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75)
낭선기환담-174화(175/600)
낭선기환담 – 174화
담도 크지.
“어찌 인간이 이곳에 있을꼬.”
수천수만의 귀수들이 모여 있는 백귀야행의 한복판이다.
귀수로 둔갑한 인간이 어찌 이곳에 숨어 들었을까.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젠장!”
퍼엉!!
인간 도사가 무언가를 던지니 새카만 폭연이 일어났다.
폭연 속에는 은밀한 독기 또한 숨어 있었으나 산군은 코웃음을 쳤다.
“이따위 잔재주로 감히 어딜.”
영겁의 기운을 내뿜자 폭연이 풍압에 휘날려 걷어졌다.
그러자 새하얗게 질린 인간 도사의 얼굴이 산군 앞에 나타났다.
섬뜩한 미소에 온몸에 두드러기 같은 소름이 돋았다.
도사는 대경실색해 단숨에 빛줄기로 화해 하늘을 갈랐다.
꽤 재빠른 둔술이다.
순식간에 하늘을 갈라 점처럼 보이게 됐으니 얼마나 빠른지는 두말해야 입 아플 정도.
이대로 두면 도망칠 것이 분명하나 산군은 가만히 선 채로 손아귀를 벌려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돌연 하늘을 가르던 둔광이 허공에서 우뚝, 멈춰 섰다.
무언가에 잡히기라도 한 듯 옴짝달싹 못하게 결박된 것이다!
“으윽! 윽!!”
빠져나가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그게 가능할 리 없었다.
놈의 주변에는 오색광채가 발발하고 있었고, 그것은 균천보화를 이룬 산군의 균천오광(鈞天五光)이었다.
“고작 환선의 경지로 내게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더냐.”
제 아무리 힘 좀 쓴다 해도 환선이 빠져나갈 수 있는 신통이 아니다.
도사의 얼굴은 이제 거무죽죽하게 변해 죽음을 목도한 모습.
“무, 무엇이든 말하겠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도사 놈이 소리치자 산군은 주변을 둘러보며 혀를 쯧 찼다.
영겁의 기운을 풀어헤쳐 귀수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다른 곳으로 가지.”
산군이 도사의 목덜미를 붙잡고 등에서 날개를 꺼냈다.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자 도사와 산군이 일순에 사라져 종적을 감췄다. 영겁의 기운에 마른침을 삼키던 귀수들은 아쉬워하기도, 안도의 한숨을 내뱉기도 했다.
[저분은 누구신지 아시오?] [글쎄…. 귀왕 중 한분인 듯한데 처음 보는 분이셨소.]이후, 싸우던 귀수들은 서로 으르렁거리기만 하다 혀를 차며 돌아섰다. 괜한 소란을 피우다 영겁의 심기를 어지럽히면 살아남기 어려우니 현명한 판단이었다.
이내 축제는 다시 활기를 띠고 교류를 이어가거나 백귀야행의 귀겁을 기다리는 이들로 나뉘어졌다.
* * *
잠시 뒤.
거대한 고층 누각에는 커다란 날개와 뿔을 지닌 산군이 당도했다.
그의 손에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는 도사도 함께였다.
“오셨습니까. 아, 그놈은….”
구귀각에 다가가자 이전 홍해에서 봤던 영명 육사가 산군을 반겼다.
“백귀야행에서 거두신 놈입니까? 환선 급의 도사는 매물이 잘 없을 텐데 용케 구하셨습니다.”
“음? 아니네. 내가 좀 물어볼 게 있어서 데려왔을 뿐이야.”
“그렇습니까…?”
궁금한 게 많은 얼굴이었으나 분별 있게 무언가를 더 묻지는 않았다.
산군은 구귀각으로 도사를 데리고 들어섰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꽤 널찍한 크기의 방이 나타나고 산군은 마련되어 있는 걸상에 앉았다.
“차라도 가져오겠습니다.”
허공이 일렁이며 꽃과 같은 여인이 나타나자 도사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래.”
란이 나가고 산군은 바닥에 무릎 꿇은 도사를 내려다보았다.
특출난 것 없는 모습이었으나 입고 있는 옷의 양식을 보니 어느 지역의 도사인지 알 것 같았다.
“얘는 뭐야? 먹어도 돼?”
미리 구귀각에 있었던 탐화였다.
앳된 얼굴로 섬뜩한 소리를 하니 도사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글쎄. 죽일지 말지 아직 정하지 않아 모르겠구나.”
은근한 어조로 말하니 손을 꼼지락거리고 안절부절 못했다.
