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4)
낭선기환담-13화(14/600)
낭선기환담 – 13화
산군은 자신에게 몰리는 시선을 보며 뿌드득 이를 갈았다.
-당했군요. 어쩌시렵니까?
일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도망간다 해도 저들은 백산의 산군을 쫓을 것이다.
저들뿐이라면 상관없으나, 무당파로 돌아가면 다른 도선급 도사들이 백산을 이 잡듯 뒤질 것이고, 추적술을 이용해 어떻게든 산군을 찾아낼 것이 분명했다.
이 일대를 멀리 떠난다면 그 추적을 피할 수도 있겠지만, 산군은 백산에 남겨둔 사연 있는 영물들과 숨겨둔 영초들이 걱정이었다.
가장 좋은 것은 이대로 곧장 백산으로 달려가 영물들과 영초들을 회수하는 것이었다.
-산군!
산군이 멍하니 있자, 화란이 소리쳤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다 콧김을 킁! 뿜어냈다.
-지금 당장 백산으로 돌아가 도망치는 것도 방법입니다.
-하나, 그것으로 이득을 볼 놈들을 생각하니 배알이 뒤틀려 화병이 날 것이다!
그렇다.
산군이 도망친다면 그 또한 우수라 불리는 놈들에게는 나쁘지 않을 터.
전력이 분산된다면 그들은 더 쉽게 찾으려하는 보물을 빼앗을 수 있을 것이고, 그것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우둔산의 우단일 터.
얼마나 산군을 호구로 보았는지 알 법한 심계였다.
[나 산군을 잘못보아도 단단히 잘못 보았다.]산군은 비록, 제 몸 사리기를 좋아하는 호랑이지만 덫에 걸렸다면 그 덫을 설치한 자를 물어 죽여야 성이 풀리는 범이기도 했다.
그게 불가피하다면 덫이라도 못 쓰게 만들어야 속이 시원하지 않겠는가.
[화란. 도선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스스슥.
산군의 몸에서 빠져나온 화란이 형체를 드러내고 아미를 좁혔다.
“구환도를 드립니까?”
사용한다면 필히 산군의 승산을 높여줄 보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꼬리로 구환도를 잡을 수는 있다 해도, 그것으로 싸울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발목을 붙잡을 게 뻔했다.
[됐다. 어떤 신통을 지녔는지 파악도 못 했고, 손에 쥐지도 못하는데 그걸로 무엇을 할까.]자신의 앞발을 폈다 쥐었다하며 잠시 한숨을 쉰 산군은 수풀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입을 달싹거렸다.
그러자 화란의 낯이 묘연해지다 입을 굳게 다물었다.
산군은 고개를 끄덕이고 우렁차게 울부짖었다.
크와아아아왕!
천지가 요동치는 듯한 울부짖음에 영물들과 싸우던 호위대가 흠칫 몸을 떨었다. 영물들은 옳다구나 하며 몸을 들이박았고, 자신의 신통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멧돼지 영물은 예로부터 맷집이 강하다.
그들의 신통력은 강대한 생명력, 그리고 강인한 완력에 집중되어 있었다.
우수들은 신통력을 빌어 몸집을 키우고 칼날이 몸에 박혀도 개의치 않으니, 그야말로 죽음을 불사하는 군대나 다름이 없음이었다.
산군은 잘 싸우는 이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저 빌어먹을 놈들 때문에 이게 뭔 개고생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호위대가 필사적으로 보호하는 곳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그러자 마차 안에서 도포를 펄럭거리며 삿갓을 쓴 인물이 나왔다. 슬쩍 삿갓을 들어 주위를 훑다 산군과 눈을 마주치자 이채가 번득였다.
“도사님까지 나서실 것 없습니다!”
한창 멧돼지랑 씨름하고 있는 검선 하나가 안색이 창백해진 채로 외쳤다.
그들과 도사의 관계가 그리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나, 산군은 도사의 정순한 영기를 느끼며 침을 꿀꺽 삼키느라 여념이 없었다.
‘혈묘서자와는 다르다.’
도사가 괜히 도사라 불리는 게 아니다.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의 깨달음을 통한 결(決)이 존재하고 술(術)이 존재한다.
