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67)
낭선기환담-166화(167/600)
낭선기환담 – 166화
“필요 없습니다.”
“어째서인지 물어도 되겠소?”
단호하게 말하니 골 노인이 의아함을 품고 물었다.
산군은 대답 대신 품에서 작은 비석 하나를 꺼내 들었다.
“혈곡비석! 그렇군…. 그게 있다면 노부의 전송진이 필요 없으시겠어!”
애초부터 전송진은 필요 없었다.
용혈을 열어 가면 되는 문제였다.
자신의 거래가 통하지 않게 되자 골 노인은 심히 우울해했다.
그 모습에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애초에 전송진이 있다고 한들, 그것이 어디로 향할지는 모를 일이다.
아직 그를 완벽하게 믿을 수 없으니 섣불리 거래를 할 이유가 없었다.
“아직 저는 도사를 믿지 못합니다. 그러니 화령서약이라도 하시지요.”
“화령서약(化靈 約)!”
태선 이상만이 가능한 그들의 약조.
자신의 화령에 걸고 하는 약조다 보니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화령에 심마가 생길 수도 있다.
분신과 같은 화령에 문제가 생긴다면 지선으로의 길이 막힌 것이나 다름없기에 어떤 금제보다 더 효과적인 제약이었다.
“화령을 걸고 하는 맹세이니 금제보다 더 확실한 제약이 되겠지요. 제가 용혈로 백산으로 가도, 그대가 전송진을 이용해 원군을 끌고 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허허… 신중하신 성격입니다. 뭐, 그러도록 하십시다. 어차피 전 이번 선도전에 별 관심이 없으니!”
이내 산군과 골 노인이 화령서약을 이용해 맹세를 했다. 서로를 적대하지 않는다는 간단한 서약이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골 노인이 후련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산군은 고개를 갸웃이며 퉁명스러운 물음을 던졌다.
“어딜 가십니까? 방금 화령서약을 맺었는데요. 서약대로라면 그리 하실 수 없지 않겠습니까.”
“예? 그게 무슨 말이신지…?”
산군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서약의 조건은 서로를 적대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습니다. 한데 이렇게 가버리시면 어디서 절 적대하고 계실지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제 눈에 띠는 곳에 있어주셔야지요!”
그러자 골 노인의 인상이 와락 찌푸려졌다.
“그게 무슨 궤변이란 말이오!”
“하하, 궤변이라니요. 전 그리 생각하고 화령서약을 맺었는데요. 게다가 지금 제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어찌 보면 도사와 저의 서약이 동맹을 맺은 거나 다름없으니 한손 빌려주시지요!”
골 노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벌리고 산군을 바라봤다.
“뭐 이런 개뼈다귀같은… 하! 참나.”
골 노인은 무시하려 했으나 산군의 말이 내심 걸렸다.
생각해보니 화령서약의 내용이 많이 두루뭉실하기도 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산군이 말한 내용이 되기도 하니, 쉽사리 무시하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많았다.
화령서약의 단점이 이런 점이다.
한번 그런 식으로 인식하게 되면 자기 마음이 찜찜해져 그것이 곧 심마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서약을 맺기 전에 서로 확실하게 인지해야 했다.
산군은 그 틈을 교묘하게 노린 것이고, 골 노인은 설마 백산파 장문이 이렇게 능구렁이처럼 나올지는 생각지 못한 터라 한방 얻어맞고 말았다.
“사내 대장부인줄 알았더니….”
“쓸 수 있는 패는 쓰는 게 좋지요. 방심하다가는 골로 가는 세상이 아니겠습니까.”
“쯧.”
골 노인은 대차게 혀를 찼고 산군은 고소를 머금으며 용혈을 열었다.
“신분을 밝히지는 말아주시오.”
골 노인은 역용술을 이용해 검버섯이 잔뜩 핀 노인으로 얼굴을 바꿨다.
이내 산군은 그를 공정강에 넣고 용혈 속으로 몸을 내던졌다.
* * *
백산에 도착한 산군은 주변을 둘러보다 금명지령을 보았다.
반가운 마음이 앞섰으나 그보다는 그 앞에 있는 놈이 눈에 띠었다.
금빛 뇌전을 두르고 뇌신이나 다름 없는 신통을 부리고 있는 놈.
‘뇌 선사.’
저놈만 꺾으면 육동과의 선도전 또한 단숨에 마무리된다.
‘그러기 위해 여지껏 육동의 태선들을 도륙한 거나 다름 없으니!’
산군은 곧장 뇌선사를 향해 날개를 펄럭여 축지했다.
“이 노옴!!”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을 뇌 선사가 아니었다.
뇌 선사 또한 산군을 보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백산의 장문인 그만 죽여 버린다면 이 싸움은 종지부를 찍는다.
그 사실에 이변은 없을 터!
뇌 선사는 곧장 금강저를 높게 치켜들어 강렬한 뇌전을 분출했다.
