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60)
낭선기환담-159화(160/600)
낭선기환담 – 159화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선사님!”
“감사드립니다, 선사님!”
태산 문도들 중 가장 경지가 높은 사내로 귀달이라는 도사였다.
곁에는 태산의 제자들 또한 함께 산군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리 고마워할 것 없다.”
“그렇다 해도 저희의 목숨을 구명해 주신 건 변함이 없습니다. 한낱 짐승도 제 목숨을 구해주면 보은을 하는 법인데 어찌 감사치 않을까요.”
태산을 이 난장판으로 만든 것이 바로 자신인데 도리어 감사 인사를 받으니 쓴웃음이 새어 나왔다.
“태산을 이리 불바다로 만든 장본인이 나라고 해도 말이냐?”
그러자 태산파 제자들이 대경실색하며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육동의 장문들과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 척을 지게 됐다. 너희들 또한 관계가 없지는 않지만 그런 이유로 살생을 저지르고 싶지는 않다.”
그것이 산군의 본심.
그리고.
“선택해라. 여기서 내 손에 죽을지. 아니면 백산 아래에 들어와 신선의 꿈을 키우며 수행할 것인지!”
산군의 안배였다.
몇 마디 거짓으로 이들 전부를 속이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리하여 제자들을 얻어 봤자 내부에 적을 심는 꼴일 뿐!
그럴 바에야 산군은 이들에게 솔직담백하게 털어놓고 선택지를 주었다.
죽을 텐가.
아니면 따를 텐가.
그것이 문제였다.
“어차피 뇌 선사는 너희를 버렸다.”
제자들이 죽어나가는데도 뇌 선사는 자신의 목숨을 위해 달아난 지 오래.
그들은 버려진 것이나 다름 없다.
문파간의 전쟁, 즉 선도전에서 적대 문파에 속한 제자들을 살리는 경우는 잘 없다. 화근을 그대로 둘 이유가 대체 어디 있을까.
미리 뿌리 뽑아 삭주굴근 하는 게 상책이며 상식이다.
산군이 아닌 다른 놈이었다면 진즉 깔끔하게 도륙을 냈을 것이다.
“나라면 제자를 버리고 도망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진심이었다.
“그것이 정말이십니까?”
“피 사질!”
귀달이 나무랐으나 피 사질이라 불린 여인은 직책이고 나발이고 개의치 않은 듯 눈을 붉게 물들이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까! 독염에 의해 많은 사제들과 사형들이 죽어나갔는데 어찌 저희를 모른 척하고 달아나실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자 귀달도 참담한 심정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 또한….”
모두 눈앞에 있는 산군이 원흉.
다른 제자들 또한 입을 꾹 다물고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땅바닥만 쳐다보며 음울한 기색을 풍겼다.
“전… 따르겠습니다.”
“피 사질!”
“장문께서도 저희를 버렸는데 어찌 저라고 버리지 못하겠습니까! 대도의 길에 인정은 필요 없다고 배웠으니 저는 오직 도를 위하겠습니다!”
피 사질이라 불린 여인은 산군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내 눈치보던 이들도 순차적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백산은 앞으로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문파가 될 것이다. 그 품에 있는 제자들 또한 다른 문파와는 궤를 달리하여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나를 따라라.”
그것이 너희가 사는 방법이니!
그리고 잠시 뒤.
태산의 대다수 제자들이 그에게 구배지례를 올렸다.
겉으로는 저리 말해도 속으로는 무슨 뜻을 품었는지 모를 일.
그러나 산군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 또한 상정 내의 일이다.
애초에 그도 그들을 믿지 않으니.
“너희는 죽음을 택하는 건가.”
“그렇소.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어찌 박쥐마냥 이리저리 옮겨 다닐까. 원수의 손에 거둬지고 싶은 마음일랑 없으니 단칼에 죽이시오!”
그 수가 약 서른.
“빌어먹을 노인네가 인복이 많아.”
산군은 뇌 선사를 욕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화르륵!!
바닥에서 단숨에 청염이 치솟아 서른 명의 제자들을 집어 삼켰다.
눈 깜짝 할 새에 재도 남지 않고 사라지자 곁에 있던 제자들이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나의 제자다. 백산의 이름을 짊어지고 있으니 행동거지 하나 허투루 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야.”
“존명!!”
“탐화. 네가 데리고 가거라.”
탐화가 거대 지네로 탈바꿈하자 제자들이 사색이 되어 소리를 질렀다.
“내 아이니 안심하고 타고 가거라. 너희를 안전하게 백산으로 데려다줄 것이니 걱정할 필요 없다.”
