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84)
낭선기환담-183화(184/600)
낭선기환담 – 183화
산군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저곳으로만 갈 수 있다면 신수가 되어 영생할 수 있지 않던가.
마음만 같아서야 당장이라도 천로에 뛰어들고 싶었다.
하지만….
‘안 될 소리.’
지금의 경지로 천로로 뛰어든다 한들, 버텨내지 못할 것이다.
선계는 신선들의 공간.
하계의 자신은 갈 수 없다.
선계의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몸이 터져 죽거나 찌그러질 것이다.
“하아….”
허나 그토록 바라던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는데 어찌 아무렇지 않을까.
절로 옅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무어라 정의할 수 없었다.
복잡한 기분으로 천로를 바라보자 화기린은 어느새 눈매가 사나운 노인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가 소매를 털자 기이한 항아리 하나가 나왔다. 화기린이 변한 노인은 여러 감정을 추스리는 듯 아쉬운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다 휙 던졌다.
터엉!
항아리는 산군의 손에 떨어졌다.
그것은 이전, 산군이 넘겨주었던 사월제항이었다.
“네놈은 반드시 올라와라.
그분의 화염과 더불어 본좌의 신공까지 가지고 있으니 꾸물대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 말하니 철공산에 있던 모든 이들이 산군에게 이목이 집중됐다.
천로를 연 인물이 지목해 말하니 당연하다 할 수밖에 없다.
왠지 화가 난 음성.
산군은 그 이유를 알 듯 했다.
‘욕심이 생겼겠지.’
심마에 걸고 해하지 않겠다, 맹세했는데 창조의 법칙이 깃든 사월제항이 나타나니 욕심이 생겼을 터.
그러나 탐을 내자니 심마에 걸고 한 맹세가 그를 방해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다.
천락의 죄업에서 해방된 것은 모두 산군의 덕이지만 구천월보일지도 모르는 사월제항으로부터 만들어진 엄청난 탐욕에 전전긍긍하고 있을 게 뻔했다.
게다가 산군은 화기린의 태천외양신공까지 알고 있는 상태.
복잡한 감정이 들끓지 않겠는가.
“…육계 중, 수계(獸界)로 올라와 나 천외양군(天外陽君)을 찾아라!!”
자신을 찾아오라는 것 또한.
사월제항 때문일 터.
‘절대 안 가.’
쿠구우우우웅!!
그것을 끝으로 화기린.
아니, 천외양군은 천로 속으로 사라졌고, 이내 먹구름이 휘몰아치며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하늘은 다시금 잠잠해졌으나, 지상에 내려앉은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벅찬 가슴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선인의 비승을 목격했으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것은 비단, 산군만이 아닌 다른 귀수들과 귀왕, 도사들도 마찬가지.
모두들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헤집어진 감정을 붙잡아야 했다.
저계 귀수들은 무슨 깨달음을 얻었는지 그 자리에서 수행에 들어가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철공미궁에 들어가지 않은 귀수들 또한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수천의 귀수들이 모두 망부석처럼 서거나 앉아 깨달음을 복기하는 모습은 장관이라 할 수 있었다.
묘한 적막감이 감돌던 때.
쿠구궁!
“철공산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영내산을 취했을 때랑 똑같군.’
차이가 없다.
기운을 잃어버린 것처럼 산 자체가 허물어지고 있었다.
산군은 무너져가는 철공산을 보며 번잡한 마음을 바로 잡았다.
많은 번뇌가 스쳤으나 아직이다.
해야 할 일이 남았다.
스윽.
고개를 돌리자 홍연이 들고 있는 은빛의 고치가 보였다.
산군은 왼손으로 혜연회검을 쥐고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이내 손등에 실금이 가더니 쩍 벌어져 법목이 튀어나왔다.
이전에 얻은 수분법목이었다.
쿠르릉 쿠릉!!
산군의 수분법목에서 자색의 전류가 피어오르더니 우렛소리를 자아냈다. 이내 손등에서 불천불벽의 자색 뇌전이 피어올라 하나의 형상을 만들었다.
