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92)
낭선기환담-191화(192/600)
낭선기환담 – 191화
수월에는 가장 웅장하고 거대한 고층 누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누각의 이름은 등선루.
그 등선루 한쪽에는 몇몇 도사들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 피부가 쭈글쭈글한 노인이었으나 서로 간에 내뿜는 기세는 팽팽한 고무줄처럼 언제 끊어질지 모를 정도로 거셌다.
“언제까지 저놈들을 저렇게 가만 내버려둬야 합니까.”
눈꼬리가 올라가 족제비를 닮은 노인이었다. 그는 수월산맥에 근간을 둔 문파의 장문으로 연신 불만을 표출하고 있었는데, 시종일관 시선은 한 명만 보았다.
수월문의 장문 춘삼을 말이다.
자신과 마주할 자는 그밖에 없다는 듯 자못 오만한 태도였다.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군.”
“귀강총마를 말하는 게 당연하잖소. 아무리 귀수 놈들을 경계해야 한대도 마도 놈들이 저리 나대는 걸 참아줄 이유는 없으니 하는 말이오!”
그의 말에 다른 도사들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절로 끄덕였다.
“허면 어쩔 것이오. 30년 전, 백귀야행 때 귀왕들을 죽이지 못했으니 그들과의 전쟁이 언제 발발할지 모르는 판국이오. 게다가 용전과 제일 가까운 곳이 바로 수월이니, 마도 놈들까지 건드려서 좋을 게 뭐가 있단 말이오! 안 그래도 예의 ‘오색거검’ 놈 때문에 예민한 마도 세력을!”
그야말로 사면초가.
얌전히 있는 벌집을 건드려 화를 불러올 필요가 무어 있단 말인가.
“허나….”
언제까지 눈 가리고 아웅하겠는가.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하다못해 세를 걷는 건….”
“어허! 합법적으로 마도의 왕래를 허용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야 말로 언어도단!”
“그럼 어쩌겠다는 말입니까!
놈들이 경매회만 하는 걸로 건드렸다가는 긁어 부스럼입니다. 놈들을 몰아내려면 명분이 필요한데….”
콰아아아앙!!
그때 뜬금없이 경천동지할 굉음과 자색 뇌기둥이 하늘높이 솟아올랐다.
“헛!!”
“아니 이게 무슨…!”
쿠우웅! 쿵!!
비산하던 암벽들이 떨어져 내리자 단번에 도심지는 아비규환으로 바뀌고 왕래하던 범인들과 도사들은 혼비백산해 도망쳤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네!”
모여 있던 장문들은 곧장 빛줄기로 변해 하늘높이 올라갔다.
쿠르릉 쿠릉!!
천둥소리가 고막을 뒤흔들고, 강력한 살기가 사방을 짓눌렀다.
“숨을 멈추시오 극독이올시다!!”
“흡!”
광활히 퍼진 자색 번개와 독기에 의해 숨을 멈췄을 때.
땅 밑에서 빛줄기로 화한 태선들이 사방팔방으로 뛰쳐나왔다.
퍽 많은 수의 태선들이 탈을 쓰고 몰려들었다. 어지간히 화가 난 듯 탈을 벗고 얼굴을 붉게 물들이는 자들도 적잖았다.
“저놈을 잡아라!!”
온몸에 마기를 두른 자들이 어떤 사내를 지목했다.
그는 범의 형상을 한 탈을 쓴 자로 주위에 온통 불길한 자색 뇌전을 다루는 도사로 보였다.
수월의 장문들은 단번에 대강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도사들이 탈을 쓰고 있었고, 죽일 듯이 사내를 쫓는 이들은 강력한 마기를 두르고 있다.
‘귀강총마!’
경매회를 열었으나 모종의 이유로 인해 경매품을 강탈한 자가 나온 것!
장문들은 서로 눈짓하다 묘한 미소를 지으며 스르륵 모습을 감췄다.
