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51)
낭선기환담-150화(151/600)
낭선기환담 – 150화
“반갑다 난 백지운이라고 한다.”
웬 사내가 하나가 앞에서 말했다.
산군은 그 앞에서 많은 이들과 함께 모여 있었는데, 모두 백산의 제자가 되고 싶어하는 이들이었다.
화란은 옛날 버릇 못 버렸는지 사람이 너무 많다며 숨어버렸다.
별로 상관은 없었다.
산군은 지금 혼아들과 동행하여 시험을 치러볼 생각이었으니.
“모두들 백산파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웬만큼 고명한 영산보다 백산의 영기가 몇 배나 높으니 당연히 들어오고 싶겠지!”
커다란 바위 위에 올라가 바람 잡는 사내는 도선의 경지를 지녔다.
덥수룩한 수염과 풍채 좋은 체격을 지니고 있었는데, 산군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인물이었다.
“백산에서 수행하면 다른 곳보다 월등히 수련 속도가 곱절은 빠르다. 나 또한 5년 전까지 검선이었으나 백산에 들어오고 수행이 극히 빨라져 도선에 오르게 되었지!”
백산에 몸담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녀석이었던 모양이다.
“그럼 저희도 백산에서 수행하면 도사님처럼 도선이 될 수 있습니까?!”
“당연하지! 그러나 비인부전(非人不傳) 비기자부전(非技者不傳)이라 하니 아무나 들어올 수는 없는 법!”
재능이 있어도 인격적으로 결함이 있는 자에게는 가르침을 주지 말라는 뜻깊은 말이다.
“무슨 소리야 저게?”
운모가 류앵에게 물었다.
류앵도 고개를 갸웃할 뿐 정확히 무슨 말인지 모르는 듯 했다.
“아무나 들어올 수 없다는 소리야.”
“그렇구나. 범 똑똑해!”
“난 아무나가 아니니 괜찮아!”
류앵은 산군을 칭찬하고, 운모는 헛소리를 내뱉었다.
“시험은 총 세 가지!
그것들 모두를 통과한다면 백산의 제자가 될 수 있고 뛰어난 성적으로 완료하는 자에게는 승선단(昇線團)을 하사한다!”
“스, 승선단을!?”
웅성웅성거리는 이들의 표정이 경악에서 희열로 바뀌었다.
승선단은 도봉환보다 한 등급 더 높은 것으로 도선이 먹으면 비선으로 승선할 수 있다는 단약이었다.
‘호오.’
해봤자 도봉환이나 준비하지 않았을까 했는데 제법 힘을 쓴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300년이 훌쩍 지나기도 했고, 백산 근처의 영맥 또한 나쁘지 않으니 재화를 꽤 축적한 모양이다.
‘항보신목의 잎이나 신단수의 잎을 조금 내다파는 걸로도 충분한 재물을 긁어모을 수 있었을 테지.’
항보신목의 잎은 신식을 강고히 해주는 것으로 유명하니 없어서 구하지 못하는 것이고, 신단수 또한 그 신통이 현묘하여 이파리 하나를 씹어 먹는 걸로 체내의 독소를 배출하고 내성을 키울 수 있으니 부르는 게 값일 터.
‘연아가 잘 했겠지.’
나무 이파리 정도야 자연히 떨어지는 것이니 알아서 신목들이 상하지 않도록 잘 했을 것이다.
“들었어? 승선단이래 승선단! 다른 곳을 찾아봐도 승선단을 입문 시험에서 내는 곳은 없다고!”
운모가 흥분했는지 고래고래 소리쳤는데,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점잖떨고 있는 이들이 많지만 대부분 희색을 감추기 어려워 보였다.
도봉환도 감지덕지하며 받을 텐데 승선단을 준다니 왜 안 그럴까.
그러자 산군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백산으로 온 게 신의 한수였다니까? 이렇게 통이 큰 문파는 찾아봐도 몇 없다고?”
산군은 저도 모르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때였다.
묘한 영기의 압력이 일대에 퍼졌다.
“윽.”
“크윽!”
운모와 류앵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다른 응시자들 또한 마찬가지.
‘난리 났군, 아주.’
