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38)
낭선기환담-137화(138/600)
낭선기환담 – 137화
나…는 격분하여 수월문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사부님에게는 중상을 입혔으나 연이어 달려온 사제들과 다른 장로들을 보고 물러섰다.
모두들 나를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감정을 격하게 드러낸 나의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었으니까.
“진정하게!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울까.
그럴 수 없었을 뿐더러 그래서는 아니된다 생각했다.
사부는 말했다.
나의 제자가 인간이 아니라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확연하게 달랐다.
인간과 다를 것이 없었다.
오히려 인간보다 인간다웠다.
아니, 나 같은 놈보다는 실패작이라 불리는 그 아이가 더 인간이었다.
한데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사부는 죽은 것 취급했다.
인간이 아니라면 그리 쉬이 죽여도 되는 것이던가. 물건처럼 대해도 되는 인형과도 같았다는 말이던가.
아니다.
인간이었다.
태생은 달랐으나 인간이었다.
의심해 볼 여지 없는 인간.
인간이었다.
허나 나는 그길로 도망쳤다.
하나하나 요목조목 따져야 함이 옳았으나 그러지 못했다.
왜 그러지 못했을까.
왜 당당히 말하지 못했을까.
그저 격해진 감정을 끌어안고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이들에게서 도망치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수도(修道)가 인생의 모든 것이라 생각하던 내가 어리석었다.
감정 하나 다스리지 못하며, 자신의 제자 하나 지켜내지 못하는데 무슨 대도를 논한단 말이던가.
억눌리지 않는 감정은 개울가에 터진 둑마냥 터져나왔다.
매워지지 않는 둑은 자갈이며 진흙이며 할 것 없이 모조리 토해냈다.
나는 인적 없는 숲에 쭈그리고 하염없이 감정을 게워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몸이 불덩이 같았다.
근처 개울가로 다가가 풍덩 빠졌다.
달궈진 내 몸뚱이에 개울가의 물은 퍽 시원해 알 맞았다.
개울 바닥까지 등이 닿다가 구름위에 오른듯 두둥실 떠올랐다.
그리고는 다시 가라앉았다.
나…는 내 방에서 화란을 불렀다.
화란에게 먼 길을 떠날 테니 채비를 대신해 달라 부탁했다.
영민한 아이라 눈치를 챈 듯했다.
그러나 무언가를 묻지는 않았다.
나는 화란을 꼬옥 안아주며 화산파를 부탁한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화산파를 떠났다.
시간이 흐르고 흘렀다.
한달이 지나고 1년이 흘렀다.
그러나 내 안에 답은 없었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인연을 쌓았으나 언제나 내 가슴 한 켠에는 뒤엉켜진 실이 있는 듯했다.
풀자니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막막하고, 그대로 두자니 자꾸 신경 쓰여 답답했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며 떠돌아다니다 섬 하나를 발견했다.
신기하게 움직이는 섬.
자세히 보니 그것은 귀수산이었고, 그 섬에는 온갖 검들이 꽂혀 있었다.
그곳에 내려앉아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나의 검을 잡았다.
그리고 검령도에 들어오게 됐다.
그러나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이곳에서 검술을 연마하며 내 안에 자리 잡은 것을 풀어내고자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내 안에 자리 잡은 실타래는 풀렸다.
이제 이 실타래의 끝을 고이 묶어두어야 할 때가 왔다.
나의 아버지.
그 사람에게 답을 전하기 위해.
내가 누구인지 정하기 위해.
나… 양소팽은 연모하던 여인을 친우에게 빼앗겼고, 내가 있을 자리 또한 잃어버렸으나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 날의 나는 감정에 휩싸여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를 것이다.
다시 곤륜에 되돌아가 모든 것을 바로잡고 나의 여인을 되찾을 것이다.
그리고 본래 자리를 되찾고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 놓을 것이다.
내 여인을 빼앗은 성몽과도 확실한 끝맺음을 맺는다.
나의 대도는 그 이후에 진정으로 펼쳐져 시작될 것이다.
나… 홍경은 아직도 모르겠다.
아직도 요수가 무엇이고, 인간이 무엇이고 도사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는 깨달았다.
생명의 값은 같다.
벌레 또한 생명이고, 사람 또한 생명이며 요수 또한 생명이다.
지난 날의 과오와 함께 내가 깨달은 것은 생명의 무게가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곳을 나갈 것이다.
