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76)
낭선기환담-175화(176/600)
낭선기환담 – 175화
사흘 전.
귀왕후보를 뽑는 것이 백귀야행.
그리고 귀수들에게 시험을 내리는 것을 바로 귀겁(鬼劫)이라고 부른다.
“본녀도 귀겁은 치러 본 적이 없으나 본 적은 있다. 철공산 꼭대기에 있는 곡공보물(曲空寶物)로 곡공지간에 들어가 업린(業隣)이라는 것을 가져오면 된다 하더구나.”
“업린?”
“그곳에는 업린이 총 3개가 있는데 하나만 가져오면 된다 하더라. 대호 네게는 퍽 쉬운 일이지 않더냐?”
쀼루퉁한 낯으로 호리의 말을 듣던 산군이 쯧 혀를 찼다.
“잘 알겠다. 한데 내가 왜 귀겁에 들어가야 하는게냐. 육귀의 표식은 물론, 너와 칠귀의 추천까지 받았는데도 귀겁을 치뤄야 하는 것이야?”
귀왕회에서 호리가 돌아오자마자 양패윤의 일을 말했으나 돌아온 답변은 이미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귀왕들의 수완에 놀라고 있었더니 귀겁을 치러야 한다고 한다.
“난들 알겠느냐. 일귀가 그리해야 한다는데 나로서도 방법이 없었다….”
조금 시무룩한 얼굴로 말하자 산군도 침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허나 산군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왜냐면 시간 낭비이기 때문이다.
“의미가 없다.”
백귀야행에 모인 수많은 귀수들이 곡공지간에 들어가 업린을 두고 싸우는 걸 귀겁이라 부른다.
업린의 수는 한정되어 있고, 무사히 업린을 가져온 자만이 귀왕후보가 되어 백귀야뢰겁을 받는다.
그러나 그것 또한 어느 정도 수준이 맞아야 하는 것이다.
“귀수들의 경지가 영결이거나 영명의 수준인데 내가 그놈들을 당해내지 못하겠느냐?”
산군은 영겁이다.
손가락만 튕겨도 죽일 수 있는 놈들이 영결이고 영명인데, 그가 귀겁을 치룰 이유가 무엇일까.
불만을 토로하자 호리는 자신이 무슨 죄라도 지은 듯 눈치를 살폈다.
그때였다.
“산군님. 그건 아마도 도사들 때문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습니다.”
돌연 홍연이 나서며 말했다.
“그럼 더 가기 싫어지는데….”
곡공지간 속에서 방곡의 도사들과 생사결을 다투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유정이라도 있다면….’
좋은 결말이 떠오르진 않는다.
이 부분은 저울질을 해보아야 했다.
그가 귀왕이 되려는 것은 오귀와의 일도 있고, 유정이 백산을 노리려 할 때에 든든한 뒷배를 갖기 위해서다.
부가적으로는 백귀야뢰겁도 있다.
그러나.
‘귀겁을 치루는 것 자체에 위험이 도사린다면 안 하는 것만 못하겠지.’
앞의 장점들을 무시하더라도 귀겁을 지르지 않는 게 더 좋아 보였다.
“그건 걱정하실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귀왕들도 두 손 놓고 있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니까요.”
“무슨 소리지?”
“이번에는 귀왕들도 곡공지간에 들어가 감시하기로 했으니까요.”
그렇다면 말이 또 달라진다.
“함정이군.”
“예.”
숨어든 도사들을 일망타진 하려는 속셈으로 보였다.
다른 때였다면 고개를 끄덕였을 테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유정이다.
덫을 놓았다 해도 그것이 함정을 판 것일지, 제 못자리를 판 것인지는 닥치지 않고서는 모를 일.
그 어느 때보다 신중의 신중을 기해야 함이 당연했다.
“내 옆에 착 달라붙어 있거라!”
호리가 그제야 이야기를 이해했는지 가슴을 떵떵 치며 말했다.
가볍게 무시한 산군은 의자에 걸터앉으며 고민했다.
‘뒷배는 필요하다.’
자신이 귀왕이 되고, 그것이 널리 알려지면 여러 문제가 생기겠으나 그것은 목숨의 위협을 받지 않을 때 생기는 문제다.
지금의 백산은 위험하다.
귀왕이 되는 것이 옳다.
귀왕의 신분은 숨기면 되는 일.
적어도 백산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게 아닌가.
산군은 고민했다.
고민하고 고민했다.
그러다 돌연 헛웃음을 흘렸다.
“결국 내 고민은 유정 때문이구나.”
