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54)
낭선기환담-153화(154/600)
낭선기환담 – 153화
채앵!!
벼락처럼 날아든 찌르기!
하지만 산군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 창을 걷어냈다.
“흡!”
화들짝 놀란 총마루가 다시 자세를 잡아보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온몸에 무형의 압력이 천근처럼 짓누르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아연실색해 상대를 쳐다봤으나, 곱상한 외모의 소년은 뒷짐을 진 채로 가만히 바라만보고 있었다.
온몸을 꿰뚫어보는 듯한 적안.
그제야 그는 한 인물이 떠올랐다.
“서, 설마 백산의 주인이십니까?!”
그제야 산군이 흡족한 미소를 흘리며 기운을 흩어버렸다.
“네 어미 일은 안됐구나.”
“아, 아닙니다! 저희를 구해주신 은사님께 어찌 사과를 받을까요!
어머님은 수명이 한계에 달해 영면하셨으나 그래도… 호상(好喪)이셨습니다.”
애써 웃는 얼굴로 말하는 마루의 모습에 산군이 침음을 삼켰다.
“그런가….”
300년이 훨씬 지났다.
총마루의 어미는 도선이었으니 흙으로 돌아감이 마땅했다.
비선으로의 승선은 누구나 이룰 수 있으나 아무나 오르지는 못하는 법이었으니.
산군은 적적한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다 화제를 돌렸다.
“금제가 형편없구나.”
신단수는 호접량충이 돌보고 있고, 수량도 많아 그렇다 쳐도 항보신목은 단 한 그루뿐이다.
그런 신목을 가벼운 금제로만 걸어뒀으니 영 마음에 차지 않았다.
“만 장로께서 만든 것이라….”
“만삼이가? 고놈 참, 뭐 이리 허술하게…. 손 좀 봐야겠구나.”
산군은 곧장 열 손가락을 튕겨 법 문을 쏘아대고 금제를 강화시켰다.
품에서 환진패 몇 개를 꺼내들어 설치하니 마음이 놓였다.
“한데 네가 어찌 항보신목을 돌보고 있는 것이냐?”
“아, 입문 시험으로 만 장로가 바빠 제가 잠시 봐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던 모양이다.
“잠시 둘러보마.”
오랜만에 항보신목을 보았다.
가지 하나를 잘라낸 탓에 항마기가 점점 빛을 잃었었는데, 지금은 이전의 기운을 되찾았다.
아마 영내산, 그리고 신단수와 함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이 정도라면 항보사인검 몇 자루를 더 만들어내도 상관없겠어.”
한 자루만으로도 산군에게 큰 도움을 줬던 사인검이다.
항마기를 더 많이 다룰 수 있게 된다면 마기와 사기는 물론, 흉력이라도 산군을 어쩌지 못할 것이다.
‘33개 정도라면 설사 붕계나 사계에 떨어져도 아무렇지 않겠지.’
흡족한 낯으로 항보신목을 매만지던 그는 뒤를 돌아 총마루를 보았다.
“많이 컸어. 게다가 비선에 이르기까지 했으니 이 또한 인연일까.”
총마루는 비선 초경의 경지였다.
수명이 아직 200년 정도 남았을 테니 급박하지는 않으나 넉넉하다 할 수도 없었다.
“받거라. 내게는 쓸모없는 것이니.”
품에서 약병 하나를 꺼내 던졌다.
풍연단(風煙團)이라는 단약이었다.
“환선까지는 아니더라도 후경까지는 막힘없이 뚫어줄 것이다.”
해족들을 잡아 죽이면서 얻었던 단약으로 산군에겐 필요치 않은 물건이었다. 여러 개 있기도 했고 이것도 인연이라 하나 내준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기연이라 할 수 있었다.
총마루는 넙죽 절하며 감사를 전하고 약병을 소중히 집어넣었다.
“녀석 참.”
산군은 잠시 총마루와 300년 전 이야기를 나누었다.
백산에 당도해 어떻게 지냈는지 등등 사소한 것들이었다.
“그랬구나. 그때 이미 영내산이 만들어졌기에 초아가….”
“예! 산비님이 따뜻하게 맞아주시며 저희 거처를 정해주셨습니다.”
“그래….”
그 뒤로도 이런저런 담화를 나누다 슬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직 할 일이 많았다.
“가봐야겠다. 그래도 백산의 주인이라 불리는 놈인데 여기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느냐.”
“예. 아! 혹시 시간이 나신다면 다시 한번 들려주십시오.
어머니가… 장문님께 꼭 전해주라 하신 물건이 있습니다. 살아생전에 항상 그것을 전해야 한다 말씀하시곤 했지요.”
