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71)
낭선기환담-170화(171/600)
낭선기환담 – 170화
암벽으로 이루어진 천호군 내부에서는 젊은 사내가 좌선하고 있었다.
영롱한 기운이 물씬 풍기며 그의 주위로 작은 연꽃들이 피어났다.
보기만해도 신선의 모습이 절로 그려졌으나 신기한 점은 그 앞에 또 한명의 사내가 있다는 것이었다.
똑닮은 외견의 모습을 한 두 사내는 잠시간 그리 좌선하고 있다가 동시에 눈을 떴다.
“슬슬 일어나봐야겠다.”
“그러시지요.”
그 둘은 똑같은 외견이었으나 풍기는 기운은 사뭇 달랐다.
한명은 정순하며 청명한 기운이었으나 다른 한명은 사이한 독기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그럼 수고 좀 해주게.”
“수고랄 게 있습니까. 전 백산을 지키기만 하면 될 뿐이고, 본체인 그대를 보조할 뿐이지요.”
둘의 정체는 백산의 장문인 산군과 그의 화신이었다. 산군은 화신의 어깨를 두들기고는 등을 돌렸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화신을 만드는 데 자신의 화령을 쓰지 않아 경지의 하락이 없었다.
산군의 화신이 영겁 초경의 경지를 지녔으니 웬만한 실력자가 아니라면 백산이 위험할 일은 없을 것이다.
화신과 혼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만 리가 넘는 거리가 아니라면 바로 알아챌 수 있다.
비록, 오랫동안 통제하지 않으면 자아가 강해져 반서당할 위험이 있다지만 그것은 자신이 틈틈이 백산에 돌아오면 될 일이다.
‘천년이나 넘게 백산에 돌아오지 못할 일이 있으려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일은 없다.
산군은 천호군 내부를 둘러보며 여러 보패들을 눈여겨봤다.
보패들 대부분은 제련 중이었는데 여러 법문에 휘감겨 있었다.
대부분이 지보에 가까운 보물들로 저것들 중 하나만 던져 놓으면 도계에 피바람이 불어 닥칠 것이었다.
대부분이 이번 선도전을 치르며 태선들에게 빼앗은 물건이었다.
“과한 것은 부족한 것보다 못하니.”
그 중 강력한 것만 가지고 가고, 나머지는 화신에게 쥐어주면 될 터.
자신을 대신해 백산을 지켜야 하니 평범한 보물을 줄 수도 없었다.
산군은 그 중 붉은 솥 하나를 끌어와 화신에게 쥐어줬다.
뇌 선사가 사용했던 이름 모를 붉은 솥이었다.
속에 들어있는 자색 기운을 이용하면 상대방의 보물을 빼앗을 수 있으니 다른 것보다 이것 하나를 연화시켜 사용하는 게 좋았다.
그리고 어느 방에서 걸음을 멈췄는데 꽤 진중한 낯을 지어보였다.
‘수봉외외정….’
산군이 골머리를 썩고 있는 것 중 하나로, 육신 내부에 하나의 영내산을 만드는 비술이었다.
수봉외외정을 이루려면 일단 영내산 다섯을 모아야 했다.
어려운 일이었으나 선도전을 치루며 영내산 다섯은 이미 모았다.
그러나 그것을 합일시키는 것에 조금 난항을 겪고 있었다.
이론상으로는 실현 가능하다.
그러나 실천하려 하니 약간의 문제가 있었는데 그 이유는 오행영산이 아닌 평범한 영내산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내 몸에 넣는 건 조금….’
도사가 만든 내단과는 그 크기와 성질 자체가 아예 다르다.
곡공지간의 묘리와 내단의 힘을 지녔으니 함부로 체내에 넣어 합일시켰다가는 무슨 조화가 일어날지 모르는 게 당연했다.
만약 완전한 합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몸이 터져 죽을 테니 쉽사리 시도할 수 있겠는가.
담이 큰 산군이라도 두려웠다.
“힘들 게 모았는데도 쓰지를 못하니…. 빛 좋은 개살구나 다름없구나.”
아직은 확신이 없었다.
몇 번의 실험이 가능하다면 당장이라도 해봤을 테지만 그 재료가 워낙 귀하디귀한 영내산이니 차마 그럴 수도 없었다.
‘사월제항으로도 복제가 안 되니.’
그렇다고 이렇게 썩혀놓기에는 자신의 고생과 시간이 아깝다.
산군은 잠시 고민하다 결단을 내렸는지 수결을 맺어 입을 달싹였다.
이내 허공에 둥둥 떠 있던 제각각의 모양을 한 영내산들이 그의 손에 이끌려 유영하다 화신에게 흘러갔다.
“결정하신 겁니까.”
화신이 물었다.
