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56)
낭선기환담-155화(156/600)
낭선기환담 – 155화
“하, 하하하하하!!”
류앵이 허리를 젖히고 깔깔 웃는다.
그러나 운모는 웃을 수 없었다.
막겠다 선언했으나 그녀의 경지는 자그마치 영겁.
자신과는 살아온 세월의 흐름 자체가 판이한 존재다.
그녀의 손짓 한 번에 목이 날아갈 테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운모가 믿는 건 오직 갑주뿐!
“어이가 없어 웃음밖에 안 나와. 네가 날 막겠다고? 그저 운 좋게 영충의 선택을 받은 네가?”
류앵은 냉소했다.
금단도 이루지도 못한 일개 혼아.
범인과 다를 바 없는 놈이다.
그런 놈이 자신을 막겠다 선언하니 어찌 우습지 않겠는가.
자신은 영겁의 육사.
손짓 하나로 나라를 망하게 하기도 살리게 하기도 하는 영겁이다.
고작 혼아 따위가 어찌 막을까.
“해볼 테면 해봐. 빨리 죽고 싶다는데 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지.”
“흐아압!!”
기함성을 내지르며 돌진한다.
하지만 검선도 아닌 범인.
느려터진 속도에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으나 서툰 몸놀림과 다르게 갑주가 지닌 기운은 흉포했다.
영겁인 자신마저도 섣불리 대응하면 안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운모가 곧장 주먹을 내질렀다.
별 볼일 없는 주먹질이다.
허나 이상하게 섬뜩했다.
류앵은 곧장 공간을 접어 사라졌다.
콰앙!
“손쉽게 얻은 힘으로 날 어찌할 수 있으리라 믿었니? 우습구나.”
그녀가 있던 자리가 폭사됐다.
운모는 갑주의 영향인지 영압과 살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듯 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고작 그게 통하지 않는다고 저런 꼬마 하나 상대하지 못할까.
운모의 뒤로 축지한 류앵은 곧장 손을 뻗었다.
그러자 운모가 무형의 기운에 휘감겨 몸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몸을 허우적거렸으나 그뿐.
다른 방도는 없었다.
“이자식 비겁하다!”
갑주가 아무리 대단해도 그걸 다루는 자가 범인이면 무서울 것도 없다.
한껏 조소하며 입꼬리를 끌어 올리고 있을 때.
지이잉.
“뭣….”
갑주에서 돌연 기이한 기운이 흘러나오며 류앵의 허공섭물을 흩었다.
그제야 땅에 착지한 운모가 대찬 기함을 내지르며 달려 들었다.
“류애애앵!!”
류앵은 아미를 찌푸리고는 소매를 펄럭였다. 소매 속에서 돌연 20마리의 알록달록한 독뱀들이 쏟아졌다.
독뱀들은 특이하게 잠자리 같은 날개를 달고 있었는데, 재빠르기가 빛과 같아 운모는 대응조차 못했다.
쿵쿵쿵!
몸을 웅크렸으나 튕겨져 나간 것은 오히려 뱀들이었다.
그들의 독니는 갑주를 뚫지 못했다.
오히려 독니가 녹아내리고 독뱀들이 모조리 죽어버렸다.
“…하!”
기가 찼는지 류앵이 탄성을 토했다.
“갑주가 대단키는 하구나. 내가 삼백 년을 키워온 독충사(獨沖蛇)를 버텨내더니 도리어 죽여 버려?”
그녀의 손이 짙은 녹색으로 물들어 흉흉한 독기를 뿜어댔다.
타앙!
“윽!”
둔탁한 소음이 퍼졌다.
“쯧, 네가 얻은 것이 대단키는 해. 지금 내가 지닌 것으로 그 갑주를 뚫을 기물은 없겠어. 단단하기가 금강보다 더하니 내가 어찌할까.”
등을 때려맞은 운모는 바닥을 한바퀴 구른 뒤 아무렇지 않게 일어났다.
등을 밀쳐져서 넘어진 모습.
딱 그 모습이었다.
내심 담담한 척 하려 했으나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다.
“그 튼튼한 갑주로 독무까지 막아 낼 수 있는지 한번 보자!”
퍼엉!
그녀의 몸에서 녹음진 독무가 사방으로 터져나왔다.
아무리 갑주가 보호한다더라도 독 연기를 마시고도 멀쩡할 순 없다.
갑주는 몰라도 운모는 단순한 범인.
자신은 어릴 적부터 독공을 수련해 몸속에 10대 극독 중 하나인 십모독(十母毒)을 품고 있다.
평범한 범인은 한 호흡만 삼켜도 전신이 녹아내릴 것이고, 웬만큼 독에 내성이 있는 도사들도 무사하기 어려운 극독 중의 극독이었다.
“십모독을 뿌렸음에도 그 멍청한 낯짝을 지을 수 있는지 보자꾸나!”
희열에 차 소리친 류앵은 당황으로 일그러진 운모의 얼굴을 보았다.