그들이 나설 필요가 없었다.
사건의 원흉이 도망치든 말든 그들과는 상관없었고, 관계있는 자들이라면 도망친 놈보다 마사들이었다.
“감히 수월에서 이런 난동을 피우다니! 마도 놈들이 아무리 천방지축이라지만 이것은 명백히 수월의 선도문을 무시한 행위! 하여 네놈들이 일으킨 소란이니 응당 죗값을 치러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뭐… 아니 그게 무슨…!!”
“어허! 감히 수월 제일문의 명을 무시한다는 소리요!? 이리 문제를 일으켰으면 응당 죗값을 달게 받아야 하는 게 세상사는 도리이거늘!!”
마사의 얼굴이 와락 찌푸려졌다.
귀강총마의 마사는 억울하다는 듯 눈알을 굴렸으나 이미 벌어진 일.
눈을 시뻘겋게 물들인 마사들은 돌연 강대한 마기를 뿜어냈다.
몸을 내빼려는 것!
“어딜!”
하지만 준비하던 다른 문파의 장문들이 마사들을 덮쳤고, 이내 하늘이 쩌렁쩌렁 울리는 굉음이 퍼졌다.
귀강총마와 수월의 장문들이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월에서 천리 떨어진 하늘에서는 푸른 빛줄기와 새하얀 빛줄기가 둔광을 흩뿌렸다.
푸른 빛줄기는 범 탈을 쓴 사내.
산군이었고, 그 뒤를 맹렬히 쫓는 자는 나비 탈의 노인이었다.
‘귀찮게.’
귀강총마 놈들은 안 쫓아오고 어찌 자신과 경매로 싸운 놈이 쫓아올까.
우스운 일이었으나 상관없다.
‘적당히 내쫓으면 그만.’
팟!
둔광을 흩어버린 산군이 하늘 위에 멈춰 섰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노인이 역정을 내듯 소리쳤다.
“궁비호를 내놓거라! 그리하면 군말 않고 사라질 터이니!”
하지만 어디 내놓을 산군이던가.
줄래야 줄 수가 없다.
“말 몇 마디로 내줄 것이라면 이렇게 난리를 피우지도 않았겠지.”
아무리 산군이라도 보영석 예순 개나 있지는 않았다.
마흔 정도라면 있었으나, 마도 놈들에게는 영석 하나도 아깝다.
더군다나 귀강총마라면, 그를 지독하게 괴롭힌 귀음나찰이 몸담았던 귀강문과 연관이 깊은 세력!
오히려 죽이지 못해 아쉬울 뿐!
“…그렇다면 보영석 서른 개를 내 줄 수도 있다. 아무 것도 묻지 않을 테니 궁비호를 넘겨라.”
산군의 눈살이 좁혀졌다.
놈은 어찌하여 궁비호를 원하는가.
조금 의아했으나 그렇다 하여 내줄 수 있을 리가 없다.
“보영석 서른 개가 아니라 백 개를 내준대도 건넬 수 없다.
나와 인연이 깊은 자이니 그깟 재화로 거래할 수 있을 수는 없지!”
“인연이 깊다고? 무슨 사이지?”
“알려줄 필요가 있을까.”
산군이 곧장 손을 뒤집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 거대한 륜.
고륜이 튀어나와 맹렬히 회전하며 섬뜩한 소음을 자아냈다.
검지를 들어 고륜을 날리자 노인도 품에서 엽전 여섯 개를 날렸다.
카앙!!
‘흠?’
엽전은 서로 한 벌인 보패인 듯 유기적으로 움직였는데, 고륜과 부딪치자 불똥을 튀기며 튕겨져 나갔다.
‘제법이군.’
고작 해봐야 보구 수준의 보패다.
강도도 그리 강하지 않고 신통도 시원찮으나, 위태위태하게 술사의 능수능란한 조작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대부분 큰 힘으로 찍어 누르던 산군에게는 퍽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그 또한 잠시뿐.
