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198)
낭선기환담-197화(198/600)
낭선기환담 – 197화
탓.
노파와 삿갓을 쓴 여인이 높다랗게 솟은 기암괴석을 밟고 섰다.
그 둘은 새하얀 백의를 입고 있는 빙궁의 도사.
초음선녀와 현천선녀였다.
“금환선향에는 많고 많은 기연이 잠재되어 있으나 그 중에서도 으뜸이라 부를 만한 건 따로 있지.”
주름이 자글자글한 초음선녀가 궁금하지 않냐는 듯 말했으나, 현천선녀는 냉담한 태도로 입을 닫았다.
“내가 지선으로 승선할 때도 도움을 받았던 녀석이지.”
지선으로의 승선! 그리 말하자 현천선녀라 불리는 그녀라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마음에 들지는 않으나 초음선녀가 지닌 경지는 진짜였다.
자신이 함부로 무시할 수 있을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게 무엇입니까.”
“금어초(金魚草)를 아느냐.”
“알고 있습니다.”
해골꽃이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꽃이 만발했을 때는 여느 꽃처럼 아름다우나, 시들면 해골의 모양으로 변하기에 유명한 꽃이다.
옛 선인들은 금어초를 보며 인생조로(人生朝露)를 술회하기도 했다 하여 수도자들은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꽃이다.
“허나 내가 찾는 것이 평범한 금어초일 리는 없지. 오직 이곳. 금환선향에서만 나고 자라는 금어초다.
그 이름하야….”
* * *
“십생금어초(十生金魚草).”
“십생금어초? 그게 뭐지?”
처음 들어보는 소리에 귀왕들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본래 평범한 금어초가 열 번의 생을 피고 지면 나타난다는 꽃이네. 마치 윤회를 제멋대로 이루는 것처럼 살아가는 영초라 할 수 있지.”
열 번의 생을 사는 금어초.
십생금어초를 먹으면 열 번의 생을 얻은 것과 같은 생명력을 지닐 수 있게 된다고들 말한다.
“그리고….”
삼귀는 구귀를 흘기며 말했다.
“경전에 의하면 십생금어초를 먹은 사람은 자신의 전생을 떠올리기도 했다고 하더군….”
호리의 눈이 반짝였다.
“벼, 별것도 아니구나!
별로 관심은 없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한 번 찾아볼까?”
그녀의 말에 다른 귀왕들이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크하하하, 찾을 수 있다면 말이지!”
십귀였다.
구귀는 십귀를 죽일 듯 노려봤다.
“십귀의 말이 맞다. 금환선향에 있다고는 전해지지만 그런 선계의 신초가 잡초마냥 자라고 있겠나?
어디 꽁꽁 숨어 있거나 찾는다 해도 누군가가 반드시 노릴 테니 뒤통수가 퍽 따가울 것이다!”
통통한 체격의 사귀였다.
“이익! 이 자식들이!”
사귀는 성을 내는 구귀를 더 놀려 줄까 했으나 입을 다물었다.
구귀의 뒤에 육귀.
산군이 말없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 크흠. 뭐… 그런 것보다는 우리의 목적을 잃으면 안 되겠지.
애초에 금환선향에 당도한 목적은 천양지보 때문이니까.”
“그렇죠. 다른 기연들도 많겠으나 제일 먼저 찾아야 할 것은 천양지보. 십해의 보물이니 말입니다.”
말을 돌리자 기다렸다는 듯 삼귀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산군은 슬쩍 주변 풍경을 바라보다 삼귀를 향하여 질문했다.
“어디로 향할 거지.”
짙은 운무가 사방 천지에 깔려 있어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곳이 바로 금환선향이었다.
하늘과 땅이 뒤집히고, 상하의 기준이 없는 곳이기도 했다.
땅을 밟고 있기는 하나, 하늘 위에도 땅이 있는 기괴한 곳이다.
“북쪽으로 갈 것이오.
금환일식의 통로는 약 일주일.
그동안 이어지는 짧은 통로이니 나누어 찾는 것이 좋겠지만….”
금환선향에 당도한 이들이 십해만척뿐은 아니니 애매했다.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마도는 물론이요, 선도 놈들까지 죄다 몰려들었다고 하더군.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움직이는 게 좋을 게요.”
“맞소, 또 금환선향 자체가 워낙 해괴한 것들이 많은 장소이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고 보오.”
그 의견에는 산군도 동의했다.
괜히 흩어져서 찾아다니다 선도나 마도 놈들에게 공격당하면 답도 없으니 뭉쳐 다니는 게 좋았다.