뇌전 다발은 뇌교룡의 모습으로 변해 산군을 향해 짖쳐들었다.
콰지지직!!
치열하게 날아드는 여러 마리의 뇌교룡의 모습에 산군이 흠칫 눈을 뜨며 수결을 맺었다.
이내 그의 입에서 탄한여산이 빙그르르 돌며 거대 활화산의 모습으로 변해 뇌전에 맞섰다.
콰광!!
탄한여산이 크게 진동했다.
뇌 선사의 뇌전이 예상보다 강했다.
비명을 내지르듯 격한 굉음과 진동이 퍼지자 산군이 미간을 좁히며 탄한여산을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탄한여산의 분화구에서 용암이 분수처럼 치솟았다.
용암은 이내 화교룡의 모습으로 변모해 용오름처럼 떠올랐다.
얼핏 보면 화교룡과 뇌교룡이 싸우는 듯한 모습.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붉은 용암과 뇌전 신통의 싸움이었다.
그 장대한 모습에 백산과 육동의 도사들이 탄성을 자아냈다.
초장부터 규모가 다른 전투가 벌어지니 차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산군과 뇌 선사는 그 걸로도 부족한 듯 서로 수결을 맺고 쉴 새 없이 입을 달싹이기 시작했다.
쿠르릉 쿠릉!!
그때였다.
돌연 하늘이 어두워지며 먹구름이 몰려들어 천둥번개가 동반했다.
“네놈 하나로 수천 년의 전통을 지닌 태산이 사라졌다. 그 죄는 죽음으로도 갚지 못할 터! 그러니 네게 노부의 필살 신통을 보여주마!”
먹구름 아래로 천둥번개가 내려치고 뇌전을 흩뿌리며 허공에 선 뇌 선사의 모습은 그야말로 뇌신.
쿠구궁!!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뇌 선사의 등 뒤로 금빛 뇌전이 번득이며 돌연 허상을 만들어냈다.
전체적으로 인간의 모습이었으나, 입은 새의 부리였으며 등 뒤로는 날개를 지니고 있었다.
왼손에는 거대 망치.
오른손에는 거대 낫을 들고 있는 흉흉한 모습의 뇌공신이었다.
“실체를 가지지는 못했으나 네놈 따위를 상대하기엔 안성맞춤이지!”
실체를 가지지 못한, 허상에 불과한 뇌법상이다.
그러나 법상의 허상을 꺼낸 것만으로 놈의 뇌전과 신통은 배가되어 강력해졌을 테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만 해도 대기에 흘려진 뇌전의 기운에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그나마 몸의 단단함이 금강불괴에 버금가는 산군이니 버티는 것이지, 다른 도사였다면 몸을 가누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상의 도사들이 피아의 구별 없이 뇌전의 힘에 무릎을 꿇거나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가히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뇌공자치법상(雷公自治法床)의 힘! 느껴볼 새도 없이 영면시켜주마!”
뇌공법상의 날개가 활짝 펴짐과 동시에 금빛 뇌전 줄기 수백 개가 먹구름에서 법상으로 쏘아졌다.
경천동지할 굉음과 함께 법상의 크기가 거대해지더니 왼손에 들려있던 망치를 치켜들었다.
콰르르릉!!
번갯불이 망치로 모여들었다.
한 눈에 봐도 어마어마한 양의 뇌전이 모여들자 산군의 목울대가 고저를 그렸다. 가볍게 볼 뇌신통이 아니다.
‘막아낸다 하더라도….’
백산에 있는 제자들에게 피해가 갈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라면 백산 자체가 뇌전의 힘으로 무너질 수도 있는 일!
“그리 둘 수는 없지.”
“아우, 함께 저 노괴를 처단하세!”
금명지령이었다.
고마운 말이었으나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말하니 신빙성이 없었다.
“형님 상태가 좋지 않으니 백산의 제자들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못 다한 이야기는 이후에 나누시지요!”
“알겠네! 절대 죽지 말게! 자네의 목숨은…. 내 동생의 목숨과도 같다는 걸 잊으면 안 될 게야!”
산군은 결연히 고개를 주억였다.
“곧 뒤질 것들이 말이 많구나! 한 번에 다 죽여줄 테니 이리 모여 봐라!”
콰르릉!!
뇌공법상의 망치가 사방팔방으로 번갯불을 뿜었다.
내려쳐진 망치에 실체는 없었으나 모여든 뇌전은 진짜였다.
어마어마한 뇌기의 집합체.
하나의 뇌룡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뇌신통이었다.
뇌공법상이 망치를 내려쳤다.
퉁.
울리는 소리와 함께 하늘이 쪼개지는 듯한 굉음이 퍼져나갔다.
먹구름에서 피어난 한 마리의 뇌룡이 산군을 향해 쇄도했다.
산군은 곧장 수결을 맺어 등 뒤에 다섯 개의 만다라를 띄웠다.