영수가 주먹구구식으로 신통력을 부린다면, 도사는 선대가 만들어낸 술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그것을 부림으로서 신통을 극대화시킨다.
부적술에도 능할 뿐만 아니라, 본신의 무력 또한 검선을 능가하니 절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음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하자. 혈묘서자 때와 같다. 나는 시간만 벌면 된다.’
그때, 도사가 장삼을 펄럭이며 소매에서 요령(饒鈴)을 꺼냈다.
여러 개의 방울과 함께 손잡이에 흰색과 푸른색의 천이 길게 매달려 있는 보패로 보였다.
‘보패?’
짤랑!
산군이 미처 피하기 전, 도사가 방울을 들어 흔들었다.
청아한 음색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공간에 널리 퍼져나가자 활개치던 영수들의 움직임이 순간 굳어버렸다.
‘음공!’
순간 머리가 어지럽고 귀가 먹먹해진다 싶더니 곧, 피가 흘러나왔다.
도사의 음공에 피해를 입지 않은 검선들은 기세가 등등해져 움직임이 멈춘 우수들을 도륙했다.
쉬이 쓰러지지 않는 광전사와 같은 우수들이었으나, 그들의 공격에 다리가 잘리고 목이 잘리자 더는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도사 한명으로 인해 전세의 판도가 바뀌었으니 산군의 입장에서는 털이 삐죽 솟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삿갓을 쓴 도사는 그것으로 끝내지 않을 모양인지, 품에서 부적 하나를 꺼내 입을 달싹거렸다.
그러다 부적을 하늘 높이 뿌렸다.
그것을 보자마자 산해발산고의 한 구절을 떠올린 산군이 비호처럼 몸을 날렸다.
[도사가 녹음으로 물든 부적 하나를 날려 보내니, 지상에 있는 요수들 전부 꼬챙이에 꿰어 절명하도다.]피잉!
순간 날려 보낸 부적에서 녹빛이 만연하더니, 순식간에 허공에서 나무 뿌리들이 튀어나와 창처럼 쇄도했다!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북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며, 우수들의 비명소리가 난무했다.
[크아아악!!] [사, 산군을 위하여…….]‘이 빌어먹을 놈들이 끝까지……!’
순간의 판단으로 목숨을 부지한 산군은 이를 박박 갈았다.
사실, 부적 자체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알고만 있었다면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요령으로 먼저 움직임을 봉하고 부적을 사용한다는 악랄한 방법이 식은땀을 흘리게 만들었다.
‘신출내기가 아니다. 노련한 도사야.’
아무리 도사라도 수행만 해온 도사와 경험이 진득한 도사와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신출내기 도선이라면 허둥지둥하는 사이 멱을 따버릴 수도 있을 테지만, 산군의 눈앞에 있는 도사는 일말의 틈을 보이지 않았다.
“요수들 대장이라더니 그 말이 허언은 아닌가 보구나. 보통내기가 아니야.”
산군 말고도 도사의 공격을 피한 영물은 몇 있었지만, 완벽하게 피한 것은 산군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도사의 눈에 들어버린 것.
산군은 혓바닥으로 메마른 코를 적셨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당금의 부적술로 놈의 주신통을 알아내었다는 것일까.
‘목(木)의 기운.’
보여준 부적술이 목의 기운을 지녔으니 산군에게 나쁠 수가 없었다. 화 속성을 다루니 그와는 상극 중에 상극이니 말이다.
게다가 부적을 사용하는 것부터가 지닌바 영력을 비축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었다.
산군이 청염호조를 한번 사용하면 영력이 바닥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도선 또한 영력이 무한하지는 않다. 오히려 영수들에 비해 신통을 부리는 영력 보유량 자체가 적은 편!
그러니 미리 영력을 주입해둔 부적을 사용하는 것이다.
“요수만 아니었다면 내 너를 복(伏) 시켜 복수(伏獸)로 부렸을 것을……. 쯧쯧 아깝다 아까워.”
삿갓을 살짝 들어 산군을 바라보던 도선이 혀를 차며 아쉬워했다.
