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90)
낭선기환담-189화(190/600)
낭선기환담 – 189화
[아니, 그럴 리 없지. 강룡 사형이 살아 있을 리는 없고… 네놈은 누군데 강 사형의 이름을 파는 게냐!!]잠시 눈을 감고 고민하던 산군은 이내 기억이 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춘 사제로군. 돌을 긁듯 걸걸한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익어.
얼마나 오래됐더라… 천년도 더 지난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이전에 날 막아주러 왔던 동문들 틈에 함께 오기도 했었지.”
그러자 노인의 얼굴이 귀신을 보기라도 한 듯 사색이 되었다.
[…정말 강 사형이십니까?]“그래, 많은 일이 있었다.
아직도 살아 있는 줄은 몰랐구나.”
산군은 강 사형인 척하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사형의 기억 속에서도 특이한 목소리라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그는 강 사형의 사제 중 하나로 춘삼이라는 도사였다.
춘삼은 잠시 말이 없었다.
산군은 뒷짐을 진 채로 차분히 기다렸다. 이리했는데도 살수를 펼친다면 맞받아치면 그만이다.
아니라면…
‘회포를 풀어봐야겠지.’
풀어낼 회포가 있지는 않지만, 강 사형인 척했으니 유하게 넘어가려면 이 방법이 제일이다.
그때 돌연, 허공이 일렁이더니 와위종자 곁에서 노인이 나타났다.
“저, 정말 강 사형이십니까? 외모도 목소리도 그 기운도 무엇 하나 닮은 것이 없는데… 수명도 한계에 다다랐을 텐데요. 설마 신탈(身奪)이라도 하신 겁니까?”
“그래.”
몸 신에 빼앗을 탈.
다른 도사의 몸을 빼앗아 목숨을 연명하는 말을 뜻한다.
본래 도사의 수명이란 혼의 수명과 직관 되어 있으나 마도 쪽으로 살짝만 비틀면 수명을 조금이나마 늘릴 수 있다. 춘삼은 그것을 염두하고 묻는 말이었다.
‘강 사형은 검령도에서도 수명이 한계에 달해 있었으니까.’
좀처럼 믿기 어려울 것이다.
애초에 사실이 아니니까.
“이, 이럴 수가… 어쩐지 본문의 비술을 익히지 않고서는 이리 조용히 들어올 수 없는데, 어찌 들어왔나 의아하던 참이었습니다!
한데 그게 강 사형이시라면 당연하겠지요! 아, 이럴 게 아니라 제가 모시겠습니다. 마침 달도 휘영청 하니 술 한잔 하시며 회포라도 푸시는 게 어떨는지요.”
“나쁠 것 없지.”
고개를 주억인 산군은 춘삼과 함께 금지에서 나섰다.
함께 있던 탐화는 사라진지 오래였으나 춘삼은 눈치 채지 못했다.
천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아, 죽었겠거니 했던 사형이 돌아왔는데 어찌 반갑지 아니할까.
춘삼의 얼굴에 희색이 가득했다.
잠시 후.
상문이 훤히 보이는 누각 꼭대기에 앉은 산군과 춘삼은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기 시작했다.
“왜 이리 늦으셨습니까. 사부님께서도 한평생 사형을 기다리셨습니다! 저와 다른 사형제들 또한 마찬 가지였고요! 매년 이맘때쯤이면….”
춘삼은 술잔에 비친 달을 보다가 소매를 걷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술잔에 비친 풍경이 순간 바뀌었다. 단숨에 시끌벅적해 보이는 마을의 한 귀퉁이를 비추었다.
“그때도 축제로 시끄럽던 때였죠.”
그러했다.
강 사형이 수월문을 나갔던 날도.
축제로 시끄럽던 때였다.
“사부님은….”
“영면하셨습니다.”
“그렇군.”
강 사형의 사부였던 자다.
지선이 되지 않고서야 아직까지 살아있을 리 없었다.