산군은 고개를 주억이며 답했다.
“내가 지닌 보물들과 균천보화를 이룬 몸은 지금도 충분히 강력하네. 수봉외외정을 이루면 영원의 경지를 돌파하며 받을 천겁을 이겨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시기 상조지.”
산군은 아직 영겁 초경이다.
벌써부터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게다가 확신도 부족했다.
일단은 먼저 화신의 몸에 실험해 보는 게 낫다.
‘애초에 시일이 걸리는 것이니.’
수봉외외정을 이루는 동안에는 몇백 년은 조용히 지내야 할 테니 여기저기 쏘다닐 산군은 이루기도 어려웠다.
화신에게 주고 수봉외외정을 이루게 한 뒤에 나중에 완성된 것을 수거할 수 있게 할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화신이 있으니 이런 게 좋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으니 시간 절약이 되어서 좋았다.
여러 제약이 따른다지만 화신을 만들기는 잘한 선택이었다.
이후 몇 가지 보물들을 공정강에 넣은 산군은 천호군을 나섰다.
바깥은 어느새 어두컴컴한 밤하늘이 사방에 내리깔려 있었다.
말똥말똥한 저 하늘의 별들이 유난히 반짝이고 초승달이 하늘 언저리에 걸려 고즈넉함을 풍겼다.
“거기서 뭣하느냐.”
풍경에 젖어있을 새도 없이.
천호군의 앞에 대자로 누워서 잠을 자고 있는 탐화가 보였다.
“더워서 땅에 척 달라붙어 있었는데 있다 보니까 움직이기 싫어서… 근데 눈 떠보니까 겨울이네? 신기해!”
“겨울?”
탐화의 말마따나 어느새 겨울이 됐었는지 밤하늘에서는 눈송이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여름부터 거기 있었느냐?”
“그런가 봐!”
“넌 참,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모르겠구나.”
“헤헷.”
무엇이 그리 좋은지 헤실헤실 웃는 걸 보니 덩달아 웃음이 새어나왔다.
잠시 탐화의 머리를 쓰다듬다 고개를 올리니 중년 여인이 다가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스승님.”
“오냐. 네 몸은 어떠냐.”
“더할 나위 없습니다.”
산군의 제자인 연아였다.
그녀는 그동안 환선으로 승선해 차분하게 경지를 다졌다.
수명 또한 천년으로 늘어났으니 500년 정도는 근심이 없을 것이다.
걸리는 게 있다면 한 가지.
‘회춘단이라도 한번 구해볼까.’
자신은 이리 어린 소년의 모습인데, 제자인 연아는 머리 희끗한 중년 여인의 외견이라 마음에 걸렸다.
본래 도사들은 경지상승.
즉, 승선(昇仙)을 이룰 때 환골탈태를 하지만 외모가 젊어지지는 않는다. 반로환동을 한다면 몰라도.
‘허나 태선이 되지 않고서야….’
반로환동은 무리다.
사내들은 태선을 이루고도 반로환동을 하지는 않지만, 여인들은 대개 환골탈태보다는 반로환동을 선호한다.
늙어빠진 모습을 좋아하는 여인이 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당연한 수순이다.
물론, 환골탈태보다 반로환동은 육체 자체가 어려지는 터라 제약도 많고, 다시 천천히 성장하기 때문에 수행을 하기에는 부적절하다.
수명의 한계가 있는 수도자들은 시간을 허투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선들은 반로환동을 선호하니, 사내보다 여인의 숫자가 부족한 것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연아도 여인이니….’
늙어빠진 모습을 유지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슬슬 가시려는 게지요?”
“그래. 일러줬다시피 3년 전에 미리 약조를 했으니 잠시 다녀와야겠다.”
연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슬쩍 뒤를 돌아 손짓했다.
누군가를 부르는 듯 했다.
그러자 이제는 조금 사내라 부를 수 있게 성장한 소년이 다가왔다.
“오, 옥체무강 아니, 만강하셨는지요! 우, 운모가 스승님을 뵙습니다!”
운모였다.
“그래. 그새 장성했구나. 역시 혼아라서 그런지 성장이 가파르다.”
어느새 검선 끝에 다다랐다.
조금의 계기만 있다면 금세 도선으로 승선할 것 같았다.
“지금처럼만 하거라. 용전에 온 뒤에 네 수련 또한 봐주마.”
“감사합니다, 스승님!”
연아와 산군, 그리고 운모는 이런 저런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저런 한담을 나누다 수련상에 관한 깨달음을 전해주었으나 아직은 너무 이른 듯했다.
운모에겐 너무나 현묘하여 도통 알아듣지 못해 머리가 멍해졌고, 연아도 산군의 말 몇 마디를 이해하려 몇 분이나 망부석처럼 가만히 있었다.