산군이 입을 벌려 작은 삼각형을 뱉어냈다. 삼각형은 이내 빙그르르 돌아 거대해져 활화산으로 변했다.
그의 탄한여산이었다.
콰앙!
나타나자마자 활화산이 터지며 호기롭게 용암을 분출했다.
분수처럼 치솟은 용암의 열기에 노인이 흠칫 몸을 떨며 수결을 맺었다.
그 모습에 냉소한 산군이 수결을 맺고 입을 달싹이자 분출된 용암이 하늘로 치솟아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화살 비처럼 내리는 용암을 피하려면 축지밖에는 없다.
산군은 왼손으로 합환호환검을 꺼내 공간속에 날려두고는 미소 지었다.
축지를 사용한다면 단번에 합환호환검으로 역습을 가할 생각이다.
그때였다.
돌연 사방에 희뿌연 한기가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난데없이 나타난 한기에 산군의 미간이 좁혀지고, 한기의 중심에는 앞서 보았던 노인이 있었다.
휘이이이이잉!!
한기가 소용돌이치자 탄한여산의 용암비가 순식간에 차게 식어 검은 돌덩이로 변하기 시작했다.
놈의 주변에는 금붕어가 허공을 여유롭게 유영하고 있었다.
붕어의 몸체는 전체적으로 하얗고, 꼬리와 지느러미가 진한 파랑색을 띤 어여쁜 영수였다.
그러자 산군의 안색이 굳어졌다.
탄한여산의 용암은 음기의 성질을 지니고 있어 웬만한 한기나 수기에도 강한 편인데, 붕어의 신통에 닿자마자 단숨에 식어버린 것이다.
‘보통 놈은 아니군.’
얼굴을 찌푸린 산군이 수결을 맺어 푸른 법결을 탄한여산에 쏘아댔다.
활화산이 요동치며 또 한 번 거대한 용암을 뿜어내 단숨에 화룡으로 변모했다. 그 위풍당당한 모습과 정교한 신통에는 노인도 사뭇 놀랐다.
그러나 그는 다시금 미소 지으며 입꼬리를 올렸는데, 산군도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시간 끌기였나. 쯧.”
혀를 찬 산군이 노인의 근처로 당도한 빛줄기 두개를 보았다.
그들 모두 태선의 경지.
동료 도사인 모양이다.
이리되면 산군이 불리하다.
‘괜한 싸워줄 필요는 없지.’
한 놈이 셋이 됐다 하여 두려워할 건 없으나 불리한 조건에서 놈들과 싸워줄 이유가 하등 없다.
“저놈입니까?”
“바로 처리하지요!”
동료 도사들이 호기롭게 소리치며 기운을 끌어 올렸다.
산군은 냉소하며 수결을 맺었다.
이내 거대한 영압이 일대에 깔리며 강대한 살기가 전역에 퍼졌다.
“헛!”
네쌍의 날개가 활짝 펼쳐지며 푸른 화염이 들끓었다.
강력한 화기에 대기가 메마르자 서둘러 호신막을 일으킨다.
그때였다.
돌연 산군의 몸이 셋으로 나누어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런! 쫓읍시다!”
태선 둘이 나누어진 산군을 쫓아가고 남아있는 나비 탈의 노인만이 정처 없이 흔들리는 동공으로 그가 남긴 푸른 불꽃을 보았다.
“…깊은 인연이 그 말이었구나.”
그리 중얼거린 노인은 한참을 그리 서 있다가 스르륵 사라졌다.
* * *
석 달 뒤.
수월에서 북쪽으로 수만 리.
북해 인근에 위치한 반롱(斑壟).
이전에는 비옥한 땅이었으나 잦은 전쟁으로 인해 무덤이 더 많아졌다는 삭막한 지역이다.
이름에 걸맞게 반롱에서는 한참 범인들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격렬하게 생사결을 맺는 곳의 하늘에서는 유유자적 구름을 타고 있는 도사 둘이 내기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달국이 이길 것이오.”