씁쓸한 얼굴을 한 산군은 춘삼에게 의미심장한 물음을 던졌다.
“와위종자가 아직도 있더군.”
춘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내 흘리며 술잔을 내려놓는다.
한참을 그윽한 눈으로 창가의 달을 올려다보다 입을 열었다.
“그 시절에는 몰랐으나, 후에 수월의 장문이 되고서야 알게 됐지요.
사형께서 나가신 것 또한, 그 때문이라 들었습니다.”
“그러했지.”
춘삼은 흔들리는 눈으로 술잔을 매만지다 산군을 보았다.
“이렇게 오신 것도 그 때문입니까. 제자의 넋을 달래시려고요.”
산군이 입을 다물자 춘삼이 다 안다는 듯 허허 웃으며 술상을 치웠다.
그러고는 손바닥을 뒤집더니 돌연 장기판을 꺼내 올렸다.
복주머니를 꺼내 풀자 장기알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영문을 몰라 눈썹을 끌어 올리자 춘삼이 빙그레 웃었다.
“이 나이쯤 되서 깨달아보니 사형과 장기 한판 둔 적이 없더군요.
어떠십니까. 한판 두시겠습니까?”
다 꺼내 놓고 뭘 묻는 건지.
촤르륵.
산군이 손을 뻗자 장기알들이 살아 있는 듯 절로 움직여 배치됐다.
“그냥 하면 재미없지.”
눈짓을 하자 춘삼도 광대가 도드라지게 히죽 웃었다.
“당연하지요.
제가 이기면 늙어빠진 사제의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겠습니까.”
“그러지. 내가 이기면 와위종자는 내 뜻대로 하게 해주게.”
“그러시지요. 선공은 제가 합니다!”
탁!
춘삼이 졸을 들어 일보 전진시키자 장기알과 장기판이 부딪쳐 맑은 소리를 자아냈다.
그와 동시에.
“흠… 보통 장기는 아니군.”
장기판에서 영기의 파동이 요동치더니 순간 풍경을 계곡물이 좔좔 흐르는 운치 좋은 곳으로 바꾸었다.
탁. 타악.
시원스레 흐르는 물줄기와 은은한 달빛이 어슴푸레 장기판을 비추었다.
그 한적한 곳에 장기 소리만이 드문드문 들리니 저도 모르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운치 있게 장기판을 보고 있자 춘삼이 조용히 말을 건넸다.
“저도 와위종자로 잉태한 아이를 제자로 가지게 된 적이 있습니다.”
흠칫.
그러나 산군은 장기말을 움직이며 담담히 답했다.
“그러냐.”
그러자 춘삼이 시선은 장기판에 고정된 채로 이야기를 꺼냈다.
“사형께서 왜 그러셨는지. 왜 이제서야 나타나 와위종자를 거두려 하시는지 저도 대강은 압니다.
저 또한 와위종자로 만들어진 선천자를 가르쳐보기도 했으니까요.”
따악.
장기말을 놓는 소음이 거칠었다.
춘삼이 또한 와위종자에 좋지 않은 추억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선대 장문들의 기록을 살펴보기도 했었습니다. 어찌하여 선천자를 만들고 그들의 목숨을 거두게 됐는지. 차츰차츰 알아가게 됐지요.”
탁.
산군은 아무 말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장기를 놓을 뿐.
“그러나 그 또한, 수월의 오랜 역사와 전통이며 지금 대의 장문인 저는 와위종자의 효율과 이점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따악!
개인적인 감정은 접어두고, 역대 장문들이 그러했듯 저 또한 수월문의 장문으로서 포기할 수 없다.
곧이곧대로 듣기에는 와위종자를 넘길 수 없다는 소리 같았다.
그러나 산군은 왠지 모르게…
‘변명하는 것 같구나.’
혼날 것이 두려워 핑계 대는 아이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산군의 낯이 절로 씁쓸해졌다.