“무, 무엇을 물어보신들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말할 것입니다!”
“괜찮네. 자네가 거짓을 말하던 진실을 말하던 머릿속을 열어 알아서 알아볼 것이니 말이야.”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도사는 더 애가 타 미칠 지경이었다.
산군의 말은 언제든지 머릿속을 열어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어찌 되겠는가.
‘죽는다.’
애초에 인간과 요수의 관계다.
용건이 없다면 죽이는 게 당연한 관계니 더욱 그랬다.
바람 앞 등불 같으니 어찌 초조하지 않으랴, 곁에는 기이한 기운을 뿌리는 여아가 침을 흘리며 입맛을 다시니 더욱 그러했다.
이곳은 용전.
십해만척의 주둔지.
겉으로는 인간과 흡사한 외견이어도 그 속은 모두 흉측한 요수일 터.
간담이 서늘하지 않을 리 없었다.
“차 가져 왔습니다.”
“고마워.”
차를 한 모금 마신 산군은 도사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다른 육사였다면 진혼술을 펼쳐 자네 머릿속을 들여다봤겠지. 그들은 인간에게 호의적이지 않으니….”
도사의 얼굴이 애매해졌다.
무슨 뜻인지 헤아리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굳이 손에 피를 묻힐 필요가 없다는 뜻이네. 몇 가지 질문에 성실히 답하고 내가 시키는 일만 해주면 얼굴 구길 일은 없겠지.”
도사의 눈알이 빠르게 굴러갔다.
이내 넙죽 절을 했다.
“무엇이든 하명하시지요!”
“자네 이름이 뭔가.”
“야, 양패윤이라 하옵니다!”
산군의 눈이 가늘어지며 수백 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일월문의 양패윤….’
그도 익히 알고 있는 사내였다.
* * *
용전에서 가까운 이름 모를 산맥.
그 위에 여럿의 인영들이 좌선하여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내 여러 개의 빛줄기가 산 위로 떨어져 내려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들의 경지는 대개 환선으로, 검은 복면을 쓰고 있었다.
입을 달싹이며 좌선하고 있는 이들에게 말을 전하자 그들이 눈을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 선사. 가능하시겠습니까.”
주어가 빠진 말이었으나 그들은 모두 알아듣는 듯 결연했다.
유 선사라 불린 이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고개를 주억였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때가 올까요. 백귀야행의 때가 아니라면 십해만척을 몰아낼 때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기회는 준비된 자만이 잡을 수 있는 것이고, 그 기회를 잡아 운명으로 바꾸는 것이 신선이겠지요.”
이내 유 선사를 포함한 이들이 둔술을 펼쳐 여러 빛줄기로 사라졌다.
* * *
“방곡의 선도문이 백귀야행을 저지하려고 한다? 그게 사실인가?”
“어찌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저 양패윤의 이름을 걸고 결코 한 치의 거짓도 없음을 맹세 하겠습니다!”
산군은 걸상에 걸터앉아 자신의 뿔을 매만졌다.
어린 외형의 모습이었으나 풍기는 분위기만큼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양패윤은 그 모습을 보며 침을 꼴깍 꼴깍 삼켰다.
“그런가.”
산군이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유정이 슬슬 종횡무진하며 영수들을 죽이고 다닐 때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천하의 귀수들이 모이는 백귀야행은 위험하면서도 매력적인 먹잇감일 터.
‘잘하면 귀수들이 지닌 보물은 물론, 천양지보를 얻을 수도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을 터.
이전에 귀왕을 죽이거나 격퇴시킨 경험도 있는 게 바로 유정이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을 테니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무모하기는 매한가지다.
‘상황이 애매하군.’
위험하다기엔 조금 애매했다.
이곳은 용전.
십해만척의 핵심 지역이다.
게다가 백귀야행이 거행되어 온갖 귀수가 모여들었다.
자그마치 수만의 숫자가 모여 있는데 왜 안 그렇겠는가.
“무턱대고 싸움을 걸지는 않겠지. 자네처럼 이곳에 숨어 들었겠어.”
하지만 그마저도 굉장히 위험하다.
들키는 순간 수만의 귀수들에게 포위당할 터인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귀왕들을 노리는 걸까.
“완벽히 빠져나갈 수단이 있다는 말이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신중한 놈이 적진으로 들어오지는….”
환선에 불과한 양패윤은 자세한 사항은 모르고 있다.
대강의 상황을 알게 됐으나 중요한 것은 놈의 심중(心中)이 아니다.
‘가능할까.’
중요한 것은 놈이 이곳에서 호시탐탐 귀왕들을 노린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산군의 기억 속에도 없는 내용이다.