산군은 껄껄 웃으며 그들을 돌려 보내고 뒷짐 지었다.
살랑이는 바람은 그의 뺨을 스치우다 사라졌으나 그 뒤를 잇는 목소리는 스치우지 아니했다.
-운모는 어찌 제자로 받으셨나요.
그녀는 산군의 검령.
화란이었다.
“운모는 반웅의 피를 이은 혼아다. 그들 일족은 밖으로 나서길 싫어하니 연을 맺는 것 또한 어렵지.”
화란은 단번에 이해했는지 모습을 드러내 물었다.
“얻을 게 있으시군요.”
그는 말없이 씨익 웃었다.
운모가 아무리 마음에 들었다지만 아무 이유 없이 제자로 들였을까.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후, 산군은 백산 정상에 올랐는데 천지라 불리는 호수 위에는 화운 반홍이 유유히 날아다니고 있었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니 하늘 저편에서 붉은 빛줄기 하나가 유성처럼 다가오기 시작했다.
“왔구나.”
산군은 기다렸다는 듯 말하며 푸른 빛줄기로 변해 하늘로 올라섰다. 그러자 붉은 둔광이 가시고 교룡 세 마리가 이끄는 마차가 나타났다.
날카로운 인상의 검은 교룡 주위로는 붉은 등을 손에 쥔 귀수들이 줄지어 꼬리를 잇고 있었다.
그 수가 기백에 이르니 밤하늘을 수놓은 등불이 마치 붉은 은하수와도 같아 가히 장관이다.
더군다나 구름을 밟고 내려오는 귀수들의 모습은 오묘한 감상을 자아내기에 적절하니 왜 안 그렇겠는가.
이상하고 아름다운.
그런 문장이 머릿속을 스쳤다.
마차에는 구귀(九鬼)의 문양이 새겨져 있어 타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왔느냐.”
그리 말하자 단번에 답이 돌아왔다.
벌컥!
“왔다 이놈아!”
마차의 문이 열리며 풍성한 꼬리를 살랑거리는 구귀.
까망호리가 밝게 인사했다.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산군.”
마차를 모는 홍연 또한 반갑게 인사를 전했다. 산군은 연신 고개를 주억이며 그들을 반겼다.
“먼 길 왔으니 대접을 해야겠지.”
“음! 백산에 온 것도 오랜만이니 잠시 머물다 가자꾸나! 용천까지는 꽤 먼 길이 될 테니 말이야.”
백귀야행이 이루어지는 용천은 홍해에서도 서쪽으로 가야 하는 곳이다.
홍해의 동쪽에 자리한 백산에서는 꽤 먼 길이 될 터.
“그럴 거면 그냥 기다리지 뭣 하러 여기까지 왔느냐. 어차피 용천을 가려면 홍해를 거쳐야 하거늘.”
“흥, 내 이쪽에 볼 일이 있어 온 것이니 그리 알거라.”
까망호리가 팔짱을 끼며 그리 말하니 산군도 고개를 주억였다.
그러나 홍연이 입을 열자 호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시일이 다 되어 가는데도 연락이 없어 이리 찾아온 것입니다. 밤에 잠도 잘 주무시지 못하시고 하루 종일 산군님은 언제 연락을 주시나….”
“왁! 우왁!! 배, 백산은 손님이 왔는데도 이리 대접한단 말이냐!! 오, 오랜만에 왔으니 백산이 얼마나 융성해졌나 한 번 보아야겠다!”
돌연 호리가 소리를 빼액 지르며 산군의 손목을 잡고 흔들었다.
아마도 말을 돌리고 싶은 모양이다.
“얘기로는 네가 또 사고를 쳐서 제자들 수가 퍽 늘어났다던데? 잘됐다. 본녀의 홍해와 비교해 얼마나 많은지 내기라도 한번 해보자꾸나!”
“내기?”
“그, 그래! 내기! 본녀가 이긴다면 부탁 한 가지를 들어다오!”
“아니 갑자기 무슨….”
“에잇! 사내대장부가 뭘 그리 빼느냐! 할 거냐 말 거냐!”
“못할 건 없지.”
그러자 호리가 히죽 웃었다.
“약조한 게다?”
“무슨 부탁인데 그러느냐.”
“비밀이다!”
음흉하게 웃는 게 퍽 자신이 있는 모양이다.
‘홍해의 귀수들은 천이 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 무슨 자신감인지.
“그럼 내가 이기면 어쩔 테냐.”
“음? 히힛, 그럴 일은 없겠다만 만일 네가 이긴다면….”
호리는 괜스레 헛기침을 하며 제 손에 끼워져 있던 새까만 가락지 하나를 보여줬다.
“가, 가락지를 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