조금 시끄럽게 했다고 도선 놈이 영압을 퍼트린 것이었다.
개미가 흩고 가는 수준이라 산군은 아무렇지도 않았으나 도사 놈이 유독 자신을 쳐다보며 쌍심지를 키자 작게 한숨 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백지운이라고? 나중에 넌 죽었다.’
“에헴! 이제야 조금 조용하군. 첫 번째 시험은 간단하다. 백산의 하문(下門)까지 도달해라! 그리하면 다음 시험을 치룰 수 있을 것이다.”
시험은 의외로 간단했다.
“하문에만 가면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겁니까?”
응시자 중 검선 사내가 물었다.
백지운이라는 도사는 싱긋 웃었다.
“물론!”
하문에 당도할 수 있다면 말이지!
그리 말한 도사는 부적 하나를 꺼내 입을 달싹이더니 나무에 척 붙였다. 돌연 나무가 들썩이며 길이 열렸다.
‘귀엽네.’
뭔가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시험 종료는 해가 질 때까지다! 모쪼록 통과하길 바란다!”
그 말을 끝으로 도사는 새하얀 연기를 뿜어내며 사라졌다.
하는 짓이 너무 웃겨서 배꼽을 잡았으나 응시자들에겐 신선처럼 보였는지 놀라움이 깃들어 있었다.
“범, 류앵! 가자!”
그렇게 산군은 류앵, 운모와 함께 하문을 향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 * *
백산 초입 부근.
나무 위에는 은술로 기운을 감추고 있는 도사들 여럿이 자리했다.
그 밑에는 부푼 꿈을 끌어안고 백산에 찾아온 응시자들로 붐볐다.
“쓸 만한 놈이 있어 보이나?”
머리가 맨들맨들한 동자승.
영명에 이른 만삼이었다.
그 곁에는 수염을 길게 기른 중년 사내가 자리했는데 만삼과는 항상 티격태격 싸우는 태양화리 명화였다.
“이제 시작했는데 어찌 알겠소.”
여지없이 툴툴거리고 있으니 붉은 검을 밟고 날아오는 이가 보였다.
백산의 장로 연아였다.
“쓸 만한 놈이 아니라 싹수가 노란 놈들을 찾으셔야지요, 장로님들.”
인자한 낯으로 말하자 만삼과 명화가 허허 웃으며 연아를 반겼다.
“대강 눈에 띠는 놈들은 보이네만 아직은 긴가민가 하덥디다.”
“음, 저 노인네 말대로 이제 시작이니 천천히 둘러봐야겠지요.”
그러나 만삼이는 유독 한 소년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저기 저 꼬맹이 말입니다.”
슬쩍 시선을 돌리니 아이들 셋이 함께 다니는 무리였다.
여자애 하나와 남자애 둘.
그 중 남자아이를 지목하고 있었다.
“흠, 만 장로도 보고 있었나.”
명화도 수염을 매만지며 거들었다.
“자네도?”
“음, 자세하게는 잘 모르겠으나 보통 놈은 아닐걸세.”
“혼아라서 그런 것 아닌가?”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명 장로는 한참을 고심하다 고개를 가로 저었다. 단정짓기 애매했다.
“좀 더 지켜봐야겠네. 아직은….”
“그렇군요. 바쁘신 와중에 장로님들이 수고 좀 해주셔야겠습니다.”
연아가 고개 숙이며 말하자 만삼과 명화가 손사래를 쳤다.
“그리 말하면 우리가 부끄럽지 않습니까. 산군의 부재로 발 벗고 뛰시는 분이 장로 아닙니까. 게다가 우리 사이에 너무 격식 차릴 것 없어요!”
“만 장로 말이 맞습니다. 우리가 한두 해 본 사이도 아닌데요.”
“하하, 그래도 어찌 그럴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백산을 지키는 것뿐이라 그런 거니 금칠하실 필요 없어요.”
연아는 손사래 치며 얼굴을 붉혔다. 명화와 만삼은 그런 연아를 보며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그나저나 우리 백산도 참으로 융성했습니다. 입문 응시자가 500명에 가까우니…. 첫 번째 시험에서 몇 명이나 떨어져나갈지 궁금하네요.”
