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79)
낭선기환담-178화(179/600)
낭선기환담 – 178화
구구구구궁.
쿵!
홀로 움직이는 수풀과 석벽은 철공미궁의 신비로움을 한층 가중시켰다. 먼발치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장발의 사내 일귀와 곁에선 이귀는 묵묵히 무언가를 기다렸다.
망부석처럼 서 있는 둘의 침묵이 깨어진 것은 그로부터 하루가 더 지났을 때였다.
“여기 있었군요.”
아리따운 음색과 함께 하늘에서 궁장치마를 나풀거리며 내려서는 여인.
그녀는 귀왕 중에서도 최고 미색이라 일컬어지는 칠귀였다.
그녀의 몸짓과 손짓에는 천박한 교태나 애교가 없어도 사랑스러웠고, 그저 가만히 있는 것으로도 매력적이며 아리따웠다.
그야말로 천하일색(天下一色).
바람에 흔들리는 꽃처럼 위태로워 보이기도 했으나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더 눈길이 갔다.
“왔나.”
“왔군.”
그러나 일귀와 이귀는 마치 돌덩이가 굴러온 것처럼 눈길 한 번 주고는 담담히 대답했다.
자신의 미모에 취해있는 아낙네였다면 기분 나빠했을지도 모르겠으나 칠귀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웃는 듯 마는 듯한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깃털로 치장된 접선을 꺼내 입에 가져갔다.
“도사들의 동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습니다. 일귀는 아십니까?”
“알고 있다. 놈들의 생각도 모르고 귀왕 전부를 이곳으로 불렀을까. 미리 확인까지 해본 후다.”
미리 확인까지 해봤다하니 칠귀가 놀랍게 바라봤다.
“놈들은 기괴한 전송진을 구축해 이곳에 있는 귀왕과 귀수들 대부분을 어느 공간으로 전송하려 하더군.”
“전송진!”
“그렇다면 큰일 아닙니까?”
그들의 구역으로 한꺼번에 전송된다면 십해만척의 주요 인물들 모두가 씨몰살을 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귀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알고 있는데 뭐가 큰일인가. 내 미리 손을 써놨으니 걱정할 것 없네. 별다른 준비도 필요치 않겠지. 놈들이 방심해 기고만장해 있을 때 역으로 덮치면 그만이지.”
확실히.
그 또한 명답이다.
칠귀는 일귀의 답변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이귀는 무언가 석연찮은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정보는 어디서 구했지? 구름 속에 얼굴을 집어 놓고는 하늘을 다 알았다 하는 것은 아닌가?”
그러자 일귀의 얼굴이 구겨졌다.
“나 일귀를 믿지 못하나?”
이내 기묘한 기류가 일귀와 이귀의 몸에서부터 뿜어져 나왔다.
콰지직! 콰직!
강력한 기운이 허공에서 부딪치니 광풍과 함께 굉음이 퍼졌나갔다.
일귀와 이귀는 한참을 서로 노려보며 신경전을 벌였는데, 칠귀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평온한 얼굴이었다.
그러다 돌연 고개를 갸웃하더니 접선을 펼쳐 보였다.
“슬슬 모이나 보군요.”
그러자 수풀 속에서 두 개의 머리를 지닌 사내가 나타났다.
머리는 백발이었고, 몸 곳곳에 난 흰털과 꼬리가 인상적인 삼귀였다.
온몸에 피칠갑을 하고 있었는데, 짐승의 피냄새가 물씬 풍겼다.
칠귀의 아미가 찌푸려졌으나 무어라 질문을 던지지는 않았다.
이곳으로 당도하던 중 심심풀이로 귀수들 몇을 잡아 죽인 게 뻔했다.
“늦지는 않았나 봐?”
그리고 그 뒤를 이어 구귀인 호리와 오귀, 사귀가 당도했다.
영면한 이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귀왕이 모인 것이다.
“놈들의 머릿속이야 이미 들여 본 것처럼 알고 있으나, 마냥 무료하게 시간을 보낼 수는 없겠지.”
일귀는 곧장 품에서 족자를 꺼내 펼쳤다. 족자에는 금색의 석장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가 툭 건드리자 신묘한 빛이 퍼지며 석장 일곱 개가 투투툭 바닥에 박혀 떨어졌다.