“어허! 이번에야말로 반국이요!”
태평스럽게 어느 나라가 이길 것이라 내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달국이 이번에 검선에 눈을 뜬 장수를 가지고 있소. 이길 수 있겠소?”
“이 사람도 참, 반국은 뭐 검선 따위가 없을 것 같소? 이번에 반국의 검선은 혼아로 의심되는 녀석이니 달국의 검선 따위는 단숨에 씹어 먹을 터! 호 형은 제게 약조한 빙정(水都)이나 주실 준비를 하시지요!”
그때였다.
돌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검은 귀무가 물밀듯 몰려왔다.
-끼아아아아아악!!
스산한 기운과 함께 귀곡성이 들려오니 내기하던 도사들이 화들짝 놀라 부리나케 도망쳤다.
잠시 후.
대낮이었던 하늘은 밤이 된 듯 어두워지고, 귀무 속에서 튀어나온 악귀들은 전쟁 중이던 범인들을 잡아 먹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사, 살려줘!!”
“귀, 귀신! 귀신이다 으아악!”
“하늘이 노하셨다!! 하늘이 아악!”
범인들의 비명이 지처에 깔리고, 피와 시체가 산처럼 쌓여갔다.
“갑자기 무슨… 이거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닌가? 웬 태선 마두가 보물을 제련하는 걸지도 모르겠어.”
“그, 그러세 어서….”
하지만 아직 이변은 끝나지 않은 듯, 돌연 하늘에서 거대한 지네가 용처럼 비행하며 다가왔다.
입이 쩌억 벌어질 모습이었으나, 더 신기한 것은 따로 있었다.
돌연 거대 지네와 귀무 속의 악귀들이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악귀들은 지네를 향해 맹렬히 달려들었고, 지네는 새까만 독무를 뿜어내며 악귀들을 집어삼켰다.
갑자기 벌어진 천재지변에 어안이 벙벙하던 도사들이었으나, 아직 놀랄 일이 하나 더 있었다.
“이 자식들이.”
하늘에서 나타난 사내 하나가 뜬금없이 화를 내며 지네와 귀무 사이에 선 것이다.
“왜 싸우고 지랄이냐.”
멀리 있어 잘 들리지 않았지만 모습만 보면 둘을 꾸짖는 모습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네는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변했고, 귀무는 사라지고 대도를 든 여인이 나타났다.
그들은 세달 전, 수월에서 도망친 산군과 귀율, 탐화였다.
귀율과 탐화를 자신의 모습으로 둔갑시켜 달아나고, 세달 만에 다시 보게 된 것이다.
한데 귀율은 뜬금없이 범인들을 잡아먹고 탐화와 싸우고 있으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귀율이 먼저 때렸는걸?”
탐화가 그리 말하고, 귀율은 죽일 듯 노려보기만 하고 묵묵부답이었다.
귀율은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점점 지 멋대로 움직인단 말이지.’
귀율의 몸이 성장한 뒤로 종종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도 없을 뿐더러 말을 할 수 있을 텐데도 전혀 입을 열지 않는다.
그저 지독히 원망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에휴.”
손을 휘젓자 귀율이 허공에 스며들고, 탐화가 작은 지네로 변해 팔목에 감겨들었다.
작은 영산으로 내려선 그가 고륜을 꺼내 순식간에 동굴을 파내고 각종 금제로 철저히 입구를 봉했다.
이내 공정강에서 거대한 무언가를 꺼냈는데, 혈향이 짙게 맡아지는 초췌한 몰골의 궁비호였다.
착잡한 눈으로 바라보다 단번에 우리를 부숴버리고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요호.”
그러자 하나 남은 궁비호.
요호가 답했다.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 사내이십니다.왜 이리… 왜 이리 늦으셨습니까….]
나무라는 말과는 달리, 그녀의 음성에는 반가움이 물씬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