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87)
낭선기환담-186화(187/600)
낭선기환담 – 186화
그가 찾는 백발의 여인이 누굴까. 단연컨대 그녀밖에 없다.
“나 또한 궁금하군. 육귀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인이라니 말이야. 칠귀의 마음을 모르지 않을 텐데…”
은근하게 말하자 산군이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칠귀도 내게 마음이 있어서 그리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게다가…”
그때였다.
돌연 산군을 향해 한 사내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번에 새롭게 귀왕이 된 십귀였다.
“육귀, 나와 비무 한 번 하지!”
돌연 소리친 십귀의 말에 떠들썩하던 주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갑자기?”
“같은 대장부로 태어나 힘을 지녔는데 손을 섞어보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나! 그렇다고 우리가 몸을 섞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하하핫!!”
산군이 슬쩍 일귀를 보았다.
일귀는 심드렁한 얼굴로 반대편에 앉아 있던 칠귀를 턱짓했다.
대강 돌아가는 꼴을 알 듯했다.
‘칠귀가 문제군.’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사귀가 산군에게 찾아와 칠귀를 자신의 것으로 삼겠다며 대뜸 비무를 하자며 억지를 부렸었다.
단숨에 때려눕히고 보니 칠귀가 자신의 마음을 얻고프면 산군을 이기고 오라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안 봤는데…’
참 요망한 놈이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칠귀는 접선으로 입가를 가리며 웃고 있다.
그 옆에는 삼귀 또한 있었는데, 슬며시 눈을 피했다.
“설마 나 십귀가 무서워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
산군은 뒷목을 긁적이다 흔쾌히 고개를 주억였다.
“선공을 내게 줄 수 있나?”
십귀는 자신의 가슴팍을 두들기며 호탕하게 말했다.
“물론! 내 피부는 그 무엇으로도 뚫리지 않는 주해통춘의 등 껍데기 그 자체! 조금이라도 흠집을 낸다면 이 비무, 진 것으로 하지!”
산군은 듣는 둥 마는 둥 끄덕거리며 성큼성큼 다가갔다.
“들어오게!”
십귀가 합장한 상태로 기합을 모으니 돌연 온몸이 돌덩이처럼 갈라지고 딱딱해지기 시작했다.
이내 전신이 은은한 금빛으로 변하니 가히 금강불괴라 칭할 만했다.
십귀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눈을 부릅떴다. 그 무슨 공격이 들어온대도 막아낼 자신이 있었다.
“다쳐도 원망 말게.”
산군의 몸에서 균천오광의 오묘한 빛이 퍼져나갔다.
단숨에 주먹을 쥐어 내질렀다.
균천오광의 권압이 거대한 주먹 형상으로 변해 날아갔다.
콰아아아앙!!
“으아아아악!!”
쿠우웅!!
산군의 권압을 버티지 못한 십귀가 뒤로 날아갔다.
작은 누각을 부수고 암벽으로 처박히자 지켜보던 귀수들 모두가 헛바람을 들이키며 놀랐다.
십귀는 피떡이 되어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산군은 유유히 도망쳤다.
“시, 십귀님! 여봐라 빨리 뫼셔라!! 뭣하고 있는 게냐!!”
십귀의 세력인 듯 육사들이 헐레벌떡 달려와 그를 들쳐업었다.
“쯧쯧, 다른 이도 아니고 육귀에게 까불었으니 죽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는 게 좋을 거다 십귀.”
술병을 든 오귀가 어리석다는 듯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곁에선 새로운 팔귀가 눈알을 굴리다 오귀에게 슬쩍 물었다.
그로서는 궁금했다.
“귀왕의 순번은 강함의 척도가 아니었소? 한데 육귀는 어찌 귀왕들 모두가 어려워하는 것이오.”
그러자 오귀가 헛웃음을 흘리며 옛일을 추억하듯 말했다.
“그는 예외다.”
남아있는 귀왕들은 머쓱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다 술잔을 들었다.
“달이 참 좋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들은 술잔을 나누고 축제를 즐겼다.
* * *
용전에 하나뿐인 육귀각.
그곳에 앉아 있는 산군은 여러 물건들을 정리하다 옥간을 살피고 있는 소 소저를 발견했다.
산군은 그녀를 보며 침음을 삼켰는데, 25년 정도 함께 있었으나 크게 이렇다 할 일은 없었다.
생각대로 소 소저는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혼괴의 몸을 지녔다.
본래 혼괴는 인간과 영수의 합성으로 태어나는 돌연변이인데, 혼아혈과는 조금 구성이 다르다.
혼아혈은 인간의 피가 짙게 태어난 이들이지만 혼괴는 그렇지 않다.