저 멍청한 낯짝을 보니 이제야 화병이 가시는 듯했다.
독무의 영향으로 백산파의 도사들이 조금 죽겠으나 상관없었다.
“차피 백산은 이제 내 것이니.”
그때였다.
돌연 묵직한 사내의 음성이 류앵의 귓가를 파고 들었다.
[누구 마음 대로.]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화르륵!
사방에 거대한 불길이 치솟았다.
돌연 터져 나온 불길은 십모독의 독무를 순식간에 불태워버렸다.
불기둥이 지면에서부터 폭발적으로 터져 나와 풍경이 녹아내리며 사방이 푸른 불바다가 되었다.
갑작스러운 이변에 류앵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버릇없는 놈을 혼내주고 있는 중에 갑자기 엄청난 화신통이 튀어나오니 어찌 놀라지 않을까.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이곳에 자신 말고 또 다른 영겁이 있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하나.
불길에 몸을 보호해야 한다.
그녀가 수결을 맺으려던 찰나.
푸른 불길 속에서 사내의 인영이 청염을 헤치고 나타났다.
“백산이 누구 것이라고?”
무감정한 붉은 눈과 온몸에서 뿜어내는 청염이 인상적인 사내였다.
은연중 드러내는 살기는 살겁이라도 치렀는지 가히 어마어마한 정도.
류앵은 순간적으로 느꼈다.
‘도망쳐야…!’
그러나 이미 늦었다.
텁! 산군이 류앵의 목을 한손으로 잡아 들어 올렸다.
“윽! 으아아아악!!”
쿠웅!
무시무시한 압력과 함께 자신의 몸을 불태울 듯 타오르는 청염!
류앵은 저항할 수 없었다.
사내의 전신에 오색광채가 뿜어져 나오니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사방에 수만 개의 검이 자신을 노리고 있는 듯한 감각이었다.
“사, 살려주세요 선사! 조, 종이 되든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바라시는 게 있다면 뭐든 내놓을게요!”
비굴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소녀의 외양으로 이런 소릴 하니 마음이 약해질 법도 했다.
그러나 산군은 단호히 고개 저었다.
“지모사는 믿을 수가 없다.”
류앵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돌연 그녀의 머리띠가 불타오르자 이마 한 가운데가 쩍 벌어졌다.
지모사들이 가지고 있는 제 3의 눈.
법목(法目)이 튀어나온 것이다.
“그럼 죽어라!”
녹색 안광에서 녹빛이 번뜩였다.
그 순간 산군의 고개가 옆으로 젖혀지며 법목의 녹광을 피해냈다.
콰앙!!
산군 뒤의 암벽이 폭발을 일으키며 무너져 내렸다.
“지모사들은 모두 법목을 가지고 있으나 안에 담긴 힘은 다 다르다지? 네년은 법목에 독을 넣었구나.”
산군이 비릿하게 미소 지었다.
흔치 않은 법목신통이다.
탐나지 않을 리 없었다.
허나 그럴수록 류앵의 낯빛이 사색이 되어가며 새하얗게 질렸다.
“빌어먹을!!”
콰득!
모가지를 비틀어버린 산군은 곧장 검집을 꺼내 류앵의 화령을 담았다.
뛰쳐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혜연회검의 덫에 빠져나갈 순 없다.
“영겁 육사의 몸이라니 횡재했군.”
영겁의 육신이다.
탈형을 이룬 몸이니 이것으로 강시를 만들어도 좋을 것이고, 아니면 자신의 화령 하나를 넣어 화신으로 만들어도 나쁠 것 없다.
‘독공을 수련한 지모사의 몸이니 만성독염을 길들여도 좋겠지.’
류앵의 몸을 공정강에 집어넣은 산군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주변의 인원들은 모두들 입을 쩌억 벌리고 있었다.
백산파의 도사들부터 해족의 교인족 육사들까지.
“너희는 이제 사라지거라.”
딱.
손가락을 튕기자 해족의 발밑에서 불기둥이 치솟았다.
교인족 여인들은 도망치려 했으나 산군의 기운이 그들을 가두어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들의 몸이 재로 변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영겁 하나와 영명 셋을 죽여 버리자 백산파 도사들은 침도 삼키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진정한 봉악청화를 다루는 영겁 육사가 ‘그’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미천한 제자들이 하늘 높이 솟은 백산파의 장문을 뵈옵니다!!”
진정한 백산의 주인.
산군밖에는 없었다.
무릎 꿇은 채로 포권을 맺은 뒤 고개를 숙이며 소리쳤다.
조금 머쓱했으나 수백 명이 그리 소리치자 이제야 조금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장문이라.’
자신은 어느새 이 많은 문하들을 지닌 장문이 되었을까.
인생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느 누가 생각할 수 있었을까.
사냥꾼에게 죽을 뻔 했던 범이 문파를 창안하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늦으셨습니다.”
백산의 제자들 중, 가장 선두에 선 이들이 보였다.
만삼과 명화.
그리고 연아였다.