새인지 무엇인지 형태가 지속적으로 뒤바뀌며 번쩍거렸다.
“흠.”
산군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불천불벽이 변한 뇌조(雷鳥)를 한 손으로 쥐자 온갖 굉음이 퍼졌다.
파지직 콰르릉!!
그의 손에서 뇌조가 흐드러지고 이내 하나의 창으로 바뀌었다.
두 개의 날을 지닌 창이었다.
산군은 그것을 단단히 붙잡아 단숨에 집어 던졌다.
피이이이잉!!
소름끼치는 파공음과 함께 자색의 뇌창이 날아갔다.
뇌창은 하늘을 자색으로 물들이며 동시에 벼락을 흩뿌리니, 그 불길한 모습에 도사들은 대경실색하여 혼비백산 둔술을 펼쳤다.
콰차자자자자자작!!
“끄아아아악!!”
나뭇가지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간 자색 뇌전에 방곡 도사들의 비명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불천불벽의 벼락, 그 사이에서.
유정과 산군이 서로를 노려봤다.
유정에게 있어서 산군은 원한 가득한 요수였으며, 자신의 거사를 방해한 인물.
산군 또한 유정에게 목숨의 원한이 있으며 호리를 저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오늘로써 서로 철천지원수가 되었으니 손속에 자비를 둘 이유는 없다.
거기다 천외양군이 의도한 것인지 유정 또한 천뢰에 당한 상태.
절호조란 단어는 바로 지금을 뜻하는 말일 터.
팟!
산군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유정도 사라졌다.
쉭!!
콰앙! 쾅! 콰아앙!!
허공 여기저기에서 돌연 굉음이 터져 나와 빛이 번쩍거렸다.
다시 나타난 두 사내의 얼굴은 각기 달랐다. 유정은 안색이 파리해져 얼굴을 구겼고, 산군은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누가 보아도 산군이 유리한 듯 싶었으나 마음을 놓을 순 없었다.
산군은 합환호환검과 고륜, 그리고 탄한여산을 꺼내 들었다.
강력한 무구들이 빙글빙글 돌아 주위에 선회했다. 그리고 균천오광의 기운을 끌어내자 등 뒤에 다섯 만다라가 피어올라 태산과도 같은 기백이 일대를 압도했다.
“덤벼 개자식아.”
웅자한 자태와는 다르게 내뱉는 말은 지극히 상스러웠으나 산군의 낯에는 희색이 역력했다.
지금이 아니라면 또 언제 이런 기회가 다시 오겠는가.
지금.
반드시 죽여야 했다.
곧장 수결을 맺자 뇌창으로 변했던 불천불벽이 뇌조로 탈바꿈했다.
단번에 유정을 향해 쏘아졌다.
피이이잉!!
자신조차 다루는 데 큰 고초를 겪었던 뇌신통이다.
쉽게 막아내지는 못할 터.
그때였다.
돌연 유정의 신형이 연기처럼 사라지며 작은 점으로 변해버렸다.
도망친 것이다!
“….”
산군의 동공이 확장되며 단령금정이 펼쳐졌다. 잠시 뒤, 그의 눈이 재빠르게 움직이다 멈춰 섰다.
“도망가게 두지 않는다.”
화르륵!!
산군의 전신이 푸르게 불타올랐다.
이내 날개를 펄럭이자 순식간에 신형이 사라지며 자취를 감췄다.
산군과 유정이 사라지자 남은 것은 어안이 벙벙한 도사와 귀왕뿐.
허나 그 또한 찰나였다.
귀왕들은 힘을 잃은 금추나를 풀어내고 남은 태선을 잡아챘다.
내상을 입은 상태라 본 실력을 내기는 어려워도 천뢰로 다 죽어가는 태선을 어쩌지 못할 귀왕이 아니다. 태선들은 화들짝 놀라 둔광을 뽐냈으나 천뢰와 더불어 산군의 불천불벽의 여파에 당한 그들이 살아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손쉽게 귀왕들에게 잡힌 그들은 화령까지 모조리 씹어 먹혔다.
