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of the Spear RAW novel - Chapter (204)
낭선기환담-203화(204/600)
낭선기환담 – 203화
풍경은 그리 대단찮은 것이 없었다.
단촐한 초가집 앞마당에는 호수가 있었고, 그 호수 앞에는 낡은 낚싯대가 하나 세워져 있었다.
내심 실망스러운 풍경이었다.
하리 산맥에서 얻어낸 경전들이 고서에 흡수되어 비석이 되었다.
그리고 그 비석으로 들어왔더니 있는 것은 고작 호수와 초가집.
누구라도 실망할 법한 이야기다.
아무것도 없는 백색 공간에 초가집과 커다란 호수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기이한 광경이라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초가집에 들어가 살펴봤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염병할 이게 뭐지?”
싱숭생숭한 마음을 뒤로한 채 나오자, 보이는 것은 반짝이는 맑은 호수였다. 마음이 허탈해서일까.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산군은 의자에 앉아 낚싯대를 들었다.
“낚시… 낚시인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그렇잖아. 이런 비밀스러운 공간에 만들어둔 것이 고작 초가집과 호수… 그리고 낚싯대가 다라니 말이야. 아니 그런가?”
그러자 스르륵 그의 목을 끌어안은 여인네가 나왔는데, 머리칼이 검퍼렇게 변해 있는 화란이었다.
“조금 이상하기는 하네요. 그 낚싯대는 어떻습니까? 평범해 보이지는 않는 녀석인데요.”
“별 것도 없어. 보구 수준의 낚싯대인데 조금 튼튼한 게 다야.”
보라는 듯 낚싯대를 휘두르자 툭툭, 호수 밑바닥에 바늘이 걸린 듯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가지가지 하는군.”
짜증을 한가득 뱉어내며 힘을 주자 활처럼 휘었다. 그냥 부러트려 버릴까 싶어 있는 대로 힘을 주었는데도 의외로 낚싯대는 튼튼했고, 실과 바늘마저 그러했다.
“누굴 놀리는 게야 뭐야.”
꾸드득.
제대로 힘을 주어 낚싯대를 끌어 올리자 그제야 무언가 올라오는 듯 바닥이 긁히는 소리가 났다.
드르륵, 드륵!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되겠다 싶어 막바지로 힘을 주었을 때.
철커덕!
기관이 움직인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뭘 하신 겁니까?”
“낚싯대를 잡아당겼지….”
그랬더니 호수가 소용돌이 쳤다.
깊은 구멍이라도 나버린 듯 점차 물이 줄어들고 바닥에 드러났다.
얼떨떨한 기분도 잠시.
산군은 벌떡 일어나 호수 한가운데로 날아가 천천히 내려섰다.
구멍이 얼마나 큰지 호숫물은 금세 사라졌고, 거대한 구덩이가 그를 반기고 있었다.
“낚싯대와 기관이 연결되어 있었나 보네요. 이쪽에 손잡이와 낚싯줄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호수 밑바닥 한쪽에는 기관이 설치되어 있었는지, 손잡이와 낚싯줄이 묶여져 있었다.
“이러니 그리 무거웠지.”
무어가 어찌됐든 나쁠 건 없다.
아니, 오히려 묘한 기대감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웃음기 어린 낯으로 유유히 내려가자 끝도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구덩이에서 묘한 온기가 느껴졌다.
왠지 모르게 친숙한 기운이었다.
허나 그와 다르게 산군의 낯은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설마….”
그럴 리 없다 생각하면서도 이 친숙한 기운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산군은 곧장 푸른 빛줄기로 변해 하강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깊은 곳에 자리한 것인지 둔술을 극성으로 올려도 좀처럼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왠지 모를 초조함에 아랫입술을 깨물은 산군은 두 날개까지 꺼내 화살처럼 쏘아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팡, 팡, 팡!!
파공음과 함께 날개가 펄럭이며 그의 신형이 멈춰 섰다.
멈춰선 산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산군의 주위는 온통 불바다로 변해 있었는데, 그 불의 색이 워낙 각별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산군, 이것은….”
“아마도 그런 듯하구나.”
산군은 푸른 불바다 속에 자리 잡은 거대한 깃털을 보며 말했다.
“봉악천수조의 깃털이다.”
* * *
금환선향.
갈림길에 있던 장승 중 남쪽.
염천시문의 길에 솟아난 염천장승.
그의 눈이 번쩍 떠졌다.
항시 무표정을 유지하던 장승의 얼굴이 기괴하게 바뀌었다.
기뻐하는 거 같기도, 슬퍼하는 것 같기도 하는 애매한 얼굴이었다.
[자네 왜 그러나?] [먼저 가보아야겠군.] [뭣? 서, 설마!!]후우웅!
이내 장승의 몸에서 찬란한 빛이 퍼져 나오며 나무로 이루어진 그의 몸이 조각조각 터져 나왔다.
