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81)
낭선기환담-180화(181/600)
낭선기환담 – 180화
산군은 흥분을 감추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역시나 산해발산고 내에서도 신물이라 평가했던 사월제항이다.
모르긴 몰라도 선계에서도 최고의 법칙 중 하나라는 창조가 깃든 보물이라니 흥분되지 않을 수 없었다.
유정 놈이 차후 선계로 비승해 사월제항을 어찌 썼을지 눈에 선했다.
‘이걸로 창조의 법칙을 수행해 선계 제일의 신선이 되었었겠지.’
선계에서의 일도 읽어봤으면 좋았겠으나 그러지 못한 게 한이다.
하지만 그리 생각하면서도 가슴 한켠은 싸늘하게 식었다.
이미 수백 년을 살아오며 간간히 생각을 정리한 결과.
산군은 이곳을 소설 속이라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애초에 하계와 선계로 경계가 나뉘어져 있는 게 이곳이다.
하계 자체도 본래 그가 있었던 세상과는 달리 참으로 방대하기 짝이 없는 곳이니 더 말해 무얼 할까.
그것에 더해 선계까지.
이곳은 소설 속이 아니다.
그렇다면 여긴 어디일까.
유정, 그는 누구일까.
‘그 책 또한 선인의 물건….’
이었을지도 모른다.
하계의 보물들 중에서도 천지를 뒤집을 대단한 물건들이 많다.
하물며 선계는 어떻겠는가.
그가 생각치도 못하고, 생각할 수조차 없는 보물들이 하늘에 별처럼 많아 헤아릴 수도 없을 터.
그러나 확실한 건 없고, 지금 고민해서 좋을 것 또한 없다.
우우웅….
‘시작 됐나.’
슬쩍 고개를 돌린 산군이 심상치 않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시간이 많지는 않다.
이내 산군의 입이 달싹였다.
-화령서약? 그러고 보니 하계에서는 그런 게 있었지.
왜 묻는지 몰라도 선계에서도 그런 게 있기는 하지. 근데 그건 어찌 묻는 게냐.
“솔직히 제가 선배님을 믿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모습조차 뵌 적이 없는데 신선인 것은 어찌 믿고, 주신 선술은 또 어찌 믿어볼까요.
솔직히 저는 의심이 많은 터라 선배님의 유지를 잇기엔 힘들겠습니다.”
그리 말하자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터트린다.
-하! 분명 네 말마따나 신선들의 맹세 또한 있기는 하다. 신선이라 해서 경지의 고하가 없는 것은 아니니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심마. 자신의 심마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심마에 걸고 맹세를 한다. 수행에 있어서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게 심마이니 말이야.
기는 그리 말하고 산군을 비웃었다.
-하지만 네 말처럼 날 어찌 믿느냐. 난 어차피 곧 영산이 된다.
말인 즉슨.
곧 죽을 것이니 심마를 걸고 맹세해도 믿을 수 없는 건 매한가지.
그러니 소용없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산군은 그렇지 않은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선배님도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버리는 건 바라지 않으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산군에게 자신이 고안한 독창적인 선술을 남긴 것일 터.
-…희한한 놈이로다.
“가볍게 해주십시오. 그래야 저도 마음 편히 유지를 이을 수 있으니까요! 하시는 김에 제 지인들은 물론, 제 목숨과 보물을 탐하지 않겠다 심마에 걸고 맹세해주시지요!!”
기는 잠시간 말이 없었다.
어이가 없어서 그런건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말문이 막힌 듯 했다.
허나 그것도 잠시.
-그래, 네 좋을 대로 해라.
과연 이런 놈에게 맡겨도 좋을지 모르겠다만….
* * *
쿠우우웅.
묘한 울림이 대지를 진동시켰다.
호리는 자신의 발밑에 기묘한 문자들이 새겨지는 걸 보았다.
그 뒤를 이어 은근한 핏빛이 올라오는 것을 보니 보통의 진은 아니었다. 순간 주변을 둘러보니 온 세상이 피로 물들인 듯 붉었다.
불길하고도 꺼림칙한 빛이었다.
“놈들의 전송진이 발동하는… 일귀. 이대로 있어도 되는 건가?”
“그러게요, 뭔가 착오가 있다거나 하는 거는 아닐는지요….”
참다못한 이귀가 인상을 구겼고, 칠귀와 다른 귀왕들 또한 마찬가지로 혹시 모를 이변이 벌어진 게 아닌가 불안감이 증폭됐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도 일귀의 입은 한없이 무거웠다.
“크흠….”
그 흔들림 없는 모습이 귀왕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자신의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다는 듯한 모습인데 더 무어라 할까.
이전에도 그래왔고.
지금도 다르지 않으리라.
‘짜증나네.’
십해만척의 현 귀왕들 중.
가장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것이 바로 일귀다.