이전에 놈에게 죽을 뻔한 기억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자신이 알고 있는 유정의 기록이 있어서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지레 겁부터 먹었구나.’
산군은 두 눈을 감고,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눈을 번쩍 떴다.
“한 번 해보지.”
결단을 내린 순간이었다.
* * *
철공산의 꼭대기.
“이상하군.”
영산이라 생각했던 철공산인데, 기묘하게도 아무런 영기가 없었다.
영맥이 없는 산과 같았다.
어찌 십해만척이 이런 곳을 중심으로 귀왕각을 만들었는지 의아했다.
철공산 정상에는 운무가 자욱했다.
엄중한 금제와 고계 환진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안내해주는 대로 들어가자 거대한 돌기둥과 기묘한 주술문자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뭐지 이건.’
거대 돌기둥이 제각각 놓여 있었고, 그들 모두 주술문자가 적혀 있었다.
드물게도 푸른 글자였는데, 산군이 보아도 알 수 없는 글자였다.
글자인지 그림인지도 애매했다.
“물러서라.”
그때 눈썹이 긴 사내가 나타나 산군과 귀수들에게 말했다.
“저놈이 이귀야. 말 수가 없고 재수도 없는 놈이다.”
호리가 옆에서 소근거렸다.
흠을 보려거든 전음을 할 것이지.
이귀도 들었는지 호리를 슬쩍 쳐다보고는 돌기둥으로 가까이 갔다.
이내 입을 달싹이며 주술을 외우자 허공에 푸른색과 녹색의 빛이 어른거리며 공간이 벌어졌다.
찌이익!
공간이 찢어지는 파공음에 귀수들이 얼굴을 찡그렸다. 돌기둥의 푸른 글자들이 형형색색 떠오르고 밤하늘을 푸르게 비췄다.
그때가 되자 다른 귀왕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며 수결을 맺고 주술을 외웠다.
일귀부터 구귀까지.
육귀와 팔귀, 십귀는 없으나 일곱으로도 충분해 보였다.
강력한 영기의 파동이 휩쓸고 지나가자 귀수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이내 푸른 반딧불이 나타나기라도 한 듯 푸른 영자들이 떠올랐다.
그러자 공간균열의 크기가 더 커지고 타원형으로 모양이 굳혀졌다.
그때가 되자 귀왕들이 하나 둘, 수결을 거두며 차분히 숨을 토했다.
‘보통 곡공지간은 아닌 듯하군.’
이런 식의 곡공지간은 검령도에 들어갈 때를 제외하고는 본적 없다.
검령도를 생각하니 불현듯 불안감이 떠올랐으나 이내 털어냈다.
그곳과 이곳은 엄연히 다르다.
손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곳이고, 귀왕들도 함께 들어갈 테니 겁먹을 필요는 없었다.
“들어가라.”
장발을 한 사내.
일귀가 엄숙한 음성으로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이다.
귀수들은 서로 눈치만 보다가 한 놈이 들어가자 앞 다투어 들어갔다.
백귀야행에 귀수들 수만 마리가 모여 있었으나, 귀겁을 치르는 것은 대략 사천 정도였다.
대부분은 영결과 영명이었다.
드물게 영화 또한 있었으나 그들은 귀왕이 목적이 아닌 듯 했다.
“우리도 들어가자.”
호리가 산군의 손을 잡고 말했다.
산군은 고개를 끄덕이고 단번에 푸른 공간균열 속으로 뛰어들었다.
팟.
물속에 뛰어든 것처럼 저항감이 살짝 들었으나 그것은 이내 사라졌다.
몸이 쭈욱 늘어난 기분이 들었다가 사라지자 어느새 땅 위에 서 있었다.
* * *
귀수들이 모두 들어간 철공산 정상.
그곳에서는 오귀가 공간균열을 앞에 두고 가만히 서 있었다.
잠시 기다리자 지면에서 여인의 인영이 튀어나왔다.
“마유. 기다리고 있었다.”
“오귀님을 뵙습니다.”
여인은 마유라는 오귀의 심복으로 산군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라 명했던 수하였다.
그녀의 은술은 극에 달해 영겁이라도 쉽사리 눈치 챌 수 없었다.
오귀는 만족스럽게 그녀를 바라보다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약점은 찾았나.”
“예. 찾았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오귀는 희색이 만연해 물었다.
“무엇이냐!”
“그의 약점은… 정입니다.”
“정? 그 말인즉슨….”