“곤란한데.”
만일, 유정이 귀왕들을 없애버리면 그 다음은 자신일지 모른다.
귀왕들도 바보는 아니니 그럴 일은 없겠으나 혹시 모른다.
‘놈은 산해발산고의 주인공이니.’
막아야 함이 당연하다.
귀왕 중에는 호리 또한 있다.
게다가 자신도 곧 귀왕이 될 몸이고, 십해만척과 선도문의 힘의 균형이 어그러진다면 피해를 볼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당연 산군이다.
‘항상 귀찮게 하는군.’
어찌 된 놈이 그렇게 기연을 갈취했어도 저리 성장했는지 모르겠다.
역시 난 놈은 난 놈이다.
“그럼 저는….”
양패윤은 자못 비굴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모르는 얼굴도 아니니….’
이 또한 인연이라면 인연일 터.
죽일 필요까지야 있을까.
몇 가지 금제를 심는 것으로 방곡의 동태를 살필 수도 있으니 차라리 그리 하는 게 백번 나았다.
“이전에 어울렸던 연이 있으니 매정하게 모른 척 할 수야 없지.”
핑!
푸른 법결이 양패윤의 미간 속으로 통과하자 흠칫 몸을 떨었다.
“방금의 것으로 네게 전할 것은 모두 전했으니 나가 보아라.”
덜컥!
산군이 손을 휘저으니 창이 활짝 열리며 양패윤이 무형의 기운에 휩쓸려 하늘 저편으로 날아갔다.
“옛 인연을 만날 줄은 몰랐구나.”
다름 아닌 이곳에서 일월문의 양패윤을 만나게 될 줄이야.
산군은 오래 전 방곡에서의 일을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일련의 사건들이 수면 위로 떠올라 아련한 감상을 자아냈다.
“란”
“품을 빌려드립니까?”
란이 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갑자기?”
“또 싸우러 가실 거 같아서요.”
산군은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얼굴로 바라보다 돌연 빙긋 웃었다.
“본래 내 것인데 어찌 빌릴까.”
“능글맞으십니다.”
장난스레 얼굴을 찡그린다.
“란, 솔직해지는 건 어떠냐.”
“전 항상 솔직합니다.”
그리 말하며 산군을 껴안았다.
“거 참….”
“싸우실 겁니까?”
꼭 그러지 말라는 것 같았다.
산군은 란의 손등을 토닥였다.
그 토닥임에 마지못한 감정이 전해지는 듯 했다.
“네가 생각하는 일은 없을 거다. 귀왕들이 이곳에 있고, 나는 그들을 보조하기만 하면 될 테니까.”
백산이었다면 몰라도, 이곳은 용전.
산군이 나설 필요는 없다.
아직 귀왕이 아니기도 했고, 그가 아니라도 힘 좀 쓰는 이들이 있다.
괜히 귀신들의 왕이라 불리는 이들이 있겠는가.
만반의 준비를 한다면 그들 또한 쉽사리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알리실 겁니까?”
“알리지 않을 이유가 없지. 솔직히 그들이 들어 처먹을지는 모르겠으나 언질 정도는 줄 것이다.”
그 정도는 가능하다.
어차피 수만 마리의 귀수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숨어있는 도사들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환선이라면 찾을 수 있으나 태선의 경지라면 산군이라도 어렵다.
그러니 귀왕들에게 전해도 긍정적인 답변을 듣지는 못할 터.
“그들이 어찌 나오냐에 따라 나 또한 행동을 달리 해야겠지.”
* * *
같은 시각.
“일귀, 그게 사실입니까?”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래.”
일귀는 진중한 음성으로 답했다.
“이미 귀수들 틈바구니에 숨어들었겠지. 놈들은 귀겁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야 귀왕에게 가까워질 수 있으니 말이야.”
놈들의 목적은 귀왕의 죽음.
“하지만 말이 안 됩니다. 그놈의 신통이 아무리 대단타 하더라도 적진에 뛰어들 일이 있겠습니까?”
오귀가 이상하다는 듯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놈들이 미쳤다고 이곳에 올까.
“그거야 말로 개죽음일 텐데요.”
“일귀는 어찌 아시는 겁니까?”
일귀는 옅은 미소를 흘릴 뿐.
답하지 않았다.
“일단은 귀겁이 우선이다. 다른 것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귀겁을 치르는 이들을 주시하도록 해라.”
그것을 끝으로 귀왕들이 하나, 둘 사라졌다.
그리고 사흘 뒤.
백귀야행의 귀겁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