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66)
낭선기환담-165화(166/600)
낭선기환담 – 165화
대나무가 창궐하고 작은 연못과 정자가 고풍스럽게 자리한 곳.
정자 안에는 수염을 길게 기르고 지팡이를 겨드랑이에 낀 노인이 한가롭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차 맛은 좀 어떻소.”
“나쁘지 않습니다.”
노인의 앞에는 사내가 차 맛을 맛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융청파 장문께서 직접 기르신 대나무 잎으로 만들었다고요.”
“그렇소. 노부가 오랜 세월 배양해 온 것으로 죽통차라 부르고 있소. 이름난 영목은 아니나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어 기르고 있지요.”
정자 안에서 한가롭게 다과를 즐기고 있는 노인과 사내는 산군과 융청파 장문이었다.
“사연이요.”
“그러하오, 스승님이 남기고 타계하신 대나무인데… 제자 불충하여 아직 진정한 효능을 일깨우지 못했지요.”
“무슨 사연인지 궁금하군요.”
“노부야 상관없다만… 괜찮겠소?”
융청파 장문이 은근히 물었다.
그 말의 뜻을 모르지 않았다.
백산이 뇌 선사에게 공격당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한가롭게 차나 마시고 있어도 되냐는 물음이었다.
허나 산군은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도사께서 보시기에 지금 제 행동이 철없는 어린아이가 날뛰듯 천방지축으로 행동하는 듯 보이실 겁니다. 지닌 힘을 앞 뒤 가리지 않고 무작정 휘두르는 것처럼 보이시겠지요.”
“허허….”
차마 아니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들이 보기에 산군은 천둥벌거숭이와 다를 바 없었으니.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백산에 당도한 뇌 선사와 그가 이끄는 도사들의 공격을 받고 있겠지요.”
“하면 어째서….”
산군은 찻잔에 떠오른 잎을 바라보며 먼 과거의 일을 상기시켰다.
“예전에는 삼십육계 줄행랑이 특기 중의 특기였습니다. 안 되겠다 싶으면 도망치고, 또 도망쳐서 아군을 부르거나 함정을 파거나 했지요.”
“치열하게 살아오셨나보오.”
치열하게.
그러했을 것이다.
“그리 살다 지금의 경지에 이르니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찻잔을 들이켜 깔끔히 비운 그는 흡족한 낯으로 말했다.
“이제는 지킬 수 있겠다.”
드득 드드드득!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찻잔과 다과가 흔들리며 강력한 영압에 대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꼭 이리 하셔야겠소.”
장문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다도의 예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장문의 말대로 그리 한가한 놈은 아니니 어쩔 수 없지요.”
찻잔을 손에 쥔 산군와 융청파 장문의 기운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내 입장도 있으니 손속에 여유를 조금 두어 주면 고맙겠소.”
탁!
융청파 장문이 탁자를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그러자 탁자 위에 올라가 있던 젓가락이 튀어 올라 화살처럼 쏘아지는 게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다.
젓가락은 돌연 흉흉한 모습의 뱀으로 변해 산군의 목덜미를 노렸다.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이었으나 그는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입을 벌려 작게 숨을 불어 넣었다.
녹색 뱀에게 산군의 숨결이 닿자 순간 발화를 일으키며 푸른 화염에 온몸이 불살라졌다.
장문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가 수결을 맺고 입을 달싹이며 불경을 외우는 듯 주술을 읊었다.
그러자 허공에서 비틀거리던 녹뱀의 기운이 거세지고 돌연 날카로운 비늘과 뿔을 지닌 용으로 변해갔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 죽어가던 녹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위풍당당한 녹룡이 산군의 앞에 나타나 있었다.
단순한 젓가락이 뱀이 되더니 돌연 소룡으로 변한 것이다.
크기는 작았으나 정교함이 하늘에 다다라 꼭 진짜 살아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만약 범인이 보았다면 꿈을 꾼 것으로 착각하여 제 뺨을 내려쳤을 것이다.
융청파 장문인은 의기양양한 낯으로 수염을 매만지며 여유로운 태도로 산군을 보았다.
“노인네 신통에 조금 놀라신 듯하니 이쯤에서 그만할까요.”
벌써부터 승리를 장담하고 있는 얼굴이나 다름없었다.
“더 보여주실 게 없다면 이쯤에서 그만하는 게 좋겠지요.”
의아하게도 산군 또한 긍정했는데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장문의 얼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흠!”