“그렇담 필히 받아야겠구나. 지금은 마땅치 않으니 후에 따로 너를 부르마. 잠시 기다리고 있거라.”
“알겠습니다!”
산군은 은빛이 창연한 항보신목을 힐긋 보고는 안개처럼 사라졌다.
마루는 그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넙죽 엎드려 절을 올렸다.
* * *
영내산 중턱에는 작은 소년과 소녀가 함께 산을 오르고 있었다.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진귀한 영초를 찾는 듯 보였는데, 그들은 산군과 함께 다녔던 운모와 류앵이었다.
“난 나 말고 다른 혼아혈은 처음 봤어. 너도 그랬니?”
“응, 나도 처음 봤어.”
호접량충의 혼아라고 그랬다.
어째서인지 나무 위에서 살아가는 그들은 영초를 찾으면 말하라 했다.
영내산을 벗어나고 싶으면 자신들을 찾아야 할 거라며 말이다.
그때였다.
“앵아, 쉿!”
돌연 운모가 류앵의 손을 잡고 검지를 입가에 가져가 댔다. 수풀에 몸을 숨기자 인기척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검은 안대로 두 눈을 가리고 있던 무리였다. 그들이 주변을 돌아보다 멈춰 섰다.
“호접량충. 혹시나 했는데 정말 이곳에 있었을 줄이야!”
안대 무리 중 한명이 소리쳤다.
“그렇다면 여기가 바로….”
“그래. 그놈 문파일 확률이 높다.”
이를 바득바득 갈던 여인이 나뭇잎 하나를 꺼내어 건넸다.
“확인해 보거라.”
“옙!”
여인 몇몇이 이파리 몇 개를 가지고 주술을 부리며 영기를 불어넣더니 이내 고개를 주억였다.
“신단수가 맞습니다!”
“역시!”
환희에 찬 그녀의 낯이 다시금 표독스럽게 물들었다.
“안일하기 짝이 없구나! 입문 시험을 위해 개방한 곳에 신단수를 심어 놓았다니!”
어쩐지 수상했다.
별 볼일 없던 산이 몇 백 년 만에 고명한 영맥을 지니게 됐단 말인가.
허나 그 실체는 영내산에 심어져 있는 천 그루가 넘는 신단수 때문!!
이제야 비밀이 밝혀졌다.
“이제 어찌할까요.”
“고민할 게 무엇일까. 어차피 백산에는 영겁 육사나 도사가 없다.”
해봤자 환선이나 영명 수준.
두려워 할 이유는 없다.
“그래도 굳이 놈들과 싸울 필요는 없지. 우린 다섯뿐이니까.”
소란 피워 좋을 것 없다.
자신들은 아직 소수.
이 사실을 알리는 게 우선이다.
“증거로 쓰일 신단수 가지 몇 개를 채취하고 조용히 나간다. 이 사실을 동해에 알리기만 하면 우리는 큰 상을 받을 것이고, 나머지는….”
우선은 그것이면 족했다.
“의심을 피해야 하니 적당한 영초들을 모아 곧장 밖으로 나간다.”
“이놈들은 어찌할까요.”
그들 곁에는 사지를 벌벌 떨고 있는 크고 작은 사내들이 몇 있었다.
내문제자가 확정된 이들이었다.
1시험을 통과했을 때부터 은연중 친근하게 굴던 놈들이었다.
떡고물이라도 얻어 먹으려 붙어 있던 놈들이었으나 그들이 잡은 건 제대로 썩은 동아줄이었다.
“자세히는 몰라도 이곳은 호접량충이 가득한 곳이다. 죽였다가는 그들이 눈치채고 냄새를 맡겠지.”
“그럼….”
“신단수는 이제 우리 것이나 다름없으니 저것들 거름으로 주자꾸나.”
안대 무리가 떠나자 숨어 있던 운모와 류앵이 몸을 일으켰다.
공포심이 다리가 덜덜 떨렸다.
하마터면 오줌을 지릴 뻔했다.
“류, 류앵 괜찮아?”
“괜찮아. 무서웠을 텐데 잘 참았어.”
“내가 그나마 잘하는 게 참는 거라서…. 그건 그렇고 류앵은 안 무서웠던 거야? 난 오줌 쌀 뻔 했어.”
간담이 서늘했다며 팔뚝을 문지르는 운모와는 다르게 류앵이 슬쩍 미소 지었다.
“그것보다는 우리도 빨리 진귀한 영초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 시험은 선착순이니까.”
“무슨 소리야 우선 파묻힌 사람들부터 구해야지!”
운모는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곰 영수와 뒤섞인 혼아이기에 땅 파는 것 정도는 손쉬웠다.
일각 정도 팠을까.
흙더미에 파묻힌 사람이 보였다.