“명 장로 자네는 별 게 다 궁금하군. 해봤자 100명도 통과하지 못할걸? 내가 직접 만든 융삼비진(隆蔘譬陣)이네. 아무리 약화시켰다지만 저기 놈들은 도선도 못 되는 놈들이 태반!”
쉽게 통과할 수 없을 것이다.
“내기 할 텐가?”
“좋지! 만약 100명 이상이 통과한다면 만 장로 자네는 우리 막내딸 명칠이를 제자로 들여야 하네!”
“뭐? 내 약재밭 들어와서 불장난 친 그년을 말하는 게야?”
“요새 영결에 올라 둔갑을 배운 뒤로는 천방지축이라 말이야…. 자네가 자신이 없다면 나도 뭐라 하지는 않겠네. 자신이 없다면 뭐….”
은근히 말하자 만삼이 입꼬리를 비틀며 비웃었다.
“그렇게 하세! 하지만 만약 내기를 내가 이기게 된다면 자네가 산군님 드릴려고 애지중지하는 초화열태(初化熱苔)는 내가 가지는 걸세!”
시종일관 인자한 미소를 짓던 명화의 낯빛이 굳었다.
“아니 그건 산군님께 드릴 선물인데 자네가 어찌…. 목신통을 부리는 만 장로에게는 필요도 없지 않나.”
“내가 산군께 드릴려고 그런다 왜 쫄리시면 그만해도 상관없네만?”
“그래 하세나!”
만삼과 명화가 눈을 부라리며 서로를 바라보다 등을 돌렸다.
“또 그러십니다. 어찌 만나기만하면 싸우시니….”
할 말이 많았지만 하지는 않았다.
주변을 돌아보니 함께 대기하고 있던 도선과 비선 제자들이 쓴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이 이번 입문 시험에서 첩자가 튀어나올 것을 대비한 인원들이었다.
“시험은 총 세 단계. 너희들의 임무가 막중하니 단단히 대비하거라.”
“존명!”
연아가 바람처럼 사라지자 만삼이 수결을 맺고 진법을 발동했다.
그렇게 잠시 뒤.
백산 초입에 곡소리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만삼은 흡족하게 미소 지었고 명화는 떨떠름하게 지켜봤다.
* * *
아이고오!
으악!
진법이 발동한 뒤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퍼져나왔다.
‘교묘한 진법이네.’
갑자기 몸뚱이가 천근만근처럼 무거워져 뭔가 했더니 진법 탓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몸이 점점 무거워지는 진법으로 보였다.
처음에는 음성을 삼키며 오르던 이들도 점차 그 속도가 눈에 보일 정도로 느려지기 일쑤였다.
“으윽… 너무…!”
힘들 것이다.
대부분 아직 내단을 개화하지 못한 범인이거나 검선 수준이니까.
‘나쁘지 않네. 평등한 시험이야.’
영수와 인간, 그리고 혼아들은 각기 다른 신체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것을 감안한 시험이라 편파적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버, 범은 안 힘들어?”
비지땀을 흘리는 류앵이 물었다.
다른 이들 전부 헐떡이거나 간신히 무릎을 잡으며 버티고 있는데 오직 그만이 평온해 보였다.
“난 괜찮아. 나 말고 저쪽에 저놈도 아무렇지 않잖아?”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녹색 장포 여인과 사내가 보였는데 그들도 산군과 마찬가지로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정말이네? 뭐야 불공평해!”
수줍음 가득하던 소녀는 어디 가고 볼멘소리를 내는 여아로 변했다.
육체적 고통은 수줍음도 사라지게 만드는 모양이다.
“류앵 힘내! 이제 조금만 올라가면 하문이 보일 테니까!”
“알았어!”
하문은 아직 멀었지만 산군은 조용히 입다물고 주변을 살폈다.
제일 선두는 녹색 장포를 입은 이들이었다.
그들은 도선의 수행을 지녔으나 그런 것 치고도 많이 수상했다.
‘도선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조금 수상해.’
하지만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앞서가는 이들 대부분은 엄청난 인내력과 근성으로 나아가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렇지 않은 놈들도 있었다.
“보물을 사용하는구나.”
