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44)
낭선기환담-143화(144/600)
낭선기환담 – 143화
산군은 탈형한 모습 그대로 홍해의 안내를 받았다.
어차피 십해만척이 지배한 땅이니 육사의 모습이어도 상관없었다.
‘혹시 모르는 법이니까.’
하늘을 고공하며 이곳저곳의 경관을 안내받다 어느 도심지로 내려섰다.
그곳은 크고 작은 누각들과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산군은 도심지에 내려서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저들은 도사로군.”
“예. 범인들도 있습니다만, 도사들이 노예로 쓰기에는 딱이지요. 범인들은 너무 연악하지 않습니까.”
당연하다는듯 말하는 육사의 말에 산군은 옅게 탄식했다.
곁에 화란을 보니 그녀도 그리 좋은 마음은 아닌 듯 싶었다.
‘하긴, 도사들도 영수를 잡아다 복수로 만들고 하는 편이니.’
처지가 반전 됐다하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모습이었다.
어쨌거나 산군 또한 육사였고, 영수의 몸을 지녔으니 말이다.
그러다 어느 탁 트인 광장에 들어 섰는데 그 중심에 영수들이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었다.
“저들은 뭐하는 거냐.”
“아, 마침 오늘이 장날이라 귀수들이 한데 모여 물건을 사고팔고 하는 날이지요. 광장 주변에는 좌판을 하는 이들도 있지 않습니까. 중앙에서는 아마 경매를 하는 것일 겁니다.”
“호오….”
흥미가 돋았다.
여태껏 도사들과 교류한 적은 있어도 영수들과 그리한 적은 없었다.
산군이 관심을 가지자 안내하던 육사들은 먼저 달려나가 길을 텄다.
“비켜라 이놈아, 지금 어떤 분이 행차하시는데 더러운 엉덩이를!”
“비켜비켜!”
신식으로 슬쩍 훑어보자 대략 수백의 영수들이 있었고, 대개 영화나 영결, 그리고 적은 수의 영명이 있었다.
산군은 좌판에 내놓은 물건들을 둘러보다가 흥미가 식었다.
‘별 거 없네.’
사람이나 영수들이나 그리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다만, 중앙에서 진행 중인 경매회는 조금 달랐다.
단상에는 머리가 세 개 달린 녹색 피부의 배불뚝이 영수가 확성술을 이용해 경매를 진행하고 있었다.
[두당 영석 천 개부터 시작하겠소!]돌연 소리를 지르자 모여 있던 영수들이 괴성을 지르며 입찰했다.
[천백!!] [천삼백!] [천오백!]뭔가 하고 봤더니 단상에는 여러 명의 소녀들이 파리한 안색으로 벌벌 떨고 있었다.
“대인은 백충서방을 아십니까.”
“백충서방? 아아. 알고 있네.”
강력한 영충 백 마리를 서술해 놓은 책이라 산군도 본 기억이 있다.
‘탐화가 아마 3위였지.’
지충이 내보였던 구병존아가 아마 31위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저들은 백충서방에 이름 올린 영충의 혼아들이라 합니다. 그 때문에 저리 열을 내며 입찰하는 것이지요.”
“어떤 영충이기에 저러는 거지?”
“무려 백충서방에서도 24위에 이름 올린 응명천충(凝命遷蟲)의 혼아들로서, 이름 그대로 타고난 신통이 괴이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지요. 사내와의 정을 통해서 어떤 상처라도 치유할 수 있다고 하니 저리 앞 다투어 경매에 열을 올리는 것입니다.”
그제야 산군도 이해가 됐다.
저들을 데리고 있으면 목숨을 하나 더 얻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저리 열을 내는 것이었다.
[삼천!!]벌써 가격이 삼천까지 치솟았다.
산군은 무표정한 얼굴로 소녀들을 바라보다 물었다.
“저들이 신통을 발휘한 후에는 어찌 되는지 아나?”
“듣기로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린다 하더군요. 본래의 응명천충도 아니고 그 피를 잇는 혼아니까요.”
“그렇겠지. 이름에서부터 목숨을 옮기는 충이라하니까.”
더군다나 외모 또한 빼어나니 혼아라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저와 산비님이 있으신 데도 계집질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화란이 이죽거리며 물었다.
그러나 산군은 답하지 않고 고심하는 듯 미간을 좁혔다.
-정말 혹하신 겁니까?
-대비해서 나쁠 것 없지 않느냐.
-실망입니다.
산군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목숨을 옮길 수 있다면 뺏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 맞나?”
그러자 육사 중 하나가 조금 놀라며 고개를 주억였다.
“맞습니다. 본래 응명천충이 그런 신통을 지닌 영충인지라 저들도 미약하게나마 그리할 수는 있지요.”