만다라가 빙그르르 돌자 오색광채가 강하게 빛을 발했다.
오색 기운을 머금은 채 수결을 맺자 탄한여산의 화교룡이 오색채광을 번득이며 흉포한 기운을 내뿜었다.
이내 뇌공법상의 뇌룡과 탄한여산의 화교룡이 맞부딪쳤다.
콰가가가가각!!
몇 번에 걸친 파공음이 전천후에 울려 퍼지고 뇌룡과 화교룡의 접전에 천지가 뒤흔들렸다.
그러나 산군의 얼굴은 좋지 못했는데, 예상보다 뇌룡의 힘이 강대하여 화교룡이 힘을 못 쓰고 있었다.
몇 번의 부딪침 끝에 화교룡의 몸이 조각나 곧 허물어지기 직전이다. 오색 기운으로 보완했으나 겨우겨우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탄한여산 자체도 빛이 암담해져 기운을 크게 잃었다.
“네놈이 초경 주제에 지닌 바 신통이 뛰어나다지만 그뿐이지!”
초경은 결국 초경.
값진 보물을 지녀도 그 힘을 극성으로 풀어내기엔 부족하다.
“그 정도면 체면치레는 했을 테니 이제 그만 윤회의 길로 돌아가라!”
뇌 선사가 수결을 맺고 소매를 펄럭이자 뇌공법상의 오른손이 거대 낫을 내던졌다.
거대 낫은 또 다른 뇌룡으로 변해 화교룡의 목덜미를 물고 하늘로 던져버렸다. 탄한여산 또한 하늘로 솟구치다 손바닥만 한 산으로 변해 볼품없이 떨어졌다.
“이제 끝이다!”
두 팔을 펄럭이며 합장한 뇌 선사가 뇌공법상을 움직였다.
왼손의 망치와 오른손의 낫이 손에서 떠나 공간을 뚫어내 사라졌다.
“이건….”
산군의 눈가가 좁혀졌다.
그의 동공이 확장되어 단령금정을 펼치니 세상이 흑백으로 암전되었다.
돌연 주변에 공간 파장이 감지되자마자 산군의 날개가 펄럭였다.
휙.
콰자자자작!!
콰아아앙!!
축지한 순간 거대 낫과 망치가 거대 뇌전으로 변해 공간을 넘어 산군을 요격한 것이다.
무서울 정도의 실력이었다.
하지만 뇌 선사는 마음에 차지 않는 듯 혀를 찼다.
“눈치 한번 빠르구나.”
이내 허공에서 파리한 안색으로 모습을 드러낸 산군은 품에서 작은 고리 하나를 꺼내 날렸다.
맹렬히 회전하며 푸른 화염을 두르고 날아간 고리는 거대 륜으로 바뀌어 뇌 선사에게 날아갔다.
산군의 고륜이었다.
“흥!”
콧방귀를 낀 뇌 선사가 뇌전을 그 물처럼 엮어 고륜을 막았다.
치지지직!!
강력한 보물이었으나 자신의 뇌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한껏 산군을 얕잡아보던 그때.
뇌 선사의 뒷목이 서늘해졌다.
곧장 뇌공법상의 낫과 망치를 불러들여 몸을 보호했다. 그로도 부족해 법상의 몸을 감싸고 뇌전의 기운을 크게 융성시켰다.
뇌전이 움직여 마치 하나의 거목처럼 뇌 선사를 감싸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뇌 선사 바로 옆에 공간이 찢겼다.
공간 속에서 붉은 불꽃을 흩뿌리는 양날 검이 목을 노리고 들어왔다.
산군의 합환호환검이었다.
까가가가각!!
그러나 법상허상과 뇌전에 막혀 거친 철성만 자아냈다.
뇌 선사는 간담이 서늘했으나 이내 서늘한 간담은 노기로 바뀌었다.
“반드시 사지를 찢어버릴 것이야!”
쿠르르릉!!
노기와 함께 퍼덕거린 뇌전이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치닿았다.
산군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때.
돌연 공간이 일렁이며 푸른 운무가 일대에 자욱하게 퍼졌다.
뇌 선사는 미간을 좁히다 흠칫하며 눈을 크게 떴다.
푸른 운무가 아니다.
불타는 먹구름.
푸른 화운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푸른 화운 속에서 어떤 거대한 형상이 엿보였다.
“이런!”
푸른 영기가 도처에 깔리고, 밝은 빛을 토해냈다.
피잉!
화운 속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광선이 뇌 선사의 목을 노리고 들어왔다.
콰아아아앙!!
합장하여 뇌공 법상으로 몸을 보호한 뇌 선사가 이를 갈았다.
“본 모습을 드러냈구나, 요수 놈!”
이내 화운 속에서 거대한 범의 형상이 어른거렸다.
날개를 펄럭인 범이 화운을 걷어 내고 크게 울부짖었다.
곧, 하늘과 땅이 크게 들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