십해만척의 역사가 바로 일귀요, 전통이 바로 일귀이니 그의 선택과 지시에 불만을 토로할지언정 의지를 꺾을 이는 존재치 않는다.
그리고 잠시 뒤.
호리의 여우귀가 움찔거렸다.
무언가를 들어서가 아니다.
너무나 고요해서이다.
철공미궁은 귀수들 수천이 함께 들어와 귀겁을 치루는 곳이다.
한데 미궁은 적막함이 맴돌았다.
적말한 그곳을 핏빛만이 어둠을 밝히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
“홍연. 느낌이 좋지 않다. 난 대호를 찾으러 가봐야겠어.”
“지금이요? 앞서 말했다시피 주인님이 걱정하실 정도의 분이 아닙니다. 본래 찾아다니려 했으나 상황이 여의치는 않을 듯하니 참아주세요.”
그러나 호리는 고개를 저었다.
이내 일귀에게 받은 석장을 홍연에게 넘겼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 대호 놈에게 넘겨준 반지가 있으니 찾는 건 어렵지 않아. 금세 다녀올 테니 잠시 내 대신 있어줘.”
그렇게까지 말하자 홍연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철공미궁은 제멋대로 움직이는 위험한 곳이며, 인간 도사들이 흉계를 꾸미고 있다.
이런 곳에 제 주인을 홀로 돌아다니게 할 수는 없다.
“느낌이 좋지 않아.”
흔히 볼 수 없는 호리의 진중한 얼굴에 홍연의 마음이 약해졌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살짝 베어 물고는 이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다녀오마!”
활짝 웃으며 날아오르려는 찰나.
쿠우우웅!!
대지가 격하게 흔들렸다.
흠칫거리자 이내 사방에서 핏빛의 기둥들이 솟아올랐다.
고오오오오!!
거대한 공간 균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고 특유의 압력이 발생했다.
“일귀!”
이귀가 이제는 안 되겠는지 격한 감정을 토했다.
그러나 일귀는 묘한 미소만 지었다.
알 수 없는 미소에 묘한 불안감이 치솟으려던 찰나.
촤자작!
순간, 귀왕들의 얼굴이 바뀌었다.
“일귀!!”
“이게 무슨!”
그가 나누어준 금색 석장이 뱀처럼 변해 그들의 몸을 결박한 것이다!
“무슨 짓이냐 일귀!! 설마 십해만척을 놈들에게 팔아넘긴 것이냐!”
이귀가 대노하여 소리쳤다.
다른 귀왕들 또한 마찬가지.
어이없는 상황에 모두가 인상을 찡그리고 핏발선 눈을 떴다.
“그럴 리가. 애초에 네놈들은 내 원수나 다름없는 놈들인데 팔아넘기긴 뭘 팔아넘길까!”
“원수?”
같은 귀왕인데 원수라니!
인과가 맞지 않는 소리에 의아해할 때. 묘한 바람이 한 점 불었다.
휘잉.
그러자 일귀의 모습이 바뀌었다.
눈빛이 서늘한 청년의 모습.
익숙하지 않을 청년의 외견이었으나 귀왕들은 그가 누구인지 아는 듯 대경실색했다.
“아니 너는!!”
“일월문 대장로가 어찌!!”
저 얼굴을 어찌 모르랴.
그는 일월문의 대장로.
유정이었다.
“네놈들 머릿속이 뻔히 보이는군. 내가 나타났으니 당연히 일귀의 행방이 궁금하겠지?”
당연했다.
놈이 유정이었다면 십해만척의 수장인 일귀는 어디 갔는가!
“일귀는 어디 있느냐!!”
한껏 낮잡아 보는 말에 귀왕들이 쌍심지를 켜고 목청을 드높였다.
“설마…!”
유정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 반응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일귀가….”
“그럴 리가!”
이미 죽은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귀로 둔갑하여 귀왕들을 속일 수 있었겠는가.
진실이 밝혀지자 귀왕들은 얼이 빠진 듯 아연실색했다.
설마하니 일귀가 당했을 줄이야!
쉽사리 믿을 수 없었다.
수천 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일귀다.
그런 일귀가 태선으로 승선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놈에게 죽었다니!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그의 오랜 지기였으며 맞수였던 이귀는 하늘이 무너진 듯한 얼굴을 했다.
“십해만척의 수장다운 최후였다.”
오줌을 지리며 목숨구걸 하더군.
이라는 말에 귀왕들의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그 또한 잠시뿐!
살아온 세월이 수천 년이 넘는 귀왕들이다. 공황은 잠깐이었고, 이내 강력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십해만척의 귀왕.
이리 허무하게 당할 수 있을까.
놈의 목적은 전송진이 발동하기까지 자신들을 잡아놓는 것!
공간을 뛰어넘는 전송진은 작은 흠집에 의해서도 전송이 실패한다.