그의 대답과 동시에 산군은 영겁의 기운을 풀어헤쳤다.
구웅!
강렬한 영압이 영수들을 짓눌렀다.
광장에 모인 영수들이 다리 힘이 풀린 듯 지면에 납작 엎드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영명의 육사들만이 겨우 버틴 채로 산군을 바라봤다.
“생각해보니 저 혼아들이 나와 인연이 있는 아이들이더군.”
“이, 인연이라니요?”
애써 웃는 낯으로 물었다.
방금까지 저들이 누구인지 물었으면서 뜬금없이 인연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으나 영겁 육사의 심기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못 믿겠느냐?”
서늘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육사의 안색이 파리해져 고개를 숙였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단순한 노부의 호기심일 뿐입니다.”
“됐다. 못 믿는 것 같으니 저 아이들이 나와 연이 있다는 걸 보여주면 알게 될 터.”
그리 말한 산군은 단상에 올라와 있는 한 소녀를 지목하며 물었다.
“너, 날 본 적이 있지 않더냐?”
“예, 예? 제, 제가요?”
지목당한 혼아혈은 어리둥절하며 말을 더듬었다. 아무리 봐도 안면이 있는 사이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산군은 다시 물었다.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손을 덜덜 떠는 혼아혈은 울음을 꾹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보게나. 나와 연이 닿았던 아이가 아니라면 아니라 했겠지. 그치?”
육사는 어이가 없었으나 영겁 육사에게 감히 무어라 하겠는가.
울며 겨자 먹기로 그렇다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가 그리 몰염치한 자는 아니니 값은 제대로 지불하지. 삼천까지 나왔던 아이들이니 그 값이면 되겠지. 자 받게나.”
산군이 단상에 있던 머리 셋 달린 영수에게 공정강을 던졌다.
영수는 공손히 공정강을 살펴보고는 입술을 짓씹었다.
공정강에는 삼천 개의 영석 밖에 없었다. 혼아들의 수는 전부 넷.
두 당삼천으로 잡아도 만이천 영석은 되어야 했다.
“왜, 액수가 맞지 않나?”
“아… 저 그게….”
영수가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화란이 말을 이었다.
“설마요. 영겁이신 주인님이 고작해야 범인들도 쉽게하는 셈을 못하실 리 있겠습니까.”
“내가 그 정도 셈도 못했다면 얼굴 들고 다닐 염치도 없겠지! 모르긴 몰라도 여기 있는 이들을 죽여서라도 함구하고 싶지 않을까?”
인자한 낯으로 살벌하게 말하니 영수의 입이 곧장 닫혔다.
말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당장 죽고 싶은 것이 아니고서야 어찌 영겁에게 치욕을 주겠는가!
“어떤가. 내 셈이 틀렸나?”
“아, 아닙니다! 뭐, 뭘 하나! 어서 대인께 혼아들을 보내주거라!”
그때였다.
돌연 산군과 화란, 그리고 탐화가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봤다.
“화란.”
“예.”
화란이 허공에 스며들듯 사라지고, 탐화가 산군을 지키듯 앞장섰다.
같은 영겁의 기운이었다.
이내 검은 빛줄기가 하늘을 가르고 날아와 광장 한가운데로 내려섰다.
머리에는 여우 귀와 일곱 개의 풍성한 꼬리를 가진 소녀였다.
“십해만척의 귀수들이 구귀님을 뵙습니다!”
영수들은 모두 고개를 조아렸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구귀는 아미를 좁히며 산군을 노려봤다.
산군 또한 마찬가지로 구귀를 바라봤는데 이상하게 익숙한 생김새였다.
처음 보는 것 같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낯이 익었다.
“그대더냐?”
구귀가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
“화운반홍을 죽이고 잡아갔다는 놈이 그대냐 물었다!”
‘화운반홍?’
잠시 고민하던 산군이 홍해에 오자마자 덮쳐들었던 가오리를 떠올리고는 탄성을 자아냈다.
뜬금없이 가오리 떼가 있다 했더니 구귀가 키우던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제야 저놈들이 왜 득달처럼 달려들며 홍해를 안내해주겠다 했는지 이해가 됐다.
산군이 그들을 바라보자 어느새 구귀 뒤에 숨어서 고개를 숙였다.
“그놈들이 날 먼저 잡아먹으려 하기에 우리 아이가 잡아먹었다. 그러기에 평소에 훈련을 잘 시켰어야지.”
“흥! 아랫것들 경매에 난입해서 협잡질로 강탈해간 놈이 잘도 나불거리는구나. 어디 한번 처맞고도 그리 말할 수 있나 보자!”
쿠웅!
구귀가 발을 구르자 지면에서 흑색 창 수백 개가 치솟아 올랐다.
촤좌자자작!!