인위적으로 합쳐져 태어난 이들로 피의 균형이 맞지 않아 기괴한 몰골이거나 대부분 내단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내단이 영수의 내단과 도사의 금단 둘을 함께 지니고 있는데, 둘이 섞이지 않아 수행을 쌓으면 쌓을수록 반발해 터지게 된다.
그렇기에 혼괴의 말로는 처참할 수밖에 없는데 소망이라는 소저는 조금 달랐다.
‘천근(天根)이랬나.’
아주 드문 확률로 도사와 영수를 합성시켜 태어나는 천근.
즉, 천단(天團)을 지닌 소유자였다.
보통의 내단보다 수십 배는 정순한 영력과 신통을 지닌 금단이다.
천단을 지니면 수행 속도가 극히 빠르고 천뢰의 영향을 쉽게 비승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천근을 지녀서인지 웬만한 영산의 영기로는 축기를 할 수 없다.
그래서 특수한 공법으로 선단을 만들어 먹어야 하는데, 그 재료가 천하에 찾기 어려운 것들이라 태선이라도 접하기 힘든 게 대다수였다.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 해도 천근은 매력적인 금단이다.’
그녀는 현재 영겁 초경 급이었는데, 영겁이라 해야 할지 태선이라 해야 할지 애매한 위치였다.
그 이유가, 태선은 화령이 하나고, 영겁은 화령이 다섯인데 천근을 지닌 그녀는 화령이 없었다.
화령이 없는데 어찌 영겁 급이라 할 수 있냐 묻는다면 할 말이 없었다.
기운 자체는 영겁인데 화령을 응결하지 않았으니 영겁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 정순한 내단을 보노라면 또 그리 볼 수는 없다.
참으로 이상한 존재다.
그렇다고 영겁보다 신통이 약한 것도 아니니 천근이란 신묘한 것에 저절로 호기심이 일었다.
“뭘 그리 보십니까.”
“신기해서.”
“또 뭐가요.”
“선인들은 화령을 합일시켜 하나의 금단을 가지고 있다지?”
“뭐… 그렇죠?”
침소에 누워 옥간을 보던 소 소저가 겸연쩍은 듯 일어나 답했다.
“소저는 그와 비슷한 게 아닐까? 우리처럼 번거롭게 영각이고 단령이고 화령 같은 건 접어두고 선인의 내단을 만들어버린 거지.”
“아, 예… 근데 갑자기 그런 말씀은 왜 하시는 겁니까? 저보고 또 나가라 말하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백산?”
“미리 말하지만 백산에 가라시는거라면 거절하겠습니다.
정말로 진귀한 것들은 육귀가 가지고 있고, 그곳엔 영 능글맞은 노인네가 절 감시해서요.”
“골 장로를 말하나?”
“예. 뭔가 눈치를 챈 것인지 자꾸 은연중 절 감시해서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습니다.”
“눈치 빠른 노인네 같으니라고.”
소 소저는 일월문에서 만들어진 성공적인 혼괴.
그 때문에 줄곧 사백 년 정도를 일월문에서 갇혀 지냈다.
천근을 인공적으로 만들기 위한 실험체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이야기를 듣게 되자 산군은 더 이상 소저를 억압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놈을 유인할 미끼로 쓰려 했으나 그런 사이도 아니고… 그런다고 걸려들 놈도 아니겠지.’
게다가 수백 년을 갇혀지냈다.
모르긴 몰라도 수백 년이 넘도록 옥살이를 한 것이니 하루라도 빨리 보내주고 싶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그녀는 5년 만에 다시 용전으로 돌아와 육귀각에 자리를 펴고 누웠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내가 소저 주머니도 아닌데 너무 거리낌 없이 쓰는 것 아닌가?”
“그러게 절 왜 거두셨습니까.
이미 이렇게 됐으니 육귀를 제 전낭(錢囊)으로 여기지요!”
아마 산군을 물주로 잡은 듯했다.
연줄 하나도 없고, 거처 하나도 없이 낭선으로 돌아다니기에 도계는 너무 살벌한 곳이다.
눈 뜨고 코 베이는 곳이 바로 도계인데 세상 물정 모르는 낭선이 어찌 잘 지낼 수 있을까.
더군다나 보통의 도사보다 배는 진귀한 귀물이 필요한 천근이다.
그녀로서도 어쩔 수 없었던 결정이었을 거다. 일월문에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을 테고 그나마 자신을 풀어주고 딱히 건드리지도 않는 산군이 물주로서는 제격이었을 터.
덕분에 산군의 주머니만 나날이 비어가고 있었다.