제 잘못을 아는 아이만큼 혼내기 어려운 것 또한 없으니.
탁.
산군의 말이 춘삼의 진영에 닿았다.
“장군이다.”
춘삼이 말을 움직였다.
“멍군입니다.”
산군의 장군을 막아냈다.
그러나 곧장 차를 움직여 또다시 장군을 내놓자 춘삼의 손이 멎었다.
“사형. 하나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묻거라.”
“곧 떠나시겠지요?”
“….”
잠시 말이 없던 산군은 이내 고개를 주억였다.
“왠지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어느 놈의 몸을 신탈하셨는지… 역마살이 끼어도 제대로 낀 몸인 듯합니다. 그러니 이곳에 머물지는 못하겠죠.”
춘삼은 아쉽다는 듯 제 수염을 쓸어내리다 주름진 눈가를 감았다.
“저 또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고, 인연을 맺었던 형제들은 천기를 이겨내지 못해 영면에 들었습니다. 이 나이가 되다 보니 괜한 오지랖만 생기는군요. 저도 저지만 모질게 살아오신 사형이 걱정입니다.”
춘삼은 주름진 손으로 산군의 손을 붙잡아 꽈악 쥐었다.
“사형. 수도의 길은 천갈래 만갈래로 갈라져있으니 무어라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수월이 멸문의 위기에 처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한 번만 도와주실 수 있겠는지요.”
“수월문의 장문이 그리 약한 소리 해서야 되겠느냐. 사부님이 관짝에서 일어나 경을 치실지도 모를 터!”
야단치듯 소리쳤으나 산군은 춘삼의 손을 꽈악 붙잡았다.
그러겠다 말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자 춘삼도 고소를 머금으며 부끄럽다는 듯 겸연쩍어 했다.
“죽을 때가 다 되서 그럴까요. 다 늙은 노인네가 사형 앞이라 그런지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합니다.”
산군은 손사래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기는 이미 끝났다.
둘의 실력은 비등비등 했으나, 중간부터 춘삼의 방어가 흐트러졌다.
‘일부러 져줬군.’
귀찮은 놈이다.
솔직하지 못한 것이 꼭 저를 닮은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가시는 겁니까.”
“…또 올 테니 아쉬워 말라. 인생이란 돌고 도는 것이고, 우리내의 인연 또한 돌고 돌아 윤회에 이르는 것이니 또 만날 날이 오겠지. 오죽하면 해와 달마저 돌고 돌지 않더냐.”
“예… 만남을 짧고 헤어짐은 긴 법이니, 그리해야 재회가 달갑겠지요.”
휙.
산군이 사라지고, 춘삼은 한참이나 그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내, 수월문의 건물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고 어린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잔잔히 울려 퍼졌다.
당연히 수월의 제자들이 소란을 피웠으나 장문의 손짓 한 번에 모두 쉬쉬하며 조용히 덮어두었다.
* * *
허공에서 멀거니 수월문을 내려다보던 산군은 먹먹한 눈을 감추고 이내 수방봉으로 향했다.
“괜찮았느냐.”
“응! 이거 봐!”
탐화가 제 손을 펼쳤다.
그러자 손에서 나오는 담즙이 이내 의지를 가진 것처럼 작은 지네 열댓 마리로 변해 날아다녔다.
와위종자를 먹어치워 본래의 신통과 결합해 나름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된 모양이다.
아직은 미숙해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차츰 숙달될 터.
‘마지막 탈각도 얼마 남지 않았나.’
진정한 탈형의 모습을 갖춘다면 지금보다 배는 강력해질 것이다.
백충서방 3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탐화오공이니 기대해 볼만하다.
‘지금도 태선은 혼자서 상대하는 녀석이니까.’
탈각을 이루면 지선을 상대로도 쉽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
유정은 아직 살아있다.
자신에게 팔 한 짝을 뜯겼으나 고작 그것으로 약해질 위인이 아니다.