그러자 주변 귀수들이 대경실색하며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산군은 콧방귀를 뀌며 심드렁한 낯으로 가만히 있었다.
구귀가 눈썹을 끌어 올렸을 때.
산군의 앞에 있던 탐화가 거대한 지네로 변해 꽈리를 틀며 산군을 촘촘히 감싸 보호했다.
까가가가가각!!
흑색 창들은 탐화의 몸에 부딪치자마자 단숨에 부서져 내렸다.
“뭐얏!?”
엄청난 경도에 놀란 구귀가 인상을 찌푸리며 곧장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그녀의 팔이 검게 물들며 금속처럼 변해갔다.
금신통 소유자인 모양이었다.
“탐화야. 적당히 때려줘라.”
“알았어!”
탐화가 인간으로 둔갑해 구귀와 똑같이 주먹을 검게 물들였다.
탐화의 주먹은 촘촘한 비늘도 돋았는데, 지충의 비늘을 먹은 결과였다.
“나중에 질질 짜지나 말거라!”
콰앙!!
탐화와 주먹을 부딪친 구귀가 지면에 고랑을 만들며 밀려났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주먹과 탐화를 바라보더니 입술을 깨물었다.
“질질 짜는 게 누구일지 참 궁금해. 그렇지 않느냐 탐화야?”
“응!”
산군이 한껏 기세등등해 이죽거리자 구귀가 꼬리털을 세웠다.
“네놈! 정정당당히 겨뤄라! 응당 영겁 육사라면 그리해야지!”
“개소리도 그 정도면 청산유수군. 네가 구귀만 아니었어도 네놈은 내 손에 당장에 처 죽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은 것은 네가 십해만척의 구귀이기 때문이지.
그 점을 감사하게 생각해라.”
“이런 개살구 같은 놈! 오냐! 네 복충 따위 한 번에 죽여주마!”
구귀의 기세가 날카로워지며 입을 달싹이며 수결을 맺기 시작했다.
그녀의 꼬리가 살랑이며 떨리더니 품에서 호리병 하나를 내 던졌다.
호리병은 빙그르르 돌더니 이내 7척 가까이 커지며 검은 연기를 뿌렸다.
검은 연기는 순식간에 일대를 뒤덮어 짙은 운무를 만들어냈다.
그러자 산군도 팔짱을 풀고 푸른 호신막을 만들어 몸을 보호했다.
‘사철. 그것도 평범치는 않군.’
단령금정으로 운무를 살피자 고운 입자가 있었는데 그것은 사철이었다.
하지만 보통 사철은 아니었다.
매우 미세한 입자가 진동하듯 움직이고 있었는데, 이것이 코와 입으로 들어가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뻔히 보였다.
“지금이라도 두 손을 싹싹 빌고 납작 엎드리는 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거다!”
운무 속에서 구귀의 목소리가 또랑또랑 들려왔다. 이내 운무가 소용돌이치듯 모여들며 탐화를 구속하기 시작했다. 탐화가 둔갑을 풀고 지네의 모습으로 화했으나 운무들은 끝도 없이 밀려들었다.
첩첩산중이었다.
사막의 모래 속에 파묻히는 것처럼 점점 자신의 몸에 달라붙었다.
그때였다.
돌연 사철들이 붉게 변하며 강렬한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내 사철이 용암처럼 변하자 탐화가 고통스러운 듯 비명은 내질렀다.
“이거 잘됐군. 나도 내 복수들을 빼앗겼으니 그대 복충을 죽인 것으로 셈을 치면 되지 않겠어? 하하하!”
그러나 산군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는데 그것을 본 구귀가 의아해했다.
그리고 그때.
조짐을 느낀 구귀가 팔을 뻗어 호신막을 펼쳤다.
콰아아앙!!
“뭐, 뭐야!”
용암처럼 변했던 사철이 터져나가며 시꺼먼 흑연이 폭사됐다.
흑연은 사철들을 모조리 녹여내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는데, 그것과 닿는 즉시 순식간에 형체가 잃었다.
하후미농의 담즙이었다.
“자, 잠깐만!”
구귀가 뭐라 하기도 전에 흑연으로 변한 담즙이 그녀를 덮쳐들었다.
사철을 모아 막아내도 잠시뿐, 순식간에 녹아들어 죽기 직전이었다.
그 순간.
파지지지직!!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일대에 붉은 벼락이 내려치며 담즙을 터트렸다.
콰자자자자작!!
그리고 이내 붉은 뇌전을 일으키며 내려온 여인이 잔뜩 살기를 뿌려대며 탐화를 죽일 듯 노려봤다.
탐화 또한 붉은 벼락을 맞고 성이 났는지 금세 달려들 기세였다.
그러나.
“하, 누가 숨어 있나 했는데… 홍연! 그대가 왜 이곳에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