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69)
낭선기환담-168화(169/600)
낭선기환담 – 168화
콰르릉!
불길하기 짝이 없는 자색 뇌전은 하늘에 뿌리를 내리듯 퍼져나갔다.
“하늘도 하늘이 아니고, 벼락 또한 벼락이 아니니 불천불벽(不天不寧)이라 불러야겠구나.”
쾅!! 쿠르르릉!!
불천불벽은 하늘을 자색으로 물들 이고도 성에 차지 않는지 땅 밑까지 떨어져 내렸다.
어두웠던 하늘은 단번에 색이 입혀지듯 자색으로 변모했고, 그를 바라보는 도사들의 얼굴빛 또한 자색으로 비추어졌다.
“불길하기 짝이 없는 벼락이로다.”
뇌 선사는 생전 처음보는 뇌전에 화들짝 놀랐으나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뇌기를 끌어 올렸다.
불천불벽에 대항하려는 심산!
자신이 누구던가.
뇌신통을 극성으로 수행한 도사다.
한데, 화신통 육사가 던진 뇌전에 질 수 있을 리 없었다.
금돈신상을 봤을 때는 또 독염이 나오는 게 아닌가 했으나 그게 아니라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뇌 선사에게 아침 해보다 익숙한 것이 바로 뇌전이지 않던가!
“내게 벼락을 던지다니 어리석다!”
보통 뇌전이 아닌 듯 했으나 이 정도도 제압하지 못해서야 어찌 뇌 선사라 불릴 수 있을까!
뇌 선사는 소매자락을 펄럭이며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돌았다.
그러자 단숨에 뇌공법상 허상이 나타나 굵은 뇌전을 흩뿌렸다.
하늘에서는 돌연 금빛 뇌전과 자색 뇌전이 얽히고설켜들었다.
금색과 자색의 조화가 참으로 오묘한 빛을 발하였다.
뇌 선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조금 기이한 뇌기였으나 조금 익숙해지자 어느 정도 버틸 만했다.
이 정도라면 해볼만 하다 생각하던 찰나.
쩌저저적!!
하늘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뇌 선사의 얼굴에도 균열이 일었다.
사방으로 퍼져나갔던 자색 뇌전 한꺼번에 뇌 선사에게 쇄도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발견했다는 듯 금빛 뇌전을 모조리 씹어 먹으며 말이다.
“말도 안돼!!”
아연실색하여 더 가열차게 뇌기를 일으켰으나 무용지물.
오히려 불천불벽은 뇌 선사의 벼락을 모조리 먹어치우며 들어왔다.
낯빛이 새하얗게 변한 뇌 선사는 곧장 뇌공 법상을 흩어버리고 둔광을 일으켜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쿨럭!!”
돌연 핏물을 벌컥 내뱉었다.
“독기!”
이전보다 더 강력한 독기였다.
뇌 선사는 허겁지겁 품에서 초 형 태의 보물을 꺼냈다.
이전에 만성독염의 독기를 물리쳐 준 청탁병탁이란 보물이었다.
하지만 그 꼴을 가만히 보겠는가.
불천불벽은 영성을 지니기라도 한 듯 한데 뭉쳐져 새의 형태로 바뀌어 뇌 선사를 향해 날아갔다.
파지지직!!
“크아아아악!!”
자색 빛줄기가 하늘에 그어지고 뇌 선사의 비명이 처참하게 퍼져나갔다. 평생을 뇌신통만 수련한 도사가 뇌전에 잡아먹히는 기이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태선은 태선이라던가.
강력한 불천불벽의 뇌전으로도 숨통이 붙어 있었는데,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도 어떻게든 수결을 맺으려 하고 있었다.
“그리 놔둘 것 같으냐?”
산군의 서늘한 음성이 뇌 선사의 가슴 끝에 닿았다.
“백산파 네 이놈!!”
덜덜 떨리는 손으로 수결을 맺고 일갈하자 그의 몸이 금색으로 바뀌어 휘황찬란한 빛을 발했다.
퍼엉!!
이내 폭음이 터져 나오고 실처럼 보이는 뇌전 수천 개가 사방팔방으로 쏘아졌다.
뇌 선사의 분혼이었다.
죽을 위기에 쳐하자 화령을 수천으로 나누어 도망친 것이다.
“헛수고를.”
허나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산군은 검집에서 검 한 자루를 빼냈다.
천양지보 혜연회검이었다.
