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96)
낭선기환담-195화(196/600)
낭선기환담 – 195화
모습은 물론이요, 기운 그 자체도 완벽하게 차단됐다.
산군은 귀걸이를 착용한 채로 가만히 서 있었으나, 소 소저는 그가 보이지 않는 듯 연신 불렀다.
“유, 육귀 어디 가셨습니까?”
정말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소 소저는 몇 번을 그리 더 불러 보다 방 곳곳을 기웃거렸다.
“뭐야… 어디 간 거야?”
정말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듯 소망은 한참을 둘러보다 입술을 둥글게 하며 안색을 바꿨다.
“뭐 가져갈 거 없나?”
산군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도둑을 하나 키우고 있었다.
소망은 한참을 뒤적거리며 쓸 만한 물건을 제 주머니에 넣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산군이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뭘 그리 뒤지는 게야.”
“엄마야!”
화들짝 놀란 소 소저는 눈알을 재 빠르게 굴리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언제 오셨어요?”
“처음부터 있었네. 내가 아주 훌륭한 대도(大盜)를 키우고 있었더군.”
“대, 대도라뇨! 누가 들으면 오해할 말씀을 더러 하십니다!”
“오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던데?”
코앞에서 도둑질하려는 걸 직관했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하지만 소 소저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는 차분히 말했다.
“오해십니다.
저는 그저 잠시 빌려 갈 게 있을까 싶어 기웃거려본 것입니다.
그리고 여태껏 제가 보아온 육귀는 자신의 것이라도 이웃과 나누고 더불어 살아가실 줄 아는 도리와 덕망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말 참 맛깔지게 잘한다.
왠지 모르게 더 듣고 싶어졌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더 듣지 못할 이유도 없다.
“저는 여느 때와 같이 제게 필요한 물건이 있나 찾아본 것이지 절대 도둑질을 하려고 한 게 아닙니다.
제 수행의 길에 대도라는 단어는 오직 대도(大道)뿐이 없으니 오해하지 말아 주셔요.”
산군은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성큼성큼 걸어가 소 소저의 볼을 잡았다.
“아야야!”
“헛소리도 정성을 담으니 설득력이 대단하군, 대단해.”
“수, 숙녀의 볼을 그리 잡아당기시는 게 아닙니다, 육귀!”
“숙녀는 개뿔! 뭐 훔쳐갈 게 있나 기웃거리는 꼴이 딱 좀도둑이었는데 무슨 숙녀란 말인가!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더니 옛말 틀린 거 하나 없군. 내 오늘 소저의… 아니지. 좀도둑에게 무슨 경어가 필요할까!
소망! 오늘 네 버릇을 단단히 고쳐 놓아야겠다!”
그러자 소망이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 육귀! 우리가 아무리 몇 십 년을 봐오며 벽 없이 지낸다고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대하는 건 무례라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응 아니야.”
산군이 고민도 없이 즉답하자 소망의 손이 곧장 수결을 맺었다.
하지만 그 꼴을 어찌 두고 볼까.
왼손으로 손을 붙잡아 수결을 막아 세우자 그녀의 낯이 이지러진다.
“절 원망 마세요, 육귀!”
뿌드득!
뼛소리가 들려오며 산군에게 잡혀 있던 소망의 손이 움직였다.
그녀의 본질은 혼과.
도사와 영수가 합쳐진 생물이다.
당연히 신체 능력 또한 보통의 도사와는 궤를 달리한다.
“아니, 무슨 힘이…!”
하지만 산군의 손은 꿈쩍도 안 했다.
그가 누구던가.
온갖 비술들로 강체술을 익혔으며 균천보화를 이룬 영수의 몸이다.
천근을 지닌 혼괴라도 산군의 악력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으윽!”
소망은 산군의 힘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가 입을 달싹였다.
그러자 그녀의 몸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더니 수증기가 새어 나왔다.
순식간에 안개로 변한 것이다.
무슨 신통인지 붙잡고 있던 손도 한 줌의 안개로 변해 사라졌다.
“호오.”
치이이… 안개는 어느새 방안 가득 퍼져,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다.
흥미롭다는 듯 보던 산군의 적안이 슬쩍 어느 한 곳을 잡아냈다.
핑!
순식간에 손가락을 튕겨 검은 금장사를 쏘아내자 안개가 요동쳤다.
태앵!
금장사가 안개 속에서 튕겨 나오자 산군의 입가가 둥글어졌다.
“쓸만한 검이로군. 아니, 천인가?”
소망은 자신의 은술을 단번에 찾아낸 그의 신통에 혀를 내둘렀다.
“제 본선법패인 천의무봉입니다.”
“천의무봉이라니 거창한 이름이야.”
소망의 곁에는 하늘하늘하며 속이 훤히 비쳐 보이는 얇은 천 하나가 두둥실 떠 있었다.