석장은 한 눈에 보아도 보통 물건으로 보이지 않았다.
차르랑! 흔들릴 때마다 석장에 달려 있는 고리가 짤랑였다.
일귀는 그것을 귀왕 모두에게 나누어주며 말했다.
“만보시대 때 만들어졌던 고보(古寶)로 무언가를 순식간에 결박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보패다. 놈들을 상대할 때 도움이 될 테지.”
평범한 무게는 아니었다.
귀왕들은 본체가 영수인만큼 웬만한 무게에는 꿈쩍도 하지 않으나 이 석장은 들고 휘두르기도 만만치 않을 만큼 무거웠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닌지 일귀는 진법패를 꺼내 사방으로 던졌다.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지켜보던 다른 귀왕들도 저마다 각자의 보패들을 꺼내거나 전투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귀만큼은 뭔가 이상하다는 듯 자꾸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상하군.”
무언가가 이상했으나.
무엇이 이상한 것인지는 그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 * *
한편.
산군은 신중한 낯으로 의문의 목소리를 향해 질문했다.
“누구십니까.”
-누구라 말하면 네가 알겠느냐?
명백히 무시하는 어조였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은 어금니를 깨무는 것 말고는 없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자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름. 이름이라… 흐흐, 천락(天落)한 죄인이 이름은 무슨 소용일까. 그런 것일랑 잊어버린 지 오래다. 허나 호칭 정도는 필요하겠지?
잠시 고민하던 그는 무언가 내려 놓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거리낄 게 무어 있을까. 너 또한 도를 나아가는 자이고, 나 또한 그러했었으니 그냥 기 선배라 부르거라.
산군은 허공에 포권했다.
“얼굴을 마주 뵙고 인사를 드리는 게 예의이나 선배님께서 모습을 드러내기가 곤란해 보이시니 모쪼록 너그러이 이해해 주십시오.”
-흥, 말하는 꼬라지를 보니 네놈도 산전수전은 다 겪었나 보구나. 빙빙 돌려 말하는 법이 아주 제법이야!
다분히 비꼬는 어조였으나 그리 심기가 불편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산군은 머리를 팽팽 굴리며 다음 말을 고르고 골랐다.
그러나 기는 네가 할 말은 대강 알겠다는 듯 먼저 입을 열었다.
-네 추측대로 난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몸이다. 그뿐일까,
네게 위협을 가할 수도 없으니 그리 경계를 할 필요도 없다.
산군의 눈에 이채가 빛났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계속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이상하다 생각하던 차였다.
모종의 이유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거나 거동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무서울 게 없다.
“선배님은 죄인이라 하셨는데… 선배님 정도 되시는 분이 대체 어떠한 죄를 지으셨는지요.”
최소 영원 육사.
그도 아니면 신수거나 신선일지도 모르는 존재다.
그런 존재가 죄라니.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존재 자체가 하나의 법칙이라 할 수도 있는데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자신을 죄인이라 칭하는 걸까.
그리고 그 죄라는 것이,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것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숨 가쁘게 묻는구나! 그래… 그분의 신통을 이어받은 놈이니 대강의 설명 정도는 해주도록 할까.
네놈은 신선이 짓는 죄가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더냐.
신선이 짓는 죄라니….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일이다.
막연히 선계라는 상위의 계가 있고, 영생을 누리며 살아가는 신선과 신수가 있다는 것만 알고 있다.
그 이상의 것은 모른다.
‘중간에 빨려 들어왔으니까.’
-하긴, 알 리가 없지. 하계 놈들은 그저 전부 하늘이 창조하고 하늘이 내린 것이라 알고 있으니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립니까?”
-네놈들은 수행을 할 때 영맥이 있는 영산에 들어가 두문분출하며 수련을 일삼지 않더냐. 한데 그 영 산에서 새어 나오는 영기의 근원은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지.
영기의 근원!
확실히 그저 수행의 수단으로 여겼을 뿐이지 근원을 알아볼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할 필요도 없었고.’
-나의 죄를 알려거든 영산의 탄생 비화를 알아야 할 것이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전부 뿌리가 있고, 그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모든 진리에 도달할 테니!
산군의 눈가가 좁혀졌다.
영문 모를 소리만 뱉어내니 답답해서 가슴이 꽉 막힐 지경이었다.
