼내어 사람 마음을 이리 심란하게 할까.
어지러운 마음은 강물에 드리운 먹물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번졌다.
악을 멸하는 것이 도이리라 믿었다.
그랬기에 요수를 죽였다.
허나 아니었다.
요수는 악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악은 사부였다.
그리고 도사였다.
“홍경. 너무 슬퍼말게. 다 하늘의 뜻이 아니겠나.”
헛웃음이 나왔다.
날 위로해준답시고 하는 말이 하늘의 뜻이 아니겠냐니.
하늘의 뜻은 무엇이고 도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무엇이길래 이토록 난해할꼬, 무엇이길래 이토록 어지러울꼬.
600년을 넘게 살아왔으나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이 삶도 하늘의 뜻일까.
이 삶에 뜻이 있기는 할까.
600년의 세월이 전부 헛되었다.
“덧 없는건 하늘인가, 내 삶인가.”
나는 휘청거리며 무당산을 나갔다.
어디를 가야 할지 몰랐다.
발 닿는 대로, 눈 닿는 대로.
걷고 또 걸었다.
요수와 마주치기도 했다.
그러나 난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
눈여겨보았다.
요수들은 날 두려워하고 있었다.
도사라는 것만으로 그들은 깊숙한 숲으로, 산으로 도망쳤다.
그러자 범인들 중 하나가 내게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도사님 덕에 요수들이 도망가니 저희 마을도 안심입니다!”
난 가없이 그를 바라보다 물었다.
“저 요수들이 자네들을 해쳤나.”
“예? 아뇨….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지 않습니까. 요수들은 삿된 것들이니….”
“그런가….”
요수는 삿된 것.
그것을 정한 것은 누구일까.
* * *
수월문의 비밀을 알게 됐으나 나는 끊임없이 수행을 거듭했다.
745세가 되었을 때 태선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축복해주었다.
질투를 하는 자도 있었으나, 내 앞에서는 누구나 미소를 머금었다.
경지를 안정화시키던 어느날.
사부님은 내게 너도 이제는 수월문을 대표하는 태선이 되었으니 비술 하나를 알려주겠다 하셨다.
나는 순간 마음이 들떴다.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감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사부님이 알려주신 비술이란 그동안 애써 부정하고 있던 비밀이었다.
“이게 다 무엇입니까.”
“수월의 선조께서는 이것의 이름을 와위종자(蝸爲從子)라 하셨다.”
수많은 달팽이들이 있었다.
그 달팽이들은 거대한 알들을 어미처럼 보듬고 있었다.
알의 속이 훤히 비쳐보였다.
아기들이었다.
주먹만 한 작은 아이들이 어미 뱃속에 있는 것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어째서… 아니, 어떻게….”
“후천자는 애초에 대성하기가 어렵고, 선천자는 가뭄에 콩 나듯 태어나니 눈에 띄지를 않지. 그러다 선조님은 생각해 내신 것이다. 선천자를 만들어 버리자고 말이야.”
난 가만히 경청했다.
사부님은 와위종자의 비술과 효능에 대해 자랑스레 말씀하셨다.
난 묵묵히 고개를 주억였다.
“이 달팽이는 참 특별한 놈이다. 공격성이 없는 편이고, 평생을 온순하게 살다가 가는 있는 듯 없는 듯 사라지는 영수이지. 하지만 우연히 이들에게 피를 먹였더니 그걸로 분신을 만들어냈다더구나. 그래! 처음에는 분신일 뿐이었어! 달팽이였지. 하지만 그것을 개선하고 보완하여 결국에는 인간과 다를 것 없이 만든 것이다!”
정말 자랑스러워 하시는 것 같았다.
정말 대단한 비술이었다.
엄청난 발상이었다.
난 가만히 들었다.
듣고 또 들었다.
“앞으로 너도 수월문을 책임지는 입장이니 이 비밀을 알리지는 말거라.”
사부님은 그리 말씀하시고는 흐뭇한 미소와 함께 사라지셨다.
놀랍기는 했다.
와위종자라는 것들로 인위적으로 선천자를 만들어내는 것.
대단한 비술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대강은 눈치채고 있었다.
나 역시 하나의 와위종자였고, 수월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니.
그래서 듣고만 있었다.
난 무얼 바란 것일까.
사부님이 너 역시 이것들과 태생이 같으니 잘 돌보라는 말을 바랐을까.
아니면 내게 그동안 말하지 않아 미안하다는 사과를 바랐을까.
난 무엇을 바랐을까.
무엇을 바라고자 듣고만 있었을까.
돌연 허탈해졌다.
그러나 달라진 건 없었다.
나는 수월문의 태상장로.
