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9)
낭선기환담-18화(19/600)
낭선기환담 – 18화
따사로운 햇살이 푸른 초목들을 비추어 생명을 싹트게 만들고, 굳건히 자라 있는 매화나무 한 그루는 햇살에 답하기라도 하듯 꽃잎을 흩날렸다.
살랑살랑 매화 꽃잎이 공중에서 춤을 추듯 지면에 내려앉기를 반복했다.
그 매화나무 밑, 몸 여기저기에 화살이 꽂혀있는 작은 범 한 마리가 혼탁한 적안으로 그것을 바라봤다.
작은 범의 핏물이 고여 있는 곳에 꽃잎이 떨어지니 요요히 파문이 일었다.
곧 숨이 넘어갈 것처럼 옅은 숨을 쉬는 범은 아이러니하게도 퍽 그 풍경과 어울렸다.
“열흘이나 그러고 있는구나.”
그때, 범의 귓가에 여인네의 미려한 음성이 꽂혔다.
반쯤 풀린 눈으로 올려다보니 동정 어린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선녀처럼 아리따운 여인이 서 있었다.
“곧 죽을 줄 알았더니……, 죽지도, 그렇다고 살지도 못하고 연명하는 모습이 나와 같구나.”
그녀가 무릎을 굽히고 범의 머리를 쓰다듬자, 왠지 모를 따스한 기운이 몸을 잠식했다.
범의 적안이 스르륵 닫히기 직전.
“네 이름은……. 대호(大虎). 그래 대호가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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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르륵. 눈을 뜬 산군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쓰게 웃었다.
아직 그가 영수가 되기도 전, 늑대보다 작은 크기의 범이었던 시절의 꿈.
산군은 그때 일을 떠올리며 감성에 젖어 있다, 침을 질질 흘리며 자고 있는 까망호리를 보았다.
놈과 동행한지 어느새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심심하면 툭툭, 되도 않는 말을 건네며 시비를 거는 녀석이었지만 귀찮게 구는 것 말고는 나쁠 것 없는 녀석이었다.
‘이 멍청한 놈은 됐고.’
그들의 목숨줄을 잡고 있으니 딱히 경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복좌패에 혼을 심었으니, 영패에 조금의 자극만 줘도 그들을 불구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산군은 생각을 정리하고 모닥불 앞에 앉아 눈을 감고 명상에 빠져있는 홍연이라는 이름의 여인을 바라봤다.
[홍연.]“예, 산군님.”
[기운을 감추는 구결을 알려줄 수 있나?]그녀가 어떠한 목적으로 산군과 함께 하려는 것인지는 모르나, 그녀가 우호적이라면 산군도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홍연은 까마득한 경지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 강자가 눈앞에 있는데 배움에 있어 인색할 수 없었다.
기운을 감추는 것이야 산군 또한 요령을 알고 있지만, 저리 완벽하게 감추는 것은 무리다.
그것은 웬만한 영수들 또한 마찬가지로 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감추기 어려운 게 자신의 기운이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산군에게는 퍽 필요한 은술(隱術)이었다.
‘인간으로 둔갑한다 해도 나보다 수행이 높은 도사들에게는 들키겠지.’
기운을 숨기는 것을 배워둔다면 꼭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터.
“가르쳐드리는 건 어렵지 않지요. 역시 산군님은 제가 창귀가 아님을 알고 계셨군요.”
[그리 티를 내는데 알지 못하는 것이 더 이상하겠지. 네가 왜 창귀를 자처하는지는 모르겠다만 알고 싶지도 않다. 가르쳐 줄 수 있겠나?]“물론이지요.”
그녀의 흔쾌한 수락에 산군의 낯에 희색이 감돌았다.
“하지만, 제가 알려드린다하시면 산군님은 제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크흠.
공짜로 알려주고 싶지는 않다는 소리였다.
[뭘 원하지?]“글쎄요. 제 정체를 대강 짐작하셨으니 말씀드리지만, 제게 필요한 것은 그다지 없습니다.”
거래 대상에게 제일 듣고 싶지 않은 말을 꼽으라면 자신에게는 필요한 게 없다는 소리일 것이다.
어떻게든 그녀에게서 은술을 배우고 싶은 산군은 애가 탔다.
하지만 그녀 정도의 영수라면 산군이 가지고 있는 것 중 탐이 날 만한 것이 없을 터.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 해봤자 영물이나 영화들이 사용할 만한 것이었고, 영결 이상의 영수가 사용하는 선단도 하나 가지고는 있었지만 이것은 죽어도 보일 수 없었다.
‘은술이랑 바꾸기엔 이건 너무 크다.’
산군이 고심하며 공정강 안에 있는 물건들을 되짚어보고 있을 때.
“하지만 저기서 퍼질러 자고 있는 주인님이라면 또 다르지요.”
‘그렇군.’
오로지 주인이 잘되기만을 바라는 영수.
어쩌다 까망호리같은 멍청이를 주인으로 섬기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방법이 있다.
“산군님께서는 아마도 도봉환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미친.’