선녀들의 날개옷과 같은 모양이다.
손만 대도 찢어질 것 같이 생겼으나 금장사를 튕겨내는 걸 보니, 그 강도가 웬만한 보검 수준으로 얕잡아 볼 정도는 아닌 듯했다.
“거창한지 아닌지 한번 시험해 보시렵니까?”
산군의 도발에 넙죽 넘어간 소망이 발끈하며 돌진했다.
선홍색의 천의무봉이 스르륵 감기며 쏘아졌다. 나풀거리는 모습이 나비와도 같으나 순식간에 돌돌 말려 창처럼 쏘아지는 것을 보니 벌과도 같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속담은 바로 그녀를 보며 하는 말 같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 자신만만하니 어디 한 번 천근을 지녔다는 실력 좀 볼까.”
화르륵!
손에서 푸른 화염이 치솟더니, 어느새 얇고 푸른 보검이 나타났다.
산군의 본선법패, 화란이었다.
까앙!!
단번에 천의무봉을 걷어낸 산군이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내기 하나 할까.”
“내기요?”
“내 털끝 하나라도 건들 수 있다면 무슨 부탁이든 한가지 들어주지.
그것이 물건이든 무엇이든 말이야.”
그러자 소망의 눈이 빛났다.
그녀와 산군의 실력차이가 난다고는 하나, 그러해도 같은 경지이다.
전력을 쏟는다면 제 아무리 십해만척의 육귀라도 털끝 정도는 건들 수 있을 게 당연했다.
“정말이요?”
“하지만 그리하지 못한다면 내 부탁 하나를 들어줘야 할 것이야.”
“물론이죠! 무르기 없기에요!”
사라락!
희뿌연 안개 속에서 소망의 신형이 사라지고 바람 소리만 휘청였다.
그러자 산군의 신형도 함께 사라지며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불똥이 튀며 철성을 자아냈다.
카앙!! 채앵! 깡!!
불똥이 튈 때마다 잠깐씩 보이는 소망과 산군의 모습만이 둘의 대련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렸다.
하지만 그마저도 잠시뿐.
차아악!
바닥을 긁으며 밀려난 소망이 천의무봉을 몸에 감싼 채로 나타났다.
“조금은 봐주면서 해주시죠!”
“충분히 봐주고 있는데?”
까드득.
소망이 어금니를 으득 깨물었다.
결백하다는 듯 멍청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게 더 열 받는다.
그는 검 하나를 손에 쥔 채로 짐짓 여유로운 태도로 일관했다.
대체 어떻게 되먹은 검인지 천의무봉의 신음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검과 맞닿을 때마다 덜덜 떨려오는 자신의 팔과 천의무봉이 점차 한계에 다달하고 있었다.
게다가 실력의 고하는 명약관화.
소망은 산군의 털끝 하나도 건드릴 수 없었다.
분명 다를 것 없는 경지인데 어찌 이리 차이가 나는지 모를 지경이다.
분하기 짝이 없으나 그가 말하는 대로 산군은 손속에 여유가 있었다.
아무리 경험이 없어도 그건 안다.
수많은 보물을 지닌 육귀인데 오직 검 한 자루만 쥐고 있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때문에 화가 머리끝까지 솟았으나 그와 반대로 그녀의 자존심은 나락으로 처박히는 중이다.
“정말…!”
분해 죽겠다는 듯 소리친 그녀는 이내 강대한 영압을 뿜어냈다.
그녀의 눈에 귀기가 서리고 강력한 영압에 일대가 크게 진동했다.
쿠구웅!!
“그리 자신만만하시니 전력을 다해도 막아낼 수 있으시겠지요!”
우우웅!
천의무봉이 춤을 추듯 움직이며 그 결에 따라 짙은 잔상이 이르렀다.
이내 그녀의 등 뒤로 둥그런 광원이 생겨나며 눈부신 후광이 발광했다.
세상을 전부 밝힐 듯 발하는 광원은 여러 개의 고리와 함께 법문이 그려지고 형이상학적으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가며 돌아갔다.
“소녀의 나경팔괘공(羅經八卦功)을 맞고도 그리 여유로울 수 있는지 한 번 보지요!!”
후우우웅!!
희뿌옇던 안개가 순식간에 걷어지고 눈부신 광휘를 흩뿌리는 나경팔괘가 오색의 빛을 자아냈다.
이쯤 되자 아무리 산군이라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균천오광과 비슷한 기운이다.’
산군의 균천오광보다는 미약한 기운이었으나 꽤 흡사했다.
‘역시 천근이란 건….’
이내 천의무봉이 늘어나 사방을 감싸고 채찍처럼 휘몰아쳤다.
그 움직임이 마치 춤을 추는 것과 같았고, 한 떨기 꽃잎과도 같이 부드럽기도 매섭기도 하였다.
동시에 나경팔괘가 자아내는 오색의 빛이 점점 매서워진다.