태산파 제자들은 우물쭈물 거리다가도 언제 이런 기회가 있을까 싶어 서둘러 탐화의 몸체 위로 올라탔다.
이내 탐화가 하늘에 올라 뱀처럼 날아가니 산군이 한시름 놓았다는 듯 콧김을 내뱉었다.
“어찌 거두셨습니까?”
화란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무의미한 살생을 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첫째였고, 둘째는 육동 놈들은 내상을 입었다 뿐이지 멀쩡히 살아 있다. 어디로 숨었는지 모르게 순식간에 자취를 감춰버렸지.”
“그것과 제자들이 무슨….”
“열받게 하려고.”
어차피 그들과 척을 지기로 한 이상 철저하게 부숴버려야 한다.
그리해야 다른 떨거지들도 백산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테니.
“태산파의 제자들이 전부 백산으로 사라졌다 하면 뇌 선사가 어찌 나올지 궁금하지 않더냐?”
모르긴 몰라도 그 얼굴이 이전처럼 평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다.
백산의 융성을 위해서도 많은 제자들과 인재들이 필요해질 것이다.
“그래도 전 걱정입니다. 뇌 선사는 태선 후경의 도사인데….”
그에 반해 산군은 영겁 초경.
같은 경지에서도 고하가 나뉘니 화란은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괜찮다. 대선 후경은 조금 버거울지 모르나 싸움은 힘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문파간의 선도전이라면 더더욱 그런 법이지. 게다가 뇌 선사는 만성독염에 당했으니 끌어내기만 한다면….”
범이 무섭다고는 하나, 이빨 빠진 호랑이라면 무서울 게 무어 있을까.
그리고 그 정도도 하지 못한다면 어찌 백산의 주인이라 하겠는가.
“게다가 태산은 예부터 고산으로 명망이 높았으니 영내산 또한 있을 터. 일단은 그것부터 손에 쥐어야겠다.”
육봉 전체와 척을 지기로 했으니 영내산을 모아 수봉외외정을 제 것으로 만들어보는 일도 나쁘지 않다.
산군은 걱정하는 화란의 손을 매만지다가 태산 속으로 들어갔다.
“못 말리신다니까.”
화란은 툴툴 거리다 태산 속으로 들어서는 그를 따라나섰다.
* * *
한 달 뒤.
태산에서 천리 떨어진 곳의 석실.
그곳에서는 여러 노인들이 합장한 채로 염주를 들고 있거나 솥과 대야를 꺼내놓고 쉼 없이 주술을 외우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둥글게 둘러 앉아 촛불 하나에 의지하고 있었는데, 신기한 것은 그들이 흘리는 땀은 새까맣고 냄새 또한 역해 피고름이 나오는 것 같았다.
그들은 정체는 한 달 전, 만성독염의 독기에 중독된 태선들이었다.
이내 촛불이 크게 발광하여 녹색의 불로 바뀌더니 태선의 몸에서 흘러나온 독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독기가 녹불에 닿자 새까만 연기로 산화해 천장의 구멍으로 흘러갔다.
그제야 노인들은 한숨을 내뱉고는 한결 편안한 얼굴로 일어났다.
“후우- 고생했네.”
“고생은요! 고생은 뇌 선사가 하지 않았습니까. 저희는 그저 선사가 준비한 진법의 보조를 한 것뿐이죠!”
다른 이들도 그리 생각하는지 고개를 주억이며 뇌 선사를 격찬했다.
“뇌 선사가 준비한 진법과 청탁병탄(淸濁倂呑)이 아니었다면 저희도 다른 이들처럼 독기에 당해 절명하거나 몇 백 년을 끙끙 앓으며 내상을 치료하려 버둥거리고 있었을 겁니다!”
몸의 체질과 더불어 독의 내성이 없는 태선 둘은 절명했으나 나머지는 뇌 선사의 기지로 무사할 수 있었다. 청탁병탄은 선하든 악하든 뭐든 받아들인다는 말처럼 어떤 기운이라도 흡수하는 초 형태의 지보였다.
뇌 선사가 가지고 있던 것으로 다른 태선들의 독기까지 치료한 것이었다.
“아직 완전히 독기를 뽑아낸 것은 아니니 너무 치켜세우지 말게. 적어도 석 달은 더 이리 독기를 뽑아내야 몸을 회복할 수 있을 게야.”
“물론이지요! 겨우 살아난 목숨인데 귀하게 다뤄야 하지 않겠습니까.”
놈의 독염에 죽기 직전까지 갔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구명 받은 목숨을 보전하는 것이 맞다.