내 자리가 곧 수월이다.
그렇게 나는 수행을 지속했다.
내가 잘하는 것은 수련뿐이었다.
수련은 내 삶이자, 목표였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어느 날.
“사부님! 범인들이 축제를 연대요!”
나의 제자가 말했다.
작고 어여쁜 아이였다.
“가보고 싶더냐.”
“네!”
“그래, 조심히 다녀오거라.”
하지만 제자는 어서 달려나가지 않고 날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러냐 물으니.
“사부님은요?”
없다고 하니 고운 아미를 찌푸린다.
“왜요?”
수행에 전념하느라 없었다.
그리 말해주니 입을 크게 벌리며 놀라더니 내 소매를 끌었다.
“같이 가요! 즐거울 거예요!”
난 수행을 해야 한다 말했다.
하지만 제자가 저리 볼을 부풀리고 닦달하니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난 결국 축제라는 것을 보러갔다.
범인들이 사자탈을 가지고 춤을 추며, 붉은 홍등을 들고 나다녔다.
귀가 간지러운 악기들로 경쾌한 소리를 자아내기도 했다.
맛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활기가 넘치고 정이 넘치고 있었다.
난 한동안 멍하니 그것을 보았다.
멍하니 보았다.
그러자 제자가 내 소매를 끌었다.
“우리도 춤춰요!”
제자의 닦달에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범인들 하는 것처럼 어깨를 들썩이고 몸을 흔들었다. 제자는 함박웃음을 보이며 즐거워했다.
무엇이 그리 좋으냐 물으니.
“사부님이 즐거워하시잖아요.”
라고 말했다.
무슨 소리냐 물으니 노점의 거울을 대뜸 집어 오더니 비추었다.
“사부님도 웃고 있으시잖아요! 저 처음 봤어요!”
거울 속에는 중년 사내가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내 얼굴이었다.
나 강룡의 미소였다.
나는 즐거워하고 있었다.
한낱 범인들의 축제에 섞여서.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리 깨달으니 축제가 즐거웠다.
노랫가락은 흥겨웠고, 음식과 술은 혀를 즐겁게 했으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흐뭇했다.
나는 후회했다.
왜 이런 것을 진작 알지 못했을까.
돌연 눈물이 흘렀다.
약 700년 전. 동문의 권유에 축제에 한번 와보았더라면 내 삶은 바뀌었을까.
돌연 나의 삶이 바보 같아졌다.
알록달록한 축제의 색에서, 나만이 동떨어져 색이 바란 것 같았다.
“사부님! 춤춰요!”
제자가 날 끌어당겼다.
작은 아이와 발을 맞추며 춤을 추니 주변에서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가슴이 뭉클했다.
나 또한 색이 있는 것 같았다.
그들과 같은 색이.
그 이후.
나는 점점 바뀌기 시작했다.
수행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내가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제자들의 이름을 외우고, 동문들의 근황을 묻고 다녔다.
안 그러던 사람이 별일이라며 치부했으나 몇 년을 그리 행하자 사람들은 날 보며 환하게 웃기 시작했다.
날 보며 반갑다고 했다.
그러자 나 또한 반가웠다.
즐거웠다.
왜 그동안은 이 즐거움을 알지 못하고 그리 살았을까.
모두 제자 덕분이다.
어느 날 사부님이 서찰을 보내셨다.
내 제자와 다른 제자들은 자신이 요긴하게 쓰겠다 했다.
나는 처음에 무슨 말인지 몰랐다.
곧장 사부님께 찾아갔다.
“음? 웬일이더냐. 내 서찰을 보내라 했을 텐데….”
“제 제자는 어디 있습니까.”
사부님은 한참을 날 바라보다가 돌연 헛웃음을 흘리셨다.
“별일이구나. 네가 그리 감정을 드러내다니 말이야. 내 서찰에 적어놓지 않았더냐, 실패작들이니 더 데리고 있을 필요가 없어 노부의 본선법패의 양분으로 삼았으니 그리 알거라.”
그제야 주변이 보였다.
살점과 선혈이 낭자하고 있었다.
내 제자는 죽었다.
그리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하! 우는 것이냐? 어째서? 그놈들은 와위종자들이다! 그것도 실패작인 놈들이지! 애초에 인간도 무엇도 아닌 것들이다. 어찌 도를 나아가는 놈이 그것들에 눈물을 보여!”
난 한참을 꺼억꺼억 울었다.
그러다 답했다.
“그럼 저 또한 인간이 아니겠지요! 제가 모를 거라 생각하셨습니까!? 어디 한번 저도 죽여보시지요! 사부님이 말하는 대로 인간이 아닌 놈은 여기도 하나 더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