다른 장승들은 놀라움 반, 부러움 반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허허… 이래서 말이 씨가 된다고 하던가. 정말로 자네가 제일 먼저 해방될 줄이야… 시원섭섭하구만.] [왜 안 그렇겠나. 이 지긋지긋한 곳과도 이제는 안녕이겠어.] [아쉽지만 약조는 약조다, 염천. 자네가 우리 모두를 거두어주게.]옅은 진동과 함께 공간이 일렁이고, 여러 파동이 퍼져 나왔다.
장작이 타들어가듯 재를 뿌리던 염천장승은 순식간에 한줌 연기로 변해 바람처럼 사라졌다.
* * *
거대한 깃털이다.
기품 있고 유려한 깃털이었으나 어딘지 모르게 절단된 흔적이 보였다.
‘봉악천수조의 깃털이 왜 이곳에….’
모를 일이다.
이 또한 인연일까.
봉악청화는 지금에 와서는 떼놓으려야 떼놓을 수 없는 신통이요, 산군을 여기까지 오게 만든 신통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봉악청화를 몸에 깃들여 성장하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다.
그런 고마운 신통인데 또 다시 재회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막연히 선계로 향하면 얼굴 한 번 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는 했는데….’
예상보다도 빨랐다.
비록 그것이 깃털에 불과할지라도!
“내게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도 값진 기연이로군.”
다른 그 무엇보다 더욱 그랬다.
본래 산군이 지닌 봉악청화는 봉악천수조가 남긴 잔재에 해당하는 불길이다.
그 잔재를 키우고 키워 이처럼 강렬하게 만들었던 산군이다.
한데 이번에 봉악천수조의 깃털을 얻었으니 생각만 해도 배가 부르고, 행복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그리 좋으십니까?”
“좋다마다, 지금 당장이라도 폐관에 들어가고 싶을 정도다. 그냥 봉악청화도 아니고, 봉악천수조의 깃털이 내재한 화염은 대체 얼마나 강력할지 감도 안 오는구나.
그야말로 신수의 깃털이요, 화염이니 이것을 전부 소화할 수 있을지부터 걱정이다.”
하지만 걱정이라고 말하는 이의 얼굴로는 보이지 않았다.
싱글벙글 입이 찢어져라 미소 짓고 있는데 어찌 그럴까.
화란은 그가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자 절로 미소 지었다.
“챙겨볼까. 이놈이 순순히 내 손에 들어 와주면 좋을 텐데 말이야.”
재빠르게 수결을 맺고는 입을 벌리자, 몸속에서 그와 꼭닮은 화령들이 동시에 봉악청화를 뿜어냈다.
산군의 봉악청화를 맞자 깃털이 빙그르르 돌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신수의 깃털이다.
봉황에게 깃털이란 자신의 몸의 일부나 다름없다. 그런 것이 자신의 화염을 거부하지 않으니 어찌 기분이 좋지 않으랴. 산군은 덩실덩실 춤까지 추고 싶을 정도였다.
자신감이 붙자 속도도 붙었다.
더 대담하게 화염을 뿜어내고 손가락을 빠르게 튕겨 법결을 쏘았다.
깃털은 이내 감응하는 듯 가볍게 봉악청화를 뿜어냈는데, 그 화기가 너무도 강렬해 산군이라도 숨이 막히고 살갗이 익는 것만 같았다.
‘잠깐 뿜어낸 걸로도 이 정도라니…!’
가히 놀라울 정도의 화기로다.
고작 깃털 하나가 품은 화염이다.
그마저도 성한 구석이 없는 깃털이건만 이런 고강한 화염을 품고 있다는 게 참으로 놀라울 정도다.
이것을 제대로 흡수하기만 한다면 하계에서는 감히 자신을 위협할 자가 없으리라 자신할 수 있었다.
“산군!!”
하지만 그때였다.
깃털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돌연 강렬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
산군이 흠칫 놀라 하늘을 올려다보니 무언가가 극히 빠른 속도로 이곳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대체 누가….’
구귀나 십귀는 아니다.
그들의 기운이 아니었다.
감지하기도 미미한 기운이다.
대체 무엇인지는 모르나, 가만히 두고 볼 산군이 아니었다.
“불태워주마.”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이 불구덩이로 기어들어오는 놈이다.
봉악청화의 불 맛이 얼마나 각별한지 보여주는 것이 딱 적당했다.
산군의 손이 물결처럼 움직였다.
주변에 넘실거리던 봉악청화가 그에 반응하여 따라 오르다 그대로 용오름처럼 하늘로 솟구쳤다.
벼락과도 같은 속도요, 모든 것을 태워버릴 열기.
마치 청룡과도 같은 기세로 하늘을 꿰뚫을 듯 쏘아졌다.
“뭣….”
하지만 이럴 수가.