“지체할 거 있나! 시간도 촉박하니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
성질 급한 십귀였다.
십귀는 자신의 귀수들을 이끌고 곧장 빛줄기로 변해 하늘로 솟구쳤다.
이내 삼귀와 사귀도 마찬가지.
남은 것은 산군과 호리 뿐이었다.
‘십생 금어초라….’
짤막한 구전을 엿본 적이 있었다.
전설로만 전해지는 선계의 영초인 것과 더불어 여러 이로운 효과를 가져다주는 십생 금어초.
생으로 먹으면 열 번의 생을 되돌아보게 되어 광인이 되거나 영혈이 역류해 죽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 적합한 연단법으로 선단으로 만들어 취하면 엄청난 수행의 증진은 물론, 강인한 생명력과 큰 깨달음을 얻게 해준다는 선초(仙草).
하계의 영초들이 아무리 뛰어나 봐야 십생 금어초라는 선계의 선초를 뛰어넘지는 못할 것이다.
‘금환선향은 선계와 이어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조금 의아했으나 이내 생각을 털었다. 애초에 수도자들이 기록해놓은 경전이니 와전되거나 잘못된 지식이 적혀있기도 했을 터.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산군은 호리를 내려 보다 머리통에 손바닥을 얹었다.
“뭐, 뭐냐! 치우거라!”
그날 이후로 영 어색한 사이다.
내색하지 않으려고는 하지만 그게 어찌 그렇게 될까. 은연중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지금만 해도 소리만 지를 뿐, 머리 위에 올라온 손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십생 금어초만 있으면 이놈의 기억도 돌아올 수 있겠지….’
호리는 화내는 척하고 있으나 은근히 눈치보기에 여념이 없다.
산군은 그 모습이 영 보기 싫었다.
“가자 검둥아.”
“와악!”
호리를 들쳐 업은 그는 곧장 푸른 빛줄기로 변해 하늘을 갈랐다.
* * *
여러 개의 빛줄기가 금환선향의 하늘을 가르고 지나갔을 때.
그 빛줄기들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여인이 아미를 좁혔다.
“촉 사백님. 말씀하신 대로 준비를 마쳤습니다. 잠시 확인해본 결과 다량의 성운지력을 감지했습니다.”
“음….”
여인은 왠지 모르게 고민하는 낯으로 침음성을 흘렸다.
“사백님의 예상대로 이 비동에는 대량의 운철이 있는 듯합니다.”
제자는 사백이라는 여인의 모습을 보며 눈을 빛냈다.
녹색의 머리칼을 늘어뜨린 기이한 여인은 목향(木香)이 짙었으며 정순한 목신통의 기운에 밟고 있는 잔디마저 녹음지게 만들었다.
“놈이 여기 있나 보구나… 본좌 본선법패가 감응하는 걸 보니….”
“…예?”
“아니다. 일정대로 진행해라. 진지를 구축하고 운철을 채굴한다.
만일, 침입자가 나타난다면….”
그녀의 녹안이 음산하게 번득였다.
“존명!”
사백은 그리 말하고는 신형이 흐려져 귀신처럼 사라졌다.
* * *
금환선향의 동쪽.
존재하는 것만으로 초목을 시들게 할 진득한 기운이 어지러이 풍겼다.
바스 사라지는 초목들 곁에 선 이들은 제각각의 모습이었으나 모두 하나같이 껄끄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오자마자 횡재했군.”
“그러게 말이오.”
그들은 마곤의 대표격인 삼대문파의 수장들이었다.
금환선향의 별천지 풍경을 감상할 법도 하건만, 그들의 발밑에는 짙은 핏물과 교룡의 시체가 쌓여 있었다.
“난다 긴다 하는 동해의 공주께서 이런 오합지졸들을 끌고 다니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보군.”
교룡들의 시체 옆에는 핏빛의 법문으로 묶여 있는 여인이 아랫입술을 꾸욱 깨물고 있었다.
“몇 해 전, 해룡족의 공주가 영겁으로 올랐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소.”
“허허… 한참 천방지축일 때지 암. 이제 막 영겁에 올라 제 아비를 빼고는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에 올랐다 생각했겠지!”
영겁의 경지가 어디 동네 똥개처럼 흔한 이름이던가.
영겁에 오르지 못해 피눈물을 흘리고 흙으로 사라지는 이들이 하늘의 별처럼 무수하다.
그러니 저처럼 하늘을 발아래에 두었다 착각하고 다니는 이들도 많다.
그녀 또한, 그런 이들 중 하나였고.