어느새 인가 녹룡의 몸 곳곳에 균열이 일어나 그 속에서 청염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녹룡은 마치 살아있기라도 한 듯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다시금 젓가락으로 변해 먼지로 사라졌다.
“대체 언제….”
“처음부터입니다.”
“허어….”
비록 본 실력을 보인 것은 아니나, 장문은 산군의 신통에 탄성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만만하며 호기롭게 그를 보았던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융청파 장문은 깊게 신음하며 방금 전의 대결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작은 깨달음이라도 얻은 건가.’
산군이 있건 말건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럼 먼저 일어나지요.”
산군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정자 바깥으로 발을 디뎠다.
그 순간, 풍요롭던 풍경이 뒤바뀌고 여기저기 무너져 내린 듯한 돌무더기들과 구덩이가 눈에 내비쳤다.
물론, 피비린내 또한 짙었다.
융청산에 당도했을 무렵, 그를 기다리고 잠복했던 태선들이 있었다.
화신파를 제외한 문파는 융청파밖에 남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태선의 수는 셋.
그러나 그들 역시 산군을 당해내지 못했다. 그나마 융청파 장문인의 경지가 태선 중경이었기에 예의를 다해 상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또한.
산군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폐관 수련하여 몇 백 년을 수행만 쌓은 이들이 약하다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생사를 오가는 곳에서 여러 경험을 쌓은 산군과 비한다면 당연히 한 수 접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각기 다른 인물들의 수천 년 경험을 지니고 있기도 하니 경험의 깊이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가는 것이오?”
깨달음을 정리했는지 융청파 장문인이 정자에서 일어났다. 지팡이를 짚고 있는 인자한 낯의 노인이었으나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융청파에 잠복해 있던 태선들과 도사들을 죽이고, 지금은 영내산을 가지러 가려 해도 그는 상관없다는 듯 관심없는 태도였다.
[장문을 맡고 있기는 하나 떠맡아진 것이라 문파에 정을 붙인 적이 없소. 애초에 역천의 존재들이 사사로운 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한 것이니.]융청파 장문.
이제는 골씨 성을 가진 태선 노괴가 했던 말을 떠올리다 답했다.
“도사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제가 한가롭게 있을 상황은 아니니까요.”
“하긴, 그 또한 그렇지. 이곳에서 백산까지는 족히 보름은 걸릴 거리이고 그 시간이면 아마도….”
골 노인은 은근히 산군을 흘겨봤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는 듯 휘적 휘적 융청산의 안으로 들어갔다.
이내 영내산을 찾아낸 산군이 입을 달싹여 주술을 외우자 산이 들썩이며 살아 움직이듯 꿈틀거렸다.
“걱정이 없나 봅니다.”
“딱히 없습니다. 영내산만 취하고 바로 갈 생각이거든요.”
“그렇다 해도 보름은 걸릴 텐데….”
거리가 거리이다 보니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건 골 노인이 상관할 바가 아니기도 했다.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헛기침을 뱉은 골 노인이 말했다.
“바라는 게 있는 것은 아니오. 그 저 마땅히 수순을 밟는다면 노인네 편의를 봐준다면 좋겠다 이거요.”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굳이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태선 중경의 실력자시니 어딜 가도 대접받을 것이 뻔한데 저한테 이러시는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자 골 노인이 허허 웃었다.
“그저 감이요. 천 오백년의 세월을 살아오며 온전히 내 감 하나만을 믿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그 감이 자네의 곁에 있으며 떡고물이나 얻어 먹으라고 하니 그러기로 정한 거요.”
태선 중경이 곁에 있다면 아쉬울 것 없으나 지대한 문제는 신용할 수 있는가 없는가다.
산군은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골 노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융청파를 얼떨결에 얻었다는 이유로 내다버린 그의 가치관 또한.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 편이 되어준다는데 마냥 거절하기도 조금 아깝다.
“만일, 내게도 한자리 내어주신다 하면 백산에 가까운 곳으로 향하는 전송진을 알려드리겠소.”
“전송진!”
이곳에도 그런 게 있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뇌 선사는 어째서 전송진을….”
이용하지 않은 건가.
“비밀리에 만들어 놓은 거요. 노부가 만든 것이기도 하고, 숨겨져 있기에 누구도 사용할 수 없소. 범 장문께서 급하다 하시니 조금 약조만 해주신다면 내어드리지요!”
전송진이 있다면 보름을 단축하여 단번에 백산으로 갈 수도 있을 터.