쿠우웅!!
귀왕들의 몸이 부풀어 오르며 하나둘, 본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
탈형의 모습이 터져나가며 거대한 본신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귀는 온몸이 불타오르는 불새로.
삼귀는 머리가 두 개 달린 백색 털을 지닌 흉포한 미후로 변했다. 사귀는 코끼리와 양을 섞어놓은 듯한 모습이었고, 오귀는 거대한 금돈이었다.
칠귀는 이름에 걸맞은 칠색 공작새였는데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가히 위풍당당한 모습이요, 강력한 기운을 뿜어내는 흉수들이었다.
하지만.
귀왕 대부분이 본신을 드러냈으나 그들의 몸을 결박하는 뱀처럼 변한 금색 석장은 풀어내지 못했다.
[으아아악!!] [으윽!!]오히려 몸을 압박하는 정도가 심해진 듯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금추나(禁推裸)라는 고보로 쉽게 풀어내지는 못할 거다. 그래봤자 차 한 잔 마실 정도면 힘을 다할 테지만 그것이면 내겐 충분하지!”
기이이잉!!
이내 세상이 핏빛으로 물들어 전송진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대규모의 광역 전송진이라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제약이 많다.
그러나 효과만큼은 확실하다.
“아무리 나라도 귀왕들 전부를 잡아 죽이는 건 힘들지만 네놈들을 방곡으로 데려간다면 살아날 수 있을까?
어림없는 소리.
개처럼 꼬리를 흔들지 않는 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귀왕을 한번 복수로 길들여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광소하는 유정의 곁에 여러 도사들이 떨어져 내렸다.
그 중에는 유정과 꼭 닮은 외견의 도사 또한 있었다.
“고생했다.”
그리 말하자 유정과 닮은 도사는 이내 몸이 허물어지고 새끼손가락으로 변해 유정의 손으로 날아가 붙었다.
[신외화신!]귀왕은 모두 으르렁거리며 흉포한 울음과 기운을 폭발시켰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은 우리 속에 가둬진 짐승과 다를 바 없었다.
“혹시 몰라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일귀라는 소리에 아무 말도 안하는 꼴이 우습더구나. 개개인의 신통력은 물론, 본신의 강인함이 동급 도사를 초월한다는 귀왕들도 머리은 한 없이 비어져 있으니 역시 짐승의 피는 속이지 못하더군!”
저 혼자 광소하던 유정은 이내 서늘한 눈초리로 호리를 바라봤다.
“구귀였던가….”
잠시 고민하던 그는 이내 상관없다는 듯 생각을 털었다.
그녀가 데리고 있는 영겁 육사를 수에 끼워넣지 못했다.
그랬기에 구귀 만큼은 석장에 속박되지 않았던 거다.
그러나 상관없다.
“영겁 초경쯤이야 어렵지 않지.”
영겁 후경의 일귀조차 유정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다.
한데 고작 초경이 상대나 될까.
어림 반 푼어치도 안 되는 소리다.
“여우년 혼자서 뭘 할 수 있을까.”
“주인님 전송진을 부수십시오!”
홍연이 소리쳤다.
호리도 그 뜻을 알아챘는지 손을 들어 펼쳤다.
하지만 그 순간.
푹푹푹!!
“주인!!”
홍연이 목 놓아 소리쳤다.
“아….”
호리가 고개를 떨궜다.
어느새 화살 세 대가 박혀 있었다.
평범한 화살은 아니다.
순간 온몸이 굳어지고, 호리의 피부가 백지장처럼 변해갔다.
쿨럭! 입에서는 토혈이 쏟아졌다.
핏물이 탁하고 응고되는 걸 보니 강력한 독이 틀림없다.
“십대극독중 하나인 붕양초수(崩揚醋嗽)다. 온몸이 돌처럼 굳고, 이내 전신의 기운이 빠져나가지.”
놈의 말 대로였다.
호리의 몸에서 희뿌연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그녀의 피부가 시퍼렇게 변해갔다.
“주인, 주인님! 주인님!!”
홍연의 눈이 뒤집어지고 석장을 풀어내려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호리는 선혈을 토하며 멍하니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십대 극독중 제일이라는 붕양초수에는 어떠한 해독제도 없다.
몸에서 빠져나오는 연기는 네 화령이 품은 원기이니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
붕양초수의 무서움이 저렇다.
독이 몸속에 들어가면 온몸이 뻣뻣하게 굳는다. 기혈이 전부 막히고, 몸속에 피가 돌지 않게 되는 건 물론 서서히 화령이 죽어가고 끝내는 한줌 연기로 화해 존재가 사라진다.
해독제가 없는 만큼, 붕양초수에 당했다면 무엇으로도 살릴 수 없다.
“이제 끝났다.”
그와 동시에 전송진이 눈이 부실 정도로 핏빛을 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