재수 없게도 그들에게 걸린 것뿐.
“동해에서는 그대가 공주이나, 그곳을 나오면 그저 평범한 육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해룡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일족도 우물 안 개구리나 다름 없구만 그래.”
신랄한 비난에 여인의 낯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어찌하실 겁니까?”
마두 중 하나가 물었다.
귀가 큰 노인으로 요향문(妖香門)의 장문인 향노라는 마사였다.
“해룡족 공주라면 그 이름값이 있으니 노정으로 쓰는 것도 꽤 풍류가 있겠습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불천문(不天門)의 장문, 불천이었다.
“동해삼왕 중 하나인 해총령왕이 바로 내 어버이 되시는 분이시다! 적통을 이은 해룡의 공주가 바로 나인데 그런 망발을 어찌 입에 담느냐!”
그러자 공주가 목청을 드높이며 소리쳤으나 그래봤자 겁먹은 짐승이나 다름없는 비명이다.
“그 또한 나쁘지 않겠지.
그러나 본인은 해룡족 공주가 모종의 이유를 가지고 왔다고 본다.”
귀강문의 장문.
예운이었다.
“이유요?”
“그냥 오지는 않았겠지. 해룡족의 공주가 금환선향에 왜 왔겠는가.
탐내는 무언가가 있으니 왔을 것이고, 그 탓에 잡힌 것인데.”
“그거야 그렇겠죠. 예형이 말씀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알겠습니다.”
공주가 지닌 기연의 단서가 있을 수도 있으니 그것을 알아보자는 뜻.
허나 향노는 굳이 그럴 필요 있냐는 듯 다시금 되물었다.
“이제 막 영겁에 오른 육사입니다.”
영겁 초경이 탐내는 물건을 자신들이 탐해 무얼할까.
마곤의 삼대 장문인 그들이다.
태선 최후경에 도달해 지선을 넘보고 있는 그들에게 영겁 초경의 기연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초경과 후경이라고는 하나, 그 차이는 천양지차(天壤之差)!
본디 영초와 술은 묵히면 묵힐수록 그 맛이 깊고 진해지는 법이니.
그들에게 초경의 기연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물론 그렇겠지.”
예운은 작게 주억이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그녀의 몸에서 작은 함 하나가 튀어나와 손에 들렸다.
금색으로 산호와 어류들이 장식된 어여쁜 함이었다.
딸깍.
함을 열어보자 그 안에는 흑빛의 돌이 있었는데, 예상했던대로라는 듯 예운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딸아이의 얼굴도 못본 지가 오래되어 새로 하나 만들어볼까 했거든. 이번에 운철에 견문을 넓히고 있어 성운지력에 민감했는데….”
예운은 검은 돌을 매만지다 해룡족 공주를 내려다보고는 피식거렸다.
“딱 운철을 가지고 계시는군.”
하늘의 별이라는 운철이다.
이 한 조각만 있어도 천년은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군요! 운철에 신묘한 법문이 짜여져 있습니다. 이것이 아마 저들이 찾는 기연으로 안내해주는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겠지요!”
마곤의 마두들이 비릿한 미소를 짓고, 해룡족의 공주.
지솔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 * *
금환선향으로 북쪽.
만 리 정도를 단번에 넘어간 산군과 귀왕들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이들을 보며 눈썹을 끌어 올렸다.
“별 것들이 다 모였군.”
금환선향의 북쪽에서는 한바탕 선도와 마도. 그리고 해족들이 아비규환이 되어 싸우고 있었다.
선경이나 다름없던 풍경은 도계에 몸 담은 이들로 인해, 풍비박산나고 피분수가 솟았다.
“하하핫! 그래! 이래야 도계지!”
십귀는 호탕하게 웃어재끼며 당장에 싸움판으로 뛰어들었다.
사귀도 다르지 않았고, 삼귀와 육귀인 산군만이 상황을 살폈다.
슬쩍보니 어느 한 곳이 음푹 파여진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 작은 동굴이 엿보였는데, 한 눈에 보아도 수상한 냄새가 물씬 났다.
“저곳이 우리가 찾던 선인의 비동이라 불리는 장소인 듯 하군.”
“허나 정리가 필요하겠어.”
선도의 태선 둘.
마도의 태선 둘.
충분히 정리할 수 있는 숫자다.
“같은 생각이오.”
이내 삼귀 또한 사귀와 십귀에게 가세했고, 산군은 호리를 들쳐 업은 채로 귀걸이를 툭 건들였다.
스르륵.
그의 신형이 사라지고 소리없는 바람만이 서늘하게 불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