나가서 그동안 내가 꺼트려버렸던 생명의 무게를 바로잡고, 내 삶을 그의 속죄로서 사용할 것이다.
깨닫는 것이 너무 오래 걸렸으나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됐다.
제일 먼저 죽어버린 나의 아우의 장례를 치뤄줄까 한다.
가족들의 유품이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치루어주고 싶다.
그리고 무당파로 돌아가 나의 깨달음을 전파할 것이다.
그리하면 언젠가 답이 나올테니.
나… 강룡은 생각했다.
검령도에 천년이 가깝게 있으며 지난날의 후회와 한탄으로 보냈다.
그리고 답을 내렸다.
나는 수월문으로 돌아갈 것이다.
돌아가 수월에서 태어나고, 사라지는 불쌍한 아이들을 구할 것이다.
그리고 수월을 바꿀 것이다.
나 양소팽은.
나 강룡은.
나 화봉은.
나 홍경은.
나… 나… 나는.
“어찌 대답이 없느냐 대호야.”
나…는 눈물을 떨어뜨렸다.
내 눈물이 흘러내리니 그녀의 선혈이 묻어난 핏물에 뚝뚝 떨어졌다.
한심하다.
인간이었을 때나 지금이나.
나는 이토록 한심한 놈이다.
“내 금단을 취해…라. 그리하면 나는 너의 창귀가 되고, 너는 나의 주인이 되어 평화로이 지낼 수 있어….”
한심한 놈이다.
귀신으로라도 만들어 그녀와 함께 할 수 있다.
그리 생각하니 안심이 됐다.
가슴 한켠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안 될 말이었다.
그리 한다면 그녀는 평생을 귀신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혼은 더럽혀지고, 쉽게 윤회하지 못하여 소멸하거나 저승으로 들어가 악귀로 변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하게 둘 수는 없었다.
“대호야….”
하지만 곧장이라도 끊어질 듯한 그녀의 말소리가 다짐을 허물어뜨린다.
“너는 나의… 그래. 나의… 산군이 되고, 나는 너의 창귀가 되어 산 하나를 집으로 삼아 살면 좋겠구나. 그리하면 참 평화로울 테지.”
그녀의 눈이 흐려졌다.
날 보고 있지 않았다.
“배가 고프면 산 짐승을 잡고, 목이 마르면 개울물을 마시면서….”
죽어가는 몸으로 나와의 훗날을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서글펐다.
그래서일 것이다.
“하릴없이. 하릴없이… 태평하게… 낮잠을 자며… 그…렇게… 평온하게… 아무 걱정도… 없…이….”
더듬더듬.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지는 그녀의 말소리.
나는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도 원하고 나도 원했으니까.
그랬으니까.
단지 그랬으니까.
그리고 그 날.
화란은 나의 창귀가 되었다.
화란은 나의 제자는 영특하고 따스했으며 가여운 아이였다.
그 아이의 이름은 차륙, 내가 온전히 연모하여 잃어버린 여인.
나의 여인은 나는 아버지를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윤령이 아니라 홍경.
내가 죽인 모든 요수들이 부디 나를 잊지 말고 저주하기를 바랐다.
그리해야 내가 그 죄를 달게 받는 것 같으니 말이다.
난… 나는 창귀가 생겼다.
그녀의 금단을 삼켜 그저 범에 불과했던 나는 영수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녀와 함께 지내며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녔다.
즐거운 나날이었으나 그때가 정말로 내가 나임을 알게 되었다.
내 이전의 이름은 버리고 나는 산해 발산고의 대호.
그저 대호로.
또는 산군으로.
그리 살 것을 견고히 다지게 됐다.
이전의 삶은 모두 꿈과 같은 것으로 치부되었다.
아버지의 죽음도, 어머니의 죽음도.
겉으로는 날 위하는 척하며 은연중 탐욕을 드러내는 가식들도.
모두 한때의 꿈으로.
그리하여 나는 백산의….
나는 화산파로 돌아가….
곤…으로….
나는.
반드시 아버님에게 말해야 할 것이 생겼으나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차륙에게 나의 벗에게 나의 잘못을 뉘우치고 그 아이들을 돌려받을 것이다.
나는….
나는.
“저는 원망스러웠습니다.”
울먹이는 음성.
익히 알고 있는 여인의 음색.