오묘한 빛이 퍼졌다. 영력을 뭉텅이로 가져가는 감각에 신음을 흘렸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일검을 내려 그었다.
스릉. 청명한 검명과 함께 먹구름이 반으로 갈라지고 그 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여명처럼 비추어졌다.
혜연회검의 거대한 검기에 뇌 선사의 분혼들은 기괴한 비명을 내지르며 사라졌다. 한 호흡도 되지 않는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도사들은 모두 입을 벌리며 놀랐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끔뻑거렸다.
“크윽.”
푸확.
토혈을 뱉은 산군이 창백한 안색으로 핏물을 훔쳤다.
의식 연계가 끊겨 내상을 입은 것이야 계산된 것이었으나, 그 상태에서 확실한 마무리를 위해 혜연회검을 사용했더니 몸 상태가 엉망이다.
그러나 기분만큼은 나쁘지 않았다.
몸속의 모든 삿된 것들이 싹 씻겨 내려가는 듯 했다.
아무리 그래도 태선 후경의 선사라 불리는 뇌 선사다.
그를 초경인 산군이 죽인 것이다.
물론, 방심해버린 뇌 선사의 잘못도 있었으나 그렇게 상황을 유도한 산군의 작전이 잘 통한 이유였다.
“이, 이겼다! 우리 장문님이 승리하셨다! 승리하셨어!!”
“뇌 선사를 죽였다!”
백산파 제자들은 더 없이 기뻐하며 만세삼창을 부르짖었고.
“이럴 수가….”
“뇌 선사께서….”
그와 반대로 육동의 도사들은 절망하며 통탄을 금치 못했다.
벌써 전쟁이 끝나기라도 한 듯 패잔병의 모습과도 같았다.
산군은 흡족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다 금돈신상을 내던졌다.
주술을 외우자 금돈신상으로 불천불벽이 빨려 들어갔다.
영성을 가졌는지 도망치려 안달이었으나 뇌 선사를 상대하느라 힘이 빠졌는지 손쉽게 들어갔다.
그제야 산군은 육동의 무리들을 내려다보며 선언했다.
“뇌 선사는 죽었다.”
잔잔한 어조였으나 육동의 무리에겐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죽고 싶다면 저항하라.”
그 말에 저항할 자가 누가 있을까.
육동의 정점에 다다랐던 뇌 선사를 꺾은 산군에게 감히 저항할 자가 누가 있을까.
육동 도사들은 하나같이 모두 무기를 내버렸고, 무릎을 꿇었다.
그들 중에는 태선 또한 함께였는데 산군과 눈이 마주치자 몸을 흠칫 떨며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그 이후.
육동의 도사들은 와해되어 뿔뿔이 흩어지거나 백산파의 산하 문파가 되어 명맥만 유지했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혈혈단신으로 육동의 태선들을 모조리 도륙하고 뇌 선자마저 꺾어버렸는데 누가 감히 대들 수 있을까. 혹시라도 그의 눈밖에 날까 인근 문파는 보아도 못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백산은 거대 문파로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고, 그 누구도 백산을 함부로 하지 못했다.
간혹 세상일에 어두운 이들이 백산의 위명을 알지 못해 까불다가 호되게 두들겨 맞기도 했다.
그리되자 살판난 것은 연아였다.
그녀는 그동안 당했던 수모를 갚아주기라도 하듯 여러 문파에게 각종 재화와 보물을 받아냈다.
자신들이 한 일이 있으니 시키지 않아도 헐레벌떡 달려와 보물을 내놓는데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덕분에 선도전으로 피해 입은 백산은 더 견고해졌고, 융성해졌다.
그 뒤로도 백산은 떠들썩했다.
적이 없는 낭선들은 백산파에 입문을 희망해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낭선이 아니라도 모두들 이름 높은 백산파 장문과 친분을 쌓고 싶어 학수고대했으나 그들 모두 빈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장문께서는 현재 그 누구도 만나 뵙고 싶지 않으시다 하셨습니다.”
비선에 불과한 여인이 그리 말하니 화를 낼 법도 했으나, 장문이 총애하는 제자이니 그 누구도 무어라 싫은 소리 하지 못했다.
그리 되자 백산파 장문이 두문분출하는 게 심각한 내상을 입어서가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으나, 대부분 쉬쉬하며 입 밖으로 꺼내기를 꺼렸다.
그리고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 때.
백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
백운봉.