어떻게든 아득바득 살아서 힘을 비축하고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을 터.
그러니 자신도 힘을 쌓아야 한다.
예상치 못한 화기린의 도움으로 이번에는 이겼으나 다음번에도 그러한 천운을 바랄 수는 없다.
‘천천히. 차근차근.’
강해져야 한다.
그리 생각하며 수방봉으로 내려선 산군은 비장한 다짐도 잊어버리고 얼굴을 찌푸렸다.
“하!”
어이가 없는지 기함하며 주변을 샅샅이 찾아보지만 아무도 없다.
소 소저와 호리가 있었던 수련동에는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고새를 못 참고…”
뒷목이 뻐근한 게 급격하게 피로도가 몰려오는 듯 했다.
“어딜 간 게야!!”
* * *
같은 시각.
“소 소저. 본녀는 돌아가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 나 집에 갈래.”
“호 소저… 소저가 먼저 오자고 해서 오게 됐는데 그리 내빼려 하시면 소녀가 곤란해집니다.”
그러자 호리가 의자에 등을 기대며 스르륵 몸을 파묻었다.
소 소저는 그 모습을 샐쭉하게 바라보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오는 게 아니었는데…’
물밀듯 밀려오던 후회가 이제는 파도처럼 치닿았다.
근처에 있던 범인 마을에서 축제가 벌어지는 것을 구경하다가 비밀스러운 암장이 있다는 소리에 호기심을 못 이겨 이곳까지 오게 됐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거기서 더 은밀한 경매회가 있다는 소리에 호리의 귀가 팔랑였고, 등살에 못 이겨 오게 된 것이다.
이곳은 고계 도사들이 모이는 곳이었고, 그 중에서도 정말 귀하거나 희귀한 것들을 파는 경매회였다.
모여 있는 도사들 대부분은 탈을 뒤집어쓰고 있어 용모를 알 수 없다.
그러나 풍기는 기운까지는 대략 가늠할 수 있었는데…
경매회를 주도하는 이들의 기운이 섬뜩하고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설마 마도와 사도 놈들이 운영하는 경매회였을 줄이야.’
경매회를 주최하는 단체의 이름은 귀강총마(鬼强塚魔).
악질 중의 악질.
도계에서도 은연중 더러운 소문이 자자한 곳이었다.
‘세상 거리낄 것 없이 팔 수 있는 건 다 파는 곳이라던데.’
그 이름에 걸맞게 오자마자 경매회에 나온 건 다름 아닌 도사였다.
미색이 어여쁜 여인이었는데, 쌍수공법을 익혀 사내와 교합을 통해 수행의 증진을 꾀할 수 있는 자였다.
도사들은 어여쁜 미색에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여선 하나를 사기 위해 목청을 드높였다.
기함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다음에 등장한 것이 곱상하게 생긴 미청년인 것을 보고 턱을 벌리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미청년은 굉장히 높은 가격에 낙찰됐는데 낙찰 받은 이가 사내라는 소리에 소 소저도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소 소저라 불리지만 그녀도 나이는 가득 찬 여인이었다.
도계의 일면을 본 듯 까무러치고 나가려 했으나 경매가 다 끝날 때까지 나갈 수도 없었다.
귀강총마 놈들이 막아섰기 때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경매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왠지 모를 불길함이 엄습했다.
“우와… 저, 저걸 팔아?”
하지만 호리는 겁먹었던 건 어느새 잊고 계속해서 나오는 물품들에 눈을 빛내고 보고 있었다.
겁먹었던 사실도 잊었나 보다.
“자 이번 물건은 더 엄청납니다!”
드르르륵!!
거친 소음과 함께 거대한 우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관심도 없었으나 피비린내가 진동해 눈살을 먼저 찌푸리게 했다.
“저거… 범인가?”
안에는 상처 입은 듯 보이는 날개 달린 범이 으르렁 거렸다.
진정한 경매는, 이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