금세라도 화과산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쿵! 콰앙! 쿠구구구구구!!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는 연격 속.
산군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스르륵 모습을 감추었다.
콰아아아아앙!!
자욱한 폭연이 가득 차올랐다.
무엇이 어찌 됐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내 불어온 바람 한 점이 흙먼지를 걷어내 보이는 것은.
“반칙입니다.”
억울하다는 듯 주저앉은 소 소저와 검을 겨누고 있는 산군이었다.
“생사결에 반칙이 어딨나. 살아남는 놈이 장땡인 세상이야.”
“그래도 반칙입니다! 성족의 귀걸이로 모습을 감추시다니요! 그리하면 제가 어찌 공격할 수 있습니까! 이, 이건 명백한 사기입니다!”
아무리 매서운 공격이라도 맞지 않으면 당하지 않는다.
소 소저는 되도 않는 떼를 썼으나 세상살이가 녹록하지만은 않다.
산군의 자신의 왼쪽 귀에 걸려있는 귀걸이를 툭 건드리고는 답했다.
“당한 놈이 멍청한 게지 뭐.”
턱, 화란을 어깨에 걸친 산군은 히죽 웃으며 소 소저를 바라봤다.
“이제 내 부탁을 무엇이든 들어줘야 하는 차례가 온 거 같군.”
아랫입술을 꾹 베어 물은 소망은 억울하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내 부탁은….”
이내 산군의 입이 달싹였다.
잠시 후, 그의 말을 들은 소망의 낯이 와락 찌푸려졌다.
* * *
“금환선향이라 아느냐?”
초음선녀가 물었다.
“알고 있습니다. 죽으러 가기 딱 좋은 곳이라고 하더군요.”
냉담하게 답한 초아는 다시금 눈을 감으며 수결을 맺었다.
“널 지선으로 만들려면 그곳에 좀 다녀와야겠다. 너도 따라오거라.”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지선인 당신을 위협할 것이 무어가 있다고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금환선향은 존재 자체가 위험하다.
다른 놈들은 그곳을 어쩌다 생겨난 곡공지간이라 여기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곳도 아니지만… 금환선향 자체가 하나의 생명이 깃든 곳.
아무튼, 네게 큰 공부가 될 것임이 자명하니 잔말 말고 따르거라.”
그때였다.
스르륵!
초음선녀의 발밑에서 돌연 막대한 한기가 치밀어 올랐다.
한기는 이내 거대한 연꽃으로 변해 순식간에 노파를 먹어치우며 꽃봉오리로 바뀌었다.
그러나 순간 꽃봉오리에 균열이 쩌적 일어나더니.
콰차창!!
박살나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천년만의 금환선향이다. 그곳에서만 구할 수 있는 영초나 영목등, 네게 도움 되는 기연을 만날 수도 있을 테고 수명이 급박해 들어온 눈먼 도사들을 사냥해 한음(寒陰)으로 만들어 취해도 수행에 도움이 되겠지.”
노파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하자 초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천박한 짓은 하지 않습니다.”
“수도의 길 앞에 천박하고 말고가 어디 있겠느냐! 올라설 수 있으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올라야 하는 것이 바로 수도이다! 네년은 아직 수명이 남아돌아 절박함이 없나 보구나 쯧쯧. 눈 뜨고 살펴보거라.
경지를 올리고자, 또는 편안한 수행을 위해 기꺼이 제 몸을 바쳐 노정(奴情)이 되고 싶어 안달 난 여선들이 깔리고 깔렸다.
여선들만 그럴까? 남선들 또한 수도의 길 앞에서는 다를 것 하나 없지!”
쌍수공법을 통해 수행을 증진하는 방중술은 많다.
그렇기에 일부러 반려를 구하거나 암장에 팔려오는 여선을 노정으로 사들이는 도사도 빈번하다.
여선은 물론, 남선 또한 높은 경지의 도사와 쌍수를 이룰 수 있다면 삼보일배를 해서라도 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비일비재하다.
그 또한 하나의 기연이라 할 수도 있는 것이고, 운이 좋다면 승선을 통해 반려나 첩이 될 수도 있으니 탄탄대로이지 않은가.
뒷배가 없는 이들은 오히려 노정이 되는 것을 깊이 바라기도 했다.
“아깝구나, 내 독문공법을 익혔으니 널 품는 사내는 천재일우의 기연을 가진 셈이나 다름없었을 것을.
네가 지선이 되어야 하는 것만 아니었어도 다른 문파에 값비싼 노정으로 팔아 버렸을 거다! 본래 유정이라는 놈과 맺어주고 쌍수를 이루게 하려 했으나 아깝게 됐지.
자질이 남다른 놈이기에 좋은 한음으로 만들어 네 수행에 도움이 됐을 텐데 말이야!”
초아는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러나 노파의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그녀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