그곳에 있는 천호군의 밀실이 열리며 젊은 사내가 걸어 나왔다.
조금 창백한 인상이었으나 병상이 깊어 보이지는 않았다.
“출관하셨습니까, 스승님.”
“백산의 장문을 뵈옵니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연아와 백산의 장로들이었다.
골 노인은 물론, 금명지령까지 흡족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산군은 연아에게 이런저런 일을 보고 받다가 대부분을 물리고 우선적으로 금명지령과 독대했다.
“몸은 괜찮으신가.”
“나쁘지 않습니다.”
담담히 답하고 있으나 금명지령은 내심 침음을 흘렸다.
영겁 정도의 경지가 되면 내상을 입어도 쉽게 치료하기가 쉽지 않다.
한 문파의 장문이니 내색하지 않고는 있으나 그가 견디고 있을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헤아릴 수 있었다.
자그마치 태선 후경과 싸웠으니 어찌 그렇지 않을까.
모르긴 몰라도 고작 한 달을 정양하고 나왔으니 조금 더 몸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내 급히 나와 내상에 좋은 영약이 없는 게 아쉽구만.”
“괜찮습니다. 저 또한 지닌 것이 많은 놈이고, 뇌 선사와 태선들 지닌 공정강에서 쓸 만한 영초와 단약이 많았던 터라 요긴하게 쓰고 있지요.”
그러해도 아쉽긴 매한가지였다.
금명지령은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거리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잠시 친가에 다녀오겠다며 난리를 부렸다.
“더 폐를 끼치면 제 마음이 좋지 않으니 그냥 계시지요. 이리 만난 것도 오랜만이지 않습니까.”
“끄응, 그것도 그렇네만….”
산군은 겨우겨우 금명지령을 앉히고 술잔을 따랐다.
그가 저렇게까지 하는 게 고마웠고 또 미안했다.
그리고 자연히 그녀가 떠올랐다.
“가보지 못하는 게 한입니다.”
“환망 선사와의 약조 덕에 발 디디지 못한다 들었네. 지수도 이해할 테니 마음쓰지 말게나.”
“……예.”
환망과의 약조 덕에 산군은 고선에 발붙일 수가 없다.
적어도.
환망이 살아있을 때까지는.
“그놈의 영감탱이 곧 죽어버리지 않겠나? 괜찮네. 어차피 인간의 몸으로 지선이라도 얼마나 더 살겠나.”
산군은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지선의 수명은 삼천 년이라 한다.
영겁이 사천 년이라 알고 있으니 기다리다 보면 자연히 없어질 약조였다.
“또 모르는 일이지요.”
환망이 우화등선하게 될지.
산군은 술잔을 들이키며 한잔, 한잔을 비울 때마다 옛 추억을 되짚었다.
금명지령과의 만남은 산군도 바라마지 않던 것이었고, 둘 사이에 하고픈 말은 많이도 있었다.
지수에 관한 것이나 고선에서 있었던 일들이 그러했다.
“그나저나 놀랐다니까? 갑자기 탈의 부법주가 날 찾아왔을 때는 환망이 또 개짓거리를 하려는 건가 하고 덜컥 겁을 먹고야 말았지. 크하핫!”
백산에 당도하고 난 뒤.
장천에게 부탁했던 일이었다.
만성독염을 회수한 뒤 장천은 이제 고선으로 돌아가겠다 했었기에 금명지령을 부를 수 있었다.
“이제는 제 오랜 지기가 되었지요.”
“인맥이 아주 훌륭하군. 자네를 처음 보았던 게 영화였는데 벌써 영겁에 이르는 대육사가 되었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빠르단 말이지. 지수 고것도 자네가 이리 장성한 걸 보면 퍽 좋아할 텐데 말이야.”
그 둘은 한동안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다 그녀를 기리며 헤어졌다.
산군의 몸 상태가 별로 좋지 못한 이유도 하나였고, 얼굴 보았으니 됐다며 돌아가겠다는 이유가 컸다.
좀 더 있지 벌써 가느냐고 물었으나 금명지령은 자신의 수행이 부족함을 깨달았다며 미소 지으며 사라졌다.
이후, 산군은 골 노인과 이야기를 하고 백산파 객경장로로 명했다.
그는 이전의 불만은 사라진 지 오래고, 산군을 보며 태안 제일 선사라며 치켜세웠다.
그렇게 백산파 장문의 위명이 널리널리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