“크흠. 지금은 비록 육귀께서 손해를 보고 계시지만 조금만 지나면 제가 지선으로 승선하고 깨달음을 나누어 진수명화를 앞당겨 줄 터이니 느긋하게 기다리시지요.”
“그거 기다리다 내가 거덜 나게 생겼는데 언제 기다려 그걸. 게다가 소저의 천근은 내가 연구해볼 수도 없고 딱히 필요하지도 않아.”
남아도는 게 귀물인 산군이다.
정말로 진귀한 것은 사월제항으로 몇번이든 복제했던 터라 손해라고 할 것까지는 없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군.’
이득이 되는 것도 아닌데 재산만 점점 낭비되니 영 눈꼴시려웠다.
동정했던 것도 몇 십 년이 넘어가니 별로 그리 보이지도 않았다.
지금만 해도, 침소에 누워서 한가롭게 옥간이나 읽고 있는데 더 말해서 무얼 할까.
“소저.”
“네?”
“난 북쪽으로 가볼 생각이네.”
“북쪽 좋지요. 다녀오세요. 필요한 영약과 영초들은 육귀의 이름으로 다른 귀왕들께 빌리겠습니다.”
산군의 눈이 차게 식었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밥버러지가 아니던가. 자신의 것을 맡겨두기라도 한 것처럼 당당히 말하는 저 모습을 보라. 왠지 모르게 꿀밤을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모습이다.
그러나 산군은 인내했다.
이 정도도 참지 못해 어찌 신수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참고 인내하면 복이 오나니.
“아, 얼마나 걸리시나요? 백 년이 넘는다면 진귀한 영초들 몇을 미리 주고 가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복이 오기는 하는 걸까?
전혀 올 생각이 없는 듯했다.
‘복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지.’
잠시 눈을 감았던 산군이 소 소저를 향해 선언했다.
“북쪽은 소저도 같이 가는 게야.”
“예? 저는 북쪽 지리는 잘 모르기도 하고, 추위를 잘 타서 조금…”
“그대가 알고 있는 지리 같은 건 있을 턱이 없는데 무슨 소릴… 그리고 소저 경지에 추위는 무슨 얼어 죽을 추위를 탄다고 그러는 게야.”
말도 안 되는 변명들이었다.
“하, 하지만…”
“이견은 없어. 안 돼, 데려갈 거야. 지난번처럼 칠귀한테 도망갈 생각은 않는 게 좋을 거야. 다시 한번 그랬다가는 볼기짝을 두들겨 줄 테니.”
“숙녀의 볼기짝을 두들긴다니요! 어, 어찌 그런 경망스런 말씀을!”
“숙녀는 개뿔… 아무튼 그리 알게. 소저가 방구석에서 놀고 있는 꼴은 두고 봐줄 수가 없으니.”
노는 게 아니라 수행하는 거였다며 소리치는 소 소저를 놔두고 산군은 제 방으로 도망쳤다.
방으로 들어서자 화란이 탐화의 머리칼을 땋아주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흡족한 미소가 지어지는 광경이었다.
“소 소저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다 들리더랍니다. 또 괴롭히셨나요?”
“괴롭힌 거 아니야. 여행길에 데려갈 거라고 통보했을 뿐이지.”
“그게 괴롭히는 거죠. 싫다는 사람을 왜 데려가려 하십니까.”
“어허, 그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을 주려고 하는 게야.”
“나이 드시더니 괴상한 노인네들이 할 법한 버릇을 하나씩 가지시는 것 같습니다.”
산군이 침소에 앉아 혀를 찼다.
더 말싸움 해봤자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본디 사내는 과묵한 게 좋지 않은가. 여인네와 입씨름해서 하등 이로울 게 무어 있을까.
그렇게 입 다물고 있자 란이 싱긋 웃으며 옆으로 다가왔다.
“삐지셨습니까?”
“쓸데없는 소릴. 그까짓 걸로 삐져서야 어찌 사내라 할까. 자기 여인에게도 그리 옹졸해서야 신수는 제쳐두고 사내조차 되지 못할 터.”
“말씀이 많으신 걸 보니 조금 삐치신 듯합니다.”
크흠.
산군이 침음을 삼켰다.
“사람 놀리는 재주는 아주 탁월하구나.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리 비아냥거리니 화란이 쿡쿡 웃으며 어깨에 몸을 기댔다.
“빙궁으로 가시지요?”
“…그래야지.”
“부인께서 정말 빙궁에 계실까요? 본래 그곳에서 도망 나와 산군과 함께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산군도 같은 생각이다.
있다면 요호 또한 함께 있을 텐데 현천선녀에 대한 이야기만 있는 게 더욱 이상하다. 그러나 이 또한 확인해보아야 할 사항일 뿐이다.
빙궁으로 가보면 어차피 알게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