각자 대비한 보물들이 있는지 진법의 영향을 막아내고 있었다.
“보물? 반칙 아냐?”
“헥헥, 반칙은 아니지… 도사가 지닌 보물도 자기 힘이니까.”
류앵이 틱틱거렸으나 운모가 숨을 헐떡이며 차분히 말했다.
도사가 지닌 보물도 그의 힘.
어찌보면 불공평할 수도 있으나 도계는 항상 불합리한 곳이다.
그 불합리함을 대비하는 자만이 살아남는 법.
“미리 대비하지 않은 우리가 멍청한 놈이라는 거야?”
“따지고 보면 헉헉, 그렇지 않나?”
그러자 류앵도 입을 다물었다.
-대견하네요. 어른들도 포기하는데 이런 어린애들이….
당연히 경탄할 일이지만 산군은 시큰둥한 낯을 지어보였다.
그렇게 한 시진이 흐르고 두 시진이 흐르자 탈락자가 속출했다.
모두 식은땀을 뻘뻘 흘린 채로 바닥에 주저앉거나 드러누웠다.
슬슬 해가 저물어가니 희비가 교차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산군은 저 멀리 보이는 웅장한 대문 형식의 하문을 바라봤다.
거대한 호랑이와 불꽃이 수놓아져 보는 이로 하여금 용맹한 범의 기세를 느낄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류앵과 운모는 다리를 부들부들 떨어가며 움직이지 못했다.
하문이 코앞에 있는데도 바닥에 엎어져 경련하고 있었다.
그러나 둘의 눈빛만은 하문에게 떼어지지 않았다.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요.
-모를 일이지.
사연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내심 궁금하기는 했으나 산군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지켜봤다.
그들은 기어서라도 갈 생각인지 궁벵이보다 느리게 조금씩 기어갔다.
그때였다.
[어어! 이놈이!!]윗길에 있던 영수의 몸이 뒤로 기울어지며 굴러 떨어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원숭이 영수 놈이 오르막 길에서 뒹구니 길을 거닐던 다른 응시자들도 휩쓸려 떨어져 내렸다.
-저런 몹쓸 놈이!
화란이 화를 냈다.
영수가 떨어져 내린 것은 선두에 있던 어느 응시자 때문이었다.
의도적으로 밀어버린 것 같았다.
“꺄악!!”
원숭이 영수와 휩쓸린 다른 응시자들이 돌멩이처럼 튕겨나갔다.
어느새 류앵과 운모의 코앞까지 다가온 상태.
기어가던 그들에게 영수가 들이박으면 어찌될지는 자명하다.
하지만 피할 길이 없다.
겨우 기어가고 있는데 피할 힘이 대체 어디서 솟아난단 말인가.
이내 눈을 질끈 감았던 그때.
[우아아악!!]영수가 갑자기 소릴 지르더니 운모의 앞에서 역행하여 날아갔다.
‘뭐, 뭐야…!’
굴러떨어지던 영수가 다시 하늘로 치솟아 하문 앞으로 날아갔다.
“끄악!!”
[잘됐다 이놈아! 감히 날 밀어?!]속시원한 말투로 보아 자신을 밀어버린 놈이 밑에 깔렸나보다.
인과응보였다.
영수는 잘됐다며 자신을 밀어버린 응시자를 비오는 날 먼지나게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그 둘은 백산의 도사들이 다가와 뜯어 말리고서야 그만두고 하문으로 들어섰다.
운모는 화들짝 놀랐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파악할 기력은 없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지금은 오직 앞만 보며 나아갈 때였다.
비록 그것이 기어가는 것이라지만!
그리고 잠시 뒤.
산 뒤로 해가 저물어 갈 때.
운모와 해운이 하문의 문지방에 손을 걸치고 쓰러졌다.
“에이… 쟤들만 아니었어도 내기는 내가 이겼을 것을!”
“명칠이를 잘 부탁합니다, 만 장로!”
이내 시원시원한 웃음소리가 들리고는 명화가 사라졌다.
만삼은 분에 겨워하다 혀를 쯧 차고는 스르륵 모습을 감췄다.
산군은 그리운 목소리들을 들으며 운모와 류앵을 들쳐 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