잠시 후.
태선의 화령을 나누어 먹고 기력을 회복한 귀왕들의 관심이 한 명에게 쏠리게 되었다.
단연 산군이었다.
“그가 추천 받았던 귀왕인가?”
이귀였다.
일귀가 죽었으니 그 뒤를 이어 이귀가 이들을 지휘함이 마땅했다.
산군을 향한 물음이었으며, 그 때문에 자신들이 살았으니 응당 돕는 게 당연했다.
“제가 그를 도우러 가겠습니다.”
그때 오귀가 걸어 나오며 말했다.
좋지 않은 안색이었으나 다른 이들보다는 그가 제일 나았다.
이귀는 고개를 주억이며 품에서 자신의 고보를 선뜻 꺼내주었다.
“부탁하지. 지금부터 그를 육귀로 임명하니 반드시 그를 도와 놈을 처단하고 돌아오게!”
오귀는 비장한 낯으로 고보를 받아들고 빛줄기로 화해 날아갔다.
홍연만이 아미를 좁히고는 살며시 그의 뒤를 따랐다.
* * *
용전의 북쪽.
메마른 땅과 암벽만이 흉흉하게 솟아 있는 이곳에 금색 빛줄기가 재빠르게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팟!
둔광이 흩어지고 보이는 것은 금돈족의 수장이요, 다섯 번째 귀왕.
오귀였다.
산군의 행방을 쫓던 그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했다.
그 이유는 놈들이 추격전을 벌이며 싸우는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괴물 같은 자식….”
대체 무슨 신통을 부리며 싸우고 있는 건지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광활한 구덩이의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게다가 진득한 독기가 묻어 있다거나 하늘과 땅을 베어버린 듯한 기묘한 참상까지 있었다.
자신으로서는 전심전력을 다해도 만들까 말까한 광경.
당연, 경외할 만한 것이다.
오귀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서렸다가도 분노가 득시글거렸다.
놈에게 당했던 일격을 생각하면 몸은 덜덜 떨려오지만 차오르는 분노 또한 고스란히 남았다.
이대로 두면 심마가 되어 자신의 수행에 방해될 게 뻔할 뻔자.
오귀에게 있어 육귀는 이미 심마 그 자체가 되었다 해도 무방하다.
심마를 없애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심마가 된 이를 없애는 것!
그때였다.
순간 오귀의 몸이 움찔거렸다.
돌연 검은 보자기를 꺼내 몸을 감싸고 암벽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쿠구구구구구구궁!!
하늘이 쪼개질 것 같은 굉음이 들려오고 하나의 빛줄기와 그 뒤를 푸른 화구름이 맹렬히 쫓고 있었다.
쿠르릉 쿠릉!!
푸른 화구름은 자색 벼락을 사방으로 내뿜으며 빛줄기를 쫓았다.
그때였다.
치리리리릭 피잉!! 콰자자자자작!!
자색 뇌전이 벼락처럼 쏘아졌다.
콰아앙!!
순식간에 대기를 가르고 암벽에 처박히자 거대한 폭발과 함께 하늘을 자색으로 만들었다.
자색 폭연 속에서 유유히 빛줄기 하나가 나와 둔광이 걷혔다.
“후우….”
일월문 대장로.
유정이었다.
그의 주위에는 여러 개의 청동거울들이 오묘한 빛을 뿜으며 호신막을 만들었다. 딱 봐도 강력한 고보였으나 이내 빛이 점멸하더니.
쩌적!! 균열이 생겨 깨져버렸다.
자색의 뇌창을 막느라 보물의 힘을 모두 소진한 모양이다.
유정은 이를 짓씹으며 서늘한 눈초리로 푸른 화구름을 바라봤다.
“꼬랑지 말고 도망만 치던 범 새끼가 잘도 여기까지 힘을 키웠구나!!”
악연이 있는 사이였던 모양이다.