공정강에 놔둔 것을 대체 무슨 신통을 부려 알아냈단 말인가!
산군의 목울대가 저도 모르게 고저를 그렸다.
“아, 소녀가 꽤 오래 살아 냄새에도 일가견이 있답니다. 오랜만에 맡아본 냄새인지라 긴가민가 했었는데 맞췄나 보군요.”
확실히. 도봉환은 다섯 개나 있다.
산군에게는 하나면 충분하기도 했고, 나머지 4개는 사실상 필요가 없어 만삼이나 명화들에게 나누어주려 했었다.
‘그래도 좀 아까운데…….’
은술 하나에 도봉환 하나라니.
분명 그만큼 그녀의 은술은 가치가 있지만 그래도 조금 아깝다는 마음은 떨칠 수 없었다.
“그것을 내 주신다면 이, 통술서(通術書)도 드리지요.”
‘통술서!’
산군의 적안이 흔들렸다 일순, 가라앉았다.
통술서란 무인이 배우는 무공서처럼 도사들이 배우는 특유의 결과 술을 법칙적으로 짜놓아 익히기 쉽게 만든 책이었다.
‘하지만 내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속성에 제약이 있는 만큼, 자신에게 맞는 통술서를 찾기란 요원한 법.
게다가 통술서도 그 급이 나누어져 있어, 하급부터 최상급까지 퍽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그런 산군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홍연은 자신이 꺼낸 통 술서의 특징과 구결을 알려주었다.
“공법서의 이름은 분합수결(分合壽結). 이래보여도 만보(萬寶)시대의 통술서입니다. 익히기가 어렵지만, 대성하기만 한다면 신수로 가는 길이 어둡지만은 않겠지요.”
‘신수!’
모두의 영수들이 바라마지 않는 경지.
산군에게는 머나먼 단어였으나, 그도 마음속에 그것을 품지 않은 적은 없었다.
게다가 영수를 위한 통술이라니.
산해발산고를 정독한 산군도 영수를 위한 통술서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주인공 자체가 인간이라 영수에 대한 정보가 적은 것 또한 당연했기 때문이었다.
통술서는 대개 도사들이 후대를 위해 만드는 것임으로 인간으로 특징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것은 오직 영수를 위한 통술서였고 이 통술의 주 특징이 산군의 마음에 쏙 들고 말았다.
‘내단을 나누는 공법이라니…….’
경지가 올라감에 따라 내단은 하나씩 늘어난다.
총 여섯 개의 내단이 만들어져 그것을 하나로 합일시킬 때 신수로 거듭나는 것이 정설.
하지만 이 통술서는 영물일 때부터 내단을 나누어 영원급 영수가 되면 총 18개의 내단을 지니게 된다.
내단을 나눈다면 필히 신통의 힘을 더 자유로이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신통을 부림에 있어서 길이 나누어져 있는 것은 큰 힘을 낼 수는 없다는 것이기도 했지만 더 원활하고 안정적이라는 말과도 같았다.
후에, 18개의 내단을 하나로 합쳐 신수가 된다면, 보통 신수보다 더 강대한 힘을 지닐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내단을 나눈다는 게 보통 노력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이고, 신통력 자체도 조금 약화되는 단점을 지녔지만 후일을 생각한다면 꼭 나쁘다고 할 수만도 없었다.
애초에 산군이 지닌 신통력은 산군이 감당하기엔 조금 커다란 것이었다.
그것을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위력이 다소 줄어들어도 충분히 배울 만했다.
‘경지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그것을 보완할 수 있기도 하고…….’
“어떤 영수의 독문통술로 보이더군요. 아마 이름 높은 영수였겠지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 정도의 통술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리 없으니……. 아쉽게도 저와는 맞지 않아 배우지 못했답니다. 어떠신가요?”
좋다마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거래할 만하다.
아니, 오히려 도봉환이 부족할 정도! 은술 구결과 최상급 통술서라니.
[괜찮나? 손해 보는 것일 텐데…….]입 싹 닫기에는 상대가 그 가치를 모를 리 없으니, 괜스레 양심이 찔렸다.
“괜찮습니다. 정 그러시면 저희 주인님에게 더 잘 대해주신다면 나쁠 것 없어 보입니다.”
까망호리에게 잘해 달라?
‘놈과 나의 경지가 비슷하니 수행을 도와달라는 소린가?’
산군은 잠시 크나큰 착각을 하곤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당장 도봉환을 건네주고 통술서를 받아들었다.
통술서는 영수가 만든 것답게 안시석 속에 들어있었는데, 영력을 흘려 넣으니 빽빽한 글귀가 떠올랐다.
잠시 그것을 정독하고 있으니 홍연이 다가와 은술에 대한 구결을 알려 주고 그녀는 다시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저기, 홍연.]“왜 그러십니까.”
[이거 읽어줄 수 있을까?]읽는 척을 하고 있었지만 생각해보니 자신은 글을 모른다.
뻘쭘하게 말하자 홍연이 고개를 갸웃하다, 빙그레 웃으며 그의 곁에 다가와 구결을 하나하나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가르침을 받는 산군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수행에 힘썼다.