“무슨 소린지 알기 쉽게 좀 말해주시지요. 어디 갇혀 계시다 보니 말하는 법도 잊으신 겁니까?”
-뭐, 뭐라고…?
“그렇지 않습니까. 감출 것이면 입을 다무시던가, 알려줄 거라면 제대로 알기 쉽게 말해주시면 덧납니까?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으니 제대로 풀어서 설명해주시지요.”
-이, 이놈이?! 내가 그래야 할 이유가 있더냐!
“그럼 마시던지요. 솔직히 그렇게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죄가 어쩌고 뿌리가 어쩌고 하는 것은 궁금하지도 않다.
그가 궁금한 건 금제다.
금제에 대한 이야기를 알아내려 비위를 조금 맞추려 했으나 영 헛소리만 뱉어내니 흥미가 식었다.
이쯤 되자 정말로 금제가 심어져 있는 게 맞나 싶기도 했다.
“제 몸속에 금제가 심어져 있다고 했는데 그것이 정녕 사실입니까? 만일 사실이라면 이것을 지울 수 있는 방법 또한 알고 계시는지요.”
-금제가 있는 것을 알아차렸는데 파훼하는 법도 모를까. 알다마다!
산군이 작게 한숨을 흘렸다.
파훼할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검령도의 주인인지 누구인지 모르나 자신을 찾는 놈이 이로운 명목이 있는 것은 아닐 터. 게다가 금제가 있다면 반드시 파훼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머리를 조금 굴려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전 믿지 못하겠습니다. 금제가 심어져 있다는 것조차 확인할 수 없는데 금제의 파훼법이고 나발이고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흥, 그 또한 네 팔자겠지. 나 또한 네가 죽든 말든 상관없으니 이리 된 김에 갈 길이나 가자꾸나. 그분의 후인을 만나 모처럼 선심이나 써 줄까 했더니 영 싸가지가 없어!
산군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슬슬 열이 뻗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대로 무시하고 갈 길 가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많다.
만일 정말로 자신의 몸에 금제가 심어져 있고, 오색 거검 신통의 괴인이 자신을 찾는 선인이 맞다면!
‘잡혀가거나 죽겠지.’
신선이 하계에 내려올 수 있는 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으나, 이 세상에 절대적은 것은 없다.
모종의 대가나 방법이 있을지 누가 안단 말인가.
지금 산군의 앞에도 선계에서 지냈던 선인의 목소리가 있는데.
“원하는 것이 있으십니까.”
선심이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나이는 지났다. 금제의 존재를 말해 주고 파훼법까지 알고 있어도 그것을 말해줄 까닭은 없다.
그 또한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으니 그리 말했을 터.
세상에 이유 없는 호의 없고, 까닭 없는 악의 또한 없는 법이 아니던가.
-고놈 참 셈이 빠르구나.
하지만 그 또한 하계의 상식일 뿐. 난 네게 바라는 것이 딱히 없다.
그럼 정말 선심에 의해서?
말도 안 된다.
산군은 콧방귀를 끼었다.
“기 선배의 죄가 무엇이고, 뿌리가 무엇인지는 모르나 이곳에 갇혀있고 목소리만 낼 수 있는 상황이라면 뻔할 뻔자 아니겠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선배님이 철공미궁에 갇혀 계시고 옴짝달싹도 못하는 상태겠지요.”
죄를 짓고 천락했다.
그 말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많으나 적절한 단어는 단연 봉인.
“봉인을 풀고 싶으시지 않습니까?”
죄라는 이름으로 갇혀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풀어줄 수도 있을 터.
그 또한 은연중 그것을 바라고 말을 걸지 않았겠는가!
신선이었던 인물이 자의적으로 하계에 내려와 벌을 받는 건 말도 안 되는 말이다.
누군가에 의해 벌을 받고 있을 터!
그렇다면 그 벌을 사하여 주는 것 또한 가능할지 모른다.
-이제 고작 영겁에 오른 애송이가 천락의 업을 풀어? 하하하하하!! 몇십만 년동안 들었던 소리 중 가장 우스운 소리가 아닐 수 없구나!!
한참이나 큰 소리로 웃던 그는 마지못해 빈정거리기도 했다.
-하핫!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만약 네가 만물의 법칙 중 하나인 창조의 법칙이 깃든 구천월보(九天月寶)를 지녔다면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