오귀는 숨죽이며 둘의 동태를 살피다 침을 꼴깍 삼켰다.
잠시 후.
화구름 속에서 두 쌍의 날개를 지닌 범이 모습을 드러냈다.
육귀였다.
그는 대답할 가치조차 없는지 손가락을 튕길 뿐이었다.
딱.
이변이 발생한 것은 그 이후였다.
찌지직!!
돌연 공간이 찢어지며 불꽃을 머금은 양날의 검이 나타났다.
“흡! 어딜!”
허나 유정은 미리 대비하고 있었는지 곧장 소매를 털었다.
그의 소매에서 정교하게 조각된 석종이 빙그르르 돌았다.
석종은 순식간에 수십 장 크기로 커져 양날의 검을 막았다.
까가가각!!
허나 검은 보통 보물이 아닌지 석종의 기운을 씹어 먹었다.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한 유정이 급하게 손바닥으로 석종을 내려쳤다.
대앵!
거대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오귀가 몸을 흠칫 떨었다.
음공의 일종 중 하나로 순간적으로 영기를 동결시키는 신통이었다.
“허튼 짓을.”
하지만 싸늘한 음성으로 말한 육귀가 합장하자 은빛의 목검 열두 자루가 나타났다. 항보신목으로 만든 항보사인검 열두 자루였다.
항보사인검이 육귀의 곁을 유유히 선회하며 항마신기의 기운을 잔잔하게 뿌리니 석종의 음공은 힘을 잃고 사라졌다.
“하! 항보신기까지?”
어이가 없다는 어투였다.
그 점은 오귀도 마찬가지였다.
잎사귀를 구하는 조차도 매물이 나오지 않아 찾기 어려운 항보신목이다. 그것으로 열두 자루의 검을 만들었으니 오죽하랴.
하지만 아직 놀라기는 일렀다.
육귀는 돌연 검 하나를 내던졌다.
아홉 개의 고리가 짤랑이는 구환도였는데, 돌연 그 주위로 진득한 사기와 악귀의 귀곡성이 맴돌기 시작했다. 이내 악귀들이 뭉쳐들어 백 장이 넘는 크기의 거대 마귀로 변모하니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아직도 저런 신통을 감추고 있었다는 말인가!’
쯧, 유정도 생각이 다르지 않은지 기분 나쁘다는 듯 혀를 찼다.
이내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툭 때리자 돌연 그와 꼭 닮은 허상 아홉이 튕겨져 나왔다.
‘분신?’
여러 개의 분신을 만들었는데, 이상하게 분신의 모습이 각기 달랐다.
날개를 지니고 있거나, 뿔이 달렸거나 온몸에 비늘이 돋아 있었다.
인간보다는 혼아와 같은 모습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보통의 분신들은 아닌 듯하다.
분신들은 돌연 허공에 가부좌를 틀고 불경 읊는 듯한 소리를 자아냈는데 대충 봐도 보통 신통이 아니었다.
우우우우웅.
이내 분신들이 하늘 위로 손을 뻗자 그들의 위로 수백 개의 손을 가진 마법상(魔法床)의 허상이 나타났다. 마법상이 내뿜는 강대한 기운에 오귀는 물론, 육귀도 눈을 가늘게 떴다.
‘천수관음…인데 마기가?’
기이한 법상에 저도 모르게 오귀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내 유정의 분신들은 마법상으로 빨려 들어갔다.
허상이었던 법상은 실체를 가지고 거대한 몸체를 뽐냈다.
육귀도 심상치 않은 것을 알아차렸는지 빠르게 수결을 맺고 알 수 없는 주술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육귀의 몸에서 오색 기운이 넘실거리며 등 뒤에 생겨난 만다라들이 맹렬하게 회전했다.
돌아가는 만다라에서 푸른 꽃잎 수만 개가 동시에 뻗어 나와 푸른 안개처럼 일대에 널리 퍼졌다.
제대로 된 싸움은 시작되지도 않았건만, 오귀의 목울대는 저 혼자 계속 요동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