화란의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화란은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이런 귀신의 몸이 되어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어렵습니다.”
가슴이 아팠다.
절절히 그녀의 감정이 느껴졌다.
“왜 저를 이리 만드셨습니까.”
나는 말했다.
너 또한 바랐고, 나도 네가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은 결과라고.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죽음 앞에서 무슨 말인들 하지 못할까. 산군이십니다. 대호야… 네가 나를 이리 만들었어. 나를 한낱 귀신으로! 겨우 귀신의 몸으로 만들어 나를 구속하여 이제는 네 곁을 떠나지도 못하게 검령으로 만드려는구나!”
단조로운 흑색의 복식이었던 화란이 돌연 화산파에 있을 때의 아리따운 복장이 되어 노여움을 토했다.
호랑이였던 나는 인간의 몸이 되어 그녀에게 사과했다.
그녀 또한 원했던 것이었으나 어째서인지 나는 그녀의 앞에 무릎 꿇고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화란 또한 원했던 것이지 않냐 소리칠 수 있었으나 내 입은 머리와 달리 다른 소리를 뱉어냈다.
그저 미안하다고.
그럴 생각이 아니었다고.
후회하지 말라고.
그래도 나와 지냈던 세월은 즐겁지 않았냐며 구차하게 물었다.
“화산파 장문인으로 있었던 몸인데 그깟 산과 들에서 뛰노는 것이 어찌 내 성에 차겠습니까. 산군, 정말 제가 행복했을 거라 믿으십니까? 정말로 그리 생각하더냐, 대호야?”
화란이 성큼성큼 발을 내디뎠다.
그녀의 발밑이 먹물처럼 번졌다.
그 아래는 아득한 나락으로 그려져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듯 했다.
화란이 내 어깨를 꽈악 붙잡았다.
“난 단 한 번도 평온하지 않았다. 내가 지켜내지 못한 화산, 그리고 죽어나간 사제들과 본문의 비명이 매일 밤 나를 괴롭혔어!”
그랬을 것이다.
그녀는 책임감이 강했으니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맞지 않는 장식을 몸에 두르고 무거운 짐이 걸려 있던 그녀였다.
당연히 그러했을 것이다.
“네놈은 단 한 번이라도 내가 그리 괴로워할 것이라 생각한 적 있더냐. 네놈은 내게 위로의 말이라도 한 번 준 적이 있더냔 말이다!”
없다.
은연중 꺼내서는 아니 될 말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암묵적으로 그때의 이야기는.
그 시절의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나도 그러했고 화란도 그러 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몰랐다.
아니, 알면서도 묵인했다.
대충 그러지 않을까라 짐작했으나 괜히 들추어내고 싶지 않았다.
화란에게 그것은 절대 아물지 않는 상처 중 하나였다.
난 무서웠다.
혹시나 그러하다 할까 봐.
혹시나, 후회한다 할까 두려웠다.
나의.
나와의 세월이.
상냥한 그녀의 마음에 기대며 줄곧 외면하고 도망치고 있었다.
화란은 다정하니까.
“후회한다. 그때의 나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백번! 천번이라도 돌아갔을 것이다!”
화란은 상냥하니까.
“다 죽어가던 네놈을 그냥 죽게 뒀더라면 내가 이런 창귀 꼴이 되지는 않았었겠지!”
화란은 소중하니까.
“아아, 원통하다. 나의 삶이 고작 범 한 마리에게 휘말려 이토록 비참하게 변할 줄은 몰랐다.”
다치지 않게.
“가자. 너 또한 나와 같이 귀신의 꼴이 되어 평생토록 괴로워하며 살아 보거라! 이승을 지옥처럼 말이다!”
나의 화란이 상처 입지 않게.
“죽어라. 죽고 죽어 골백번을 죽어 같잖은 귀신이 되어버려라!”
어느새 나는 칠흑의 늪으로 빠져 잠기고 있었다. 나락이었던 것은 늪으로 바뀌었는지 내 몸과 화란의 몸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신기한 감각이었다.
끓어올랐던 감정이 사라져 갔다.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듯이.
방금까지 무언가를 골몰히 고뇌했으나 아무래도 좋아졌다.
내 앞에는 화란이 있고, 그런 그녀가 날 껴안고 있으니 되었다.
되었다.
화란이 있으니 되었다.
화란.
화란….
나의 화란.
[네 여인을 찔러라.]푸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