허나 그렇지 못한 이도 있었다.
“하루빨리 놈의 멱을 따버리지 않고서는 심마가 걸릴 것만 같군!!”
쿠구궁!
태선의 살기에 석실이 들썩였다.
살아남은 넷 중 한명은 극히 호전적인 성격이라 살심이 들끓는 듯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대체 무슨 독염 이기에 태선 둘을 죽이고 한 호흡 삼킨 것만으로 이리 지독할까요! 십 대 극독 중 최고라 치는 붕양초수(崩場醋敷)라도 됐을까요?”
“모를 일이지. 허나 독기를 빼내는 데 성공했으니 이제 놈은 물론! 백산파 또한 땅 위에 붙어있지 못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야.”
뇌 선사는 물론, 다른 태선 노괴들 또한 고개를 주억였다.
애초부터 백산파는 그들 마음에 들지 않는 문파였다.
어찌 요수와 인간이 함께 어우러 져 지내는 문파가 있을 수 있을까!
도는 인간의 전유물이거늘!
“송 장문 말대로 백산파를 뿌리 뽑지 않고서는 저희들 모두 심마에 걸려 지선으로의 길이 멀어질 겁니다. 하루 빨리 거사를 치러야겠어요.”
그러나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독염 때문이었다.
“놈이 또 독염을 꺼내면 어쩝니까?”
그리하면 또 독기에 당해 이런 개고생을 하는 게 아닐지 두려웠다.
겨우 죽다 살아났는데 또 놈의 독염에 당하면 다음에도 살아날 수 있을지는 고개가 기울어졌기 때문이다.
“놈의 독염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미리 대비한다면 놈 또한 어쩌지 못할 것이 분명하네. 게다가 지금은 우리 넷뿐만이 아니지 않은가.”
문파 내에서 대장로를 불러 모아 이곳에 대기시킨 지 오래였다.
놈은 한 번에 태선 10명을 상대해야 할 테니 죽음을 면치 못할 터!
제 아무리 강한 독이 있다고 해도 다수를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다.
“그리고 청탁병탄의 촛불을 그대들에게 분열하여 몸에 심으면 독염 또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네.”
그리 한다면 무서울 게 무엇일까.
놈이 무서운 점은 독이었으나, 그것만 방비한다면 두려울 게 없었다.
“그렇군요, 역시 혜안이십니다!”
뇌 선사의 혜안에 모두 백산파 장문에 대한 복수심을 드높였다.
“젊은 나이에 영겁에 올랐던데 그놈도 참 그릇된 선택을 했어요! 저희, 육동과 척을 지다니 쯧쯧.”
“범상치 않은 신통을 지닌 듯했으니 가진 보물 또한 많겠지요.”
벌써부터 죽은 사람 취급하는 모습이 그들 마음에서 백산파 장문은 이미 죽어 사라진 듯 했다.
“백산의 비밀만 알 수 있다면 많은 수의 고계 도사를 배출하는 것도 일이 아니겠지요. 저희 육동의 위세가 절로 높아질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안 그래도 방곡의 일월문 장문인이 십해의 귀왕들을 참살하고 다니며 위세를 떨치고 있지 않은가. 더불어 다른 문파 장문인과 비무를 통해 굴복시킨다 하여 불안불안 했었는데 잘 됐지!”
그러자 태선 노괴들은 모두 송 장문을 바라보며 헛기침을 흘렸다.
왜 그러나 싶던 송 장문은 화들짝 놀라 뇌 선사를 바라봤다.
“그, 그….”
“자네는 내가 꼭 일월 장문인에게 굴복할 것 같다 말하는구먼.”
“그럴 리가요! 절대 아닙니다!”
뇌 선사는 차게 식은 눈으로 송 장문을 바라보다 석실을 나섰다.
석실 바깥에서는 여러 문파의 태선 장로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죽다 살아난 반가움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뇌 선사와 태산파 대장로가 은밀히 전음을 나누며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대부분 천년을 넘게 산 노괴답게 눈치가 빠른 그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뇌 선사를 기다렸다.
그렇게 잠시 뒤.
“하하하하하!”
뇌 선사가 호탕하게 웃어재끼며 온몸으로 살기를 흩뿌렸다.
심상치 않은 모습에 맞추기라도 한 듯 모두 침을 꿀꺽 삼켰다.
“무슨 일이십니까?”
뇌 선사는 진득한 살기를 가라앉히며 짓씹는 듯 말했다.
“놈이 태산파 제자를 데려가고 그걸로도 모자라 태산이…!”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