어처구니없는 말에 산군의 눈에 불똥이 튀었으나, 이름 모를 도선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아니, 보고도 무시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도선이 품에서 부적 하나를 더 꺼내 입을 달싹이며 결을 외웠다.
심상치 않은 목 속성 영력이 부적에 주입되자 녹음으로 물든 부적이 금세라도 살아 움직일 것처럼 펄럭거렸다.
산군 또한 이를 짓씹으며 영력을 일으켰다. 모르긴 몰라도 저리 하는 것을 보니 저 한방으로 끝장을 내려 하는 듯 싶었다.
도선의 영력이 부적을 통해 밀물처럼 밀어닥치니, 부적에서 녹색의 영력이 이지러져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방대한 영력을 쏟아 붙고 있으니 저것만 막아낸다면 산군에게도 기회는 있으리라.
“어디 한번 받아보아라! 목신비소(木申匕小)!”
도선이 부적을 날려 보냈다.
녹빛으로 빛나는 부적이 퍼득퍼득 허공을 향해 날아가다 말고 벽에 막히기라도 한 듯 척! 멈춰서더니.
콰득콰득!
그리곤 저 혼자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뭐지?’
산군이 의아해 할 때.
팡! 찌그러졌던 부적이 다시 활짝 펴지며 눈부신 빛을 발했다.
“합!”
도사의 기합성과 함께 무언가를 감지한 산군의 몸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콰콰콰콰쾅!!
‘미친!’
부적에서 어린아이 팔뚝만한 말뚝들이 파도처럼 쏘아지는 것이 아닌가!
한, 두개도 아니고 한 번에 수십 개씩 쏟아지는 목우(木雨)에 산군이 경악하며 꽁지가 빠져라 도망쳤다.
“본좌의 목신비소에서 도망칠 수 있을 성 싶으냐!”
방향전환까지 가능한지 목신비소들이 이리저리 몸을 놀리는 산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나하나에 담긴 힘이 대단한지 지면에 닿는 즉시 폭발하듯 땅거죽이 뒤집히고 폭음이 요동쳤다.
산군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지그재그로 뛰며 주위에서 싸우고 있는 우수들과 검선들 곁을 스쳤다.
콰가가쾅!
우이이이익!
“으아악!!”
멧돼지 울음소리와 인간의 비명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자신의 목신비소를 저리 이용할 줄은 몰랐던 도사가 입을 앙 다물며 더욱 더 영력을 퍼 부었다.
그러자 부적에서 나오는 목신비소라는 말뚝들의 수가 더 많아지고, 도사의 안색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도사의 영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산군이 기뻐했지만.
짤랑!
도사가 다시 요령을 들어 흔들자, 산군의 눈이 치켜떠지며 안색이 와락 구겨졌다.
아무런 보패도 있지 않은 산군은 놈의 음공을 막을 수단 자체가 없었다.
‘피할 수 없다!’
산군의 몸은 거대했고, 표적이 크면 클수록 맞추기 쉬운 것이 당연지사.
그의 속도 모르고 야속하기만 한 목신비소들이 지면을 부수고 움직임이 둔해진 산군에게 짓쳐들었다.
‘젠장!’
콰콰콰쾅!!
희미하게 들린 살 찢긴 소리.
흙더미가 비산하고 흙먼지가 자욱이 만개했다.
“후우.”
폭음이 잦아들자, 도선의 이마에서 볼을 타고 흐른 식은땀이 턱 끝에 맺혔다.
서늘한 밤공기가 그의 얼굴에 살랑여 기분 좋은 고양감을 안겨줬다.
잠시 몸을 관조하니 남아있는 영력은 터럭만큼. 놈이 워낙 날래다 보니 예상보다 영력을 더 많이 소비해 버린 탓이었다.
“비범한 놈이었다만, 사람 죽이는 요수는 멸 당함이 마땅하지.”
이것으로 요수들의 대장격을 죽였으니 한시름 놓았다.
나머지 요수들이야 별 것 없는 돼지 놈들이니, 영력을 크게 소비하지 않고도 능히 잡으리라.
그리 생각한 도선이 땀을 닦고 등을 돌리려는 때.
화르르륵!