“크게는 백산이요, 작게는 인연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와 연을 맺은 모든 인물들이 약점이고, 뼈아픈 급소가 될 테지요.”
오귀는 단번에 알아듣고 물었다.
“누구냐! 그가 가장 아끼는 이가!”
“그것은….”
이내 오귀의 광소가 철공산에 울려 퍼지다 천천히 사라졌다.
* * *
“손 놓지 말거라. 너도 알다시피 위험한 곳이니 우리 둘이 언제 어디서 갈라질지 모른다.”
“그건 아닌 거 같은데.”
“맞다! 잘못하면 몇 십 년은 길을 헤매기도 하는 곳이 바로 철공미궁(撤空迷宮)이니 당연하지 않느냐!”
호리의 말대로 이곳은 미궁.
사방이 수풀로 되어 있는 미궁이다.
“주인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곡공지간임과 동시에 이 숲 자체가 하나의 살아있는 보패라는 말이 전해져 오기도 한다더군요.”
“생체보패(生體寶貝)라는 말인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살아있는 보패.
그것을 떠올리자 이전에 마주쳤던 미친년이 생각났다.
‘귀음나찰 또한 그러한 몸이었지.’
산군은 그녀를 떠올리다 소름이 돋아 이내 지워버렸다.
“근데 나와 같이 다녀도 되는 게냐? 그래도 엄연히 시험이고 귀겁인데.”
“어….”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영겁인 산군을 시험하려는 의도는 없을 겁니다.”
호리가 우물쭈물하자 홍연이 옆에서 거들어준다.
“일귀의 안배인가?”
“그렇겠지요.”
홍연과 몇 차례 건너 뛴 대화를 주고받자 호리가 볼을 부풀린다.
“네놈들은 만나기만 하면 못 알아먹을 말만 하는구나! 예전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아주 죽이 척척 맞아!”
대뜸 소리를 지르자 홍연과 산군이 서로 마주보았다.
“그러고 보니 홍연과 내가 나름 통하는 구석이 많은 것 같군.”
“그러게 말입니다. 주인님과는 열댓 번의 문답을 주고 받아야 하는데 산군과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 편합니다.”
고개를 주억이며 말하니 호리가 열불이 난다는 듯 얼굴을 찌푸린다.
“차라리 날 주인으로 섬기는 건 어떤가. 검둥이보다 배는 잘해줄 자신이 있는데 말이야.”
“산군은 주인으로 모신다면 고구마를 먹은 것 마냥 턱턱 막히는 제 가슴이 조금은 시원해지려나요.”
홍연이 호리를 흘기며 말했다.
그러자 호리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눈가에 눈물을 매달았다.
그리하자 당황한 것은 홍연이고, 산군이었다.
“그렇다고 울 것까지 있더냐.”
“장난이었습니다. 제가 어찌 주인을 놔두고 다른 분을 섬기겠습니까.”
“놔라 멍청이들아! 난 운적도 없고, 서운한 적도 없다!”
홍연의 팔을 뿌리치고 소리치는 모습이 삐친 아이 같았다.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말하는 것이라 설득력이 전혀 없었다.
“서운하냐 물은 적은 없는데.”
그러자 호리의 얼굴이 터질 듯 붉어지며 빼액 소리를 질렀다.
“시끄럽다!”
“시끄러운 건 너다 검둥아. 진정해.”
“시끄러워! 시끄러워! 시끄러워!!”
쾅쾅쾅!
발로 지면을 내리치며 말하자 바닥이 거미줄처럼 균열이 터졌다.
슬쩍 홍연을 바라보자 자신도 어찌 못하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인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조금은 즐기고 있는 모양이다.
“에효…?”
한숨을 내쉬고 달래주려는 찰나.
돌연 허공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거대한 물체가 급속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탐화.”
작게 읊조리자 소매 속에서 검은 지네가 튀어나와 순식간에 몇 백 장으로 커져 산군의 앞을 막았다.
쿠우웅!!
육중한 소음이 터지자 신경질을 내던 호리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뭐냐!”
“별건 아니고.”
탐화에게 명해 가져오니 떨어져 내린 것은 거대한 등껍질이었다.
“주귀통춘의 등껍질이네.”
영결 수준의 등껍질로 보였다.
이게 왜 날아들었는지는 굳이 고민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벌써 여기저기서 싸움이 시작됐거나… 놈들이 나타난 거겠지.”
괜히 귀겁이라 불리는 철공미궁이 아니라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쿠구구우우웅!!
수풀이 저절로 움직이며 살아 움직이듯 꿀렁거리기 시작했다.
“앗, 대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