“설마 300년이 넘도록 오시지 않을 줄은 몰랐습니다, 산군…. 아니, 장문.”
명화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산군은 할 말이 없어 그저 반가움이 역력한 미소만 지었다.
“지금이라도 오셔서 다행입니다.”
연아였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산군은 가만히 미소 짓다가 연아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었다.
중년 여인을 아이 취급하는 모습이 괴이하기도 했으나 연아는 흡족히 미소 지었다.
“고생했다.”
이 한마디를 듣기 위해 300년을 열심히 살아온 것처럼.
연아는 만족한 듯했다.
“상황부터 마무리 지어야겠다.”
이후, 산군은 운모에게 다가갔다.
“잘해주었다. 네가 시간을 벌어준 덕에 나머지 첩자들을 모두 솎아낼 수 있었다. 네게 탐화를 내어준 게 정답이었던 모양이야.”
“예, 예?”
운모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산군은 슬쩍 웃어 보이고 모습을 바꾸었다.
탈형의 모습에서 뿔과 날개만 가린 모습이었다.
“헛!”
“어엇!!”
운모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 또한 동시에 놀라고 있었다.
“장문이셨습니까? 이거 참… 영수 놀리는 데에 일가견이 있으십니다.”
명화가 이전 일이 떠올랐는지 창피하다는 듯 쓰게 웃고, 비선과 도선 몇이 안색이 파리해졌다.
찔리는 게 있는 듯했다.
“아쉽겠으나 이제 돌려받아야겠다.”
산군이 손을 뻗자 운모의 몸을 뒤 덮었던 흑색 갑주가 작은 지네로 바뀌고 지네가 돌연 소녀로 변모했다.
“흥!”
탐화는 운모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놀라운 일 투성이였다.
갑주가 소녀가 된 것만 해도 놀라웠으나 그것이 장문의 것이었다.
그리고 장문은 이전에 함께 친분을 쌓으려 했던 범!
세상에 믿을 것 하나 없었다.
류앵이나 범이나 영겁이었다니.
하지만 이내 고소를 머금게 되었다.
그보다 더 아쉬운 것은 힘을 얻었다 생각했는데 그것이 사라져 허탈 했다.
“아쉬워하지 마라. 널 내 적전제자로 삼을 수는 없으나 기명제자로 삼아 줄 테니 성심성의껏 수행하거라.”
운모는 물론, 다른 도사들도 화들 짝 놀라며 몸을 떨었다.
이내 질투와 시기의 시선이 운모를 향했으나 산군이 시선을 돌리자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저, 저를 말입니까?”
“그래.”
“어, 어째서 저를….”
“글쎄,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의미 모를 소리였으나 자신이 거절하고 말고의 일이 아니었다.
영겁의 기명제자라니! 하늘이 주신 기연이나 다름없었다.
운모는 곧장 오체투지해 고개를 조아렸다.
“성심성의를 다해 스승으로 모시고 백산에 뼈를 묻을 각오로 수행에 임하겠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주억인 산군은 입문 시험을 마무리 지었다.
* * *
사흘 뒤.
여러 제자들을 받은 백산은 활기가 넘쳤다. 그것은 백산의 주인이 돌아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산군이 돌아온 것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즉슨.
“육동이라…. 들어 본 적 있다. 동쪽의 선도문이 연합한 세력이라지. 그리고 그놈들이 백산을 노리고?”
“바로 맞추셨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동쪽의 거대 문파 여섯이 만들어진 연합이 바로 육동이다.
백산 또한 제자 육성에 힘쓰고 있는 편이지만 아직 거대 문파라 하기에는 조금 미력했다.
한데 그 거대 문파 여섯이 만들어진 세력이니 상대하는 연아가 비지땀을 흘리는 게 당연했다.
그동안은 육동의 압박에 치욕을 견뎌야 하던 때도 많았다 했다.
영겁과 동급인 태선의 도사들을 뒷배로 둔 놈들이 배짱을 부렸으니 어찌 그렇지 않을까.
다행히 산군이 설치한 육령비탑이 있었기에 그들의 압박에도 견디고 있었으나 그마저도 여기까지.
육동의 사신이 아닌, 장문들이 마음먹고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널 불렀다고?”
“예. 임시지만 백산의 대소사를 맡아 처리한 것은 엄연히 스승님의 제자인 저니까요.”
자못 자부심이 깃든 말투다.
그러나 이내 근심이 들어앉았는지 연아의 얼굴에 주름이 패였다.
“어찌 부르는 걸까요.”
“뭘 어찌 불러. 좋게좋게 힘으로 찍어 누른 다음 영기가 충만해진 이유를 묻고 신단수나 강탈하려 하겠지 뭐.”
도계 놈들 하는 짓이 다 비슷비슷하지 않겠는가.
뻔할 뻔자였다.
“스승님은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불렀으니 가 봐야겠지.”
“가실 겁니까?”
“빚진 게 많으니 얼굴이라도 비추고 와야 세상 사는 도리겠지.”
덤덤한 말투와 다르게 산군의 눈빛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