자욱한 흙먼지들 사이로 푸르른 빛이 번뜩거리며 주변을 푸르게 물들였다.
‘설마!’
자신의 목신비소를 맞고도 영물 영수가 살아있단 말인가! 도선의 동공이 흔들리고, 손에는 비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스윽.
흙먼지 사이로 얼굴을 드러낸 범의 모습이 달빛에 은은히 비추어졌다.
목신비소들이 여기저기 박혀 핏물이 흘러내리고 입가 또한 붉은 선혈을 토해내고 있었지만, 범의 앞발에 맺혀있는 푸른 화염과 붉은 눈은 쉽사리 꺼지지 않을 듯 보였다.
‘청염!’
화 속성 신통을 부리는 범이라니!
다행히 자신의 신통에 크게 몸이 상한 듯했지만, 놈의 눈빛이 흉흉하니 긴장을 놓칠 수 없었다.
경악에 가까운 얼굴로 산군을 바라보던 그가 돌연, 눈을 부라리고 소매 속에서 다시 여령을 꺼내려는 그때!
산군과의 전투로 오감이 민감해질 대로 민감해진 도선이 눈을 부릅뜨며 몸을 비틀었다.
스걱!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검기가 발산되고, 도선의 가슴에서 어깨까지 이어지는 기다란 자상과 함께 선혈이 푸확 튀었다.
“큭! 이노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도선이 손에서 다시 방울을 흔들자, 여령에 달려있던 두개의 천 중, 푸른색 천이 번뜩이며 푸른 기운이 쏘아졌다.
펄럭!
그러자 허공에서 칠흑처럼 어두운 천이 조각나며 그 속에서 검은 소복의 여인이 튀어나왔다.
[화란!]산군의 창귀, 화란이었다.
공중재비를 돌며 산군의 곁으로 착지한 화란이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다행히 도선의 공격은 무명사로 막아내 별 피해는 없었으나, 산군의 보물 하나를 잃어버렸다는 게 컸다.
그냥 보물도 아니고, 완벽한 은신을 행해주는 보물이었으니 오죽하랴.
산군 또한 아까워 적안이 흔들렸으나, 지금은 보패를 아까워 할 때가 아니었다.
[찾았나?]“예, 헌데 괜찮으십니까?”
[안 괜찮다.]히죽 웃으며 장난기 짙은 농지거리를 건네는 산군.
하지만 화란의 구겨진 얼굴은 펴질 생각을 못 했다. 겉으로는 멀쩡한 척 하고 있으나 깊은 내상을 입은 것이 한 눈에 보였던 것이다.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당연. 어차피 놈도 영력이 다했으니 깊게 쫓지 못할 것이다.]힐긋 도선을 바라보자, 놈도 꽤 무리하게 영력을 뽑아냈는지 안색이 창백했다.
가슴부터 이어지는 자상은 그리 깊지 않았으나, 영력을 무리하게 끌어 썼으니 놈도 몸 상태가 말이 아닐 것이다.
산군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산군은 영수, 그리고 도선은 인간이었다.
이대로 시간을 끌기만 한다면 누구의 승리가 될지는 불 보듯 뻔할 터.
하지만 묘한 대치가 이어지는 그때, 우수들과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검선 셋이 도선의 곁으로 모여와 그를 보호하듯 섰다.
아쉽지만 물러나야 할 때였다.
청염으로 목신비소를 대부분 없애기는 했으나 그 수가 워낙 많아 전부 없애지는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력까지 대부분 소비했고, 몸 또한 성치 않으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가자.]그리하여 물러나려는 찰나.
달칵.
한 마차의 창이 열리며 달빛에 반짝이는 벽안이 푸르게 빛났다.
“서…방님?”
순간 산군의 얼굴이 와락 찌푸려지며 지면을 박찼다.
탓!
“서방-”
“도, 도봉환이 사라졌습니다!”
“뭐야!?”
쿨럭!
산군이 사라지고 나서야 핏물을 토한 도선이 연신 기침을 내뱉다 검선들에게 소리쳤다.
“다, 당장 놈을 쫓아라! 목신비소가 몸을 파고들고 있을 테니 멀리는 못 갈……. 크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