거절할 수 없는 거래였다.
아니, 그럴 이유가 없었다.
골 노인이 원하는 건 모든 일이 마무리 되고 백산에 거처를 만드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하니까.
“흠….”
산군은 고심하다 입을 열었다.
“필요 없습니다.”
* * *
백산은 한창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콰지직 콰앙!
뇌 선사와 금명지령은 격렬하게 싸우며 뇌전과 수기를 흩뿌렸고, 그 뒤를 이어 육동 태선과 탐화가 백산 허공에서 굉음을 뿌리고 있었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카앙!!
그 사이사이로 도선들이 보패를 날리고, 비선들이 종횡무진 했으며 환선들이 환계를 곳곳에 펼쳤다.
철성이 난무하고 비명이 난자되어 도처에 걸렸다.
죽고 죽이는 전장에서 도를 탐구하는 이들이던 아니던 관계가 없었다.
도는 무엇이고 인은 무엇일까.
회의감을 느끼게 되는 모습이었다.
“짐승과 다를 게 무엇일까.”
거대 구렁이의 머리를 밟고 있는 연아가 지면에 내려서며 검을 뿌렸다.
붉은 검이 둔탁한 소음을 자아내며 땅 위에 내려앉자 커다란 울림이 퍼지고 지면이 쩌저적 갈라졌다.
“크아악!”
충격을 이기지 못한 도사 몇몇이 날아가고, 그 뒤를 백산의 영수들이 뛰어가 물어뜯었다.
“연 장로. 괜찮소?”
“괜찮습니다, 만 장로.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콰앙!
날아든 불덩어리를 우윳빛 방패로 튕겨낸 만삼이 순간 사라졌다.
둔광을 뿌리며 빛줄기로 화해 적군과 하늘을 가르며 추격전을 벌인다.
그뿐만이 아니다.
명 장로와 그 아이들.
그리고 그 부인까지 모두 전장에 나와서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금명지령 또한 마찬가지!
콰아앙!!
“으으윽!!”
뇌 선사가 부리는 뇌전에 대항하며 힘겹게 버티고 있었으나 상성이 좋지 않은 듯 했다.
“뇌신통에게 수신통은 어쩔 수 없지. 선계에선 그 또한 의미가 없다고 하나 여긴 하계이니 말일세!!”
콰르릉 쿠릉!!
금빛 번개가 거미줄처럼 사방을 에워싸며 들어오자 금명지령이 어금니를 질끈 깨물었다.
이내 탈형의 모습에서 금빛 늑대의 모습으로 변해 번개를 입으로 물어 끊어버리고 사라졌다.
“그런다 한들 어디까지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쿠르릉!!
금빛 뇌전에 암벽이 무너지고 백산의 봉우리가 떨어져 나갔다.
콰앙!
그 사이로 금빛 늑대인 금명지령이 바람처럼 내달렸다.
쾅! 콰앙! 쾅!!
허공에서 떨어지는 암벽들을 밟아가며 전광석화처럼 이동한다.
그러나 뇌 선사의 뇌전을 피할 방도가 없는지 몸 곳곳에는 검게 그을린 자국과 핏물이 가득했다.
솔직히 방도가 없었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달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이제 한계에 달했다.
[하아, 하아.]쉬이익.
금명지령의 몸에서 김이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사내의 모습으로 변했다.
“이러다 진짜 죽겠군.”
중경과 후경의 차이는 천양지차라 하더니 틀린 말은 아닌 듯 했다.
상성의 문제도 있었으나 애초에 뇌 선사와 금명지령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이제 그만 끝내도록 하지.”
탓.
뇌 선사가 떨어지는 돌 조각 위에 한발을 올려놓고 기묘하게 섰다.
금명지령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으나 유달리 침넘기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다음 생에는 영생하게나!”
콰지지직!!
쿠르릉!!
그때였다.
돌연 허공이 비틀리며 굉음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뇌 선사의 미간이 좁혀졌다.
무슨 조화인가 했는데 전장 한복판에서 공간이 비틀리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뇌 선사는 이 공간균열의 의미를 깨달았다.
“용혈?”
광풍이 불어 닥치고 전투를 치르던 모든 이들이 순간 멈춰 섰다.
그리고 그때.
균열 사이로 안개가 뻗어 나오고 두 사람의 인영이 나타났다.
뿔과 날개를 지닌 소년과 억울하다는 듯 수심이 깊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난리가 났네, 아주.”
입꼬리를 끌어올린 소년.
산군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