그 무언가는 봉악청화를 가볍게 통과해버리고는 깃털로 떨어져 내렸다.
파앗!!
눈부신 빛이 발해 구덩이에서부터 빛기둥이 높이 올라갔다.
-겁낼 필요 없다. 오히려 난 그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니.
흠칫!
몸을 빼려던 산군이었으나 일순, 나지막이 들려온 전음이 그의 발길을 멈추었다.
“……….”
이내 빛기둥이 사라지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는 산군과 그 앞에 자리한 앳된 소년의 눈이 마주쳤다.
“사실입니까?”
“사실이다. 난 이곳에 갇혀있던 깃털의 주인이며, 동시에 본체에서 빠져나온 깃털의 분혼이다.”
“분혼?”
깃털이면 깃털이지, 깃털의 분혼이란 말은 또 무언가.
“그것을 설명하려면 앞서 설명해야 할 것들이 많다. 괜찮겠나?”
시간이 많지는 않으나 그 정도 들을 여유는 있다.
‘살심은 느껴지지 않아. 오히려….’
이상하게 친근한 느낌이었다.
“…간략히 부탁드리지요.”
본래라면 의심했었을 산군이었으나 저도 모르게 마음을 풀었다.
이내 소년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그는 묵묵히 경청했다. 어렵고 길게 이어질 거라 생각했던 이야기는 의외로 간결했고 간단했다.
그는 봉황의 깃털이었다.
모종의 이유로 본체에서 떨어졌는데 정신차려 보니 이곳에 갇혀 있었고, 넷으로 갈라져 있었다고 한다.
‘깃털 모양이 이상하다 했더니….’
그들은 넷으로 갈라졌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힘을 회복했고, 그 탓에 혼으로만 여러 곳을 배회하다 갈림길에 서 있던 장승으로 빙의할 수 있게까지 된 것이었다.
“우리는 그때 한 가지 약조를 했다. 제일 먼저 해방되는 자가 나머지 분혼을 거두어 본체가 되거나 본체로 향하자고 말이야.”
“본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다는 말입니까?”
“그렇다. 본래는 본체의 깃털이었던 우리다. 본체에서 떨어지고 난 이후의 일은 알 수가 없다. 감응조 차 되지 않으니 더욱 그렇지. 아마 본체도 상황은 좋지 않을….”
“흠… 그러니 일단 다른 분혼을 거둘 수 있게 도와달라는 말이군요.”
“바로 그렇다. 해줄 수 있겠나.”
얼굴 표정이 하나도 없는 소년의 모습이라 영 꺼림칙했다.
게다가 봉악청화를 흡수할 생각에 여념이 없었는데, 한순간에 빼앗긴 기분이라 더욱 그랬다.
‘봉황이랑 인연은 인연인가 보네.’
봉황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이야 가지고 있었으나 막상 눈앞에 본체는 아닐지언정, 분혼이 나타나니 그런 마음은 쏙 사라졌다.
자신이 얻을 봉악청화가 사라져서 그런지 뜬금없이 떨어진 분혼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중요한 사실은 깃털의 분혼이 자신의 도움을 바란다는 것이다.
“도와주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이러나저러나 봉악청화로 인해 도움을 받은 일이 적지 않으니, 자신에게 해를 끼치려 하는 게 아니라면 충분히 도와줄 수 있다.
하지만 세상사가 그러하듯 대가 없는 호의는 없는 법이다.
“대가만 충분하다면 말이죠.”
“지금 나와 거래를 하자는 건가?”
“그럼! 제가 당연히 아무런 대가도 없이 도와줄 거라 생각하셨습니까?”
어림없는 소리.
동서남북으로 갈라진 그의 깃털을 찾으려면 어떤 위험을 치러야 할지 모르는 일이다.
“지금만 해도 동국에서 우연히 얻었던 경전이 아니었다면 이곳에 들어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하물며 다른 깃털을 찾으라니요.
가능하고 말고는 제쳐두고 간단하지도, 안전하지도 않는 일이니 대가가 없다면 들어줄 수 없지요.”
“우연은 없다. 필연만 있을 뿐.”
뚱딴지같은 소릴하는 놈이다.
“아무튼 대가가 없으면 안 됩니다.”
손사래 치자 소년은 옅게 웃으며 아련한 얼굴로 말했다.
“대가라면 이미 받았다.”
“내가 말입니까?”
“그래.”
“난 받은 게 없는데?”
“이미 받았다.
한동안은 너와 함께 다닐 것이니 내가 지니고 있는 지식과 지혜를 가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게 무슨….”
“그리고 앞전에 말하지 않았나.”
“무엇을?”
“혼으로 비동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보았다고 말이야.”
말인즉슨.
“수도자가 오매불망할 보물들이 어디 있는지는 전부 꾀고 있지. 네가 찾고 있는 보물들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전부 내 손바닥 안일 게다.”
흠칫 놀란 산군은 이내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