몸이 완전하지는 않았으나 전보다는 나아졌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던 독수리 영물 하나가 창공을 높이 날며 하늘을 가로질렀다.
* * *
잠에서 깨어난 까망호리는 왠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홍연과 산군을 게슴츠레 바라봤다.
‘뭐지…….’
일주일간 말 한마디 섞는 걸 보기 힘들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서로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닌가!
‘근데 대체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어!’
분명 말은 말인데, 까망호리가 알아 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군, 1성에서는 영기의 흐름을…….]“예, 384혈의 영혈을 예, 그렇지요. 그리 하시면 됩니다. 본격적인 것은 진수명화(進獸皿和) 하실 때 나누시면 될 듯 싶습니다.”
도통 무슨 소린지.
까망호리는 왠지 소외받는 느낌이 들어 퍽 울적해졌다.
진수명화라고 하는 걸 보니, 영화 영수로 진화를 이룰 얘기인 것 같은데 까망호리의 이해영역을 완전히 벗어난 이야기라 알아들을 수 없었다.
[뭐, 뭐해!]까망호리는 괜히 그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일어났더냐? 그럼 가지.]“예, 그러지요.”
하지만 자신이 나타나자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움직일 준비를 하는 그 둘을 보며 까망호리는 샐쭉한 낯으로 흘겼다.
‘뭐야 이거.’
왠지 모를 심통이 치솟는 것은 당연지사.
까망호리는 괜히 언덕을 오르는 산군의 곁으로가 툭툭 몸을 부딪치며 시비를 걸었다.
[아이씨! 뒤질래?] [네, 네가 너무 커서 그러잖아!] [뭔 개똥같은 소리냐.]지금은 산이 아닌, 탁 트인 언덕을 넘고 있는 중이라 길이 좁을 리가 없었다.
얼토당토 않는 말을 씨부리는 까망호리를 보며 산군은 앞발을 들어 놈의 얼굴을 퍽 때렸다.
[악! 왜 때려! 왜 때려!] [떨어져서 걸어라, 귀찮게 하지 말고.]다시 발을 놀리려는 때.
산군의 얼굴이 퍽! 돌아갔다.
까맣고 두툼한 까망호리의 앞발이 산군의 머리를 친 것이다!
[흥! 원래 되로 받으면 말로 준다 했다.]조금 주고 그 대가를 몇 곱절이나 많이 받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었으나, 그 쓰임새가 잘못 되었다.
산군은 고개가 돌아간 상태로 잠시 침묵을 지켰다.
‘죽여 버릴까.’
심각하게 고민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정말 죽이려 한다면 홍연이 가만있지 않을 터.
복좌패를 들고 있다지만, 그녀와 척을 지고 싶지는 않았다. 언제 어디서 자신에게 도움을 줄지 모르는 고계 영수니까.
하지만 그렇다하여 가만히 있는다면 분통이 터질 것은 당연지사.
산군은 희희낙락한 까망호리의 표정을 보고 순식간에 돌격했다.
[어, 어!]파팍팍팍!
상체를 들어 올린 산군이 번개 같은 빠르기로 앞발을 휘둘러 4연타를 먹였다.
까망호리도 가만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바랐다는 듯 자신 또한 상체를 들어 올려 앞발을 휘둘렀다.
잠시 투닥거리던 둘은 어느새 서로의 목덜미를 물었다.
[내가 몸만 성했으면 넌 한방 감이야! 이게 어디서 까불어!] [흥! 그러니 내가 지금 봐주고 있는 게다! 안 보이느냐? 내가 본래의 힘만 꺼냈어도 네놈 뱃가죽이 하늘을 보고 있었을 것이야!]서로의 목덜미를 물고 서로 놓지 않는 두 마리의 범. 헌데 그것이 꼭 계집애들이 머리채 붙들고 싸우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착각일까.
“대체 뭘 하시는 겝니까…….”
[이, 이놈이 먼저 날 때리지 않더냐! 이놈 잘못이다!] [뭔 개소리냐! 검둥이 네놈이 먼저 개짓거리를 해대지 않았더냐!]지가 한일은 새까맣게 잊어버렸는지 고자질하는 게 아주 가관이었다.
[거, 검둥이라니! 난 까망호리라는 이름이 있다!] [범 새끼가 왜 여우 이름 쓰면서 그걸 자랑스레 말하더냐?] [여, 여우이름? 여우 이름이라니! 어디가 여우 이름이란 말이냐!]이 멍청이는 호리가 여우를 뜻하는 단어임도 모른단 말인가?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는 네 이름은 무어냐! 산군이 이름은 아닐 것 아니냐!] [훗, 내 이름보고 깜짝 놀라지나마라 껌둥아. 이 산군님의 이름은-]하지만 그때.
홱!
산군은 물론이요, 까망호리까지 갑자기 서로의 목덜미를 놓고 고개를 돌렸다.
여유로운 것은 오로지 홍연뿐.
“오늘은 돼지가 풍년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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