운모는 곧장 그들을 꺼냈으나….
“한 발 늦었구나.”
범인의 몸은 너무 나약했다.
산채로 땅속에 파묻혔으나 고작 일각 만에 죽어버린 것이다.
깊이도 깊거니와 영내산에 자리한 영충들이 한몫하기도 했다.
파묻히자마자 영충에게 공격당해 죽어버린 것 같았다.
운모는 자신을 자책했으나 할 수 있는 건 다시 흙을 덮어주는 것뿐.
“도술만 부릴 수 있었다면….”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허나 류앵이 일축했다.
“의미 없는 짓이야. 지금 넌 축기(縮氣) 하지도 못하는 혼아일 뿐이니.”
“…그래.”
명복을 빌어주고는 운모는 류앵과 함께 다른 곳으로 향했다.
안타까웠으나 더 의지가 솟았다.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번 시험에서 1등을 차지하고 싶었다. 그리하면 이처럼 가슴 쓰린 일은 더 없을 테니….
“그래 네놈들일 줄 알았다.”
돌연 나무 뒤에서 검은 안대를 쓴 여인 하나가 튀어나왔다.
이전에 봤던 놈들 중 성격이 제일 개차반이던 녀석이다.
“웬 놈들이 숨어있다 했더니….”
놈은 운모와 류앵을 보며 피식거렸다.
“어디까지 들었냐.”
“뭐, 뭘!”
“알 텐데?”
“우린 모른다!”
전신이 긴장감으로 얼룩졌다.
괜시리 가슴이 쿵쿵 뛰어올랐다.
“웃기지 마라. 어차피 마음에 안 들었던 놈이니 잘 됐어.”
안대 여인이 운모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도망치고 싶었으나 발이 지면에 달라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다리가 천근처럼 무거웠다.
“그 범이란 놈이 없는 게 아쉽지만 상관없지. 곧 같은 곳으로 보내줄 테니 너무 외로워하지는 말아라.”
놈의 손아귀가 드리워지던 그때.
“운모!”
류앵의 목소리가 운모를 깨웠다.
몸을 흠칫 떨고 주먹을 쥐어 단숨에 놈의 복부로 찔러 들었다.
퍽!
회심의 일격.
하지만 체격 차이가 심했다.
“하핫! 더 때려 봐라! 그깟 솜 주먹으로 어쩔 수 있으리라 믿느냐?”
한껏 조소하며 비웃는 그녀의 말에 운모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분에 겨워 주먹을 더 내질렀다.
퍽퍽!
그러나 놈은 비웃음을 멈추지 않고 더 때려 보라 잔인하게 말했다.
놈의 말이 맞다.
자신은 너무 약했다.
‘제길…!’
힘을 원했다.
그것을 갈망하여 백산에 왔다.
겨우겨우 내문제자가 됐다.
이제는 힘을 키우기만 하면 됐는데! 꽃을 피우기도 전, 꺾여버릴 자신의 처지가 너무 억울했다.
“죽어라.”
눈을 질끈 감았다.
감으면 안 되는데.
저도 모르게 감았다.
‘눈 떠! 사내대장부로서 류앵이라도 지켜야 하지 않겠어!’
다시금 눈을 뜬 그때.
쉭!
턱!
“흣!”
운모의 눈앞에는 새까만 기괴한 검 한 자루가 꽂혀 있었다.
“누구냐!”
어디서 날아온 지도 모르겠는 검.
안대 여인이 주변을 살피며 경계했으나 기척을 살필 수 없다.
누가 이곳에 있다.
그러나 알 수 없다.
은술이 고명한 도사거나 자신보다 월등히 높은 경지의….
운모는 검을 바라봤다.
검은 색의 윤기가 자르르한 검.
뭔가 벌레를 연상시키는 검이었다.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촤악!
검이 살아 움직이듯 요동치더니 운모의 전신으로 뒤덮였다.
“우왁!!”
흑색의 검은 운모의 몸에 딱 알맞은 갑주로 변해 전신에 둘러졌다.
“검이 갑옷으로…?”
뭔지 모를 일투성이였다.
그러나 놈이 당황하는 얼굴을 보니.
“기분이 나쁘진 않네.”
운모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전신에 힘이 차올랐다.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전능감.
뭘 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저놈이 당황하는 얼굴.
그것을 더 보고 싶었다.
이내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단숨에 튀어나갔다.
파앙!
“자, 잠깐!!”
놈에게 주먹을 내지른 순간.
콰자자작!!
검은 실이 대거 방출되며 전방에 있는 모든 것을 꿰뚫어 버렸다.
“세상에….”
운모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어안이 벙벙했고, 그것을 내려다보고 있던 이는 흡족하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